소설리스트

4. 미지의 전학생들 (4/40)


4. 미지의 전학생들
2022.12.22.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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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지간히도 몰려 왔네.”

교무실 한쪽에 비스듬히 서 있던 엔지가 유리창 밖으로 따닥따닥 붙은 학생들을 보곤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꼭 모자라고 어리석은 것들을 바라보듯 엔지의 눈빛엔 묘한 경멸감이 서렸다.

나자크와 타헬, 그리고 엔지는 마치 청춘 만화의 한 장면처럼 그레이빌 세컨더리에 등장해, 현시점에서 최단 시간 내에 가장 주목받는 이 학교의 명물이 되었다.

결코 인간답다 말할 수 없는 화려한 외모가 그러했고, 눈에 띄는 비밀스런 분위기가 또 그러했다.

방송부의 학생 기자들은 새로운 먹잇감을 발견한 듯 이번 주 교보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전학생들의 사진을 찍기 바빴고, 틈이라도 보이면 그들을 에워싸고 사돈의 팔촌까지 캐낼 태세였다.

타헬은 자신들을 구경거리 삼아 몰려든 아이들이 신기한지 창밖을 내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좀처럼 들뜨는 법 없는 나자크가 그런 타헬을 힐긋 보곤 귀엽다는 듯 살짝 웃었다. 인간들 틈에서 살아가는 건 처음이니 어린 타헬에겐 모든 것이 신기할 법도 했다.

“그래. 셋이 사촌지간이라고?”

동시에 전학 온 세 사람을 설명하기에 딱 좋은 핑계란, 혈연을 중시하는 인간사회에서 가장 설득력 있는 위와 같은 문장 아니겠는가.

“네, 선생님.”

제 맞춤인 듯 주름 하나 없는 정갈한 교복 차림으로 선 나자크가 정중히 대답했다. 그런 녀석의 모양새가 교사는 퍽 마음에 드는 모양이었다.

“보자. 타헬만 어려서 학년이 다르구나. 엔지와 나자크는 같은 반으로 가면 되겠고, 타헬은 그 층에 있는 반으로 배정해주마.”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배려는 무슨.

엔지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인간답게 예의를 지키는 나자크가 껄끄럽기만 했다.

게다가 같은 반이라니. 엔지는 교과서처럼 정해진 대로 움직일 꽉 막힌 나자크와 과연 한 공간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중이었다.

엔지는 어떤 규율이나 규칙에 얽매이는 걸 가장 힘들어했고, 기본적으로 자유분방한 데다 즉흥적인 탐색형에 속하는 늑대인간이었다. 그러니 더더욱 형제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방법 같은 건 잘 알지도 못했고 굳이 알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자신이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학교생활이라니. 정말이지 미칠 노릇이지.

“어! 미카야, 마침 잘 왔다. 우리 반 전학생이니까 네가 좀 데려가 줄래?”

교사가 바로 가까이에서 유인물을 챙기던 미카를 불렀다.

나자크는 얼마 전 거리에서 칸과 함께 있었던 미카의 얼굴을 떠올렸다.

같은 이름, 같은 얼굴, 그리고 여전히 밤 조림 따위의 달콤하고 향긋한 냄새를 풍기는 소녀.

칸과 꽤 가까운 사이처럼 보였는데 같은 학교라니. 칸에 대해서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나자크로서는 의외로 일이 쉽게 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일단 미카와 가까워진다면 자연스럽게 칸에 대해서도 알게 될 테니까.

나자크는 가까운 거리에 마주 선 미카를 조용히 바라봤다.

어깨선에 닿을 듯 찰랑이는 긴 생머리칼에 야무지게 앙다문 입술, 불의에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 같은 강단 있는 눈빛. 미카는 언제나처럼 허리를 곧게 세운 채 교사의 앞에 다가와 섰다.

찰나의 순간 미카가 세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동시에 나타난 미지의 전학생 셋이라.

머지않아 학교가 소란스러워질 게 분명했다.

“그럼 난 회의가 있어서 이만. 그럼 부탁하마, 미카야.”

교사가 사라지고 난 후 미카는 보란 듯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녀가 내뱉는 한숨의 의미를 알 리 없는 세 사람은 제각기 귀찮거나, 무덤덤하거나, 호기심에 반짝이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 어느 쪽도 미카에게 득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미카는 흐트러질지 모르는 제 교복 깃을 단정하게 정리하며 꽤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아, 얼굴 안 다치게 조심들 하고. 너흰 왠지 더 위험할 것 같거든.”

갑자기 얼굴을 조심하라니?

미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게 된 건, 교무실 문이 열리고 중앙 계단을 올라 그들이 복도를 지나는 그 순간부터였다.

한쪽 창가에서 빠르게 책 한 권이 날아들자 엔지가 본능적으로 비스듬히 몸을 틀어 그것을 피해냈다. 그건 거의 감각에 의존한 채 동물적으로 반응한 반사적인 몸놀림이었다.

뭐지? 공격인가?

공격적인 태세를 취하는 엔지에 나자크와 타헬이 동시에 주변을 경계했다. 하지만 그 반응이 무색하게도 앞서가던 미카가 뒤를 돌아보지 않고도 상황을 다 아는 듯 태연히 말했다.

“신고식이야. 조금만 참아.”

신고식이라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교실 창가에서 그들을 향해 오만가지 물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미카에겐 비교적 익숙한 일이기도 했다.

스피커에서는 펑키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휘파람과 환호성이 곳곳에서 이어졌다. 분필, 명찰, 먹다 남은 초콜릿, 여자아이들의 교복 넥타이, 그것들은 모두 전학생에 대한 환영식이자 그레이빌 세컨더리만의 전통적인 신고식이었다.

간혹 출중한 외모를 가지거나 유명한 인물이 전학을 올 때면 그 강도와 물건의 양은 더없이 많아졌다. 이 날아드는 물건들이 결국 인기의 척도인 것이다.

타헬은 코앞에 날아오는 물건을 인간의 눈으로 좇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계속해서 피해냈고, 그건 나자크와 엔지도 마찬가지였다.

-완전 신기해! 인간들은 이게 정말 재밌어서 하는 걸까?

-재밌어서 하겠냐. 할 일이 없으니까 이딴 뻘짓이나 하는 거지.

들뜬 타헬의 물음에 엔지가 냉소적으로 대답했다.

정말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무엇하나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었다. 인간들 틈에서 섞여 산다는 건 결국 이런 귀찮은 일들을 계속해서 맞닥뜨려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문득 앞서가던 미카가 무언가를 깨달은 듯 힐끔 뒤를 돌아봤다.

분명 이렇게 많은 물건이 날아드는데 이 녀석들은 왜 물건에 맞질 않는 거지?

지금쯤 너덜너덜해져서 온몸이 먼지투성이여야 할 녀석들은 흔적 하나 없이 깔끔하기만 하다. 정작 자신은 덩달아 이 환영식을 당하느라 벌써 너저분한 몰골이 되었는데 말이다.

잠시 미카가 생각에 잠겨 방심하는 때였다. 과격한 환영 덕에 앞서가던 그녀에게 여지없이 물건이 날아들었다. 그건 누가 봐도 고의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단단하고 빠른 야구공이었다.

놀랄 틈도 없이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야구공을 미처 피하지 못한 미카가 머리를 움켜쥐고 몸을 낮췄다. 꼼짝없이 맞겠구나 싶은데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공이 날아들지 않는다.

미카가 실눈을 뜨고 팔을 살짝 내리자, 바로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나자크의 팔이 보였다.

그의 손에 어린애 장난감처럼 잡혀버린 야구공은 빠르게 회전하다 이내 그 움직임을 멈췄다. 엄청난 반사신경이었다.

“위험한 짓을 잘도 하네.”

인간들이란.

툭. 나자크가 복도 한쪽에 야구공을 버리듯 떨어뜨렸다.

나자크의 음성은 몹시 부드러웠으나 그 안엔 어쩐지 냉기가 서렸다.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그는 집단적으로 벌어지는 이 일을 꽤나 불쾌하게 여기는 것이 분명했다.

“조심해.”

그래. 분명 불쾌해하고 있다.

저 말도 안 되는 다정함이 그랬고, 다정히 내뱉으면서도 이성적으로 식은 회갈색 눈동자가 그랬다.

그런데 또 나를 보호해주는 이유는 뭐지?

미카는 콕 집을 수 없이 이중적인 태도를 취하는 나자크로부터 설명하기 어려운 위화감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상관없이 꼭 정해진 어떤 순서대로 미카를 대하고 있었다.

“너…… 안 아파?”

당황함으로 떨리는 미카의 목소리에 나자크는 그제야 제 손을 내려다보더니 가볍게 손목을 한 번 돌렸다. 그녀가 말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인간다운 행동조차 하지 않았을 그다.

“괜찮아.”

“고마워.”

멋쩍게 인사한 미카를 꼭 보지 못한 것처럼 나자크는 무덤덤한 얼굴로 지나쳐갔다.

둘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타헬은 유명인이라도 된 듯 여기저기에 손을 흔들어주며 인간 못지않은 살가움과 친화력으로 여기저기 인사하기 바빠 보였다.

학생들은 벌써부터 그런 타헬을 커다란 강아지 같다며 귀엽다고 아우성쳤다.

그런 동생이 부끄러운지 엔지는 멀찍이 떨어져 꼭 남처럼 복도를 걸으며 타헬을 구박했다.

-작작 해라, 작작.

-형! 인간들이 우리가 맘에 드나 봐!

-미치겠네. 그래서 이 빌어먹을 환영식은 언제 끝나는 건데?

-지금.

신경질적인 엔지의 물음에 나자크가 반 앞에 걸음을 멈춤과 동시에 대답했다.

타헬의 학년과 같은 층을 쓰는 반으로 배정해준 건, 가족과 모두가 함께 전학을 온 그들에 대한 학교 측의 배려였다.

“타헬, 넌 저기 끝에서 세 번째 클래스야.”

미카가 손끝으로 위치를 가리키자 타헬이 습관처럼 환하게 웃어 보였다.

“고마워, 누나!”

“누…… 누나?”

잠깐만. 선배도 아니고 누나?

“응! 미카 누나!”

그것도 미카 누나란다. 심지어 통성명은 한 적도 없다. 그저 서로 어렴풋이 교무실에서 들은 이름들로 짧은 대화를 이어갔을 뿐이다. 만난 지 이제 겨우 10분이 다 되어 가는데 이 무슨 사기적인 친화력이란 말인가.

“왜? 누나라고 부르면 안 돼?”

강아지 같은 얼굴로 풀이 죽어 올려다보는 얼굴을 보고 있자니, 미카는 차마 입에서 안 된다는 말이 떨어지질 않았다. 이건 분명 공격이다, 귀여움을 가장한 공격.

“아, 아니. 돼.”

미카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스스로의 대답에 놀라며 헛기침을 했다.

타헬이 제 반으로 뛰듯이 사라지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그녀가 교실 앞문을 열었다.

반 아이들은 떠들썩한 이 소란의 주인공인 전학생이 두 명이나 자신의 반에 배치되었단 소식에 설레면서도 잔뜩 경직되어 있었다.

미카는 어떻게서든 이들과 엮이지 말아야겠다 다짐하는 중이었다. 무사안일, 태평하고 조용하게 학교생활을 마무리하는 건 미카에겐 아주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일단 빈자리에 편하게 앉아. 내가 반장이니까 궁금한 거 있음 언제든지 물어보고.”

“반장……?”

뭐야, 이 미적지근한 반응은?

“왜, 내가 반장인 게 신기하니?”

여기저기 참견하고 다니는 모양새가 보통은 아니겠거니 했는데 역시나다. 나자크는 은은하게 미소를 띤 얼굴로 고개를 저으면서도, 실은 그런 사실 따위에 관심조차 없다.

다만, 좀 의외라고 생각한 건 그날 칸의 앞에서 보였던 스스럼 없던 모습과는 달리, 오늘 학교에서 본 미카의 모습은 훨씬 더 세련되고 정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똑 부러진 모습이야 그날과도 마찬가지였지만 묘하게 벽을 세우는 게 나자크는 어쩐지 호기심이 일었다.

칸의 앞에서만 그런 모습을 보이는 건가? 어째서지?

돌아오는 미카의 반문에도 나자크는 눈으로 칸을 찾았다.

그나저나 왜 그 녀석은 보이질 않는 걸까. 그러고 보니 아침부터 여관에서도 보이질 않았다.

미카는 다른 곳을 향해 있는 나자크의 시선을 좇다가 이내 품에 안고 있던 유인물을 내밀었다.

“클럽 신청서야. 오늘 중으로 써서 나한테 줘.”

“클럽?”

“우리 학교에선 그게 기본이거든. 운동이든 음악이든 클럽에 가입해서 활동하는 게 졸업조건 중 하나야.”

“축구, 농구, 배구…… 꽤 많네.”

나자크가 유인물 속 클럽을 쭉 훑으며 말했다. 학교에 도착해 지금까지 본 모습 중에 가장 흥미가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형제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운동 실력과 피지컬이 좋은 나자크는 몸으로 하는 건 뭐든 잘하는 쪽이었다.

두 사람이 뭐라 떠들든 엔지는 삐딱하게 앉아 신청서를 종이접기하듯 고이 접어 곧 창문을 향해 날릴 준비를 마친 참이다.

미카는 그 모습이 눈에 거슬려 신경을 쓰면서도 나자크와의 대화에 이끌려가고 있었다.

“넌 무슨 클럽인데?”

“독서클럽.”

미카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어쩐지 심드렁한 표정으로 나자크가 끄덕였다.

“듣기만 해도 지루하단 표정이네.”

“티 났다니 유감이네.”

나자크는 친절하지만 역시 냉정하다.

미카는 나자크와의 첫 만남에서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는 아주 다정하고 온화하지만, 자신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오게 내버려 두는 녀석은 결코 아니라고.

어쩌지 못하고 드는 위화감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궁금해하지 않으려 애쓰면서도 신비로운 나자크에게서 눈을 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걸 꼭 증명하기라도 하듯 단번에 거리를 좁히고 들어온 나자크의 신발 앞코가 미카의 구두를 건드리고 지나갔다.

“그나저나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지.”

어쩐지 잔뜩 긴장해버리고만 미카의 눈빛이 어색하게 떨렸다.

“……그랬지?”

역시, 나자크의 눈은 여전히 누군가를 찾고 있다.

이어 미카의 키에 맞춰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인 나자크가, 꼭 은밀한 걸 물어보기라도 하듯 조용히 귓가에 속삭였다.

“칸은 어디에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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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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