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0003, 0005 (5)
단천은 파천검을 쥔 채 눈 앞의 오만한 자식을 바라봤다.
“오만한 놈. 네놈은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러니 마음껏 세 초식을 써 보도록.”
그것뿐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말까지 지껄이고 있다.
> ㅋㅋㅋㅋ 저거 뭐임 ㅋㅋㅋㅋ
> 인공지능이 ‘오만함’까지 습득한 거임?
> 그냥 BJ천마 2호기 아니냐?
> 2대 천마다!!! 2대 천마가 나타났다!!!
2대 천마가 아니라 3대 천마다. 하지만 정정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자신에게 패배해서 나자빠질 놈이 2대이건 3대이건 하나도 중요한 사실이 아니었으므로.
지금 중요한 것은 단 하나.
패도천으로 하여금 먼저 검을 뽑도록 만드는 것뿐. 하지만 패도천의 표정은 여유작작하기 그지없었다.
“본좌는 살면서 먼저 검을 뽑아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느니라.”
> 너 인공지능이잖아
> 태어난 지 한달도 안 됐을 테니까 거짓말은 아닐듯?
먼저 검을 뽑아본 적 없다니. 개소리하고 있네.
단천을 실제 몸으로 만났을 때에도 선공을 갈겨 놓고. 뭐? 먼저 검을 뽑아본 적이 한 번도 없어?
하여간 입에 거짓말과 음해와 흑색선전이 입에 붙은 놈들이 천마라는 족속들인 모양이다.
단천은 구태여 상대해주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바닥에 나 있는 균열을 가리켰다.
“이것. 본좌가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가.”
검으로 만들어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균열이지만. 패도천의 표정은 담담했다.
패도천 자신도 이 정도라면 가볍게 할 수 있다는 표정이었다.
패도천이 자신의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검을 꺼내들었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검은 검보다는 오히려 몽둥이에 가까워 보였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처럼 보이는 패도천의 모습과 대비되는 모습.
“보여주지. 본좌의 검을.”
고오오오!
패도천의 검에 청색의 검강이 맺혔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검신 전체를 뒤덮는 검강이. 바닥을 내리찍었다.
콰드드드드득!
천지가 뒤집히는 소리가 나며 땅이 무너져내렸다. 바닥에 만들어진 균열의 크기는, 명백하게 단천이 만들어낸 균열보다 컸다.
“이제 차이를 인정하겠나?”
이죽거리며 올라가는 패도천의 입꼬리. 자신이 승리했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패도천 자신의 표정은 단천의 표정에도 똑같이 올라와 있었다.
“일 초.”
“뭐?”
“방금 검격으로 일 초를 썼다.”
> ?????
> 바닥에 꽂았는데 일초 쓴 거임?
> 쓴 거지
> ㅇㅈ
“이건 네놈과 나의 격차를 보여 주기 위해서···.”
“거야 알 바 아니고. 네놈은 일 초식을 썼고 본좌의 털끝 하나도 건드리지 못했다. 그것이 전부지.”
“······.”
“남은 두 초식.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지. 그래 봐야 지금처럼 본좌의 털끝 하나도 못 건드릴 테지만.”
패도천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여기서 초식을 쓰지 않았다고 하면 자신의 모습이 더 우스워진다.
“함정을 파 놓다니. 용의주도하군.”
> 이런 함정에 빠질 정도면 이미 글러먹은 거 아님?
> 그냥 본인이 함정으로 달려드신 건데요?
> 저거 인공지능 맞음?
> 너무 저지능인데;;
패도천에 대한 평가가 수직낙하하는 모습을 보며 단천이 뿌듯하게 미소지었다. 역시. 원조와 중국산 짭퉁은 품격부터가 다른 것이다.
단천이 뿌듯해하는 와중에 겨우 원래의 표정을 찾은 패도천이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좋다. 힘으로 네놈이 내 아래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수밖에 없겠군.”
“해 보도록. 불가능하겠지만.”
“안 그래도 그리 할 참이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패도천의 검기가 단천에게 날아왔다.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쾌속한 일격. 단천은 몸을 젖혀 검기를 겨우 피해냈다.
하지만 완전히 피해내지는 못했다. 상상 이상으로 패도천의 검기의 발출이 빨랐던 탓이다. 신화경의 힘이 깃든 초월적인 몸조차도 피해내는 것이 아슬아슬할 정도로 쾌속무비한 공격.
서걱!
단천의 머리에서 머리카락 몇 올이 나풀대며 떨어져내렸다.
“이번에는 털끝은 건드린 모양이군.”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금 패도천의 검격이 날아들었다.
상단전의 예지로 날아올 방향도. 동작도. 날아오는 각도까지도 예지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할 수 없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 없을 정도로 쾌속무비한 검기다. 단천은 검을 들어 날아오는 검기를 그대로 받아쳤다.
콰앙!
단천의 검과 패도천의 검기가 맞부딪히며 거대한 충격파를 만들어냈다.
“짜릿짜릿하지?”
“짜릿짜릿하군.”
검기를 날리는 것은 이제 겨우 수상비를 할 수 있는 일류고수쯤 되는 입문자들도 할 수 있는 기본적인 기술이다.
하지만 그 완성도는 무인의 실력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평생 봐 온 검기 가운데서 가장 완성도가 높은 검기로군.”
검기를 발출하는 것과 거의 동시에 도착한다고 느낄 정도의 속도. 보통은 속도가 빠르면 그 공격 자체는 가볍기 마련인데도 패도천의 검기는 그 무거움을 간직하고 있다.
상단전이 열린 자라고 해도 상대하기 버거운 공격이 바로 패도천의 검격이었다.
“이게 네가 내린 답인가?”
“그렇다.”
상단전은 기존의 무인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초월적인 능력이다.
상대의 움직임을 손바닥안에 놓은 것처럼 예상할 수 있도록 만드는 힘.
전능에 가까운 신화경의 경지와 합쳐진다면 실로 무적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정도의 능력이 바로 상단전이다.
그리고, 이 상단전을 뚫고, 신화경에 도달한 자들은 다들 비슷한 생각에 빠졌을 것이다.
‘상대가 나와 같이 상단전을 뚫어낸 자라면. 어떻게 이겨야 하지?’
사실 의미없는 생각이다.
상단전을 뚫어낼 정도로 강한 무인이 한 시대에 두 명이나 있지는 않으니까.
신화경에 도달할 정도로 재능이 있는 무인이 한 시대에 두 명이 태어난다고 해도, 둘 모두가 신화경에 도달할 수는 없다.
신화경은 천하제일 너머의 경지. 하늘 아래에 태양이 둘이 있을 수는 없으므로. 재능이 있는 자가 천하에 둘이 있더라도 천하제일을 쟁탈하며 둘 중 한 명이 반드시 죽게 된다.
그러니 ‘상대’가 자신처럼 상단전을 뚫은 존재를 가정하는 것은 의미없는 짓이다.
그러나.
“무도武道를 걷는 자라면. 당연히 상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도 하지.”
신화경에 도달한 자라면 너나할 것 없이 신화경에 도달한 적을 상대하는 법을 연구한다. 본 적은 없지만 확신할 수 있었다.
평생토록 더 이상 만날 수 없을 것이 확실한 호적수를 이기는 법을 연구한 이유는 단순하다.
그 정도로 무에 미친 인간이 아닌 존재가 신화경에 도달하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콰드드득! 콰앙!
한 번 한 번의 일격이 날아올 때마다 충격파만으로 바닥이 부서지고, 땅이 갈라진다.
숨 쉴 틈 없이 계속되는 육중하기 그지없는 일격. 패도천은 천마 가운데서도 패검만으로 한 시대를 잡아냈던 인간이다.
> 와 ㅅㅂ 이펙트 장난 아니네
> ㅁㅊㄷ
> 개재밌어보이는데? ㄷㄷㄷ
대부분의 시청자들의 눈에는 단순히 화려하고 거대한 이펙트들이 오고 가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안목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라면 지금 두 명이 벌이고 있는 수싸움과 움직임의 완성도만을 보고 감탄을 터트렸겠지만.
‘지금 그런 것을 바라는 것은 힘들겠지.’
무에 대한 생각들이 이제 개화하기 시작했다. 다행인 것은 지금의 이 전투가 영상으로 영원히 남으리라는 것.
실력이 더 나아진 사람들이 자신의 전투를 본다면. 이 전투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되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영원히 박제될 싸움에서 지는 것이 자신이 될 수는 없다.
카가가가각!
정면에서 패도천의 검격을 맞은 단천의 몸이 뒤로 크게 밀려났다.
모르는 자가 봤다면 승패가 확실하게 나뉘어 있는 것으로 봤을 상황.
하지만 패도천의 표정은 여유로움이나 기만보다는 짜증에 가까운 표정이 서려 있었다.
“언제까지 힘을 숨길 셈이지?”
“딱히 숨긴 적은 없는데.”
패도천의 물음은 당연한 것이었다. 패도천의 눈 앞에 서 있는 저 오만한 자식은 그저 패도천 자신의 해법을 받아내기만을 했다.
‘자기 자신의 능력은 조금도 보여주지 않은 채로 말이지.’
기나긴 세월동안 신화경을 상대하는 방법을 궁구했고. 결국 대답을 찾았을 터. 그런데도 놈은 아주 조금도 자신의 ‘답’을 보여주지 않고 있었다.
“힘을 숨기면서 싸워서 이길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뭐. 딱히 숨긴 건 아니고.”
역시 이러니저러니해도 천마는 천마다. 짭퉁에 불과하더라도 깨달음 없이 상대하는 것은 아무래도 힘들다.
단천은 입에 머금은 피를 뱉어냈다.
“그러니. 슬슬 보여줘야겠지.”
단천은 손에 든 애병을 잡아들었다. 묵빛의 광선에 묵빛의 검기가 맺혀들었다.
“본좌의 깨달음을.”
단천의 검이 움직였다. 빠르고, 직선적이며, 패도적이기 그지없는 움직임이 검기를 발출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날아오는 검기에 패도천이 내공을 발출해 기막을 만들어냈다.
콰아아앙!
패도천의 팔에 길다란 검상이 생겨났다.
어마어마한 힘이 깃든 기막이었으나 검기를 오롯이 다 막아내지는 못한 탓이다.
패도천의 표정이 있는 대로 구겨졌다.
“이. 이 새끼가아아!”
패도천의 표정이 구겨진 것은 단순히 자신의 팔에 상처가 났기 때문이 아니었다. 전투를 거치면서 수없이 많이 상처를 입는 것은 무인의 자랑이었으므로.
지금 패도천의 표정이 악귀처럼 구겨져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단천이 날려보낸 검기의 속도, 움직임, 궤적과 형체가.
자신이 만들어낸 검격과 완전히 똑같았기 때문이다.
“이 버러지 자식이 내 깨달음을 훔쳐! 네놈에게는 자존심도 없는 거냐! 본좌가 십수 년은 고민해 만든 답을 훔치다니!”
> 무슨 십수 년이야 ㅋㅋㅋ 며칠 전에 만들어진 인공지능이 ㅋㅋㅋ
> 대충 설정이 그렇다는 거니까 그러려니 하셈
> 요새 AI 많이 늘었다 컨셉질도 하고
어마어마한 분노를 폭발시키는 패도천이었지만 단천은 길게 하품을 내쉬었을 뿐이다.
“거 참. 그딴 거 찾는 데 십수 년이나 걸리다니. 무에 재능이 딱히 없나 보군.”
“재, 재능이 없다고!”
“본좌가 답을 찾아내는 데에는 10초도 걸리지 않았는데.”
단천 또한 신화경에 도달한 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단천이 내린 결론은 단순했다. 신화경에 도달한 미친 놈들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든 자신의 상상을 뛰어넘는 ‘답’을 만들어올 것이라는 것을.
그러면, 그 때 가서 놈들의 ‘답’을 보고 배우면 된다.
하지만 이것은 단순히 놈들의 답을 베끼는 것이 아니다.
“빠르며, 막아내기 버거울 정도로 패도적인 공격. 이게 네놈이 가장 자신있는 장기이기 때문에 선택한 답이겠지.”
패도천의 일그러진 표정을 바라보며 단천은 웃었다.
“그러면. 그 자신있는 장기로 놈들을 이긴다.”
강强으로 덤벼온다면 강으로. 쾌快로 덤벼온다면 쾌로. 중重으로 덤벼온다면 중으로. 패覇로 덤펴온다면 패로.
“본좌가 가장 싫어하는 족속이 바로 스스로가 가장 위대하다고 착각하는 놈들이지.”
> 본인 이야기죠?
> 자기혐오 ON
> 자기혐오를 멈춰주세요···
단천 자신의 생각은 착각이 아니라 사실이므로 스스로를 싫어할 이유가 되지는 않았다.
“그런 오만을 부리는 놈들이라면. 덤벼오는 방식 그대로 놈들을 깨부순다.”
그것이 단천 자신이 찾은 대답이었다.
“그럼. 붙어보자고. 네놈이 가장 자신있어하는 ‘장기’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