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97화 (197/212)

44. 0003, 0005 (4)

[ON AIR]

> 가자ㅏㅏㅏㅏㅏㅏㅏㅏ

> 왜이제야방송켜왜이제야방송켜왜이제야방송켜

> 당신에게는 매일같이 방송을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 사람을 가둬놓고 방송을 시키지 않는 한국은 법치국가가 아닌 것입니까?

> 천마님을 가둘 수 있는 국가라는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방송이 켜지자마자 언제나처럼 미친 듯한 화력의 채팅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전처럼 방송이 일시적으로 렉이 걸린다거나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확실히 서버가 커서 그런지. 다르기는 다르군.”

본래 개인 방송에 할당되는 서버가 아닌 대형 이벤트에서나 사용되는 개인 서버를 할당받아서 방송이 송출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 협상을 진행한 것은 이태흠이었다.

“뭐. 이런 정도도 안 할 거면 본좌와 함께할 자격이 없는 거지.”

이태흠이 들었다면 맨발로 달려와서 침이라도 뱉었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단천이었다.

> 그래서 오늘 방송 뭐함?

> 뉴스도 안 보고 사냐?

> 그러게 AI vs 스트리머로 뉴스 도배되다시피 하고 있는데

> 차세대 AI라며?

> 이제 진짜로 AI가 인간을 뛰어넘는 날이 온 거냐

> 뭐래 ㅋㅋ 인간은 알파고때 끝났어

> 사실 우리가 알파고의 동력원이라면? 이 모든 게 가상현실이었다면?

인공지능을 상대한다는 이야기가 퍼질 대로 퍼져 있는 상태다. 이대로 방송을 진행해도 크게 무리는 없는 상태.

“본좌가 오늘 상대할 자들은. 패도천과 멸겁천이라는 자들이다.”

하지만 단천은 구태여 별호를 말했다. 저 모든 사람들이 AI라고 받아들인다고 해도. 그들의 이름은 최소한 알려졌으면 했기 때문이다.

“AI와 전투하는 방식은 다키스트 에이지에서처럼 ‘내공’을 사용해서 몸을 강화하고, 무기를 강화하고, 주변을 움직일 수도 있는. 무공대 무공의 전투다.”

> 요새 새로 나온 시스템이네

> 이거 신박하더라

> ㄹㅇ

“아마 본좌가 단언하건데. 이 방식을 사용한 게임들은 그대들에게 충분한 재미를 보장해 줄 것이다. 충분한 깊이가 존재하며. 길게 노력한다면 상상하던 것 이상의 풍경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 에이 뭔 게임의 시스템 이야기하는데 그 정도까지야

> 오바가 심하네 ㅋㅋㅋ

> 이거 사실상 게임 시스템 홍보 아님?

“홍보라고 한다면 홍보라고 할 수도 있겠군.”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이지만. 괜찮다. 곧 보게 될 싸움을 보게 된다면 그들도 자연스럽게 납득하게 될 테니까.

“전투 시뮬레이션을 실행한다.”

[주변 환경을 활성화합니다.]

[주변의 모델링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로딩이 완료되었습니다.]

주변의 풍경은 풀 하나 없는 황량하기 짝이 없는 공간이었다.

> 엄청 휑하네

> 아무리 전투 시뮬이지만 그래도 이건 좀 그렇지 않냐 ㅋㅋㅋ

이 정도로 휑한 풍경은 단천 자신이 요청한 바다.

“그래도 이런저런 장식물 정도는 넣어 줄 수 있는 것 아닌가.”

가령 용이 날아오르는 모양의 산이라거나, 봉황의 날갯짓처럼 보이는 기암괴석이라거나. 거대한 폭포와 같은 것들 정도는 서비스로 넣어 줄 수 있는 것 아니던가.

“쯧쯧. 시키는 것만 시키는 대로 한다면 고작해야 일류 정도밖에 될 수 없는 것을.”

> ㅇㅈ

> ㄹㅇ

> 하인라인이 만든 거 아님?

“맞다. 본좌가 사흘이나 되는 시간을 주고 전투를 할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했지.”

> ···지금 지평선 끝이 안 보이는데?

“전투공간의 크기는 대략 한반도 정도 크기다.”

> 그 크기를 사흘만에 만들어달라고 했다고요?

“뭐, 별 것 아닌 일이니 사흘이면 충분하지 않겠느냐.”

> ······.

> 하인라인에서 고소 안 들어옴?

> 고소가 아니라 칼들고 찾아와야 되는 상황인 것 같은데

싸울 수 있는 맵을 만들어내는 것은 단순히 모델링을 가져오는 것만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시스템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매핑을 하고, 움직이는 도중에도 렉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하는 기술력이 필요한 것이다.

“고작 평지 만드는 것이 뭐가 그리 어렵다고. 쯧쯧.”

> 뭐 어쩌겠냐 천마님이 시키는데 해야지

> ㅇㅈ

> 기술력 미쳤네; 하인라인 주식 좀 담아놔야겠음;;

의도치 않게 하인라인의 높은 기술력 홍보를 마친 단천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보다. 본좌가 쓸 수 있는 검을 만들어 달라고도 했는데. 검이 보이지 않는군.”

> 그 와중에 검 만드는 것까지 시키냐?

> 악마도 경악할 만한 발상 ㄷㄷㄷ;

왜. 커다란 땅 만드는 것도 사흘이나 줬는데. 1m 조금 넘는 검 한 자루 모델링하는 것쯤이 뭐가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단천은 자신을 악마로 몰아가는 시청자들의 억까를 견뎌냈다. 이것이 바로 왕좌의 무게 아니겠는가.

왕좌에 앉으려는 자는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하는 법.

“진짜 검은 어디 있는 거지.”

단천이 ‘검’이라는 말을 내뱉자마자 상태창이 떠올랐다.

“···상태창은 넣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되도록 진짜 중원에서의 전투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상태창과 같은 것들을 일체 배제해 달라고 했거늘. 상태창이 떠오르다니.

하지만 단천의 투덜거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무기를 모델링합니다. 머릿속으로 무기의 형태와 재료를 떠올려주십시오.]

“오.”

무기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만들어준다는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번만은 참아 주도록 하지.”

> 진짜 운 좋은줄 알아라

> ㄹㅇ 천마님 심기를 거스르고도 살아남은 게 운 좋은거임

단천은 눈을 감고 자신의 애병의 형태를 떠올렸다. 투박하고 곧으며 칠흑처럼 검디검은 검신. 아름다울 정도로 균형이 잘 맞추어져 있는 검의 좌우. 결코 부러지지 않는데다 무엇이건 자를 수 있는 예리함까지.

띠링.

하는 소리를 들은 단천의 눈이 서서히 뜨여졌다. 단천의 눈 앞에. 익숙하기 그지없는 검손잡이가 떠올라 있었다.

파천破天.

“오랜만이군.”

파천을 손에 쥐자 묵직하고 서늘한 감각이 느껴진다. 마지막까지 광선검이냐, 파천이냐의 사이에서 갈등했다.

오랜 시간의 갈등이었지만. 완벽한 대답을 찾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이것이지.”

단천은 움켜쥔 파천에 내공을 불어넣었다.

우우우웅!

검디검은 광선이 주변을 삼킬 것 같은 모습을 드러냈다.

둘 모두를 원한다면, 둘 모두를 취하면 된다. 광선검인 동시에 파천검인 검을 가지면 되는 것이다.

> 와

> 간지 뭐임

> 검은색 광선검 ㅋㅋㅋㅋㅋ

> 나도 다음 광선검 저걸로 만든다

“이 파천은 본좌만의 색이다. 다른 자가 본좌의 검 색깔을 흉내내는 순간 수천 조각으로 찢어버릴 테니 그리 알도록.”

> ㄷㄷㄷㄷㄷㄷ

> 천마님에게 찢겨진다면 그건 영광인 일 아닐까?

> 실제로도 찢어질 수가 있으니 문제지

실제로 찢는 게 아니면 뭐 어떻게 찢는단 말인가. 감히 자신의 파천을 흉내내 놓고 게임 안에서만 능지처참을 당하는 것으로 끝내려고 한 건 아닐 테고.

잠깐 고민하던 단천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늘한 감각과 무게,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다는 확신까지.

역시.

“완벽한 무인에게는 완벽한 검이 필요한 법이지.”

> 천마님 평소에는 무기같은 거 안 중요하다고 하지 않으셨나?

“헛소리하는 놈이 있다면 오늘 하는 전투를 방송하지 않는 수가 있다.”

> 천마님이 언제 그랬냐?

> 영상도 있는ㄷ[다수의 신고로 가려진 채팅입니다.]

> 후

> 처리했네요!

> 여러분들 이대로만 갑시다!

검도 완벽하지만 몸상태도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내공이 단전을 넘어서 몸 전체를 가득 채우는 것만 같은 충만한 느낌이다.

‘이게 내공이지.’

절대로 마르지 않을 것만 같은 대해와도 같은 수준의 내공. 이런 수준의 내공량을 경험하는 것은 중원에서 돌아온 이후 처음이다.

단천이 검을 들어올린 다음 아래로 내리꽂았다. 위에서 아래로 내리긋는 단순하디 단순한 궤적. 태산압정의 자세.

단순하기 그지없는 검격이었으나 그 안에 담긴 힘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검에서 터져나오는 예기가 바닥을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쩌저저저적!

> 저거 어디까지 찢어지냐?

> 바닥이 안 보이는데?

> 이런게 가능하다고???

> 먼치킨 수준이네 ㅁㅊ ㅋㅋㅋㅋㅋㅋ

“나쁘지 않군.”

몸도, 내공도, 썩 마음에 드는 수준이다. 그리고 자신의 몸과 내공이 이토록 완벽하다면, 자신이 상대해야 하는 존재또한 자신과 동등한 힘을 가진다는 뜻.

“누구를 먼저 상대할까.”

잠깐 고민하던 단천은 피식 웃었다. 누가 먼저건 상관없었다. 결국 둘 다를 상대할 것이고, 이기는 것은 자신일 터니까.

“인공지능 로딩해.”

[003과 005. 둘 중 어느 쪽을 로딩하시겠습니까?]

“아무 쪽이나 상관없어.”

[주사위를 굴립니다.]

[003을 로딩합니다.]

로딩 메시지가 떠오르고 나자 단천의 눈 앞에 한 사람의 인영이 서 있었다.

살짝 병약해 보이는 얼굴. 무인이라고 보기에는 가느다랗기 그지없는 팔과 다리.

> 저게 인공지능이 사용할 몸임?

> 상태 너무 안 좋은 거 아니냐?

> ㄹㅇ;; 좀 좋은 몸좀 만들어줬어라

사람들의 반응은 다소 차가웠지만. 단천의 표정은 진지했다. 시청자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역. ‘기’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자가 얼마나 강한지를 말해 주고 있었기에.

단천은 이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도 조금은 의심했다. 어쩌면 정말로 단순히 인공지능일 뿐일지도 모르겠다고. 그러니 크게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다고.

하지만.

“진짜로군.”

이 기세는 그것만으로도 하나의 존재증명이다. 이토록 패도적이고 강맹한 기세를 인공지능따위가 만들어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삼대천마. 패도천마 맹경주.

중원이 만들어지고 가장 강맹한 검법을 손에 넣었던 자가, 자신의 눈 앞에 있었다.

맹경주가 손을 휘젓자 구체형의 막이 만들어졌다. 음파를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 뭐고

> 왜 소리가 안 남?

완전히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패도천이 입을 열었다.

“두 번째로 만나는군. 아니. 따지자면 처음인가?”

패도천은 중국에서 둘이 만났을때의 신체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처음 만남은 심하게 심심했었는데.”

“아무래도 내공도 부족하고, 원래 인간의 인격도 완전히 제어할 수가 없거든. 몸도 내 몸이 아니고.”

“진 놈이 혓바닥이 길군.”

패도천의 얼굴에 미미한 노기가 감돌았다. 신화경의 고수가 내뿜는 노기는 그것만으로도 하늘을 가르고 땅을 뒤집을만한 힘이 있었지만, 단천 또한 신화경의 존재다.

단천은 패도천의 노기가 발하는 기파가 존재하나 싶은 표정을 한 채 귀를 후빌 따름이었다.

“아니. 됐다. 천마라는 이름을 달고 오만하지 않은 것이 이상하니까. 원래 몸 주인들은 어쨌나. 죽였나?”

“칩만 빼면 되는데 뭘 죽이기까지야.”

“확실히 특이하군. 보통 천마놈들은 남이 죽건 말건 신경을 쓰지 않는데.”

“너희들과 같은 짭퉁들과 진짜를 같은 선상에 놓아선 안 되지.”

“후대의 천마 주제에 선대인 본존에게 짭퉁이라. 크큭, 크하하하!”

패도천이 광소를 터트렸다.

“마음에 들어! 그것도 정말 마음에 들어! 네놈의 무공이 그 오만함만큼의 경지에 다다랐기를 빌지!”

“싸움이 끝나고 나면. 알게 될 거다.”

“뭘?”

“본좌의 태도는 본좌의 실력에 비하자면 오만이 아니라 겸손이라는 것을.”

단천의 검이 좌에서 우로 휘둘러졌다. 음파가 새나가는 것을 막아내던 기파가 한 순간에 찢어졌다.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의 팽팽한 긴장감 사이에서. 두 명의 입이 동시에 열렸다.

“삼 초를 양보하겠다.”

“삼 초를 양보하마.”

둘은 거울에 선 것처럼 서로를 노려봤다.

““······.””

> 자존심 강한 두 천재의 대결이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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