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0003, 0005 (3)
[이미 싸늘하게 식은 시체입니다]
[제발··· 제발 10분만이라도 방송해 주세요··· 제 전재산이라도 바칠게요···]
인터넷 방송 게시판은 유래없이 우울한 상태였다. 평소라면 다양한 방송인에 대한 이야기들로 추천글이 채워져야 하지만 지금의 인터넷 방송 게시판의 추천글은 거의 죽어가는 빈사상태인 사람들의 반응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갤주 요새 뭐함?]
[몰?루 며칠 쉬네?]
[ㄹㅇ 왜케 소식없어!!!]
BJ천마의 방송이 무려 이틀동안이나 없었기 때문이다.
[BJ천마의 방송이 없는 오늘···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비통함과 애도가 섞여 있는 사람들의 글이 이어지고 있는 상태가 이틀이나 이어지는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도중.
[BJ천마 다음 방송 VS 인공지능인듯]
낚시글로 보이는 글 하나가 등장했다.
[인공지능이겠냐 ㅋㅋㅋㅋ]
[지금 들어온 게임광고가 수천 개일 텐뎈ㅋㅋㅋㅋ]
[그래도 나름 성의는 있는 구라네]
사람들의 반응은 냉담하기 그지없었다. 그야 당연했다. 저런 낚시글이 이틀 동안 만 개는 올라온 탓이다. 그 종류도 다양했다. 게임 광고를 찍으러 갔다느니, 방송 은퇴를 했다느니 하는 종류면 그나마 양반이다. 달 뒷면에 있는 나치들을 상대하러 갔다는 헛소리를 당당하게 하는 글까지도 있었다.
[진짜 방송 언제하냐고]
[달 뒷면 나치들 처리하고 오면 되니까 조금만 참아]
[음모론자새기들 진짜 줘패고싶네]
[ㄹㅇ 달 뒷면에 나치가 없다는 음모론 퍼트리는 놈들은 좀 맞아야 됨]
그 누구도 믿지 않는 상황. 하지만 그 뒤를 이어 다른 증언들이 계속 올라오기 시작했다.
[BJ천마 인공지능이랑 붙는다는 거 사실인듯?]
[우리 작은 광고회사하는데 하인라인에서 광고 배너 있는대로 들고감]
[지금 하인라인쪽 사람들 BJ천마 잡히면 죽이려고 하는 중]
삼인성호라고 했던가. 여러 사람들이 말에 말을 보태기 시작하고, 인증도 연이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대외비가 되어야 하기는 하지만 BJ천마의 인기는 하늘을 찌른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의 입을 막아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게, BJ천마가 다음 게임으로 ‘인공지능’과의 대결을 한다는 것은 반쯤 확정사항이 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에게서 퍼져나가는 또다른 궁금증.
[근데 상대 인공지능은 누구임?]
그것은 바로 BJ천마를 상대할 인공지능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었다.
[하인라인 쪽에서 개발하고 있는 인공지능 아닐까?]
[그럴 가능성이 높지]
[확실히 내부적으로 5세대 인공지능 개발중이라고는 하더라고]
이번에 게임 판을 벌리는 게임사가 하인라인이다. 그리고 게임사라면 당연히 일정 수준 이상의 인공지능에 대한 기술력이 존재한다.
그러니 사람들의 의견은 BJ천마가 하인라인의 새 인공지능을 테스팅하지 않겠느냐는 추측으로 모아졌다.
[근데 하인라인 인공지능은 아닌 것 같던데]
[ㅇㅇ 어디서 얻은 인공지능이랑 붙었는데 개박살 났다고 하더라 ㅋㅋㅋㅋ]
[거의 100:1까지도 밀린 모양이던데]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ㅋㅋㅋㅋ]
인공지능 기술 개발은 게임사들을 비롯한 수많은 기업들의 최우선 목표다. 그리고 하인라인또한 인공지능 개발에 엄청난 금액을 투자했다.
인공지능 기술 개발이 고도화됨에 따라 기술간의 격차는 그만큼 줄어든 상태. 100:1로 싸움을 했는데도 하인라인의 인공지능이 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알못들이나 100:1 가능한 인공지능이 있다고 하지 ㅋㅋㅋ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ㅋㅋㅋ]
[100:1이 되겠냐 ㅋㅋㅋ하인라인 기술력이 밑바닥도 아니고 ㅋㅋㅋㅋㅋㅋ]
***
“···라는데요.”
“······.”
이태흠은 코를 살짝 훌쩍였다. 안 그래도 죽어가는 직원들을 달래느라 누구보다 죽어가고 있는 이태흠이었다.
사원들의 수도 많아지고, 복지도 늘어나고, 주가는 올라가고, 게임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분명히 행복해야 하는 상황인데. 왜 이토록 몸은 고되고 정신이 피폐해져 가고 있는 건지.
“어떻게 할까요? 비공식적으로 영상 풀면 대박이 나기는 할 건데.”
“영상 풀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거야. 저희 하인라인에서 구세대 인공지능 상대로 100대 1이 가능한 차세대 인공지능 개발이 완료됐다고 생각하겠죠.”
이태흠은 잠시 고민했다. 100대 1이 가능한 인공지능이 자신들의 손에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이 인공지능은 복제가 불가능했다. 분명히 소스 코드들을 그대로 복사했는데도 제대로 실행이 되지 않는 상황.
즉 인공지능 기술은 자신들에게 없다.
이대로 영상을 풀기만 한다면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는 뜻이다.
“영상 올리면 엄청 좋을 것 같은데요.”
“아니. 일시적으로는 주가가 폭발적으로 올라가겠지.”
“그러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래 봤자야.”
결국 회사의 가치라는 것은 거짓된 방식으로 올라가지 않는다. 결국 인공지능의 기술력에 있어서 하인라인이 엄청난 격차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건 사실이고. 이런 식으로 펌핑된 주가는 금세 곤두박질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신뢰가 한 번 박살나면 회복이 안 된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순간에 제대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저런 이득에 한눈 팔지 않더라도 하인라인의 앞날은 창창하기 그지없다.
장고하던 이태흠이 입을 열었다.
“공식적으로 발표하도록. BJ천마대 인공지능을 준비하고 있다는 거랑, 대결할 인공지능이 우리 회사측의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거. 둘 다.”
익명을 통해서 정보를 풀게 되면 또 다른 소문이 생겨날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보도문을 내면 이런 부분들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뭐. 그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우리 회사라는 소문이 좀 돌긴 하겠지만.’
어차피 판을 벌리는 것이 자신들의 회사이니만큼 그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
[미쳤다]
[지금 인공지능이랑 100:1도 가능한 인공지능이라고?]
[ㄷㄷㄷㄷ;;]
인터넷의 반응은 용광로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차세대 인공지능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인공지능이 출현했다는 소식. 그리고 그 인공지능을 만든 회사가 ‘하인라인’에게 위탁을 해서 인공지능 vs BJ천마를 벌였다는 소식들까지.
[저 인공지능 뭐임? 사람이 이길 수나 있나?]
[상대가 BJ천마잖아]
[천마님 상대로 인공지능? ‘한 방 컷’]
[이전까지 인공지능이면 몰라도 ㅋㅋㅋ 지금 인공지능 100:1로 압살하는 인공지능인데 ㅋㅋㅋㅋ 천마고뭐고가 어딨냐?]
사람들의 의견은 절반으로 나뉘어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최상위권의 인공지능과 백대 일로 싸우는 것은 천마라고 해도 불가능하다는 의견과, BJ천마라면 무조건 이길 것이라는 반반의 의견.
사실. 상대가 ‘인공지능’이 아니라는 사실만 빼고 본다면 양쪽 다 타당한 의견들이었다.
“삼대. 그리고 오대.”
두 명을 한번에 상대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랬다가는 서버에 과부하가 걸릴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개별 인공지능이 보여주는 퍼포먼스에 필요한 연산량이 워낙 크다던가.
“21세기라고 해서 모든 게 다 되는 것도 아니군.”
단천이 어릴 때에 상상하던 선 없는 블루투스 샤워기도 개발되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블루투스 샤워기가 개발되는 머지않은 미래가 된다면 전대 천마들과 싸우는 것도 가능할 터였다.
“뭐. 중요한 것은 이게 아니지만.”
단천의 눈이 감겼다. 결국 게임 안에서 보여줄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은 서로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능력일 터.
천하제일의 수준에 오른 고수들간의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깊은 심상을 가지고 있느냐다.
단천은 자신의 내면에 서서히 침잠해 들어갔다. 살아가면서 깨달음을 얻었던 수많은 질문들. 그리고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이 해변의 모래알처럼 펼쳐졌다.
그 중 하나의 질문을 주워들자 무명승의 얼굴이 보였다.
─ 그래서. 시주는 왜 사시는 게요?
단천은 수백 번은 대답했던 답을 다시금 입에 담았다.
“영원제일인이 되기 위해서.”
뻔한 답변이었다. 하지만 단천 자신이 찾던 궁극적인 답은 아니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했다는 것이 단천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것을 가로막아왔다.
단천 자신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지 못한 채로 우화등선에 이르렀다.
─ 그게 시주가 바라는 진짜 대답인 게요?
“···아마 아니겠지.”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찾아야 한다.
─ 역시 시주도 답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시는가 보오. 그러면 답을 찾아내기 위해서···.
“싸워야겠지. 계속해서.”
─ ···참선과 수련을 해 볼 생각은 없으신 게요?
참선 수련을 왜 해.
“혼자서 벽 보고 앉아있는다고 답 찾는 게 될 리가 있냐? 그딴 걸로 깨달음을 얻는 건 맹추 땡중밖에 없지.”
─ 지금 저희 소림의 개파조사이신 달마대사를 벽 보고 답을 찾으려고 한 맹추 땡중이라고 하신 게요!
딱히 달마대사 이야기라고 한 적은 없는데. 무명승의 명경지심이 깨어진 목소리가 쫑알쫑알 울려대기 시작했다.
─ 불도라는 것은 결국 단순히 자신의 완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건너며 사람들을 구하는 것에 있다는 것이 달마대사의 믿음인 거외다!
꼬라지를 보아하니 또 고장난 녹음기처럼 달마의 삶에 대해서 읊어댈 게 분명했다.
개파조사 좀 욕 먹는 걸로 저런 식으로 마음이 깨어져서야. 저러는 꼬라지를 보면 벽 보고 수련하는 건 아무 도움이 안 된다. 백 년 글자만 보고 수련한 무명승만 봐도 알 수 있다.
반박시 소림승.
쫑알거리는 무명승의 목소리가 가라앉고 나자 다시금 침묵이 찾아왔다.
수많은 절대자들은 죽음을 초월하고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갔으나. 자신은 여전히 이 자리에 있었다.
단천의 눈 앞에 거대한 벽이 보였다. 생과 사에 대한 답을 묻는 벽.
이 벽을 넘어간 자들의 이름에는 달마도 있을 것이고, 초대 천마도, 다른 천마들과 천하제일인들이 있을 터였다.
이 벽이. 아마 ‘그들’과 자신간의 간극이겠지.
신화경에 겨우 발을 디뎠던 자신과 신화경에서도 발걸음을 옮긴 자들의 차이.
경지 안에서도 단계를 나눈다면 그들의 경지는 자신보다는 위에 있을 터였다.
하지만. 싸움의 승패는 고작 경지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깊게 침잠했던 단천의 눈이 반개했다. 신화경에 들고도 수십 년간 더 나아가지 못했던 질문에 연연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집중해야 하는 것은 눈 앞에 있는 싸움.
그리고 자신이 평생 관철해왔던 명제 하나.
“본좌보다 강한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앞을 가로막는 것은 베어버릴 뿐.
그것이면 충분하다.
─ 쯧쯔. 생이라는 것은 결국 강함의 고하가 아니라 깨달음과 덕을 쌓는 데에 있는 것을···.
단천은 옆에서 쫑알대는 무명승의 심상을 베어갈랐다.
“사람이 천마로 태어났으면 중요한 것은 하나. 모든 자들의 위에 서는 것.”
─ 시주. 세상에 천마로 태어나는 사람이 어딨소? 억지를 부려도 말이 되는 억지를 부려야지.
“본좌는 천마로 태어났어. 이 땡중 자식아.”
단천은 다시 무명승의 심상을 베어갈랐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다시 무명승의 심상이 나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