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육도천 (2)
십만태산의 중심이자 천마신교의 본부가 있던 곳. 무림에서야 천마신교의 본부가 있던 장소이자, 단천이 지금 있는 지구에서는 무언가가 있을 수가 없는 장소가 바로 천산이다.
깎아지를듯한 절벽이 연이어지고 사람의 인적이 없는 그런 장소.
“···여야 하지.”
그런데 단천의 눈에 뜨문뜨문 건물들이 보였다. 그것도 낯이 익을대로 익은 건물들이다. 새로운 교도들을 받는 신교전. 교를 지키는 천왕들이 서 있는 천왕문. 돌을 깎아 만들어낸 거대한 연무장과 수많은 전각들.
단천은 천천히 천마신교 내부를 걸었다. 추억이 깃든 장소가 분명했지만 걸을수록 느껴지는 것은 불쾌감뿐이었다.
물론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사람의 흔적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교인들이 기도를 하며 만지작거려 닳아 없어진 천왕들의 발은 깨끗하기 그지없고, 흙먼지로 만들어진 발자국들이 수없이 많이 찍혀 있던 연무장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하다.
“쯧.”
단천은 장풍을 방출해 연무장의 바닥을 후려갈겼다. 한 번의 출수에 깔끔하기 그지없던 연무장이 그대로 부서져내렸다.
이상적인 장소인 동시에 섬뜩할 정도로 인위적인 장소다. 단천은 신교의 안으로 계속해서 걸어들어갔다.
육도천이 있을 곳은 한 곳 뿐이었다. 천마신교의 가장 중심이며. 천마가 기거하는 공간.
천마전.
전각들 가운데서도 가장 높게 솟아 있으며, 가장 거대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천마 단 한 명만이 기거하며 단 한 명만을 위해서 만들어진 장소.
단천은 천마전의 문을 발로 걷어찼다.
쾅!
거대한 문이 그대로 부서져내리며 천마전 안을 비췄다. 단천의 눈에 당혹스러움이 잠시 어렸다. 천마전 안 또한 바깥처럼 단천이 기억하던 그대로였다. 하늘로 솟구치는 형상으로 다듬어진 기둥들과 수많은 장식들.
그리고 거대하고 높게 솟아있는 옥좌. 그리고 옥좌에 있는···.
[왔는가.]
옥좌를 확인하기도 전에 웅웅거리는 목소리가 머릿속을 울려퍼진다. 엄청난 내공으로 귀를 터트릴 것처럼 울리는 전음.
음파가 울려퍼지는 것을 확인하고 내공을 운기하지 않았다면 고막은 물론이고 뇌까지 터져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얕은 수작이로군.”
[내공이 조금 과했나? 하지만 전음 따위로 죽어 버린다면 천마의 이름을 달고 있을 필요가 없지.]
내공을 운기해 기막을 형성했는데도 여전히 뇌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내공이다.
“내공 전개를 계속 하기 귀찮은데. 계속 전음을 써서 대화를 할 거면 그냥 대화를 끝내지.”
[으음. 그건 무리인데. 전음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대화를 하는 게 불가능해서 말이지.]
“모습이나 드러내고 그런 말을 하도록.”
[모습을 드러내고 말고 할 것도 없지. 지금 본존은 네 앞에 있지 않나?]
“앞에 있다고?”
단천은 눈 앞에 보이는 천마의 자리를 바라봤다. 천마만이 앉을 수 있는 옥좌에, 인간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놓여져 있는 것은 자그마한 통. 그리고 통 안에 있는 것은···.
“···저게. 네놈이냐?”
[그래.]
단천의 표정이 노골적으로 불쾌하게 물들었다. 통 속에 둥둥 떠 있는 것은 수없이 많은 전극이 달려 있는 뇌였다.
강호에는 수많은 미친놈들이 있었다.
피를 먹으면 영생을 한다는 미친 종교의 교주놈도 보고, 억겁환생을 한 군주가 자신들의 교주라며 세계가 멸망한다는 정신병자도 있었다.
면벽수련만 일평생 한 달마가 고금제일인이라고 주장하는 미친 땡중도 있었다.
강호생활을 하며 볼 꼴 못 볼 꼴 다 봐 온 게 단천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단천의 눈에도 독보적으로 미친 놈이 바로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육도천이었다.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통 속에 몸을 집어넣는다니.
“정상이 아니군.”
[그건 네놈 같은 벌레놈들이나 할 생각이지.]
웅웅거리는 내공이 다시 한 번 울려퍼졌다. 통 속에 뇌를 넣는다는 미친 선택을 한 놈이었지만 놈이 가지고 있는 내공의 양만큼은 진짜였다.
‘최소한 생사경의 수준이다.’
팔도, 다리도, 눈도 존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마어마한 내력을 방출하고 있다.
“왜 신체를 포기한 거지?”
[신체는 결국 병들고, 늙고, 죽기 마련이니까.]
“구태여 통 속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신화경에 들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데.”
[그래봤자 고작 수백 년 아닌가. 영원 앞에서는 수백 년 따위는 한 줌도 되지 못하는 세월에 불과할 뿐.]
그러니까 영원히 살기 위해서 통 속에 뇌를 집어넣었다는 말이다. 단천 자신도 좀 오래 살고 싶어서 몸보신을 살짝 하는 편이지만 저런 식으로까지 오래 살아남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 오래 살아서. 영원제일인이 되려는 건가?”
[그렇다.]
둥둥 떠 있는 뇌를 단천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단천은 육도천이 왜 자신을 직접 만나러 오지 않았는지를 깨달았다. 육도천은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만나러 오지 못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신화경에 다다른 고수들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고수들이 자신에 반하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놈은 움직일 수 없었다.
통 속에 존재하는 뇌일 뿐이었으니까.
물론. 통 속에 있다고 해서 놈이 약하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 단천 자신은 겨우 화경의 중반을 넘어가는 수준의 무공을 지녔을 뿐이다.
따지자면 평범한 중원의 천하제일인 수준의 무공밖에 지니지 못한 상황.
이런 정도의 내력 차이라면 육도천은 자신을 내공만으로도 벌레 짓밟듯이 죽여버릴 수도 있다.
‘···붙어볼만 하겠군.’
[이 정도의 내력의 차이가 나는데도 싸워볼 생각인가?]
“본좌가 여기 온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 거지?”
[힘의 차이를 목도하고 나면 후일이라도 도모할 줄 알았지.]
육도천의 목소리는 퍽 흥미로워하는 목소리였다.
[네놈의 무공은 본존 입장에서도 꽤나 탐이 난단 말이지. 무에 대한 우직한 해석도, 타인의 무를 받아들이는 눈. 대체 왜 신화경 초입에 막혔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수준의 재능이야. 본존과 하나가 될 생각은 없나?]
“본좌가 미쳤나.”
[본존과 하나가 된다면 네놈은 확실한 영원제일인이 된다. 그리고 더해서 영생을 얻게 되지. 죽음이 두렵지 않으냐?]
죽음은 두렵다. 단천은 언제나 죽음을 두려워했다. 무에 대한 광기에 가까운 집착으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희석해왔을 뿐.
지금 육도천의 손을 잡으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다.
이길 가능성도 희박한 상태에서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는 선택지.
하지만 단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다.”
[왜지?]
“본좌는 천마다. 본좌가 싫은 데에는 이유 따위를 붙일 필요가 없다.”
[흐으음. 그럼 이건 어떤가. 네놈이 본존에게 진다면 본존과 하나가 되는 것은?]
“여전히 싫은데.”
[대신, 네놈에게도 이길 기회를 주지.]
“기회 같은 건 필요 없다.”
[네놈과 본좌가 전뇌계 안에서 승부를 가리는 거다. 그러니까 이전에 패도천과 멸겁천과 승패를 갈랐던 방식으로 말이지.]
무시하고 검을 내지르려던 단천의 손이 잠시 멈췄다.
“VR에서 승부를 가리자고?”
[그렇다.]
현재 육도천이 가지고 있는 내공의 크기는 분명히 범상치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의 경지는 결코 VR에서 보여지던 멸겁천이나 패도천의 것에 미치지 못했다.
즉. 지금 육도천도 자신처럼 최고의 컨디션이 아니라는 뜻이다.
단천은 육도천의 힘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했다. 이곳에서 놈을 죽인다면 놈이 가지고 있는 무공이 무엇인지, 어떤 방식으로 싸우는지, 하나도 알지 못하게 될 터였다.
반면. VR은 어떤가.
VR은 충분한 수준의 내공이 주어지고 그 안에서 원래 자신이 가지고 있던 것과 같은 무공을 출력해낼 수 있다.
자신도, 그리고 육도천도 최적의 상태에서 싸울 수 있다는 뜻이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물어볼 게 있는데.”
[···뭐지?]
“여기. 와이파이 되나?”
[와이파이? 되기는 되지. 그런데 그건 왜 묻는 거지?]
“네놈이 처참하게 부서지는 모습을 송출하고 싶어서.”
***
[오늘 BJ천마 방송 언제부터냐?]
[무기한 휴방한대. 오늘은 공지까지 올라옴]
[왜ㅐㅐㅐㅐㅐ세상은 BJ천마 휴방일이 있는 거야ㅑㅑㅑㅑㅑ]
[천마님 방송 못 보는 인생에 의미가 있는 걸까? 그냥 죽어도 되는 거 아닐까?]
[죽으면 다음 천마님 방송 못봄]
[└그냥 살기로 했다. 천마님 방송 놓칠 수는 없지]
[댓글이 사람 한 명 살렸네;;]
스트리머 한 명이 휴방을 하는 것은 사실 그리 대단할 것이 없는 일이어야 한다. 개인 방송이라는 것은 특성상 방송을 진행하는 스트리머가 없다면 방송이 휴방되는 것은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갑작스럽게 무기한 휴방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 어느 정도는 일어날 수 있는 일인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스트리머에 국한된 이야기.
백만 명 이상의 시청자를 확보하는 국제급 규모의 스트리머가 갑작스럽게 휴방을 한다는 것은 인터넷에서 휴방에 관한 이야기가 수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안녕하세요. 풀창고입니다!”
> 풀하
> 천마님 휴방 어케댄거임
> BJ천마 휴방 언제까지임? 왜 휴방함?
“아, 천마형 휴방이에요? 역시 그렇구나.”
풀창고는 BJ천마에 대한 질문으로 도배되는 채팅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청자 수. 이거 맞나?’
실시간 시청자수가 30만명을 돌파해 있었다. 실로 어마어마하기 그지없는 시청자 펌핑은 당연하게도 BJ천마가 휴방을 선언하며 터져나온 낙수효과라고 볼 수 있었다.
그야 그렇겠지. 100만명씩 시청자수가 나오던 방송이 갑작스럽게 무기한 휴방이라니.
“그, 일단 천마 형이랑 어제도 이야기했거든요. 무기한 휴방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잘 모르겠어요.”
스트리머로 오래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눈치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 풀창고는 단천이 지금 굉장히 중요한 싸움을 앞두고 있으며, 어쩌면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었다.
‘···별 일 없었으면 좋겠는데.’
그 BJ천마가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잘 상상이 가지 않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은 BJ천마가 자신의 크루의 수장이라는 점이었다.
기나긴 휴방을 끝내고 왔을 때. BJ천마의 시청자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도록 시청자들을 안심시키는 게 먼저다.
그리고 겸사겸사, 할 수 있다면 풀창고 자신의 방송도 보게 만들기도 하고.
“으음. 오늘 천마형 휴방때문에 오신 분들 많은데. 천마형이 예전에 했던 컨텐츠를 복습이나 좀 해 볼까요?”
지금 자신의 시청자 수 대부분은 BJ천마의 시청자들이다. 그러니 BJ천마를 기억할 수 있도록 하는 컨텐츠를 하면서 풀창고 자신만의 매력을 섞어낸다면 분명히 자신의 시청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30만명의 인원이라는 것은 어마어마한 수다. 이 시청자들을 잘만 끌고 성장한다면 50만명, 70만명. 더더욱 나아가 BJ천마의 시청자수를 뛰어넘는 것도 완전한 꿈은 아닌 것이다.
“좋아. 제대로 한 번 방송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풀창고가 선언하는 순간.
> ?
> BJ천마 방송 켰는데?
> ㄹㅇ?
BJ천마가 방송을 켰다는 소식이 채팅창에서 터져나왔다.
“···천마형이 방송 켰다고요? 무기한 휴방 아니었어요?”
풀창고가 트인낭의 검색창에 BJ천마를 검색해 들어갔다.
[BJ천마 - ON AIR]
정말로. 방송이 켜져 있다.
“아니. 이 형은 뭐 하는 인간인데 무기한 휴방을 선언하고 10시간도 안 돼서 방송을 켜!”
> 무기한이니까 자기 원할 때 켤 수 있는거 아님?
말이야 맞는 말이지. 무기한. 말 그대로 기한을 정해놓지 않은 휴방이니까. 자기가 원할 때 방송을 켤 수 있다는 말이기는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무기한 휴방을 선언하고 10시간만에 방송을 켜는 게. 무기한 휴방이라고 할 수 있는가?
아니, 애초에 그게 휴방이 맞기는 한가?
풀창고가 무기한에 대한 정의를 생각하고 있는 사이에 시청자수는 가파르게 내려가고 있었다.
30만, 28만, 26만, 23만.
“아, 안 돼!”
> 풀-바···.
> 뉴비분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풀창고는 게임 할 때 팬티만 입고 다니는 신선한 팬티··· 가 아니라 매력이 있는 방송이라고요!
> 그딴 말을 하면 어떡햌ㅋㅋㅋ
> 역효과잖아 ㅋㅋㅋㅋㅋ
> 시청자수 줄어드는 속도 더 가팔라졌는데?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에 시청자수가 10만대까지 내려갔다. 이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수치기는 하지만, 가만히 놔두면 모두 BJ천마에게 넘어갈 시청자다.
풀창고는 다급해졌다. 아직도 팬티바람의 장점을 조금도 설명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미래의 팬티단을 잃을 수는 없다! 최소한 나가더라도 팬티단의 매력은 듣고 나가라고!
그러나 어떻게? 저 사람들은 BJ천마의 방송을 보고 싶어하는데?
머리를 돌리던 풀창고의 입이 열렸다.
“천마 형 방송 탐방이나 할까요?”
중계방 송출. 그것이 풀창고가 생각한 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