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91화 (191/212)

43. 돌아보기 (3)

[라이프가 0이 되었습니다!]

[GAME OVER]

파아악! 풀창고가 검을 바닥에 내리꽂았다.

“이걸 어떻게 깨란 말이야!”

네명이 다섯 바퀴나 돌았는데도 클리어는커녕 클리어 근처까지도 가지 못한 상태였다.

> 엌ㅋㅋㅋㅋㅋ

> 아니 근데 다 막아내다가 저 구간만 가면 다쳐맞네

> 뻔히 보이는 건데 왜 못 막음?

“왜 옆에서는 보이는데 실제로 하면 안 보이지?”

“그러게.”

“천마 형한테 뭐라고 하면 살아남을 수 있을까?”

생존 자체를 대비해야하는 제로콜을 제외한 사람들의 의문은 하나였다.

‘옆에서 보기에는 뻔히 보이는 공격인데도 막는 본인에게는 보이지 않는다고?’

기묘하기 그지없는 상황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BJ천마에게 쏠려들었다.

이런 것을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BJ천마뿐이었으니까.

“설명이라도 좀 해 줘.”

“쉬이 막아낼 수 있다면 만천화우가 아니다.”

만천화우는 단순히 쏘아내는 암기의 수가 많기만 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 아니다.

“인간의 지각知覺이라는 것은 세상 만물을 정형화해서 바라본다.”

세상 모든곳에서 반복되는 패턴을 찾아내는 것이 인간의 뇌다.

가령 1일에 지옥훈련을 하고 3일에 지옥훈련을 하고 5일에 지옥훈련을 한다면, 인간의 뇌는 자연스럽게 7일에도 지옥훈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리고 만천화우의 묘리는 이 인간의 지각의 틈새를 찔러넣는다.

따지자면 6일에 지옥훈련을 하는 것이 만천화우의 ‘비틂’이다.

─ 끄어어억! 죽을 것 같아! 단주! 오늘 지옥훈련을 했으니 내일은 지옥훈련 안 하는거지?

─ 뭔 개소리야! 내일도 당연히 하는 거라니! 오늘 했잖아!

─ 원래 홀수일은 지옥훈련 하는 날이라고? 그럼 오늘은 뭔데!

─ 날짜를 착각했다니! 이 빌어먹을 자식아! 만약 그렇다손 쳐도 날짜를 착각했으면 하루 쉬어야지!

─ 원칙에 예외는 없다니! 개자식아! 네놈이 인간이냐아아아!

귀에서 서윤학을 비롯한 혈귀단의 환청이 들려오는 것 같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인 법. 단천은 말을 이어나갔다.

“앞서서의 공격들로 공격을 맞이하는 자의 머릿속에 알게 모르게 정형화된 구조를 만들어넣고. 마지막의 공격에 대비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러니 마지막의 공격뿐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가 모두 만천화우인 것이다.

머나먼 곳, 머나먼 시대지만. 끝끝내 만천화우가 또다시 세상에 만들어진 것이 단천은 퍽 즐거웠다.

“아니. 말대로면 깰 수가 없는 난이도인 거잖아.”

“우우! 깨지도 못하는 걸 주다니!”

“형. 저는 그런 생각 조금도 안 했어요! 제가 도발했던 거, 방송이라서 그랬던 거 아시죠?”

“물론 알고 있다.”

> 전혀 모르는 것 같은데

> 제로콜 얼굴 많이 봐 둬라 앞으로는 못 보게 됨

> 고인의 생전 마지막 영상을 함께 시청하고 계십니다

“그. 진짜로 운동 심하게 한다고 사람이 죽진 않아요.”

“그건 모르는 거지.”

제로콜의 얼굴이 막 맺히기 시작한 사과처럼 파리해졌다.

> 근데 이거 깰 수 있는 건 맞음?

> 다운받아서 해 봤는데 절대 못 깸 ㅋㅋㅋㅋ

> 자체 난이도도 난이도인데 눈에 보이지를 않음 ㅋㅋㅋㅋㅋ

> 진짜 안보인다 ㅋㅋㅋ 해 봐야 암 ㅋㅋㅋㅋㅋ

플레이를 해 본 시청자들에게서도 터져나오는 ‘깰 수 없는 난이도’에 대한 이야기들.

“만천화우는 파훼불가능한 무공이 아니다.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 안다면 평범한 사람도 어렵지 않게 깰 수 있다.”

“뭐, 그냥 죄다 외워서 막아내면 되는 거 아니야?”

“아니면 눈을 감고 소리에 모든 걸 의지해서 막아낸다거나.”

“암만 그래도 요령만으로는 절대 못 깨지.”

여기저기서 불만이 터져나왔다. 평소라면 단천에게 이 정도로 노골적인 불만을 터트리지는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무려 ‘운동 면제권’이 달려 있는 상황. 그런 상황에 불가능한 미션을 던져줬으니 불만이 새어나올 만도 한 것이다.

“그냥 외워서 막는 것. 못하나?”

“못하지!”

“눈 감고 하는 것도?”

“못 한다고!”

거기에 만천화우를 외워서 막는 것. 그리고 눈을 감고 기감에만 의지하는 것. 둘 다 간단하기 간단한 해결책인데.

둘이 안 된다니. 이게 무슨 억지란 말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만천화우가 상대하기 까다로운 무공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단천은 천마였다.

만천화우를 상대할 방법은 수천 가지는 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쩔 수 없군. 직접 보여주는 수밖에.”

이렇게 된 이상 실제로 보여주는 수밖에 없다. 단천은 검을 들고 스테이지 장소로 걸어갔다.

“···스킨 변경.”

[스킨을 검에서 광선검으로 변경합니다.]

지잉. 하는 소리와 함께 라이트세이버가 단천의 손에 들려졌다.

[미션맨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만천화우 깔끔하게 깨면 100만원!]

“한 번에 입금하지. 왜 언제나 두 번에 나눠서 입금을 하려고 하는지.”

> 미션의 근본 자체를 부정하는 발언 ㅋㅋㅋㅋ

> 그래도 오늘은 미션맨이 이길수도 있는 거 아님?

> ㄹㅇ 환희이글스도 가끔은 이긴다고

> 미션맨 vs 환희이글스 싸움 수준 실화냐···가슴이 웅장해진다···

[곡이 시작됩니다.]

노트들의 유성우가 떨어져내리기 시작했다. 단천의 검이 유성우를 하나하나 갈라냈다. 청록색의 광선검이 떨어져내리를 빛무리와 함께 춤을 추는 광경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 와

> 미쳤다

> 이게 ‘진짜’구나

압도적인 광경에 채팅의 양도 현저히 줄어들었다. 시청자들로 하여금 채팅을 할 생각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의 모습.

“엄청나긴 하네.”

“나도 광선검 들고 하면 저런 느낌으로 보이는 건가?”

“그렇게 보이겠냐?”

“왜. 같은 게임이잖아!”

“사람이 다르잖아. 사람이.”

단천은 검을 쉴새없이 휘둘러나갔다. 만천화우를 첫 게임으로 선택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깨달음들을 전해주는 데에는 실전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만천화우라면 그 실전에서도 최상의 상대라고 할 수 있지.’

촤르르르륵! 단천의 검이 회전하며 날아드는 노트들을 단번에 갈라냈다.

> ㅗㅜㅑ

> 오늘 리드미컬 세이버도 미쳤네

> 말랑튜브 조회수 억대 예약해놓은듯 ㅋㅋㅋㅋㅋ

> ㅇㅈ합니다

사람들의 감탄사가 이어지는 사이에. 노래는 다시 하이라이트로 향했다. 폭포수와 같은 음률. 그리고 그 음률에 맞추어 쏟아지는 약간은 느슨한. 하지만 그럼에도 그 어떤 암기의 비보다도 강한 한 수가 날아왔다.

촤자자자자작!

단천의 광선검이 날아오는 노트들을 갈라내며 춤췄다.

> 이제 진짜 시작임

> 안 보이는 걸 어케 가르쉴?

> ㅇㅈ ㅋㅋㅋㅋㅋㅋ

단천은 눈을 감지 않았다. 머리가 기억하고 있는 만천화우또한 깔끔하게 지웠다.

그저,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지워내겠다는 생각만을 했을 뿐.

춤추고 어울리는 것 또한 하나의 길이지만. 눈 앞을 가로막는 것을 모조리 부숴버리는 것도 하나의 길.

“보여주지. 간단한 길을.”

단천이 힘을 줘 잡은 검이 어마어마한 속도로 휘저어지기 시작했다.

춤추듯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들을 모조리 베어내겠다는 움직임.

> 뭐고

> 그냥 막 휘두르는데?

> 막 휘두르는거? 맞?냐??

마구 휘두르는 것이 아니다. 촘촘하고 섬세하게,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그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발현.

검막劍幕.

광선검이 만들어내는 검의 궤적이 반구형태로 단천의 앞을 완전히 휘감았다.

좌자자자자자작!

단천을 향해 날아오는 모든 노트들이 검막에 막혀 거칠게 쪼개져버렸다.

그렇게 노래가 끝났을 때.

[NO damage]

[노 히트 클리어!]

단천이 막지 못한 노트는 단 하나도 없었다.

“봤지. 본좌는 구태여 커다란 깨달음이 없어도 누구나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클리어했다.”

‘대체 어디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짓인데?’

[미션맨 님이 1,000,000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대체 어디가 누구나가 할 수 있는 짓인데?]

“이 정도는 평범한 사람도 5년정도만 연습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

> 누가 리드미컬 세이버를 5년을 해요

> 리드미컬 세이버 5년차입니다 절대 안 됩니다

“대체 5년으로 어떻게 그런걸 해 내는데?”

“본좌 아래에서 5년동안 하면 된다.”

‘그건 진짜로 될지도.’

평범하게 죽자사자 연습하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BJ천마의 지도 아래에서 5년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기도···.

“아무튼. 가능한 것을 보여줬으니 논란은 해결됐군.”

> 해결된 거 맞냐?

> 해?결?

> 지금 천마님 손에 광선검 들려 있다;; 다들 사리셈;

> 히익

> 해결된 것 같습니다!!!

> 아 완벽하게 해결됐네요!!

시청자들도 한입으로 논란이 해결됐다고 말하고 있는 상태.

역시 정의는 승리하는 법이라던가. 처음에는 믿지 않던 시청자들도 단천이 직접 보여주니 납득을 하는 모습이다.

“······.”

왜인지 자신을 노려보는 천마신교의 네 명은 전혀 납득하지 않는 눈이기는 했지만.

어쩌겠는가. 꼬우면 단천을 이기고 교주 해야지.

그 뒤로는 만천화우뿐 아니라 서유나가 만든 수많은 곡들이 시연되는 시간이 이어졌다.

“와. 생각보다 훨씬 어렵네.”

“그러게.”

> 개재밌어보이네

> ㄹㅇ

> 나도 오랜만에 좀 해 볼까 싶음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기 시작했다.

BJ천마가 플레이하는 모습이 인간 너머의 무언가라서 따라할 생각도 들지 않는. 따지자면 관상용의 플레이에 가까웠다면, 네 명의 플레이는 ‘저 정도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을 들게 만드는 수준의 플레이였기 때문이다.

“···좋군.”

서유나의 모든 곡에는 당가의 무학이 자연스럽게 배여들어 있다.

그러니 서유나가 만든 스테이지를 플레이하는 사람들도 알게 모르게 사천당가의 무학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에서 또 서유나같은 사람이 나오게 되겠지.’

플레이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스테이지를 만들고 싶어하는 사람도 나오게 될 것이다.

‘자연스럽게 서유나의 스테이지를 플레이하고, 서로간에 대화를 하고, 깨달음을 공유하고 발전해나가겠지.’

일종의 사제 관계이며. 일종의 문파와 같은 개념이 될 터다.

물론 중원에서 존재하는 문파와 같은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깨달음이 이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그 이름이 당가가 아닌들 어떻고. 그것이 종래의 무공과 다른 방식이면 어떤가.

‘당가가 어찌되던 내 알바 아니지.’

애초에 단천 자신은 천마신교만 잘 굴러가면 다른 무공은 알 바가 아닌 것이다.

만천화우가 어떤 것인지에 대한 개념과 그 심득을 공짜로 뿌린 것을 봤다면 당가가 자신들의 모든 가솔을 동원해서 단천을 잡아찢으러 왔을 터다.

“아쉽군.”

이곳이 중원이었다면 오랜만에 당가와 전면전을 한 번 할 수 있는 기회였을 텐데.

무공심득을 여기저기 뿌리고 다니는 걸로 여러 무공방파와 원할 때, 원하는 장소에서 맞붙을 수 있다.

“이런 깨달음이 조금 더 일찍이 있었다면 좋았을 것을.”

단천은 주먹을 꼭 말아쥐며 생각했다.

만약 다음 생애가 있어서 중원에 다시 태어난다면, 무공비급을 세상천지에 뿌리고 다니는 사내가 되리라고.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