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육도천 (4)
“와. 미쳤네.”
“이거 이겨지는 거 맞아요?”
“그러게요.”
“못 이길 것 같은데.”
평범한 사무실의 점심 시간의 끝자락. 평소에는 케이스를 확인하고 반론을 준비하느라 점심 시간에도 날카로운 긴장감이 감도는 것이 일상이건만. 오늘은 왜인지 분위기가 조금 달랐다.
열 명에 가까운 직원들이 모여 앉은 채 무언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네댓 명 정도였는데. 오늘은 사무실 인원 거의 대부분이 모여들어서 보고 있다.
영상을 바라보고 있지도 않은 건 단지은 한 명 뿐.
단지은은 단천이 만들어 준 녹용 팩을 마시다 말고 물었다.
“다들 뭘 그렇게 보시는 거에요?”
“몰라요? 지금 BJ천마 방송중인데.”
“BJ천마요?”
아무리 스트리머에 관심이 없는 단지은이라지만 그래도 그녀의 동생이 스트리머다. 전문가를 가족으로 두고 있으니 자신도 준 전문가급의 지식은 가지고 있다고 봐도 되는 것이다.
그러니 단지은도 BJ가 뭔지 정도는 알았다.
‘그보다 BJ천마라. 어디선가 들어 본 이름같은데.’
“꽤 유명한 사람인가 봐요?”
“와. 단 변호사님. BJ천마를 몰라요?”
“한국인이 BJ천마를 몰라?”
“말랑튜브 영상도 아예 안 보세요?”
“말랑튜브 영상 자주 보죠. 고양이랑 강아지들 얼마나 많이 찾아보는데요.”
자신을 산에서 내려온 시골소녀 취급하는 사람들의 표정에 단지은은 자신을 짧게 변호했다. 실제로도 그녀가 말랑튜브를 자주 보는 것은 사실이었다.
단지은이 심심할 때마다 찾아보는 게 바로 「동물 친구들」채널 아니던가. 귀여운 애완동물이 끝도 없이 나오는 수많은 채널들이 그녀의 말랑튜브에는 수없이 많았다. 알고리즘으로 추천되는 채널들도 각종 귀여운 동물들이 가득한 채널들뿐이었다.
“제깟 BJ천마인지 뭔지가 인기가 얼마나 있는지는 몰라도 100만 팔로워인 동물 친구들만큼 유명하지는 않을 걸요.”
“BJ천마 말랑튜브 팔로워 천만 명 목전이에요.”
“······중요한 건 팔로워 수가 아니에요.”
살짝 자존심이 상한 단지은이 동물 친구들 채널을 변호하듯 중얼거렸다.
아무튼, 지금 사무실의 사람들이 똘똘 덩어리로 뭉쳐서 보고 있는 게 그 잘난 BJ천마의 영상이라는 말이다.
언뜻언뜻 머리 너머로 보이는 화면으로 보건데 두 명이 검을 들고 싸우고 있는 PVP 게임으로 보였다.
한 명이 일방적으로 다른 한 명을 이기고 있는지, 한 명의 옷은 피투성이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법한 남자의 얼굴이 화면에 비쳤다. 날카로운 선을 가진 얼굴과 무덤덤하면서도 사람을 은근히 깔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까지.
그녀가 잘 아는 사람의 얼굴이다.
“···단천아?”
“단천이가 누구야.”
“단 변호사 동생 이름 아냐?”
“저 사람이 BJ천마에요. 지금 피투성이가 된 사람.”
“그러니까 저거. 제 동생이에요.”
“···네?”
동생이라는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단지은에게 모여들었다. 확실히. 단지은의 동생이 스트리밍을 한다는 이야기는 들었었다.
그런데. 그게 BJ천마라니.
“농담 아니고요?”
“제가 농담을 왜 해요.”
“아니. 방금전까지 BJ천마 모른다면서요.”
“거야 BJ천마가 단천이인 줄 몰랐으니까요.”
“관심이 하나도 없었던 거 아니고요?”
“동생이 어련히 알아서 방송 잘 하고 있겠구나 싶었죠. 시청자 적은데 관심 주면 오히려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일부러 관심 안 줬어요. 아. 요새 시청자 수 좀 늘었다고 찾아와도 된다고는 했었다.”
‘시청자 수가 조금 는 정도가 아닌데.’
말랑튜브 팔로워 수가 천만 명에, 지금 실시간 시청자 수는 100만명을 넘어 200만명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태다.
저게 그냥 시청자가 ‘좀 늘었다’고? 시청자 수가 그 모양이 될 때까지 이야기를 하지 않는 동생이나. 그걸 그렇다고 정말로 아무 신경을 안 쓰는 누나나.
여러 모로 비범하기 그지없는 남매다.
“그. 그보다 지금 싸움은 어떻게 돼 가고 있어요?”
“그···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화면 안의 단천은 글자 그대로 피투성이였다. 무릎을 반쯤 꿇은 채. 위태롭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 모습.
반면 그 앞에 서 있는 적은 어떤 상처도 입지 않은 모습이었다.
승패가 확실히 난 모습.
“···아무리 BJ천마라도. 이번에는 못 이기지 않을까요?”
“아뇨. 이길 거에요.”
단지은은 확신이 가득한 눈으로 말했다. 그녀는 단천이 어떤 인간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
“어떻게요? 그보다. 저런 게임 처음 보시는 거 아니에요?”
“처음 봐요.”
“근데 왜 동생이 이긴다고 생각하는 거에요.”
“그건 몰라요. 아무튼 이길 거에요.”
단지은은 단천이 혼수상태에 빠져들기 전 날에 했던 말을 기억했다. 단천은 꼭 돌아온다고 말을 했다. 그리고 10년 가까이 혼수상태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단천은 돌아왔다. 방법은 모른다. 왜 그게 가능한지도 모른다.
“아무튼, 아무튼 이길 거에요.”
“···사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어. 저돈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이 머쓱하게도, 대부분은 BJ천마의 승리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조용히 있었을 뿐. 단천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을 믿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 마음이 전해질 리는 없겠지만.
···생각해 보니. 마음을 전하는 방법이 있다.
“이거. 후원 어떻게 하는 거죠?”
***
[단천누나단지은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천아!!! 이겨라!! 누나가 사무실에서 일도 안하고 보고 있어!! 지고 오면 죽을 줄 알아!!!]
픽. 단천은 웃음을 터트렸다. 거 참. 새로운 깨달음을 얻자마자 보이는 것이 지고 오면 죽는다는 후원금이라니.
어차피 여기서 지면 죽는다. 그걸 단지은이 알 리는 없지만.
하지만 적절하기 그지없는 후원이었다. 안 그래도 맑아진 머리가 한층 더 맑아진다.
단천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계속 싸울 건가?”
“그러려고.”
육도천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단천과 육도천의 격은 벽 하나둘을 깼다고 해서 넘을 수 있는 수준의 격차가 아니다.
높은 경지에 있는 자들일수록 그 차이를 확실하게 깨닫는다.
그렇기에 패도천마도, 멸겁천마도 단 한 수만에 육도천과 싸우는 것을 포기한 것 아니던가.
그런데도 단천은 포기하지 않았다.
“왜 싸우려는 거지?”
“네놈과는 달리. 본좌에게는 본좌가 이길 거라고 믿는 신도들이 있거든.”
단천은 검을 다시 움켜쥐었다.
“그러니. 패배하지 않는다. 패배할 수 없다.”
눈 앞의 육도천을 이기는 것을 상상할 수 없는 이상으로.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배신하는 것 또한 상상할 수 없다.
그러니 이긴다.
단천의 검이 움직였다. 처음으로 단천이 취한 공세. 선명한 기수식이 육도천의 몸으로 쏘아져내렸다.
육도천이 단천의 검을 흩어내기 위해 검을 움직였다. 기껏해 봐야 이제 벽 하나를 넘었을 뿐인 자의 검이다. 고작 벽 하나를 넘었다고 해서 극에 다다른 유柔를 뚫어낼 수 있을 리 없다.
그래야만 했다.
“!!!”
단천의 검을 받아내던 육도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극의에 다다른 부드러움이다. 저런 맥아리없는 일격 같은 건 애저녁에 흩어버렸어야 하는 극의의 부드러움이었다는 말이다.
그런데 단천의 검은 부드러움을 뚫고 자신을 향해 떨어져내리고 있었다.
마치 강능제유. 육도천이 가지고 있는 부드러움보다 아득히 위에 있는 강함을 검이 품고 있다는 듯이!
푸확!
육도천의 몸에서 처음으로 피가 치솟았다.
“크아아악!”
육도천은 동시에 몸을 바닥에 굴러 뒤로 몸을 피했다. 단천은 육도천의 도주를 허용하지 않고 그대로 육도천을 향해 계속 공격을 이어나갔다.
쉬익!
이번에도 이전과 똑같은 일격이다.
“본존을 우습게 보는 게냐!”
육도천의 검이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육도천은 이번에도 극강의 유柔를 부딪혔다. 놈의 강에 대한 깨달음이 자신의 위에 있다는 것을 부정하기 위해.
하지만 이번에도 결과는 같았다.
단천의 검은 육도천의 부드러움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궤도가 전혀 바뀌지 않은 채 아래로 떨어졌다.
“노오옴!”
이 상황이 대체 어찌 돌아가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해진 것은 놈의 강과 유에 대한 깨달음이 자신보다 위라는 것.
놀라움에 빠지기는 했지만 육도천 또한 극의에 이르른 무인. 이런 상황에서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하는지는 명확했다.
상하를 인정하고, 다른 방식으로 싸우는 것.
육도천은 검을 거두고 다시 한 번 단천의 검을 향해 다시 검을 내뻗었다.
부드러움을 무너트린 놈의 검은 필연적으로 강剛을 품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그것을 중검으로 무너트린다!’
이번에 육도천의 검이 담고 있는 깨달음은 중重. 태산조차 무너트릴 수 있는 중검의 묘리가 단천의 검을 향해 쏘아졌다.
두 자루의 검이 공중에서 맞부딪히고, 한 자루의 검이 장난감처럼 튕겨져나갔다.
튕겨나간 것은 백색의 검이었다. 육도천의 검. 검디검은 검이 육도천의 어깨죽지를 베어갈랐다.
서걱!
푸화악!
상처 하나 없는 팔 한 쪽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말도. 말도 안 돼!”
육도천의 눈은 볼 수 없는 것을 보기라도 한 것처럼 크게 뜨여져 있었다.
놈의 검은 강剛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유柔도, 패覇도, 중重도, 경輕도, 쾌快도 아니었다.
그 어떤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럼에도 세상의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는 일격이었다.
“불가능! 불가능해!”
“불가능이라. 파천의 존재인 천마에게 불가능이란 건 없다.”
발악하듯 육도천이 검을 다시 집어들었다. 수만 수십만 가닥의 제각기 다른 검이 단천을 향해 쏘아졌다.
눈에 보이는 검 하나하나가 천하제일인 하나쯤을 능히 죽일 수 있는 일격!
하지만 단천은 그 수많은 검격에 한 자루의 검으로 답했을 뿐이다.
한 자루의 검에, 수십만 가닥의 검기가 먹혀버린다.
압도적인 것을 넘어서 경이적인 수준의 경지.
“허허. 허허허.”
육도천이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이번 수로 확실해졌다. 육도천은 단천을 이길 수 없다.
지금 육도천의 눈 앞에 있는 단천의 검은, 강호의 그 누구도 다다른 적이 없는 경지에 있는 검이었으니까.
단천도, 육도천도 모두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그대여! 본존, 본존과 함께하자! 너는 강하다! 하지만 본존과 하나가 되면 더욱 더 강해질 수 있다! 우리는 절대 패배하지 않을 수 있다! 네게 모든 지배권도 주마! 영혼을 잃지 않을 수도 있다!”
발악과도 같은 목소리는 명확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그와 함께하면 자신은 영생을 얻게 된다. 그리고 영혼을 잃지 않을수도 있었다.
영원제일인이 될 수 있는 확실한 길.
절대로 패배하지 않을 수 있는 길.
단천은 육도천을 내려다봤다.
“본좌의 별호가 뭔지 아나?”
“뭐, 그런 게 무슨 의미더냐! 별호는 허명에 불과한 것!”
천마라는 글자 앞에 붙는 위명에는 천마가 천마가 되기 전 무림에서 얻었던 별호가 붙는다.
천마라는 이름은 하늘 위에 앉는 순간에 얻는 이름. 그리고 별호라는 것은 자신이 평생토록 쌓아온 삶에 붙는 이름이다.
결코 허명에 불과한 이름이 아니다.
“별호가 허명에 불과하다라.”
단천은 그제서야 왜 육도천이 그리도 불쾌했는지를 알 수 있었다. 놈은 자신의 모든 삶을 부정하면서까지 지지 않음에 집착하고 있었다.
육도천은 패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단천 자신은 달랐다.
“본좌는 천하제일인, 고금제일인, 그리고 영원제일인이다.”
“네 말이 맞다! 그러니 나와 함께하자! 나와 함께하면···!”
“그럼에도, 본좌는 언젠가 본좌의 상상을 뛰어넘는 무인이 나타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육도천은 패배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놈은 육도천이 되었다.
언젠가 경험하게 될 패배의 공포에 질려 자신의 무도 버리고, 자신의 자아도 버리고, 자신의 영까지 버렸다.
하지만 단천은 그 반대였다.
단천은 세계에 패배를 구하고 있었다.
스스로 영원제일임을 확신하는 자. 그럼에도 언젠가 당할, 당할지도 모르는 패배를 기갈하는 자.
자신을 뛰어넘는 무를 보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을 줄 것이다.
그렇기에 단천은 패배를 구한다.
평생에 있을 단 한 번의 패배를 구하는 자.
그것이 단천의 별호.
“본좌의 별호는 구패求敗. 본좌는 구패천마. 단천이다.”
그러니. 패배를 두려워하는 자와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다.
그는 패배를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잘 가라. 평범하기 짝이 없는 무인아.”
단천의 검이 육도천의 몸을 두 조각으로 갈랐다.
[승패가 결정되었습니다.]
[시뮬레이션을 종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