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큰 거 한 발 (6)
[지금 종말 생존자 하는 중인데 BJ천마 진짜 미친놈 아님?]
[이 난이도를 깬다고? 어케했냐 미친놈아]
[종말 생존자 4주일 이상 버티신 분? 좀비 처리 막혔는데 어케함?]
[└종말 생존자 4주일 이상 버텼으면 여기서 니가 젤 잘하는 놈이에요]
[└4주일은 어케 버텼는지부터 이야기해줘라 1주일도 못버티겠다]
[지금 인도쪽에서 2달 버틴 놈 나왔다는데?]
내로라하는 VR게임 게시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종말 생존자」의 이야기로 뒤덮여 있었다.
연말 기부 이벤트 이후에 연말 기부에서 가장 파급력있었던 게임이 화제가 되는 것은 그리 특이한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종말 생존자」에 대한 인기는 그보다 훨씬 더 과열되어있는 상태였다.
BJ천마가 보여준 종말 생존자의 생존 루트들, 그리고 「생존」에만 치우쳐져 있던 종래의 아포칼립스 게임과는 달리 타인과의 교류를 통해서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있다는 메시지. 그리고 밝혀지지 않은 다른 엔딩들이 있다는 사실까지.
스트리머들은 스트리머대로 이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서 종말 생존자를 플레이했고, VR 게이머들은 게이머들대로 종말 생존자를 계속해서 플레이하고 있는 상황.
현 시점에서 「종말 생존자」에 몰려 있는 관심은 실로 범세계적인 상황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출처를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근데 인화에서 「종말 생존자」클리어 관련 기부금 안 낸다고 하던데?]
[근데 기부금 안 낸다는 거 확인된 정보는 맞음?]
자그마치 천억이나 되는 기부금이다. 바로 기부금을 지급한 다른 게임사들과는 달리 다소 지연이 된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납득할 수 있는 상황.
하지만 이 상태는 그리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트인낭 내부자다. 인화쪽에서 돈 안 들어오는 거 팩트임
내용 : 지금 담당자 연락도 전혀 안 되고 ㅋㅋㅋㅋ 돈 낼 필요 없다는 문서까지 보내오는중]
인화 쪽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인증글이 올라온 것이다.
그것도 하나뿐이 아니라 몇 개씩이나.
안 그래도 인화에 대한 게이머들의 인식은 바닥을 긴다. 그런 상황에 원래 내야하는 기부금을 한 푼도 내지 않겠다고 버틴다는 소문이 터져나오는 상태.
[인화 게임사 수준 ㅋㅋㅋㅋㅋㅋㅋ]
[인화 저새끼들은 인성이 덜 돼 먹음]
[왜 게임 베껴서 만든 게임들도 겁나 많잖아]
[인화 <- 걍 이새끼들은 게임을 만들 생각이 없음 ㅋㅋㅋㅋ]
순식간에 게시판의 여론은 인화게임즈에 대한 비판과 성토의 장으로 변모했다.
“잘 돼 가는군.”
이태흠은 무표정한 눈으로 게시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생각보다도 인화에 대한 여론이 훨씬 안 좋았던 모양이야.”
한 게임이 다른 게임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롯이 게임의 모든 것들이 개발되던 시절은 1990년대에 끝났다고 봐야 했으니까.
하지만 게임사 「인화」가 보여주는 게임의 유사성은 그 도를 한참 넘었다는 것이 사회의 중론이었던 것.
그리고 이 ‘선’을 넘는 행위들에 게이머들은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즉. 언제든지 터질 수 도록 하는 불씨만을 기다리고 있던 폭발물이었던 셈.
“그리고 지금 상황이 인화를 터트릴 불씨라는 뜻이지.”
“게임 사업팀에서 개인적으로 아는 렉카들도 이 상황에 꽤 관심이 있는 모양이야.”
현재 인화의 게임 도작 이슈는 법적으로는 어떤 문제도 없는 상태. 링 안에서는 아무리 치고받아 봤자 제대로 된 해결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링 밖에서라면 다르지.”
소위 언론전은 느슨하게 만들어져 있는 저작권법과는 다르다. 게이머들이 판단하는 것은 단순히 ‘저작권법’이 아니라 자신들이 보는 ‘유사성’이기 때문이다.
“곧 라쿤 게임즈의 신작 이야기도 슬쩍 흘려넣을 셈이다.”
“좋은 생각이다.”
“라쿤 게임즈의 신작이 인화의 게임과 유사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 인화가 이 게임을 도둑질했다는 정황증거들. 거기에 변조를 포함한 녹음파일까지. 이거면 충분해.”
타다다닥!
이태흠의 손가락이 춤추듯이 휴대폰의 자판을 눌렀다. 빠르게 본사에 지시를 넣으며 여론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여론전을 시작해서 굴려나가는 이태흠의 모습을 보며 단천은 혀를 내둘렀다.
“당문 놈들과 비슷한 느낌이군.”
사대세가중 하나인 당문.
독과 암기로 유명한 당가는 정식 비무에서는 그리 강하지 못하다. 하지만 정식 비무가 아닌 실전에서의 당가는 그 어떤 무림세력도 무시하지 못한다.
독과 암기는 정정당당한 싸움에서는 사용할 수 없지만. 실전은 그런 정정당당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당문은 무림의 그 누구도 무시하지 않는다.
딱 한명만 빼고.
“그래봤자. 고작 만독불침에 들면 아무것도 아닌 게 독과 암기인데 말이지.”
단천을 위협할 수 있는 당문의 무공이라고 해 봤자 진짜 무공인 만천화우뿐이다.
이 말을 들은 당문에서는 이를 뿌득뿌득 갈긴 했지만. 어쩌겠는가. 상대는 낙하하는 운석도 잘라내는 인외의 괴물인 것을.
단천은 쉴 새 없이 전화와 키보드 누르기를 반복하는 이태흠을 바라보며 중국에서 산 약재를 넣은 생수병을 홀짝였다.
“쯧. 역시 질이 그리 좋지 않아.”
즉석 차 맛을 본 단천의 표정이 찡그려졌다.
중국에서 독물들을 살 수 있다는 것은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다. 하지만 중국의 약재들의 질은 그렇게 좋지 않다. 원래도 한반도의 약재가 무림의 것보다 좋다는 것이 중론이었지만. 지금은 그 거리가 더욱 멀어져 버렸다.
그냥 한국에 있는 약재를 먹어야겠다고 결심하는 단천이었다.
“그보다. 폭탄은 언제 터트릴 거지?”
여론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리고 하인라인 쪽은 종말 생존자를 만든 라쿤과 협약을 맺었다.
이런 상황 하에서만 할 수 있는 ‘폭탄 투하’.
문제는 이 폭탄을 언제 터트리냐다.
이 모든 계획은 단천의 것이었으나 타이밍을 결정하는 것은 단천이 아니라 이태흠이었다.
이런 여론전에서의 전문가중의 전문가가 바로 이태흠이었으므로.
“뭐, 소문이 퍼지는 속도를 보니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다.”
이태흠의 손가락 놀리는 속도가 한층 빨라지기 시작했다.
***
BJ천마가 나가고 나서도 리 창퐁은 한참을 씩씩거리며 앉아있었다.
아무리 화를 내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다. 저 개자식이 얼마나 더 중국에 있을까? 이곳에는 자신의 꽌시가 많은 곳이다. 그 꽌시중에는 더러운 짓을 해 주는 인간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근래 엄청나게 세를 불리는 ‘육도천’이라는 놈들이라면 놈을 처리할 수도···.
리 창퐁의 생각은 더 이어지지 못했다.
“저, 지금 상황을 좀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뭐! 또 뭐!”
“기부 관한 이야기가 인터넷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어차피 냄비 근성인 새끼들이야. 가만 놔 두면 가라앉게 돼 있다고!”
거칠게 화를 내는 리 창퐁을 바라보던 비서가 입술을 깨물었다. 리 창퐁의 성격상 지금 상황에 더 말을 꺼내는 것은 누가 봐도 자살행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인터넷에서 터져오른 기사를 보고하지 않았다가는 더 큰 불길로 돌아올 터.
“그. 하지만 보고를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새끼가!”
퍼억! 리 창퐁이 던진 술잔이 비서의 머리에 맞고 터져나갔다.
“하지만 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하인라인이···.”
“하인라인? 그 한국 게임사?”
“네. 하인라인이 라쿤의 신작을 단독 런칭한다고 합니다.”
[단독) 하인라인, 「종말 생존자」의 라쿤 게임사의 신작과 단독계약 완료]
라쿤이 들고 있는 「심해의 위협」은 자신들이 이미 런칭한 「아틀란티스 데스티니」의 원형이 되는 게임. 심해의 위협이 나온다고 해 봤자 인화가 이미 런칭한 「아틀란티스 데스티니」의 짭퉁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새끼들이 미쳤군.”
“그게.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뭐?”
비서가 공유한 화면이 리 창퐁의 화면에 떠올랐다.
[게임사 하인라인. 라쿤사와 협약으로 기부금 1억 달러 쾌척. 지불은 몇 달에 나누어 이루어질 듯?]
[하인라인, 기부금 1/3을 인디 게임사의 권리를 위해 사용하기로]
[기부 이유는 협약 맺은 라쿤 게임사와 기부에 대한 의견이 맞았기 때문이라 밝혀]
화면을 바라보던 리 창퐁의 얼굴이 빠르게 구겨졌다. 질끈 깨문 입술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대박이네]
[금액 의미심장하지 않나?]
[BJ천마의 이름으로 기부되어야 할 금액과 같은 금액이야.]
[인화에서 돈을 지불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모양이군.]
[그런데 구태여 하인라인, 라쿤이 그 돈을 낼 필요는 없지 않나?]
[그렇지]
리 창퐁의 손이 파들파들 떨리기 시작했다. 제대로 엿을 먹었다. 단순히 ‘뭉개면 된다’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펀치를 맞을 줄이야.
[하인라인, 라쿤, 두 게임사는 실로 대협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약속한 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은 실로 장사치로 실격이지]
[아무리 그래도 기업의 이름으로 내뱉은 말. 자신들이 지켜야만 하는 말이니까]
[인화는 소협 그 자체인 게임사다. 나는 그들을 위해 돈을 결코 내지 않을 것이다]
[본인 또한 그렇다]
그나마 가장 인화에 우호적인 중국 커뮤니티조차 인화에 대한 성토와, 하인라인에 대한 우호적인 대화로 뒤덮혀나가고 있었다.
[라쿤의 신작, 플레잉 화면 유출되었다]
[근데 이거, 인화의 게임과 유사하지 않나?]
[소문으로는 인화가 돈을 써서 라쿤의 게임을 훔쳐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게 확실하다. 관련 증언들도 꽤 있고]
[인화의 밑바닥은 어디인지 알 수가 없다]
[실로 인간 부스러기의 회사]
기사들이 나오자마자 플레이화면이 유출되고, 언론에서 이야기가 나오고, 수많은 렉카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
이 모든 상황이 착착 들어맞은 것처럼 움직이는 것은 우연일 리가 없었다.
이 모든 상황을 뒤에서 조종한 인간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누구인지는 생각을 오래 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BJ천마. 이 빌어쳐먹을 새끼가.”
“리 창퐁님. 이대로 가다간···.”
“알아. 이 개새끼야. 안다고.”
하지만 뭔가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여론은 글자 그대로 밑바닥으로 쳐박았다.
표절 논란은 종말 생존자와 심해의 위협뿐 아니라 인화가 지금까지 출시해 왔던 모든 게임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물론 법적으로는 문제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이 정도로까지 논란이 커진 상황에서는 더 이상 제대로 게임을 런칭하는 것이 불가능해졌으니까.
리 창퐁이 평생을 일구어나온 인화라는 제국은.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게 된 것이다.
빠드드득! 리 창퐁이 거칠게 이를 갈아붙였다.
“이 개새끼. 지금 어디있어.”
“BJ천마 말입니까? 아마 아직까진···.”
“중국 안에 있겠지.”
리 창퐁의 눈에 살의가 깃들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든 인간을 가만히 내버려둘 수는 없었다.
리 창퐁은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돈만 내면 누구든지 죽여준다는 소문의 집단에게 문자를 하기 위해서였다.
[육도천인가. 죽여줬으면 하는 사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