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큰 거 한 발 (1)
[가수면 상태가 해제됩니다.]
단천은 눈살을 찡그린 채 일어났다. 어째 일어나고 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다시 쓰러진 느낌이다.
“이게 병약이라는 것인가.”
> 운석 쪼개 놓고 병약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ㅋㅋㅋ
> 우리는 운석을 쪼개는 인간을 병약하다고 부르지 않기로 사회적 약속을 했어요
익숙한 천장이다. 옆에 벽면이 부서져 있는 것을 보니 이전에 단천이 일어났던 병원인 모양이었다.
단천이 정신을 차리고 얼마 있지 않아 청연이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일어나셨네요. 몸 상태는 어떤가요?”
“안 좋다.”
직전에 앰플을 사용하면서 얻어졌던 신체능력은 모조리 사라진 채였다.
“설마 그 되도 않는 약을 써서 인간도 아닌 능력을 얻었을 때를 기준으로 하시는 건 아니죠?”
“물론 아니다.”
기준점을 그렇게 나약한 곳에 둘 리가 없다. 단천의 기준점은 물론 중원에서 신화경에 발을 디뎠을 때의 기준이었다.
“···아무튼. 몸 아픈 데는 없죠?”
“그래. 세상은?”
“보시다시피 망하진 않았어요. 해일도 안 찾아왔고요. 주민들이 오지도 않을 해일을 대비한답시고 대피했다면서 꽤 많이 불만을 터트렸지만.”
“원래 대업을 치르다 보면 약간의 불만은 생겨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쉬이 가라앉지.”
“잘 아시네요. 어떻게 아시는 거죠?”
“경험해 봤으니 알지.”
단천은 중원 통치를 오래간 했다. 단천이 뭔가를 하자고 하면 들고일어나던 중원의 싹수라고는 없는 무림민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린다.
중원에서 생산되는 영약의 삼분지 일을 천마신교에 상납하라고 하는 가벼운 요구에 대대적으로 들고일어났던 것이 중원의 무림인들이었으니까.
그래도 잘 해결은 된 모양이었다. 해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운석 충돌또한 일어나지 않았으니.
“나머지는 뭘 하고 있지?”
그러고 보니 이중한과 김용태가 보이지 않는다. 평소같았으면 자신의 옆에서 기다리기라도 했을 텐데.
“이중한이랑 김용태 씨는 파종 중이에요.”
“파종?”
파종이라고 하면 씨앗을 뿌리는 것이다. 심고 있는 씨앗은 종자 보관소에서 가지고 온 씨앗일 것이다.
문제는 지금 지구의 환경이 도저히 식물이 자라날 수가 없는 환경이라는 데 있었다.
눈이 계속해서 내리는 극한의 생존환경에서 파종은 무슨 파종이라는 말인가.
> 파종은 뭔 파종이야 ㅋㅋㅋ
> 식물 다 얼어 죽게 생겼다 이놈들아
“정신이 나간 건가.”
“아, 그러고 보니 그렇게 반응할 수도 있겠구나. 감독님이 쓰러져 있는 동안 세상이 좀 바뀌었거든요.”
말을 마친 청연은 병실 옆에 있는 커튼을 걷어올렸다. 커튼을 걷어올리자 보이는 것은 뚫려 있는 하늘이었다. 핵겨울이 찾아와서 매일같이 보던 우중충한 구름뿐인 하늘이 아닌, 군데군데 구름이 있기는 하지만 햇볕이 드는 하늘.
“날씨가 꽤 괜찮아졌군.”
“그러게요. 이중한 박사님 말로는 핵폭탄으로 발생한 핵겨울은 일시적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만약 운석이 제대로 떨어져내렸다면 발생한 분진으로 훨씬 더 기나긴 겨울이 찾아올 수도 있었다는데.”
“그건 본좌가 처리했지.”
청연은 딱히 반박하지 않았다. 눈 앞의 인간이 실제로 검격을 통해 운석을 부숴버린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운석이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종말 「빙하기」의 시간이 대폭 짧아졌습니다.]
[빙하기가 끝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본좌가 미래를 보기에도 빙하기가 끝나가는 것으로 보이는군.”
사라지는 것은 빙하기뿐만이 아니었다.
[기온이 올라갑니다.]
[안티 좀비 바이러스의 활동성이 올라갑니다.]
[안티 좀비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올라갑니다.]
[좀비 아포칼립스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습니다.]
종말 생존자에서 단천이 선택했던 아포칼립스들은 전부 도미노처럼 이어져 있었다. 좀비 아포칼립스로 인해서 핵 전쟁이 발발했고, 핵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핵겨울과 인류 문명의 쇠퇴.
인간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대비할 수 있었던 운석 충돌을 맞이해야 했지만, 원래의 시간선이 바뀌어버리고 만 것이다.
그 결과는 바로 ‘좀비 바이러스’와 ‘빙하기’의 완전한 끝.
> 이게 이렇게 굴러가네
> 천마님은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운석충돌을 막은 것임
> ㄹㅇ임???
“물론 예상한 일이다.”
아무튼 무력이 있으면 어떤 문제건 잘 해결이 된다는 것을 단천은 오랜 중원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결국 무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은 무력이 부족해서 해결이 되지 않는 일이었기에.
“기온이 올라가면서 일종의 툰드라 기후가 찾아온 모양이에요. 이런 기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식물들 중에 여분이 있는 씨앗들을 파종하고 있죠.”
“그렇군.”
“물론 흙에 남아있을 여분의 방사능은 제거해야 해서 흙 위쪽을 파내야 한대요. 하지만 그런 것들을 생각하더라도 씨앗을 심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사건이죠.”
“종말이 완전히 끝난 거로군.”
“일단 지금까지 왔던 핵 위협이나, 빙하기, 좀비들은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네요. 다른 종말들이 또 언제 어디서 닥칠지는 모르겠지만.”
단천은 상태창을 본 다음 대답했다.
“···아마. 다른 종말들은 찾아오지 않을 거다.”
[운석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예정된 종말 「유전자 변이 괴물」이 취소됩니다.]
[예정된 종말 「지구 자전축 변화」가 취소됩니다.]
[예정된 종말 「심해의 위협」이 취소됩니다.]
···
세계선이 바뀌면서 원래 예정되어 있던 종말들이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유는 앞서서의 종말들이 사라진 것과 같은 이유였다.
도미노처럼 연결되어 있던 종말이, 중간의 도미노가 넘어지지 않으면서 연이어 발생되지 않게 된 것이다.
[종말이 서서히 끝나갑니다.]
[엔딩 「미래로」를 향한 조건이 모두 충족되었습니다!]
> 엔딩? 곧 엔딩임??
> 와 중간 연결고리 터트려 놓으니까 다음 종말들이 안 나오네;
[PEPSID 님이 $ 5,0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계평화입니까? BJ천마 그의 능력은 대체 어디까지입니까?]
> 양키 놈들은 천마님이 세상 구하는 거 처음 봤겠네
> 원래 심심하면 이 분이 세상 구하고 돌아다니긴 함
> ㄹㅇ ㅋㅋㅋㅋ
> 세계평화의 중심 BJ천마!세계평화의 중심 BJ천마!세계평화의 중심 BJ천마!
채팅창의 분위기는 환호로 뒤덮여 있었다. 아포칼립스물 게임은 대부분 멸망해 버린 세상에서 살아가야하는 인간에게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종말 자체를 종식시키는 종류의 엔딩은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다.
단 한 명이 거대한 세계의 종말을 막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부분 플레이어들의 시각이었으므로.
그러나 BJ천마가 보여준 신위는 사람들의 생각을 아득히 넘어서는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Doctor.K 님이 $ 1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가 인간성을 잊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BJ천마는 이 엔딩까지 나아오면서 아포칼립스 게임에서 주어지는 이성적인 선택지에 반하는 선택지만을 골라왔다.
[기부천사 님이 $ 1,0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이게 기부 이벤트지.]
소위 타인을 돕는다는 ‘고구마 픽’을 연이어서 해 왔음에도, 이 선택들이 결과적으로는 종말을 이겨낼 수 있는 선택지가 된다는 역설적인 측면이 기부 이벤트라는 메시지에 더해져서 시청자들의 기부를 더더욱 활성화시키고 있었다.
[천마신교부산지부 님이 $ 1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천마신교의 번창을 위해 기부합니다!]
[나홀로케빈 님이 $ 1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이게 바로 크리스마스··· 연말의 기부정신···]
> 케빈 닉달고 저런 말 해도 되냐;;
> 케빈이 뭔데 씹덕아
BJ천마의 메시지를 이해한 사람들의 기부가 쉴 새 없이 이어져 나갔다. 개인의 기부금도 꽤 많았지만, 개인만이 기부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 GAMETTT 에서 $ 70,0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당신의 플레이에 감사합니다. - 프랑스에서]
[회사 TreeNL에서 $ 30,0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TreeNL 입니다. 저희 개발진 일동은 BJ천마의 플레이를 볼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기부 이벤트를 참여하고 있는 수많은 회사에서도 기부금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부금을 보내오는 대부분의 회사들은 게임사였다.
> 와 회사 기부금 지리네;;
> 원래 이렇게 많이 나오나? 종말 생존자가 AAA게임도 아니잖아
> 걍 천마님 보고 기부 때리는거지 ㅋㅋㅋㅋ
보통 이런 이벤트에서의 기부는 시청자들에게 게임사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인 경우가 많았다.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게임사의 이름을 긍정적으로 광고할 수 있는 합법적인 루트가 바로 ‘기부’였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어지는 회사들의 기부는 단순히 시청자들에게 하는 광고의 성격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BJ천마에게 우리 게임사명을 알려야 한다.’
BJ천마가 해 온 게임은 AAA게임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처음 골랐던 리드미컬 세이버는 한물 간 게임에 불과했고, 다키스트 에이지도 코어 게이머들만이 남아 있는 죽어가던 게임이었다.
심지어 이번에 선택한 종말 생존자도 완성도가 아니라 규모만으로 본다면 인디 게임사의 오래된 게임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BJ천마가 플레이함으로서 나타난 결과는 어떠한가.
[시청자 수가 10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세계적인 기준에서 봐도 기록적인 수준의 시청자 수와, 종말 생존자라는 게임을 플레이해보고 싶어하는 수많은 시청자들의 확보.
BJ천마라는 이름은 이제 단순한 ‘스트리머’로서의 영향력을 넘어서서 하나의 아이콘화가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게임사 입장에서 해야하는 일은 단순했다.
아이콘화를 맞이한 괴물 스트리머에게 자신들의 이름을 알리는 일.
수많은 시청자들에게 자신들의 기업명을 알리는 쪽이 오히려 덤인 것이다.
‘일종의 상납금이로구만.’
단천은 기업들에서 들어오는 후원금을 보며 생각했다.
천마신교의 위세가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그 위세에 붙고 싶어하는 무림방파들도 많아졌다.
오겠다는 놈들을 단천이 가려 받은 적은 없었다.
물론 그것이 온다는 놈들을 챙겨준다는 뜻은 아니었다.
세상 천지의 모든 것들이 천마의 소유이니, 그들이 내는 상납금도 어차피 처음부터 단천 자신의 소유.
그러니 챙겨줄 이유또한 전혀 없는 것이다.
왜인지 이 진리를 무림방파들이 깨닫기 시작하고 나서는 천마신교에 들어오는 기부금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무튼.
[현재까지의 총 기부금액 : $ 6,071,200]
> 기부금 액수 실화냐 ㅋㅋㅋㅋㅋㅋ
> 이게,,,이게 머선 기부금이고,,,,
> 미쳤다 ㅋㅋㅋㅋㅋ
눈덩이처럼 불어난 기부금액을 확인한 시청자들이 경악에 빠졌다.
> 이정도면 기부금액 1위 그냥 찍겠는데??
> 생존투쟁쪽 기부금 얼마임?
> 거기 얼마 안됨 ㅋㅋㅋㅋ 백만달러 겨우 찍었나
> ㅁㅊ ㅋㅋㅋㅋㅋ 6배 차이 실화냐 ㅋㅋㅋㅋ
“그 차이는 더 벌어질 거다.”
> ?
> 엔딩 거의 다 봤는데 어케 더 벌어져요?
“뭔가 잊고 있나 보군.”
트인낭 연말 이벤트에서 기부금이 채워지는 방식은 세 가지다. 시청자들이 보는 광고로 들어오는 광고 수입, 직접적인 기부로 인해 추가되는 직접 기부 수입.
그리고 마지막으로 게임 플레이로 추가되는 게임 기부 수입.
“아직, 종말 생존자의 포인트 정산이 끝나지 않았다.”
「종말 생존자」의 클리어 포인트 정산이 아직 남아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클리어 포인트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할 터.
“아직. 큰 거 한 발 남은 거지.”
> 큰손 기부 가즈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