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 도시의 늑대들 (2/40)


2. 도시의 늑대들
2022.12.08.


(이 작품은 12세 이상 감상을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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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

가볍게 경탄하는 휘파람 소리와 함께 그레이 여관 앞에 네 개의 그림자가 졌다.

“오오. 이거 완전 구식이잖아?”

천진한 말투로 먼저 운을 뗀 건 무리의 막내인 타헬이었다.

햇빛에 반사된 군청색 머리칼이 기울어진 턱선을 따라 살랑이고, 친절히 고개까지 꺾어가며 비뚤어진 간판 글자를 열심히 읽던 타헬의 다갈색 눈동자엔 호기심이 잔뜩 들어찼다.

“그런 말은 속으로 하는 거야, 타헬.”

타헬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장 선두에 서 있던 기리가 동생을 타박했다.

이십 대 후반 정도의 날렵하고 호감형 외모에 큰 키와 다부진 체격, 짧은 흑발과 흑요석처럼 검은 눈동자를 가진 기리는 이 늑대인간 형제들의 우두머리이자 맏형이었다.

구식을 구식이라 하지, 그럼 뭐라고 한단 말인가. 타헬이 기리를 향해 입을 삐죽였다.

“윽. 잔소리꾼. 어차피 아무도 없잖아.”

“그건 모를 일이지.”

타헬이 여전히 불평을 늘어놓는 동안, 기리는 제 눈앞의 목조건물을 관찰하듯 느릿하게 올려다봤다. 지나칠 정도로 평범한 건물이었으나, 그것은 경험적인 불안에서 오는 일종의 습관적 경계였다.

기리와 형제들은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수십 번도 더 넘게 목숨을 잃어버릴 뻔했다.
대대로 늑대인간들의 터전이었던 마하바 초원에서 늑대인간으로 태어난 기리는, 뱀파이어에 의해 몰살된 부족의 후손이었다.

도망치듯 떠나온 그곳에서 능선을 넘을 때마다 그들을 공격하고 팔아치우는 뱀파이어와 타락한 동족 때문에 기리는 제 가족과 동료들을 차례로 잃었다.

기리에겐 희망이 필요했다. 살아가야만 하는 이유가 필요했다.

자신처럼 똑같이 뱀파이어로부터 가족을 잃고 도망치던 나자크와 타헬 형제를 처음 만났을 때 기리는 다짐했다. 이 녀석들만큼은 내 목숨을 다해 지켜주겠노라고. 비록 제 아내는 지키지 못했으나 너희들만은 지켜내겠노라고.

이후 엔지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저를 속이고 또 속였지만 기리만큼은 엔지를 믿어주고 싶었다. 녀석들에겐 모두 이유가 있는 행동들이었을 테니까. 우리는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같은 늑대인간들이었으니까.

이제 기리에게 지킬 것은 오로지 형제들뿐이었기에 그는 그 무엇 하나도 가볍게 결정할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형제들을 지킨다. 그것이 기리가 스스로에게 한 마지막 약속이었다.

그런 기리를 옆에서 지그시 지켜보던 나자크는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답을 기다렸다.

무엇이든 급하게 굴거나 쉽게 판단하는 법 없이 차분한 나자크는 기리가 지금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를 천천히 가늠했다.

도대체 무엇이 걸리는 걸까. 언제나 그랬듯 책임감에 짓눌려 있으려나.

해안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왼쪽 아래로 땋아 귓불 아래에 닿은 나자크의 베이지색 머리카락이 찰랑였다. 그는 부러 북풍을 등지고 선 채 기리에게 한 걸음 다가섰다.

좀처럼 형제들 앞에서 긴장하거나 걱정하는 모습을 보인 적 없는 기리에게서 나자크는 어쩐지 낯선 느낌을 받은 모양이었다.

“형.”

“…….”

“기리 형.”

반복된 부름에 그제야 기리의 드넓은 어깨가 잠시 움찔했다.

“아. 미안, 나자크. 뭐라고?”

“왜 그래. 뭔가 이상해?”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기리는 물에 잠긴 사람처럼 불안한 고요를 떠안고 있었다.

나자크는 입안이 까슬해지는 듯했다.

문을 더 두드리지도, 그렇다고 쳐들어가지도 않는 형제들을 보며 엔지가 혀끝을 찼다. 아무 기척도 없는 여관 벽에 등을 기대고 선 채 엔지는 급할 것 하나 없다는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멀찌감치 떨어져서 남 일인 양 시간을 흘려보내던 엔지가 곧이어 여관 외벽을 손으로 톡톡 쳤다.

“정말 여기서 지낼 생각이야?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은데.”

“엔지 형이 우리 뒤통수만 툭 안 치면 돼.”

“야.”

타헬이 불쑥 튀어나와 엔지의 아픈 곳을 찌르자, 팍 까칠하게 눈가를 구긴 엔지가 타헬의 머리를 가볍게 쥐어박았다.

“까불어라, 쬐끄만 게.”

그레이빌까지 도착하는 동안 엔지는 기리를 상대로 두 번이나 사기를 쳤다.

그럼에도 이들이 자신을 왜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엔지는 당최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어쨌든 기리의 우직한 결정으로 현재 이들의 형제가 되었다.

그 덕에 시도 때도 없는 타헬의 하극상과, 묘하게 싸늘한 나자크를 견뎌야 하지만 그건 그거대로 값싸게 주고받은 거래가 된 셈이다.

“근데 이 냄새…….”

묘하게 이상하잖아?

형제 중에서도 후각이 가장 뛰어난 엔지가 말끝을 흐리자 형제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엔지는 수집한 정보가 없는 이상 허투루 계획 없이 무언가를 말하거나 행동하는 법이 없었다.

“여기 제대로 온 거 맞아? 아무래도 찝찝한데.”

엔지가 습관처럼 안경을 밀어 올리며 날이 선 눈빛으로 여관을 올려다보는 그때였다.

“혹시, 그레이 여관을 찾아오셨나요?”

부드러운 음성에 형제들이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목발을 짚은 채 환하게 웃고 있는 건 요한나였다.

* *

칸은 어렸을 때부터 비범했다.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청각, 촉각, 후각에 극도로 예민했는데, 그 수준은 일반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그 이상까지 모두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건넛집에서 새던 가스 냄새를 맡는 것은 기본이고, 시몬의 자동차 엔진 소리를 수백 미터 앞에서부터 감지했으며, 수도꼭지에서 느리게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 소리에도 수면이 방해될 정도였다.

그러니 지금 늘어놓는 이 변명이 해괴하다는 것쯤은 칸도 안다.

“정말이에요. 주방에서 정리하느라 못 들었어요.”

차분한 가운데 어쩐지 긴장감이 서린 칸의 설명에 시몬이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역시 이상한 건 어쩔 수 없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칸을 데려와 키우며 그의 기민한 오감에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밖에서 떠들던 남자 넷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니, 시몬은 제 아들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의아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 칸은 둘째치고, 요한나와 시몬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난처한 참이었다. 평생을 검소하게 산 부부 앞에는 처음 보는 꽤 많은 양의 돈이 두둑하게 쌓여 있었다.
“반년 치 선금입니다. 장기 투숙을 할 생각이라서요.”

기리가 악의라곤 한 푼어치도 없어 보이는 무해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부부의 눈에 그는 형제들을 건사하는 듬직한 맏형이자 부모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 아까부터 제 아들 칸은 왜 이렇게 거리를 두고 서 있는 걸까. 평소의 칸이라면 드물게 찾아온 귀한 여관 손님을 반갑게 맞이하거나, 먼저 살갑게 다가가 말을 걸었을 것이다.

칸은 기민한 아이였고 과거에 아픔이 있긴 했으나 그날 이후로 적어도 사람을 향해 적대감을 내보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요한나는 평소와 다른 제 아들의 모습에 불안함을 숨기지 못했다.

요한나는 칸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럽게 기리를 향해 물었다. 어조에는 혹여나 불쾌함이 생기지 않도록 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오래 머무시기에 불편한 점이 많을 텐데요…… 보시다시피 건물도 오래됐고, 방도 작아요. 시내 쪽에 꽤 큰 호텔이 하나 있는데 그쪽을 소개해드릴까요?”

“아뇨. 저흰 여기가 좋습니다. 어르신들도 맘에 들구요. 전 기리라고 합니다. 이쪽은 차례로 제 동생들인 나자크, 엔지, 그리고 타헬이에요. 그냥 편하게 불러주세요.”

기리는 도시에서 좀 떨어진 골목에, 조용하며, 서로에게 관심조차 없는 이 그레이빌의 구석진 곳이 마음에 들었다.

뱀파이어 무리는 미숙하고 어린 늑대인간들을 중심으로 늘 사냥을 했다. 그것이 기리가 몸을 낮추고 인간들 틈에 섞여 사는 이유다.

자신 혼자라면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형제들은 달랐다. 아직 녀석들은 자신들이 가진 이능력을 완벽하게 컨트롤 하지 못했고, 자신들의 힘이 어디까지 닿는지도 알지 못했다.

적당히 귀가 어둡고, 적당히 말수가 적은 노부부까지 모든 건 기리가 바란 대로였고, 아직 미숙한 늑대 소년들이 지내기엔 완벽할 정도로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러니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인간들의 세상에서 몸을 숨긴 채 때를 기다려야 했다.

제 가족들을, 형제들의 가족들을 몰살한, 바로 그 뱀파이어를 잡기 전까진.

하지만 문제라면 바로 저 녀석이려나.

“칸, 이리 와서 인사하렴.”

시몬의 부름에도 칸은 경계의 눈빛을 풀지 않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리 역시 의미심장한 눈으로 멀찍이 서 있는 칸을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인간이 확실한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걸까. 게다가 미묘한 향기까지 풍긴다.

꽤 오랜 시간 살아온 기리조차 처음 맡아본 인간도 늑대도 아닌 냄새인 데다, 어딘지 친근하게까지 느껴지는 기이한 향기였다. 아마 후각이 뛰어난 엔지가 밖에서부터 감지한 냄새는 바로 칸에게서 흘러나온 것이 분명했다.

“칸이라고? 만나서 반가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

평소와 다름없는 활기찬 목소리로 기리가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를 건네자 칸은 여전히 벽을 세우면서도 순순히 그 손을 잡았다.

기묘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이어지는 가운데 엔지의 날카로운 시선이 맞잡은 두 손을 향했다. 그는 꼭 기리를 향해,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어? 라고 질문하는 것 같았다.

한동안 기리는 제 손을 잡은 칸을 빤히 바라봤다. 그건 꼭 무언가를 꿰뚫는 듯 집요한 시선이었다.
그 순간 칸은 혼란스러웠다.

칸은 본능적으로 그들을 경계하면서도, 손을 잡는 순간 기이한 안도감을 느꼈다. 사람들 틈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안정이었다.

분명 처음 기척을 느꼈을 때 느낀 감각은 두려움이었으나, 그 기저에는 동시에 일면식도 없는 이들에게서 느껴지는 유대감이 있었다.

그랬기에 칸은 못 들은 척 숨은 것이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과 비슷하지만 다른 무언가를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건, 반갑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주 두려운 일이기도 하니까.

처음 맡아본 인간이 아닌 냄새에 칸의 긴장은 극도로 높아졌다.

사람들은 제게 늑대인간이라 했다. 악마가 들린 아이라 했다.

정말로 내가 그런 존재일까? 그렇다면 이들 또한 늑대인간일까?

칸은 생경하면서도 한 번도 경험한 적 없는 이 익숙한 느낌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형!”

갑작스런 부름에 칸이 기리의 손을 부리나케 놓았다.

“……형?”

크게 동요하는 법 없는 칸이 불쑥 제 앞에 튀어나와 다짜고짜 저를 형이라 부르는 타헬을 어색하게 바라봤다.

“그래, 형! 형이라고 불러도 되지? 난 타헬이라고 해!”

이미 불러놓고 타헬은 수더분하게 베실 웃었다.

칸은 누군가에게 형이라 불린 게 처음이었지만, 붙임성 좋은 커다란 래트리버 같은 타헬의 미소는 칸이 견고하게 쌓아 올린 장벽을 손쉽게 걷어낼 만큼 맑고 건강해 보였다.

타헬의 미소는 그 누가 보아도 이 어린 녀석이 오래전 뱀파이어의 습격으로부터 부모를 잃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싱그럽고 환하기만 했다.

“타헬, 처음이니까 거리를 지켜. 그게 예의야.”

나자크가 제 동생의 목덜미를 잡고 가볍게 뒤로 끌어내며 말했다. 뒤로 힘없이 끌려가면서도 두 손을 뻗는 타헬은 잔뜩 아쉬운 표정으로 칸을 바라봤다.

“죄송하지만 음식을 좀 먹을 수 있을까요? 형제들이 꽤 오래 굶어서요.”

나자크가 여전히 타헬의 목덜미를 잡은 채로 요한나를 향해 말했다.

늑대인간들은 음식을 먹지 않아도 오랜 시간 버틸 수 있었지만, 한동안은 인간들이 사는 도시에서 지내기로 했으니 이 정도의 음식을 요구하는 것이 적당한 ‘인간다움’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머, 내 정신 좀 봐! 요깃거릴 먼저 내온다는 게.”

“아닙니다. 이렇게 가족을 한꺼번에 받아주신 것만도 감사드려요.”

기리가 활기찬 얼굴로 감사 인사를 하자 요한나가 고개를 내저었다.

“우리도 적적한데 잘됐죠. 제 아들한테도 친구가 생겨서 기뻐요.”

요한나는 슬쩍 칸을 바라보더니 마치 안도하듯 기쁘게 웃었다.

기리는 그녀의 눈동자에 스치듯 지나가는 안도와 연민을 읽어냈다.

인간들은 자식들에게 저런 눈빛을 하는 게 보통인 건가. 잠시 인간의 마음을 가늠하려는 듯 기리는 생각에 잠겼다.

“칸, 그릇 좀 꺼내주겠니?”

요한나의 부탁에 칸이 익숙하게 주방으로 들어가 넓고 깊은 그릇 여러 개를 꺼내 들었다.

그레이빌로 이사 와 한 번에 그릇을 이렇게 많이 꺼내 본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따듯한 국과 흰 쌀밥, 그레이빌의 제철 과일, 시몬이 직접 만든 생선조림만으로도 식사는 꽤 먹음직스럽게 보였다.

상을 차리고 수저를 놓는 때에도 엔지는 여전히 자리에 앉지 못한 채 여전히 내부를 살피듯, 안경 안에 숨겨진 밝은 갈색 눈동자를 빠르게 굴렸다.

무엇 하나 믿음이 가지 않는 이상 엔지는 쉽사리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것이 지금까지 엔지가 살아남은 방식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싫은 것이 저 손해 보는 것인지라, 엔지는 여차하면 이 여관을 혼자서라도 떠나버릴 참이었다.

엔지가 찰나에 알아낸 것은 대충 이러했다.

이 여관의 안주인은 사고가 아닌 노화로 다리 관절이 불편하고, 그 남편인 시몬은 왼쪽 새끼손가락을 쓸 수 없고, 오른쪽 눈은 시력이 떨어져 미세하게 초점이 다르다.

내부를 지탱하고 있는 목조 기둥은 적어도 50년은 더 됐겠고, 사용한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집기들을 봐서는 여관임에도 외부인의 방문이 거의 없었던 듯싶었다.

가능성은 두 가지다. 정말로 사람이 찾아오지 않거나, 사람이 찾아오지 않게 하거나.

왜지? 왜일까.

외진 곳이라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 게 아니라, 그들은 새로운 사람이 오는 걸 분명 꺼리고 있다. 그것도 여관을 운영하면서 말이다.

게다가, 저 칸이란 놈에게선 인간도 동족도 아닌 냄새가 난다. 너 대체 뭐야.

엔지는 비상한 제 두뇌로 해석이 불가능한 이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엔지, 그만하고 앉아. 그런다고 안 달라져.

나자크가 동족끼리 들을 수 있는 언어로 엔지를 향해 짧게 경고했다.

나자크는 엔지가 언제나 떠날 준비가 된 녀석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을 붙이지 않으려 애썼지만, 기리만큼이나 책임감이 강한 나자크는 쉽게 엔지를 외면할 수 없었다. 어쨌든 지금 엔지는 자신의 형제요, 가족이었다.

-이상하지 않아?

-아까부터 뭐가.

-여관이 여관 같지 않잖아. 꼭 손님 받길 거부하는 것처럼.

기묘했다. 무언가를 숨기려 작정한 공간처럼.

형제들의 소리를 다 들으면서도 기리는 태연하게 식탁에 앉아 맛있게 식빵을 뜯었다. 풀풀 올라오는 김을 얼굴로 맞으며 그가 시몬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입맛에 맞다니 다행이야. 사실 조림요리는 내 전문이거든. 뭐든 먹고 싶으면 말만 하게! 고기든 생선이든! 내가 이 요리를 20년도 더 했다니까. 하하.”

20년 된 차를 타고, 20년 동안 조림요리만 하는 시몬은 꽤 고집스럽고 재밌는 사내였다. 그는 올곧고 질서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이었다. 칸은 그런 제 아버지가 늘 자랑스러웠다.

꼭 억지로 끌려온 모양새이긴 했으나, 엔지까지 둘러앉자 제법 크다고 생각했던 식탁이 좁게 느껴질 정도로 꽉 들어찼다.

기리는 곧 들고 있던 식기를 가지런히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이미 모든 결정을 끝냈으나 부러 인간답게 말끝을 흐렸다.

“그나저나, 안 그래도 동생들 학교 때문에 여쭤볼까 했는데…….”

잠시 칸을 향했던 기리의 시선이 이내 부부에게 멈췄다.

“그레이빌 세컨더리가 어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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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HYBE
-공동기획: HYBE / NAVER WEBT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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