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큰 거 한 발 (2)
[포인트 산정 완료]
[클리어 누적 포인트는 1,027,077포인트입니다.]
[기부금 환산 : $ 102,707,700]
> 미쳤다 ㅋㅋㅋㅋㅋ
> 저거 맞냐?
> 생각보다 얼마 안 나왔네?
> 뭔 개소리야 미친 놈아
> 그 고생을 다 했는데 2억원이 뭐임?? 말이 됨? 못해도 10억은 줘야지 ㅡㅡ
> 정신차리고 앞에 달려있는 글자나 보셈
> $···?
> 저거··· 달러라고···?
[저거맞냐 님이 $ 1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저거 맞냐···?]
“목표보다 덜 나왔군.”
단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인화가 준비했다고 호언장담했던 금액이 1억 달러였다.
그리고 당초 목표했던 금액이 1억 달러였으니. 1차적인 목표만 겨우 달성한 셈이다.
> 대체 어디가 목표보다 덜 나온 건데
> 이사람 게임사 밑동까지 다 털어먹으려고 하네 ㅅㅂ
> 1억 달러(목표보다 덜 나옴)
> 대체 목표는 얼마 정도였는데?
단천은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인화의 시총이 얼마지?”
> 이사람···진짜로 인화를 밑동까지 다 털어먹을 생각이었어 ㅋㅋㅋㅋㅋㅋㅋ
> 오늘도 패기샘은 열일합니다
> 이 정도면 패기샘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패기의 화신 아니냐
> ㄹㅇㅋㅋ
뭐, 예상만큼의 금액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인화에게 있어서도 부담되는 수준의 ‘기부금’이 나온 것은 분명하다.
이제 기다려야 하는 것은 인화 측의 ‘반응’이 무엇인가다.
돈을 낸다, 일부만 낸다, 돈을 내지 않는다. 라는 세 가지 선택지.
이 상황에서의 최선의 수는 돈을 낸다는 선택지다. 하지만 이쪽을 선택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니 아마 돈을 일부만 낸다는 선택지를 고를 터.
‘되도록이면, ‘돈을 내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골랐으면 좋겠는데.’
하지만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상대가 머저리도 아니고.
“뭐. 인생이 그렇게 쉽게 풀릴 리가 없지.”
아무리 이 세계에 오고 나서 기이할 정도로 자신의 운이 좋다고 해도 그런 정도까지 바라면 천벌을 받는다.
뭐, 천벌이 내린다고 해도 천벌조차 반으로 갈라 버리면 그만이긴 하지만.
***
“기부금 정산액이 얼마라고?”
업무를 모두 끝내고 마천루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리 창퐁의 목소리는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과 비례해서 보고를 하러 올라온 총괄 프로듀서의 말 또한 흔들렸다.
“그게, 1, 1억 달러입니다.”
“···1억···달러라고?”
1억 달러. 위안화로 환산하면 7억 위안, 한화로 환산하면 1천억이 넘어가는 말도 안 되는 거금이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리 창퐁이 소리를 질렀다. 원래라면 기껏해야 십만 달러 내외쯤의 포인트가 나오는 게 「종말 생존자」의 포인트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숨겨놓은 ‘스토리 모드’란 게 나오더니, 포인트가 몇천 배나 뛰었다.
리 창퐁이 마시고 있던 와인잔을 창문에 집어던졌다. 파캉! 하고 강화 유리벽에 부딪힌 위스키 잔이 산산히 부서져내렸다.
“이런 빌어쳐먹을 새끼가!”
“하, 하지만 광고료라고 생각한다면 지출할 수 있는 금액···!”
“지출할 것 같아! 지금 광고된 게임은 우리 「생존투쟁」이 아니라 「종말 생존자」라고!”
“그, 종말 생존자로 플레이어들이 유입되면 저희 생존투쟁으로의 플레이어 유입도 충분히 노릴 수···.”
파캉! 이번에 던져진 위스키잔이 말을 이어나가던 총괄 프로듀서의 머리에 명중했다.
“이 개새끼야! 그게 지금 할 말이야!”
총괄 프로듀서가 머리에서 터져나온 피를 닦아냈다. 총괄 프로듀서의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트인낭에서의 연말 기부 이벤트는 겉으로 보기에는 윈윈 게임이다.
스트리머는 자신의 인지도와 대중에게 좋은 인식을 남기고, 게임사들은 자신들의 게임을 홍보한다는, 쌍방 간의 이해득실이 맞는 최대의 게임 이벤트.
하지만 윈-윈 상태라고 해서 이 균형이 완벽한 것은 아니다. 양쪽 모두가 이득을 보지만, 그 이득의 규모가 한쪽이 어마어마하게 큰 경우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연말 기부 이벤트에서 거대한 이득을 보는 것은 게임사들이다.
연말 기부 이벤트의 유동 시청자수는 한 때 지상 최대 규모의 스포츠 행사였던 미국의 슈퍼볼(superball)보다도 많다.
3억 명을 넘어서는 시청자들에게 자신들의 게임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수백억 단위의 광고를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뜻이다.
슈퍼볼이 30초 광고에 100억 정도의 단가를 가진다는 것을 생각하면 수억, 많으면 수십억 정도의 기부금을 지출하는 것은 거의 공짜나 다름없다.
BJ천마의 현재 평균 시청자수는 100만을 넘어섰다.
스포츠 게임에서의 광고가 게임과 관계없는 물건들을 하프타임에 광고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100만명의 시청자가 BJ천마의 방송을 보며 「종말 생존자」에 노출되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수준의 광고효과를 발생시키는 셈이다.
물론 그 가치가 1000억이라는 말도 안 되는 수치일 리는 없지만, 그래도 손실을 상당부분 벌충하는 부분이 있다.
실제로 현재 실시간 게임 판매 순위에서 「종말 생존자」가 1위. 「생존투쟁」도 10위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 기부 기간동안 폭증하는 게임 구매량을 생각한다면 이 매출만으로도 손실을 어느 정도는 복구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정도는 약간의 손실이지만 지출할 수 있는 수준.’
그러나 총괄 프로듀서의 이 생각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그가 인화 게임즈에서 오래 살아오면서 봐 온 리 창퐁은 글자 그대로 탐욕의 화신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말을 지껄였다가는 술잔이 아닌 술병이 자신의 머리를 향해, 던져지는 것이 아니라 휘둘러질 것이다.
총괄 프로듀서는 입을 다물고 바닥만을 바라봤다.
“그, 그럼 일부만 돈을 지불하는 걸로···.”
“한 푼도 못 내.”
“네?”
“한 푼도 못 낸다고.”
바드득. 리 창퐁이 이를 가는 소리가 거칠게 터져나왔다.
“어차피 「종말 생존자」는 우리 게임사의 게임이 아니잖아?”
“하, 하지만 이미 이벤트가 나갔고, 기사들도 나온 상태입니다.”
“알 바 아니야.”
이번 이벤트를 통해 인터넷에서는 「종말 생존자」가 원조 게임이고, 「생존투쟁」이 종말 투쟁을 베껴 만든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확고하게 박혀 버렸다.
‘짭퉁 게임’이라는 이미지가 「생존투쟁」, 더 나아가서는 ‘인화’쪽에 박혀버리고 만 것이다.
그러니 돈은 한 푼도 낼 수 없다.
“이건 자존심 문제다. 저 빌어쳐먹을 게임에, 그리고 BJ천마인지 뭔지하는 새끼의 플레이에 돈을 낼 수 없다.”
“···알겠습니다.”
“돈 먹여놓은 언론사들 동원해. 우리 중국 내 언론은 내가 알아서 통제할 테니까.”
“그러면 BJ천마측에는···.”
“연락조차 하지 마. 철저히 무시로 일관한다. 정 말이 나오면 실제로 체결된 계약이 없다고 얼버무리도록.”
“알겠습니다.”
총괄 프로듀서는 지금 리 창퐁이 벌이는 짓의 후폭풍이 어떻게 터져나올지에 대해서 예측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이번에도 그의 입은 벙긋거리기만 할 뿐 제대로 된 말은 나오지 않았다.
***
“연락이 안 오는군.”
기부금을 확인한 단천은 엔딩을 보지 않고 10여분 가량을 기다렸다. 인화 측에서 어떻게든 연락을 해 올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0여분이 지나도록 아무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것은···.
“굳이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마시겠다는 뜻이겠지.”
> 그게 무슨 뜻임
> 무협에서 나오는 말인데 대충 상대방 망했다는 뜻임
> 근데 상대가 누구임?
> 몰?루?
단천 입장에서는 오히려 호재다. 자신을 상대로 객기를 부리는 것을 응징할 방법은 수천 가지가 있었으니까.
“기다림은 여기까지 할까.”
지금은 그런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시청자들과 함께 「종말 생존자」의 마지막을 보는 것.
[의식을 되찾겠습니까?]
[경고 : 의식을 되찾으면 엔딩 분기에 들어가게 됩니다.]
“엔딩 분기에 들어간다.”
말을 마치고 눈을 뜨자 설국雪國이었다. 그토록 지독한 추위를 만들어내는 눈이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 덮인 고요한 세계는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 예쁘긴 하네
> 왜 근데 플레이하는 내내 예쁘다고 생각 못했지
“나오셨어요.”
청연이 반갑다는 듯 인사를 건냈다. 청연의 몸은 땀과 흙투성이였다.
지난 번에 찾았던 예술품들을 트럭에 싣고 와서 병사들과 함께 조심스럽게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 거기! 좀더 조심스럽게 내려놔요! 그냥 화물이 아니라고요! 원래는 수백억은 하는 예술작품들이라고요!”
예술품뿐 아니라 어디 도서관에서 구해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책들을 실은 트럭도 있었다.
“책 던지지 마세요! 이것도 하나에 수백억 가치가 있는 물건이라고요!”
“예술 작품은 그렇다치고. 책 한 권에 얼마 한다고 그 유난이냐.”
“이게 세상에 마지막 남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일 수도 있단 말이에요. 그렇게 따치면 이 책 한 권에 수천억 가치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단 말이죠!”
예상치 못한 반론에 단천의 눈이 잠시 깜빡였다.
> 말 잘하네 ㅋㅋㅋㅋ
> 듣고 보니 진짜네
> 천마님도 딱히 할 말 없나봄 ㅋㅋㅋㅋㅋ
> 반박 불가능할 정도로 맞는 말
“본좌가 반박불가능한 논쟁은 없느니라.”
말싸움과 논리력으로는 천외천의 존재라고 불리는 제갈가주와 서윤학조차 논쟁으로 이기는 것이 단천이었다.
둘이 단천의 최종병기인 격공섭물로 머리 쥐어짜기를 끝끝내 파훼하지 못한 탓이다.
아무튼 말싸움으로 저런 병아리콩만한 애송이랑 싸우는 것은 단천 자신의 체면 문제.
들은 체도 안 하고 넘어가주는 아량을 보여주는 것이 천마로서의 자세인 것이다.
“꽤나 살만한가 보군. 예술작품들도 들고 오는 것을 보니.”
“아뇨. 아직 식량 자급은 안 돼요. 씨앗은 거의 움트지 못했고, 남아 있는 식량은 적고, 사람들의 분쟁은 계속되고. 아직도 생존 자체가 보장이 되진 않아요.”
“어쩌면 갑작스러운 외계인 침공으로 남은 인간도 쫄딱 죽어버릴지도 모르는 일이지.”
“어떻게 그렇게 잔혹하게 이야기해요?”
“현실적인 것 뿐이다.”
고작해야 F-22와 입자 가속기 정도나 만드는 수준의 지구의 미천한 기술력으로는 광선검이라는 절세의 무기를 들고 있는 외계인을 이길 수 있을 리 없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남겠지.”
“네. 그것보다 더한 세계에서도 살아남았으니까요. 외계인 침공쯤이야 껌이죠.”
“혹시라도 외계인이 침공한다면.”
“침공한다면?”
“광선검 만드는 법은 꼭 빼앗아 두도록.”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시야가 한층 넓어졌다. 저 너머에서 몇 안 되는 어린아이들이 뛰쳐나오는 모습과, 길을 지나가던 남자가 고민하다가 자신의 통조림을 부랑자에게 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토록 기나긴 고난을 겪었음에도, 자신의 것을 타인에게 내어주는 인간이 아직까지도 있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인간은 살아남을 것이다.]
[눈 앞의 종말에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종말에서의 생존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인간은 살아남을 것이다.]
[Fin]
[엔딩 넘버 01. 생존보다 중요한 것.]
그리고 올라가는 엔딩 스크롤. 엔딩 스크롤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 많은 개발진이 참여하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개발진이 적게 참여했다고 해서 그 반향마저 작지는 않았다.
> ㅁㅊㄷ
> 이게 게임이고 이게 엔딩이지···
> 동서남북으로 눈물 뿌리면서 돌고 있다
> 현직 스프링쿨러세요??
> 근데 엔딩 1번이라는 건, 다른 엔딩도 있다는 뜻임??
> 당장 종말 생존자 사러 간다 딱대라 ㅋㅋㅋㅋㅋㅋ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채팅창. 그리고 쉴 새 없이 올라가는 것은 채팅창뿐이 아니었다.
[미션맨 님이 $ 100,0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미션 성공 : 세계 구하기]
[friedchicken 님이 $ 10,0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나는 오늘로서 당신의 영원한 팬이 되었습니다. 당신의 방송이 시작하면 일하는 와중에라도 시청을 시작할 것입니다.]
[diago님이 $ 7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는 항상 새벽에만 스트리밍을 시작합니까?? 나는 이것이 매우 화가 납니다!!]
> 그거야 너희 집이 천마님이랑 반대쪽에 있으니까욬ㅋㅋㅋ
> 왜 유럽은 맨날 새벽에만 축구함??
> 시차가 주는 고통을 너희도 맛보아라 코쟁이놈들아 ㅋㅋㅋㅋㅋ
> 아 우리는 천마님 방송 시차없이 본다고 ㅋㅋㅋㅋㅋ
> 너거도 천마님 방송 보고 충혈된 눈으로 출근해야짘ㅋㅋㅋ
단천은 길게 늘어서 있는 기부금 목록을 바라봤다.
[남아 있는 후원금 표시 갯수 : 1,072개]
엔딩을 본 지 5분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후원 메시지가 1천개가 쌓였다. 하나당 10초라고 해도 3시간이다.
심지어 후원금은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고만 있다.
아무래도 ‘인화’와 담판을 보러 가는 것은 오늘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운이 좋은 놈들이군.”
후원금 덕분에 하루의 유예를 더 얻게 되다니. 실로 운이 좋은 놈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