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77화 (177/212)

40. 좀비의 종말 (4)

지하실 안은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단열이 잘 되어 있는 벽면에 지하실 특유의 쿰쿰함도 없는 커다란 장소는 어마어마하던 지상의 저택보다도 훨씬 더 공들여서 지어져 있었다.

원래 저택의 주인이던 사람이 편집증적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장소였다.

“와. 저희가 지냈던 방공호보다도 넓은 것 같은데요.”

> 돈을 얼마나 바른 거야 ㄷㄷㄷ

> 이런 상황이 올 걸 대비를 한 것 같은데?

> ㅇㅇ 맞음 원래 이 저택 주인장이 이런 아포칼립스 상황 대비하던 이승현이라는 사람 집임

그러거나 말거나 단천은 불만스럽게 언월도의 날을 매만졌다. 벽을 뚫을 때 써 버린 탓에 언월도의 날이 부서지기 일보 직전이 된 상태였던 까닭이다.

“그다지 힘을 주지도 않았는데 이 모양이라니. 언월도를 만든 장공 놈을 데려다가 주리를 틀어야겠다.”

“대체 무슨 수로요?”

“그건 차차 생각해보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원한을 잊지 않는 것이지.”

> 창 좀 잘못 만든게 원한씩이나 가냐 ㅋㅋㅋㅋㅋ

“그보다 이승현이라는 사람. 아나?”

“손가락에 꼽히는 부자 아니에요? TV에도 자주 나오잖아요. 요 십몇년간 정신이 나가서 뭔가 이상한 종말론에 꽂혀서 산다는 소문만 무성하던.”

“결과적으로 따지자면 그의 말이 맞긴 했군.”

“그게 그렇게 되나.”

> 종말론자들 기적의 1승

> 어케 맞혔냐 ㄷㄷㄷㄷ

> 세상 망할 때까지 세상 망한다고 하니까 맞힌거지

> 맞을 때까지 종말을 연장하는 인디언식 종말론 ㄷㄷ;

“여기가 그럼 이승현의 집인가요?”

“아마도.”

이승현은 평생 종말을 대비하며 산다고 했다. 세상이 어떤 식으로든 망한다고 확신했으니 이토록 거대한 지하시설을 만든 것일 테고.

“그런데 왜 이승현은 안 나타나죠? 이렇게 대비를 했으니 살아남았을 텐데.”

“대비를 했다고 살아남았을 거라는 보장은 없지.”

실제로 좀비가 튀어나오고 있는 상태에서 물려서 좀비화를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

“하긴. 마냥 준비를 한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이긴 했으니까요.”

“쯧쯧. 방공호를 만들 시간에 본좌처럼 능력을 키웠다면 무슨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을. 이래서 꼼수 같은 걸 쓰면 안 되는 거다.”

“···종말을 대비하는 건 지하실이 정석 아닌가요?”

> 그러게; 지하실 만들고 식량 비축하는 것만큼 살아남기 좋은 방법이 어딨냐

> 지하실 만들고 비축하기 VS 천마로 살기

> 밸붕 후자가 살아남기 좋아보이긴 하는데;;

지하실에 있는 수많은 방을 얼마나 지나왔을까. 살 썩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시체네요.”

“시체가 아니라 좀비다.”

좀비가 만들어내는 특유의 시취를 구별한 단천이 바닥에 엎어져 있는 좀비들의 사체를 확인했다.

사실 사체라고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었다. 좀비들의 몸은 거대한 무언가에 충돌이라도 한 것처럼 으깨져 있었으니까.

콘크리트로 통짜 만들어진 벽 여기저기가 부서져내려 있는 흔적들까지.

“이 자국은 뭐죠?”

“평범한 권격이 만들어내는 흔적이다.”

“권격?”

“주먹질.”

“···주먹질로 콘크리트가 부숴졌다고요?”

“그래. 그것 외에는 별 것 없는 삼류 나부랭이가 내지른 주먹질에 불과하다. 봐라. 몇 번이나 좀비를 처치하기 위해 주먹질을 했다.”

권격에 능한 자였다면 좀비를 일격에 처치할 수 있었을 텐데. 몇 번이나 주먹질을 해야 했다는 것은 이 주먹질을 한 인간이 권각술을 전혀 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는 뜻이었다.

영약 먹고 운 좋게 환골탈퇴한 하늘 높은줄 모르는 범부 놈들이 이런 흔적을 남긴다.

“그러니 별 것 아니다. 완력으로 콘크리트를 부숴트릴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니까.”

“감독님은 사전을 좀 갖고 다닐 필요가 있어요.”

“사전?”

“평범의 뜻을 모르니 콘트리트를 부수는 괴물을 평범하다고 그러고 다니지.”

> 근데 천마님한테 비교하면 별 게 아니긴 한데?

“아무튼 그러니까 이 자국을 낸 게 고릴라나, 뭐 그런 건 아니라는 거죠?”

“고릴라의 권격은 좀더 투박하고 야생성을 띈다.”

“···고릴라의 권격같은 건 또 어떻게 아는 건데요?”

단천은 구태여 고릴라를 상대로 붙어 봤다는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딱히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었던 데다가 뭣보다 귀찮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분명히 인간의 움직임이다. 인간이 이런 파괴력을 낼 수 있다니. 꽤 좋은 소식이군.”

> 대체 어디가 좋은 소식인데 ㅋㅋㅋ

> 죄송한데 지금이라도 도망치면 안 될까요?

제각각의 게임에서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움직임에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단천이라고 해도 시스템적으로 제한되어 있는 한계치 이상으로는 힘을 낼 수 없다.

그런데 적의가 있건 없건, NPC가 인간의 힘으로 이 정도의 힘을 낼 수 있다는 것은. 단천 자신도 이런 힘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고 나면 앞으로 닥쳐오는 종말들을 상대하는 것도 그만큼 쉬워질 것이다.

단천은 결론을 내린 다음 좀비들의 시체를 넘어 안으로 들어갔다.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곳은 커다란 홀이었다. 지금까지 봐 왔던 그 어떤 방들보다도 크고 웅장한 방에는 수없이 많은 서적들과 어디 쓰는지 모를 약품들이 있었다. 아마도 이승현이 믿는 종말론에 관계된 물건들일 터다.

그리고 그 중심에 홀로 남자 한 명이 앉아 있었다.

“이승현인가?”

“네. TV로만 봐 온 사람이긴 하지만···.”

“좀 늦은 모양이군.”

이승현의 목덜미에는 선연하게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르륵거리는 소리와 이성을 잃은 눈.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침까지.

언뜻 봐도 대화가 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단천은 언월도를 뽑아들고 자세를 잡았다.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만. 여기에서 영원히 있는 것도 너에게는 좋지 않을 거다. 구천은 외롭지 않을 테니. 그곳으로 가도록.”

고오오오! 단천의 기도에서 풍겨져나오는 기세는 그 것만으로도 짐승이 된 이승현을 자극하는 데 충분했다.

그르르륵!

이승현이 단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쾅! 다리가 바닥에 닿자마자 폭음과 함께 이승현의 몸이 단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엄청난 속도다. 인간, 좀비, 그 어느 쪽도 불가능한 불가피해보이는 일격.

하지만 이승현의 공격이 BJ천마에게 날아오기도 전에 언월도는 이승현의 목줄기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카가각!

크에에엑!

언월도를 목에 격중당한 이승현의 몸이 뒤로 밀려나갔다. 단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호오.”

베겠다는 생각으로 휘둘렀건만, 이승현의 몸은 단천의 생각 이상으로 단단했다. 굳이 따지자면···

“금강석 정도 되는 단단함이로군.”

> 금강석? 다이아몬드?

> 아무리 그래도 사람 몸이 어케 다이아몬드만큼 단단해져요 ㅋㅋㅋㅋ

> 오바가 심하시네

천마신교에서 저런 소리를 하는 놈들이 있었다면 진짜 금강석 정도인지 아닌지 헛소리를 지껄이는 머리통을 써서 직접 경험하게 해 줬을 텐데.

아쉽게도 지금은 후원 중이다. 놈들 하나하나를 신경쓰고 있을 시간이 없는 것이다.

단천은 대답하는 대신 재차 달려드는 이승현의 몸을 다시금 언월도를 써서 밀어냈다.

카가가각!

안 그래도 균열이 가 있던 언월도가 조금 더 위험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오래 싸우면 안 될듯;

> 근데 저렇게 단단하면 어떻게 상대해야 됨?

저토록 단단한 몸을 가진 상대를 내공 없이 처리하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다.

“대충 삼천 가지 정도밖에 없지.”

삼천 가지 중에 무엇을 고르거나 결과는 똑같을 터.

크워어어어!

단천은 언월도를 들어 달려드는 이승현을 향해 일직선으로 내밀었다.

단순하기 그지없는 초식.

창을 사용하는 자라면 누구나 처음에 배우는 초식인 선인지로.

하지만 단순하기 그지없는 초식이라고 해서 그 안에 있는 의미까지 단순한 것은 아니다.

무공의 극의에 오른 인간이 펼치는 초식은 아무리 그것이 단순하다고 해도 초월적인 위력이 나오게 되는 법.

우드득!

바닥을 딛는 발바닥부터 시작해, 정강이, 다리, 몸, 팔.

단천의 온 몸의 근육이 한 점에 창을 꽂아넣기 위해 하나가 되어 움직였다.

카드드드득!

이승현의 몸에 닿은 머리부터 언월도가 부서져내리기 시작했다. 창날, 몸통, 손잡이, 창대를 넘어 창끝까지.

언월도가 산산히 부서져내리며 이승현의 배에 꽂혀든 것이다.

크워어어억!

실로 말도 안 되는 일격필살의 초식에 그 단단하던 이승현의 피부가 거미줄처럼 쪼개졌다.

하지만.

“살짝 얕았군.”

역시 무기가 삼류라서 그런가. 원하던 위력이 나오지 않았다.

크워어어억!

목숨줄이 끊기지 않은 이승현의 손이 단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 좆됐다

> 조졌는데요

> 유다이 눈앞까지 왔는데요;;

“어줍잖게 본좌의 죽음을 속단하지 말도록.”

한 번의 초식이 먹혀들지 않았다고 해서 끝난다면 달인이라고 칭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단천의 팔이 이승현의 팔을 받아낸 다음 이화접목의 묘리를 사용해 이승현의 몸을 반대편 벽으로 밀어냈다.

쾅!

> 미쳤다

> 근데 저래봤자 데미지 안 들어가는데?

> 쓸만한 무기도 주변에 없고

채팅창에 일시적으로 올라오는 의문. 하지만 단천은 뭐가 걱정이냐는 표정을 지어보일 뿐이었다.

“무지한 것들아. 무기라면 여기 있지 않으냐.”

무기라면 눈앞에 있다. 그것도 금강석만큼이나 단단한 무기.

바로 이승현의 몸 자체가 있는 것이다.

콰드드드득!

단천이 이승현의 주먹을 잡아다 그대로 이승현의 배에 꽂아넣었다.

쩌적! 쩌저적! 이미 나 있던 균열이 완전히 부서져내리며 이승현의 몸이 산산히 부서져내렸다.

“잘 가도록.”

> 진짜 컨트롤은 봐도 봐도 말안됨

> 대체 이런 컨트롤은 어디서 배우는 거임?

“수없이 많은 실전으로.”

> 대체 이딴 전투를 언제 실전으로 배우는데요

> ㄹㅇ 밸붕 쓰레기겜이나 다름없는 이런 실전을 언제 겪음 ㅋㅋㅋㅋ

“그리고 이 정도면 본좌의 방송을 조금만 봤다면 웬만큼 재능 없는 자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 천마님 방송 5000시간 봤다 절대 안 된다

> 저걸 어케 따라하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응 너만돼~~~

[미션맨 님이 $ 4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하면 1000달러]

[미션맨 님이 $ 1,0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미션 성공!!!!!]

“본좌가 대체 언제 미션을 성공했다고 후원금을 주는 게냐. 다시 가져가도록.”

> 미션 쌉성공

> 누가 봐도 성공

> 미션 성공!!!

> 성공 그 자체

[성공맨 님이 $ 1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미션 성공 축하금입니다!! ^^7]

[심판 님이 $ 1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현직 심판입니다. 미션 성공하셨습니다!!!]

> 아 심판이 미션 성공이라면 어쩔 수 없지 ㅋㅋㅋ

> ㅇㅈ합니다

‘니가 뭔데 인정하는데.’

단천의 맘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후원금이 쏟아져내렸다. 평소의 후원금이 되돌리기 버튼이 있는 것과 달리 지금은 ‘기부’로 돈을 받는 것이라 돈을 환불할 수도 없다.

단천은 툴툴거리며 이승현의 시체를 수습했다. 시체를 수습한 단천은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이곳 어딘가에. 이승현의 몸을 이렇게 만든 약품이 있을 거다.”

그리고 그 약을 찾아낸다면 초인적인 신체능력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 이렇게 많은데 어떻게 그걸 찾아요;

그거야 ‘감’으로 찾으면 되지.

수없이 많은 약들을 찾아 훑던 단천의 눈이. 홀 구석에 있는 앰플병 무리에 가 멈췄다.

[의심스러운 앰플 A-8771]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알 수 없는 위험한 앰플입니다.]

이거로군.

앰플을 집어든 단천의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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