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0003, 0005 (11)
> 오늘도 vs 인공지능 맞냐???
> 지금 게임사들 하인라인 인공지능이랑 협약 맺으려고 눈 시뻘개졌더라 ㅋㅋㅋㅋ
> 펄-럭
> 인공지능 만든 건 하인라인인데 왜 니가 국뽕을 맞냐?
> 인공지능 캐릭터 토대가 BJ천마라는 말이 있음
> 설득력이···있어!
현재 완전히 하인라인의 소유가 된 0003호. 패도천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가 여기저기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람을 내려깔보는 것 같은 태도와 그와 맞닿는 무시무시한 무력. 그리고 특이하게 냉병기만을 고집한다는 캐릭터성까지.
BJ천마를 토대로 해서 만들어졌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놈이 본좌를 토대로 만들었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물론 단천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검을 휘두르는 방식이 아예 다르잖아. 보거라. 이것이 놈이 평소에 검병을 쥐는 방식.”
꾸욱.
“그리고 이게 본좌가 검병을 쥐는 방식이다.”
꾸욱.
“참고로 이건 평범한 무인들이 검병을 쥐는 방식이지.”
꾸욱.
> ?
> 뭐가 다른거임
> 전혀 안 다르잖아!!!!!!
> 다 똑같은 거 아니에요?
이래서 초보들이란.
“좀더 잘 봐라. 바로 이것이 놈의 태산압정.”
쉬익!
“그리고 이것이 본좌의 태산압정이다.”
쉬익!
> 안 다르잖아
> 뭐가 다르다는 거냐고!!!!
> 살다살다 이렇게 설득력없는 해명은 처음이다 ㅋㅋㅋ
실눈을 뜨고 채팅을 바라보던 단천은 설명하는 것을 포기했다. 누가 봐도 다른 움직임인데 이걸로도 이해를 못 한다면 더 이상 설명할 수단이 없다.
하긴. 명명백백한 증거가 있어도 억까를 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특성이기도 하다. 이런 억까를 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은 단순하다. 스트리머가 자신들에게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명명백백한 증거를 무시하는 너희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시간이 없다.”
> 대체 명명백백한 증거가 어딨음
> 천마님이 그렇다면 그런 거임
> 하긴 누가 봐도 천마님인데 구태여 신경쓰고 말고 할 게 어딨겠냐
지금은 그런 소모적인 논쟁을 할 시간이 아니라. 눈 앞에 있는 멸겁천을 베는 데에 집중해야 할 시간이기 때문이다.
0005라는 숫자로 표기된 멸겁천마는 자리에 정좌를 틀고 앉아 맹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반갑다. 멸겁천.”
“······.”
멸겁천은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나태한 것처럼 보였고, 어쩌면 세상 어떤 것에도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다.
“여자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뭐. 중요한 일은 아니다. 천마라는 것은 결국 하늘 위에 선 존재. 이 세상에 어떤 형태로 태어났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 0003보다는 이쪽이 좀더 분위기 있네
> 그러게 3번은 그냥 다 죽여버리겠다는 그런 느낌이었는데
> 얘는 천마님 베이스로 안 만들었나 봄?
“다시 말하지만 3대도 본좌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아니다.”
단천이 시청자들에게 재차 설명하는 와중에도 멸겁천은 귀찮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 다음 주변을 돌아봤다.
둘이 있는 곳은 이전에 패도천과 싸우던 장소였다.
하늘이 부서지고 땅이 갈라지는 전투가 이어진 탓에 바닥이 성한 곳이 없었다.
“다시 원래대로 복구를 할 수도 있었지만. 본좌는 그러지 않기를 선택했다.”
“···상관. 없다.”
어차피 둘 모두 신화경에 든 무인. 무공을 발휘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장소만 주어진다면 주변의 환경은 거의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당신. 여기. 이유는?”
“네놈을 베기 위해서.”
그보다 말뽄새가 마음에 안 든다. 단천 자신도 말을 짧게 하는 편이지만 그것보다 더 짧게 말을 할 수 있다니.
딱히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아니지만 뭐랄까. 묘하게 기분이 더러워진다.
‘저런 방식으로 말하는 것도 연습을 해 둬야겠군.’
대화는 그리 길게 필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멸겁천을 이기고 육도천이 존재하는 곳에 대한 정보를 들어야 했으니까.
“네놈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다.”
“···말한다면. 싸움. 안 한다?”
“그렇다면?”
“가르쳐준다. 싸움. 귀찮아.”
> ???
> 뭔 정보가 필요하다는 거임
> 뭐 인공지능 관련 데이터같은 거 아니냐?
> 근데 걍 알려준다는데?
> 그럼 싸울 필요가 없는 거 아니냐?
“네놈이 알려주냐 안 알려주냐는 중요한 게 아니지.”
단천의 몸에 기운이 흘러넘치면서 단천이 입고 있던 옷이 세차게 펄럭거리기 시작했다.
“내게 필요한 것은 정보. 그리고 싸움.”
“정보. 주는데도 싸워? 왜?”
“그러고 싶으니까.”
> 아니 정보 준다는데 왜 싸움을 걸어 ㅋㅋㅋㅋㅋ
> 쉿 조용히해
> 안그러면 우리도 천마님 싸우는 거 못봄
“당신. 미쳤어. 똑같아. 수많은 무인들.”
멸겁천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귀찮다는 듯한 움직임. 하지만 걸어오는 승부를 피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멸겁천마의 손에 들려있는 도가 단천을 향해 서서히 올라갔다.
우우웅!
뻗어진 도극에서 거대한 기운이 단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일류고수 수십쯤은 짓이겨버릴 수 있는 크기의 기운이었지만 단천 입장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수준의 기운이다.
서걱!
단천의 검에 의해 반으로 갈라진 기운이 주변으로 흩어졌다.
기운을 베어낸 단천은 바로 다음 수를 위해 자세를 다잡았다.
바로 다음 공격이 이어질 것이라 생각했지만. 다음 공격은 없었다.
“흐음.”
> 뭐고
> ???
> 어케 한 거임?
단천의 입에서 흥미롭다는 듯한 소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채팅창에서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물음표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분명히 그 어떤 지형지물도 없는, 갈라진 대지 위에 서 있던 두 명이다.
하지만 지금 주변에 보이는 나무들과, 흩날리는 꽃잎들. 그리고 흘러가는 물줄기까지.
가짜라고는 결코 생각할수 없는 풍경이 주변에 펼쳐진 것이다.
“환혼이라. 가당찮은 수작을 하는군.”
환혼. 혹은 환술이라고도 불리는 능력은 상대의 감각을 일시적으로 혼란하고 그 사이에 다른 일격을 꽂아넣는 방식으로 종종 사용된다.
언뜻 듣기에는 굉장히 활용도가 높은 방식의 술법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감각을 초월한 상단전이 열린 수준의 무인만 되면 실제와 비실제를 구별해내는 것이 간단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천은 눈을 감고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환혼이 아닌. ‘실제’에 집중했다.
그렇게 오랜시간 집중하던 단천의 눈이 서서히 뜨여졌다.
“······진짜로군.”
환혼같은 잡술이 아니다. 지금 자신의 눈 앞에 보이는 모든 풍경은 글자 그대로 실체가 존재한다.
기로 만들어낸 세계.
그 중심에, 단천과 멸겁천이 있었다.
> 주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캐릭터인거임?
> 와 근데 저런 풍경을 만들 수도 있는 능력이면 사실상 무적 아니냐?
> ㄹㅇ 천마고뭐고 절벽으로 던져버리면 게임끝
> ? 고작 절벽으로 던진다고 천마님이 죽겠냐?
> 생각해보니까 진짜 그러네
물론 내공이 있고 그것을 조종할 수만 있다면야 진짜처럼 보이는 기운의 덩어리를 만드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운으로 온 세상을 만들어낸다는 것. 어처구니 없을 정도의 낭비다.
거의 무한한 내공을 가지고 있는 신화경이기에 가능한 사치.
“이게. 네놈의 해답이라는 것이군. 그래봤자 나를 이기진 못할 테지만.”
“당신. 못 이겨. 나.”
> 왜 저쪽이 더 세 보이냐
> 짧게 이야기해서 그런 거 아님?
> 천마님보다 말 짧은 인간 처음 봄 ㅋㅋㅋㅋㅋ
빠득. 단천의 머리에서 가느다란 실핏줄이 솟아올랐다.
“본좌. 이긴다.”
“당신. 나 못 이겨.”
“본좌. 최강.”
“말투 따라하기. 불쾌해.”
“따라한 적. 없음.”
“따라했어. 당신. 불쾌해.”
> 말투 따라하지 마라고 ㅋㅋㅋㅋㅋ
> 믈트 뜨르흐즈 므르그~~
> 유치원생들 싸움이냐 ㅋㅋㅋㅋㅋ
멸겁천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명백히 분노가 차오른 표정이다.
스르르륵!
단천을 향해 세찬 바람이 불어들기 시작했다. 단순한 바람이 아닌 태산조차 무너트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힘이 담겨있는 바람이.
단천의 몸에서 바람에 대항한 기파가 터져나왔다.
꽈아앙!
바람과 기파가 부딪혀 천지가 뒤덮히는 충격을 만들어냈다.
단천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본래 이러한 종류의 말싸움에서 동서고금을 초월해 존재하는 하나의 법칙.
먼저 주먹 나간 쪽이 진 거다.
멸겁천이 화를 냈으니. 승리자는 자신인 것이다.
“말싸움은 본좌가 이겼군.”
> 말싸움 이겨서 좋으시겠어요
> 이긴?건가?
“물론 본좌가 이긴 거다. 저쪽이 먼저 손을 썼으니까.”
단천은 짧게 대답한 다음 검을 고쳐잡았다. 매섭게 불어대는 바람 줄기 하나하나에 거대한 기운이 담겨 있다.
바람뿐 아니다. 주변의 풍경 하나하나는 모두 멸겁천의 기운으로 빚어진 것들.
풍경에 있는 모든 것들이 도검이라고 봐도 틀리지 않다.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적을 베는 검으로 쓴다.
“자연검이로군.”
자연검.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의지를 담아 적을 베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무위를 뜻하는 말이다.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것으로 전해지는 전설의 검.
하지만 천마는 천마다. 상상 속에 존재하는 것도 의지를 가진다면 얼마든지 재현할 수 있다.
그리고 실제가 된 자연검은 글자 그대로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바람. 막는 무인. 없어.”
“그건 네 생각이고.”
단천은 계속해서 날아드는 바람을 밀어내며 대답했다. 멸겁천이 말년에 매진했던 주제는 자연. 그 중에서도···.
“풍림화산.”
바람, 숲, 불꽃, 그리고 산. 이 모든 것에 기운을 담아 적을 부숴버리는 무공.
지금 미친듯이 불어오는 바람은 그 중 ‘바람風’에 해당하는 무공일 것이다.
꽈드드드득!
모든 바람을 막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그에 대항할 수 있는 ‘바람’은 단천에게도 있었다.
몸을 갈아버릴 것처럼 쏟아지는 바람을 향해 단천은 검을 휘둘렀다.
단천의 검에서 만들어진 거대한 풍압이 단천을 향해 날아드는 바람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자연검. 나쁘지 않군.”
“검 아냐. 도刀. 자연도.”
“도는 무슨 도야. 바람으로 사람 썰어버리는 무공 어디에 도가 남아 있는데?”
> 그 말대로면 자연검에 ‘검’은 또 왜 붙임?
> 말대로면 검도 아니잖아 ㅋㅋㅋㅋㅋㅋ
“검 아냐. 내 무공. 이름 내가 지어. 도刀. 자연도.”
“자연검이다.”
“누구 맘대로.”
“본좌 마음대로.”
무림에서 살아가다 보면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곤 한다. 문파가 멸문하더라도 지켜야하는 문파의 혼. 정파 놈들이 자주 입에 담는 의협을 지키는 순간. 그리고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놈들을 만나는 순간들까지.
이럴 때에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 검을 부딪힌다. 그리고, 이긴 자의 뜻이 관철된다.
백두산은 백두산이다.
자연검은 자연검이다.
다른 이름으로 부를 수는 없다. 양보할 수 없는 정언명령.
그러니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부르는 놈이건,
자연검을 자연도라고 부르는 놈이건.
베어갈라 자신의 올바름을 증명할 뿐.
“오늘, 네놈의 자연검을 꺾어 본좌의 의지를 관철하겠다.”
단천의 광선검에서 뿜어져나오는 검은 기운이 주변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 그냥 싸우고 싶어서 시비거는 거 같은데
> ㄹㅇ
> 천마님 방송 하루이틀 보냐?
> ㄹ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