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78화 (178/212)

41. 운석 충돌 (1)

단천은 앰플 안에서 찰랑거리는 약품을 바라봤다. 보통 일시적으로 힘을 증폭해주는 약들이 으레 그렇듯이 보기만 해도 위험해 보이는 보라색의 액체가 찰랑이고 있었다.

“약들은 왜 확인하는 거죠?”

“여기 안의 약품들 중에, 이승현의 몸을 강하게 만들어 준 약품이 있을 거다.”

“여기 있는 약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다가는 한도 끝도 없을 텐데요.”

“······.”

“지금 주워든 그 앰플. 그냥 몸에 주사하실 건 아니죠?”

청연의 눈은 단천이 앰플을 몸에 꽂아넣겠다고 하면 몸을 던져서라도 막을 의인義人의 눈을 하고 있었다.

> 아니 위험하게 앰플을 그냥 몸에 주사하려고?

> 그것도 뭔가 의심되는 약물도 아니고 대충 주운 앰플병임 ㅋㅋㅋ

지금 여기에서 앰플을 사용해 주사한다면 여러 모로 귀찮은 일이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거기에 주변에 조사할 것들이 천지인데도 상단전만을 믿고 앰플을 주사하는 것도 다소간은 무리가 있다.

탈마의 경지에 들어간 신체라면 모를까. 지금 단천의 육체는 그저 웅담을 먹고 신체수련을 해서 강해진, 최상위권 운동선수 정도나 될까말까한 여리디여린 육체에 불과하다.

상단전만 믿고 앰플을 주사했다가 추가적으로 무언가가 필요하다거나 한 상황이 온다면 견뎌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주변에서 관련된 책들을 뒤져 보도록 하지.”

“여기 있는 책들이 죄다 관련 서적일 텐데요.”

주변에 있는 책들의 수는 어림잡아도 수천 권은 된다. 관련 없는 책들을 쳐 낸다고 해도 수백 권은 되는 분량의 서적들.

> 이걸 언제 다 봐

> 글 보다가 밤 새겠네

하지만 단천은 말을 하는 대신 연구서로 보이는 책을 꺼내들었을 뿐이다.

촤르르르륵!

순식간에 책장이 넘어가더니 책이 탁 하는 소리를 내고 닫혔다.

“방금. 다 읽은 거에요?”

“그래.”

> 대충 읽은 거 아님?

> 그냥 읽는척만 하네 ㅋㅋㅋㅋ

“책의 내용은 유전 변형을 통한 초능력의 발현에 관한 것이다. 대부분은 데이터들과 관련 DNA에 관한 리소스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었다.”

“······.”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단천이 닫은 책장을 넘기던 청연의 눈이 살짝 떨렸다.

“속독도 할 줄 알아요?”

“어릴 적에는 하루 종일 책 읽는 것 말고는 따로 할 일이 없었거든.”

중원에 가기 전에도 꽤나 빠르게 책을 읽을 수 있던 것이 단천이었다.

거기에 중원에서도 할 일이 없을 때면 무공 비급서를 읽는 것이 단천이었다. 선천적으로 만들어진 속독 능력에 신체능력의 향상으로 만들어진 안력. 거기에 상단전으로 인한 시간을 압축해 느낄 수 있는 연산력까지 더해진 상태.

속독이 느리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촤르르르륵!

엄청난 속도로 넘어가는 책장, 그리고 쌓여가는 책들.

> ㅁㅊㄷ

> 아니 책 읽는것도 이렇게 빠르냐;

> 근데 채팅창 올라가는 거 귀신같이 캐치하는 거 보면 속독능력 있는 것 같긴 함

> ㄹㅇ 자기 욕하는 채팅은 귀신같이 보잖음;;

“방금 욕하는 채팅 귀신같이 본다는 놈. 아이디 기억해 뒀다.”

> ㅁㅊㄷ ㅋㅋㅋㅋ

> 0.01초의 뒷담화도 용납하지 않는 꼼꼼함;;

> 보통 그런걸 보고 꼼꼼하다고 하냐

> 우린 그런 걸 보고 옹졸하다고 하기로 했어요

“옹졸하다는 놈도 기억해 뒀다.”

[사과문님이 $ 1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욕하는 채팅 귀신같이 본다고 해서 죄송합니다.]

[사과문II님이 $ 101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허위사실을 유포해서 죄송합니다···

천마님은 전혀 옹졸하지 않으십니다! 마리아나 해구의 밑바닥보다 깊고 깊으신 마음을 가지신 것이 천마님이십니다!!!]

“이번만은 본좌가 용서해 주도록 하지.”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 줬으니 이번에는 용서하는 관대함을 보여주기로 했다.

“다만 아이디는 기억해 뒀다. 나중에 한 번 더 걸리면 십삼족을 멸할 테니 그리 알도록.”

> 알겠습니다

> 13족 멸하는 거면 어디까지 멸하는 거냐?

> 그러게 ㅋㅋㅋㅋㅋ

> 강제 매너채팅 ON

채팅창에서 13족이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는지에 관해서 계산을 하는 와중에도 단천은 빠르게 책을 넘겨나갔다.

수백 권의 책이 모두 읽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10분 남짓.

“···대충 이해됐다.”

단천은 가지고 있는 앰플을 꺼내들었다. 지금 자신이 들고 있는 「앰플 A-8771」이 바로 신체능력을 강화하는 중심 약품. 여기에 부작용을 억제하는 다른 여러 약물들을 칵테일처럼 조합해서 사용해야 한다.

“그냥 감만 믿고 몸에 꽂아넣었다가는 큰일 날 뻔 했군.”

단천은 주변에서 필요한 약품들을 꺼내 필요한 만큼을 뽑아냈다. 이렇게 의약품을 합치는 것은 중원에서 단약을 조합할 때에도 자주 했던 일이다.

> 또다시 나온 불법의약품 조제 ㅋㅋㅋㅋ

> 근데 세상 망했는데 불법의약품이 있음?

> 세상 망했으니까 모든 약품이 불법이지;

> 그게 그렇게 되나?

단천이 약품을 필요한 만큼을 뽑아내 섞은 다음 주사기에 집어넣었다. 이제는 주사를 하기만 하면 된다.

“잠깐만요.”

“왜 또.”

청연은 잠시간 눈을 질끈 감았다. 무언가를 깊게 고민하는 표정을 짓던 청연은 눈을 다시 뜬 다음 결연하게 말했다.

“···그 약. 제가 먼저 맞을게요.”

“뭔 헛소리야.”

“그 약. 안전성이 제대로 검증되지도 않았잖아요. 뭔가 부작용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래서.”

“그러니까 생체실험이 필요하다는 거죠.”

‘어쩌라고’라는 표정을 짓는 단천을 향해 청연이 결연하게 이야기했다.

“···감독님이 부작용을 겪을 가능성을 제가 먼저 겪는게 나아요. 천마 감독님은 이 세상에 나보다 더 필요한 인간이니까.”

“헛소리는 거기까지다. 본좌의 영약에 한 발짝이라도 더 다가오면 제압할 테니 그리 알도록.”

“그 불법 의약품 빨리 내놔요. 제가 먼저 맞게.”

단천은 희생본능을 가진 의협심 중독자가 더 헛소리를 하기 전에 자신의 혈도에 주사를 꽂아넣었다.

[의심스러운 의약품이 당신의 신체를 강제로 깨웁니다!]

[신체능력이 엄청난 속도로 올라갑니다!]

[피부가 경화됩니다!]

[정신이 일시적으로 붕괴됩니다.]

약이 주사되자 주변을 바라보는 시야가 일그러졌다. 이것뿐만이라면 취권으로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었을 터. 하지만 시야가 일그러지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신체가 변화되고 있습니다.]

[컨트롤의 제어권이 일시적으로 사라집니다.]

[강제적으로 수면 시간에 들어갑니다.]

강제로 찾아온 수면 시간. 수면 시간이라고 표시되기는 했지만 단천의 정신은 또렷했다.

> 수면 시간 얼마나 나옴?

> 8시간 정도는 수면시간 들어가겠지?

> 8시간은 에반데;;

> 게임 내 시간으로 그렇고 실제 시간으로는 훨씬 짧지. 대충 20분 정도

“꽤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군.”

> 인게임으로 느낄 수 있는 시간을 강제적으로 빠르게 만드니까

> 1인용 게임에서나 이런 게 가능하지, 온라인 게임에서는 이런거 못함

> 실제로 신경 자극이 워낙 심하기도 하고;

> 근데 천마님 지금 거의 하루 내내 종말 생존자 하고 있는거 아님?

> 그러네. 생각해 보니까 슬슬 ‘타이밍’아니냐?

“타이밍?”

[시간 압축 매커니즘 사용 게임을 플레이중입니다.]

[권장 플레이타임을 초과했습니다.]

[휴식 시간을 부여합니다.]

[휴식 시간 : 8시간]

권장 휴식 시간이라는 말에 단천의 목이 좌우로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이런 게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다. 시간을 압축해서 사용하는 게임의 경우에는 신경에 가해지는 과부하가 매우 높다.

‘일종의 집중 상태. 불렛 타임을 강제적으로 만드는 매커니즘이라고 했던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는 순간 인간은 짧은 시간 동안에도 수많은 생각과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실제로 무림에서도 일류 고수들의 싸움은 한 순간에도 수십 가지의 생각들이 교차하는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종말 생존자또한 이러한 매커니즘을 사용하는 게임 중 하나다. 하루가 아니라 수십 일을 플레이한 것처럼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매커니즘 덕분.

물론 그만큼 신경에 주는 과부하가 커진다.

지금의 쿨링 타임(cooling time)은 이러한 과부하를 막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었다.

“본좌에게는 이런 쿨링 타임따위 그다지 필요 없는데.”

단천은 짧게 툴툴거렸다.

단천은 목숨을 건 싸움을 수없이 많이 겪어온 인간이다. 불렛 타임같은 건 삼시세끼 밥 먹는 것보다 많이 겪어왔다.

거기에 환골탈태를 하기까지 했으니 신경의 강도는 평범한 인간의 수십 배는 된다고 봐야 했다. 이러한 쿨링 타임이 없이도 수백 일은 충분히 견뎌낼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말을 해 봤자 VR기기가 알아들을 리는 없겠지만.

“쿨링 타임동안 충분히 쉬고. 다시 만나도록 하지.”

> 이걸 여기서 끊네

> 그래도 좀 쉴 수 있어서 다행이긴 함

> ㄹㅇ 너무 달리긴 했지

> 내 인생이 8시간동안 끊어져 버렸어···

> 천마님 방송 킬때까지 숨 참는다!!!

[방송이 일시 중지되었습니다.]

[다음 방송시간 : 8시간 이후]

단천은 방송화면을 잠시 쳐다본 다음 VR캡슐에서 몸을 일으켰다.

“운이 좋았군.”

일반적으로 방송이 단순히 ‘끊어져 버린다’는 것은 시청자 유지에 좋지 않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것은 예외도 있다는 뜻이다. 방송이 ‘언제 끊기느냐’에 따라 더욱 큰 이득이 될 때도 분명히 있는 법.

‘최적의 타이밍에 끊겼다.’

다음의 종말인 운석 충돌이 오기 직전의 타이밍. 거기에 지금 단천의 방송은 세계에서 생중계되고 있다. 시차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국내 방송과는 다르게 타국은 BJ천마의 방송이 유명세를 타는 타이밍이 조금은 지연될 터.

‘이 지연시간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한 번 끊어가는 것이 최선이겠지.’

안 그래도 한 번 끊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찰나였다.

긴 방송의 경우에는 중간에 스토리를 놓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끊어가는 시간이 있으면 ‘복습’을 통해서 스토리를 따라잡을 수도 있는 데다가 화제성이 번지기에도 충분하다.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건 물론 제대로 스토리가 요약된 플레이 요약본이다.

단천은 서유나에게 연락하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플레이 요약본 1편 업로드 완료했습니다. 짧게 하이라이트도 다 넣었고, 추가 파트들은 한솔 팀장님이랑 진표 팀장님이 거의 작업 완료했습니다.]

“···말할 필요도 없었군.”

[휴게 시간 8시간동안 플레이 요약본과 하이라이트 연달아서 재생하겠습니다.]

자신이 말하기도 전에 이미 일이 다 끝나 있다. 능력 있는 수하라는 게 이런 점에서 좋다. 강한솔과 김진표의 비명 섞인 신음이 들려오는 것 같지만. 아마 환청일 터다.

단천은 휴대폰은 튼 김에 말랑튜브에도 올라온 플레이 하이라이트의 댓글을 확인했다.

[OMG]

[미쳤습니다. 이 인간의 방송, 어디서 봅니까?]

[지금 트인낭의 기부 이벤트에서 볼 수 있다!]

[한국 내 급상승 인기 동영상 1위!]

[미국 내 급상승 인기 동영상 1위!]

[일본 내 급상승 인기 동영상 1위!]

···

[조회수 : 8,071,077회]

“···800만 회?”

영상이 올라간 지 몇 시간이 되지도 않았는데도 영상이 벌써 천만뷰 가까이 기록되어 있었다.

‘트인낭’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부 이벤트의 핵심이라는 키워드. 거기에 계속해서 화제를 몰고 다니는 BJ천마라는 플레이어.

거기에 ‘생존투쟁’과의 대결구도까지.

화제가 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의 상황이다.

[방송 언제 켜나고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ㅗ]

[아니 8시간 어케참음??]

[그냥 하이라이트나 보면서 참아 ㅠㅠㅠㅠ]

[못참겠다 BJ천마 찾아가서 납치해다가 군만두만 먹이고 방송만 시킴]

[찾는건 그렇다치고 저 피지컬 가진 인간을 뭔 수로 납치하게?]

댓글창이 터질 듯이 올라가는 것을 본 단천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하늘을 뚫고 있는만큼. 다음으로 보여줄 것이 시청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것이어야만 했다.

이런 높은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것은 원래라면 힘들기 그지없다.

하지만. 단천의 입꼬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 있었다.

약물 투여로 인해서 신체능력이 충분히 올라간 상태.

그리고 다음 번에 닥칠 종말은 ‘운석 충돌’.

“운이 좋군.”

중원에서 한 번 겪어본 운석 충돌이 다음 종말인 상황.

정말로 운이 좋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