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육도천 (3)
> 무기한 휴방 어디??무기한 휴방 어디??무기한 휴방 어디??무기한 휴방 어디??
> 휴방같은 거 안 할 줄 알고 있었다고··· 믿고 있었다고···
> 그래 갑자기 무기한 휴방이라니 말이 안 되지 ㅠㅠㅠㅠ
> 그래서 오늘 방송은 뭐임???
갑작스러운 휴방 선언. 그리고 그런 휴방 선언을 하자마자 돌아온 덕분에 시청자들의 텐션은 그야말로 축제 그 자체였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한 군데에 모였다.
‘그래서. 오늘 컨텐츠가 무엇인가?’
패도천, 멸겁천이라는 희대의 인공지능과의 2연전을 끝낸 BJ천마였다. 두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지금까지 있었던 인공지능을 아득히 뛰어넘는 성능을 보여주고 있는 상태.
그런 상태에서 갑작스럽게 방송을 켰다. 그리고 BJ천마의 저 멀리에 서 있는 한 남자.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탐정유명한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새 AI랑 1:1 하는 거임?]
“그렇다고 볼 수도 있다.”
굳이 따지자면 육도천은 AI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육체도 버리고, 영혼도 버린 존재라면, 무엇으로 지칭하건 상관없을 터.
[근데 여기는 어디임?]
[두번 싸웠던 데랑 아예 다른데?]
[중국풍 퀄리티 ㅁㅊㄷ]
단천이 서 있는 곳은 이전의 2연전에서 전투를 벌였던 아무것도 없는 황야가 아니었다.
낯익기 그지없는 주변의 풍경과 서 있는 건물들. 중국과도 비슷하지만 미묘하게 다르다.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만 사람이 없어도 이곳이 어딘지를 떠올리는 데에는 충분한 모델링이었다.
‘중원.’
육도천이 손가락을 까딱일 때마다 주변의 풍경이 변했다. 대나무가 세상을 가득 채울 듯 자라나 있는 소림, 깎아지를 듯한 산맥의 중앙에 있는 화산, 거대한 장강과 수없이 많은 산맥들.
이곳은 단천이 있었던. 그리고 육도천이 있었던 중원이다. 자신이 아는 거의 모든 무인들이 밟아왔던 흙과, 생각이 기틀을 잡고 자라나온 장소.
“만드는 데 꽤 공을 들였겠군.”
“그렇게까지 공을 들이진 않았다. 실재하는 중국을 중심으로 해서 손만 보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퀄리티뭐야···님이 4,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와 퀄리티 뭐임 ㅋㅋㅋㅋ 이것도 하인라인발임?]
[하인라인화성가자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역시 하인라인이야! 하인라인 주가 화성 가즈아ㅏㅏㅏㅏ]
> ㅄ; 이미 화성 가 있는 주가가 대체 어떻게 더 고공행진을 하냐?
> ?? 방금 20% 더 올랐는데요?
> 왜 그걸 이제 말해!!!!!
> 아직도 하인라인 안 산 호구 없제??
> 아 진짜 돈복사버그 미쳤네 ㅡㅡ
> 화성이 아니라 명왕성 가즈아ㅏㅏㅏ
아찔할 정도로 잘 만들어진 장소들의 퀄리티에 시청자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육도천이 보여 주는 풍경들은 문파들이 적어도 몇백 년씩 자리를 지켜온 장소들.
그리고 유서 깊은 문파들이 자리해 온 자리에 만들어진 물건들은 모조리 그 문파만의 향을 풍기기 마련이다.
“싸우고 싶은 장소는 있나?”
“어디건 상관없다.”
“그럼, 역시 이곳으로 할까.”
육도천이 선택한 장소는 단천에게 익숙하기 그지없는 장소였다. 중원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단천이 보낸 장소이자. 지금 단천의 몸이 있는 장소.
그리고 보이는 용사비등한 필체로 적혀 있는 거대한 현판.
천마신교天魔神敎.
> 천마신교?
> 여기가 천마신교임???
> 와 퀄리티 미쳤다
> 근데 천마신교가 있다는 건··· 무림 세상 아니냐?
> 거피셜) 하인라인의 다음 초대형 게임은 ‘무림 세계’의 MMORPG로 밝혀져
> ?? 어디서 보도 나온 거 있냐?
> 없는데?
> 개새끼야
육도천의 선택이었지만 단천은 마음에 들었다. 누가 천마의 위에 합당한지. 겨뤄 보기에 이곳보다 합당한 곳은 없다.
육도천이 손에 새하얀 검을 만들어냈다. 단천의 검과 대비되는 완벽한 순백의 검이다.
“통성명부터 해야겠군. 본존은 하늘 너머에 오롯이 존재하는 단 하나의 존재. 천마이니라.”
“본좌는 칠대 천마다.”
“이름은?”
“단천.”
“하늘을 가른다斷天. 꽤나 그럴듯한 이름이군.”
구태여 그렇게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한자가 다르기도 했고. 그렇기에 단천은 육도천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싸울 이유도, 자리도 만들어졌다. 통성명도 끝났으니. 남은 것은 그저 싸움을 통해 누가 더 강한지를 가리는 것 뿐.
본래라면 세 수를 양보해야 한다. 하지만, 단천은 눈 앞에 있는 육도천이 불쾌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양보는 호의에서부터 비롯된 것. 단천은 자신 앞에 있는 인간임을 저버린 존재에 대한 호의를 전혀 느낄 수 없다.
그러니, 양보같은 것은 없다.
단천의 검이 육도천을 향해 빛살처럼 내리꽂혔다.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적을 양분했던 일격이다.
어마어마한 내력이 담겨있는 동시에 극한까지 단련된 일격.
그러니 막히더라도 육도천에게 어느 정도의 피해는 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할 수 있는 일격이었다.
하지만.
스르륵!
육도천의 검은 단천의 검을 마치 바람이라도 스쳐 지나가는 것처럼 가볍게 흘려냈다.
아찔할 정도로 정련된 부드러움柔이다. 아마 이 장면을 보았다면 부드러움을 무의 근간으로 삼는 자들 중 누가 됐더라도 무릎을 꿇고 사사를 바랄 정도의 완벽한 부드러움.
사대째의 천마였던 독고일의 절기인 유극柔極이다. 하지만 육도천의 초식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단천의 검을 아무렇지 않게 흩어낸 육도천의 검이 단천을 향해 빛살처럼 쏘아진 것이다.
방금까지는 산들바람처럼 부드럽던 검이 찰나도 지나기 전에 극한의 쾌검으로 변화했다.
푸확!
단천의 어깨에서 피가 솟구쳐올랐다. 단천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지금까지 단천이 공격을 허용한 적은 꽤 있었다. 사선도 몇천 번은 넘나들어왔다.
그러나 선공으로 상대방을 전혀 상하게 하지 못하고, 역으로 공격을 허용해 낭패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빠득.
단천의 이가 살짝 갈렸다.
‘극쾌. 육대 천마였던 비려일의 불식검.’
상대가 베였다는 것을 깨닫지도 못하게 베어버릴 수 있다는 뜻의 불식검또한 천마의 초식이다.
단천의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두 천마가 깨달았던 무의 극한 두 개가 한 번의 수순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기껏해야 한 초식에서는 하나의 천마의 절기만을 상대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야 당연하다. 무공이 갖는 초식이라는 것은 깨달음의 형태.
한 동작 안에 두 깨달음이 공존할 수는 없다.
‘놈도 천마라는 것을 깜빡했군.’
상식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애초에 천마가 아니다.
눈 앞의 육도천은 이 깨달음을 순식간에 바꿔내며 한 초식에서 두 가지 무공을 동시에 사용하고 있었다.
“흐음.”
단천에게 낭패를 보게 만들었는데도 육도천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이걸로 승부가 날 줄 알았는데. 잘도 피했군. 멸겁과 패도는 한 초식만으로 승패가 났는데 말이지.”
> ??
> 멸겁이랑 패도면 멸겁천이랑 패도천 말하는 거임?
> 그런 놈들을 한 수로 잡는다고??
> 딱봐도 구라죠 ㅅㅂ
> 정보) AI도 허세를 부릴 수 있다
“거짓말이 아니다.”
> 네?
“저 정도라면 충분히 한 수만으로 멸겁천과 패도천을 죽일 수 있다.”
단천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만들어내는 파급력은 결코 작지 않았다.
> ?? 천마가 두 명 상대하는 데 시간 얼마나 걸렸냐?
> 못해도 수백 초는 싸웠을 걸?
> 그런 애를 한 호흡으로 죽인다고??
멸겁천과 패도천이 얼마나 진보된 AI인지는 충분히 알려진 상태다. 당장 BJ천마마저 그들을 이기는 데 적지 않은 피해를 봐야만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지금. 그 AI들을 일수에 죽일 수 있는 상대가 나타났다고 한다.
그것도, 결코 남을 치켜세우는 법이 없는 BJ천마가 한 보증을 단 채로.
> 조졌네
> ㄹㅇ 조졌음
> 어케 이기냐;;;
> 알파고님 저는 알파고님의 승리를 단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습니다!!!
채팅창에서 다소 자조어린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불안감이 폭발하기 직전의 순간 다시 한 번 두 명의 검이 맞부딪혔다.
콰과과과과!
1초에 십수 번의 초식이 오간다. 멀리서 눈으로 쫓는 것마저도 힘들 정도의 공수의 교환.
언뜻 보아서는 유불리를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상태지만. 누가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곧바로 나타났다.
콰아앙!
뒤로 튕겨져 나온 단천의 몸 전체에서 선혈이 피분수처럼 터져나왔으니까.
빠득.
앞에서 터져나온 충격을 이용해 겨우 거리를 벌린 단천의 이가 갈렸다. 천마 네 명과 동시에 싸우는 것만 같은. 아니, 그 이상의 공격이다.
지금까지 숨이 붙어있는 것도 단천이 공세를 전혀 취하지 않고 방어만 했기 때문이다.
단천은 방어에도 자신이 있었다. 신화경에 들어선 이후 거의 언제나 공세일변도를 취했지만 단천의 무는 결국 대부분 자신보다 강한 자들을 이겨오면서 다져진 것.
그렇기에 결코 수비에 있어서도 약하다고 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낭패를 피할 수가 없다.
“잘 막아내는군. 오래 가진 못하겠지만.”
“네 공격은 하루종일이라도 막아낼 수 있다.”
“하루라. 이틀, 사흘씩은 막아내지 못한다는 말이군.”
단천은 날카롭기 그지없는 대답에 답변하는 대신 숨을 골랐다.
‘쉽지 않다.’
앞의 두 천마들과 싸울 때의 격차는 단천 자신이 생각하던 수준만큼의 그것이었다. 그렇기에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고, 실제로도 승리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아득한 격차다. 육도천이 가지고 있는 무의 묘리를 배울 시간따위는 없다. 네 개의 극의를 몸에 새겨넣기 전에 목이 달아날 테니까.
그럼에도··· 이긴다.
‘할 수 있나? 정말로?’
어쩔 수 없이 마음이 흔들린다.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단천 스스로가 이기는 그림이 떠오르지 않는다.
“빨리 끝을 내지.”
육도천의 검이 다시 한 번 단천에게 날아들었다. 낭패를 꽤 보긴 했지만 신화경의 신체는 초인적이다. 그렇게 피분수를 흘렸다고 해도 신체적인 손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이번도 이전과 거의 다른 것이 없는 공수의 교환이어야 했지만.
그 결과는 명확하게 달랐다.
푹!
찔러나온 육도천의 검이 단천의 배에 쑤셔박혔다. 단천의 표정이 뒤틀렸다.
배가 갈라지자마자 육도천의 초식이 단천의 몸을 난자했다.
푸화아아악!
배를 찔리고도 이어낸 방어 덕분에 인간의 형체는 부지할 수 있었지만. 그뿐이었다.
단천의 무릎이 꺾였다.
같은 상황. 같은 적. 같은 초식이었지만 다른 결과가 나타난 이유는 단순했다.
단천의 마음에 아주 자그마한 불신이 싹터버린 탓이다. 이길 수 없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그 불안감을 현실로 만드는 아득한 상대의 강함.
“별 것 아니로군.”
승부는 끝났다.
‘졌나.’
이런 곳에서 지고 싶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이만하면 꽤 잘 싸웠다.
포기로 물들어가던 단천의 눈에. 옆에 떠 있는 창이 보였다.
전투에 방해가 될 터라 가장 작게 만들어놓은 작디작은 후원창과 채팅창.
그리고 그 후원창에서 올라오는 수없이 많은 메시지들.
[미션맨 님이 5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이거 이기면 1억! 내 월급 사재 다 털어서라도 냅니다!!! 1억!!!]
자신에게 수없이 후원을 해 왔던 사람들과.
[풀창고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형!! 이겨!!! 파이팅!!!]
[제로콜 님이 4,270,08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아 ㅋㅋㅋㅋ 제가 맞아봐서 아는데 천마형이 무조건 이긴다니까요?]
[정유채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토끼가면 님이 50,0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서유나 님이 4,0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
천마신교의 교도들의 메시지.
> 아직 안졌다!!! 가즈아ㅏㅏㅏㅏㅏㅏㅏㅏ
> 영
> 차
> 영
> 차
> BJ천마모름? 무조건 이김 ㅋㅋㅋㅋㅋ
수많은 채팅창의 메시지들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단천 자신이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고 보니 중원에서도 그랬지.’
자신의 뒤를 따르던 미친놈들은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자신의 승리를 확신했다.
‘운석 떨어질 때만 빼고.’
그리고 자신은 단 한 번도 그들의 기대를 배반한 적이 없었다.
“···그랬나.”
단천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 단천은 눈을 담고 자신의 심상을 바라봤다.
자신의 심상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 경하드리오이다. 시주. 드디어 벽을 넘어섰구려.
무명승의 목소리는 분명한 축하의 목소리였다.
“오랜만이군. 깨달음이라는 것은.”
─ 시주 스스로 무언가를 깨달은 것은 처음 아니오이까? 맨날 남한테 강탈만 했었지.
아가리 다물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