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좀비의 종말 (3)
“지하에 뭔가가 있다고요?”
“그래. 정확하게 뭐가 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단천은 좀비들을 무시한 채 주변을 둘러봤다. ‘지하’에 뭔가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문제는 지하로 향하는 길이 어디인가다.
> 여기 지하로 갈 수 있는 데가 있나?
> 지하에서 뭐가 느껴지면 하수구 이야기하는 거 아님?
> 한국 하수도에서 뭐가 살겠냐 ㅋㅋㅋ 쥐 정도만 살지
> 혹시 성원시 지도 있는 사람?
> 안 그래도 지금 찾아보고 있는 중
지도를 확인해 볼 필요는 없었다. 훈수가 나오는 것보다 빨리 단천의 상단전이 반응했기 때문이다.
“저곳이군.”
> 대저택 쪽으로 가면 될 듯?
단천의 손가락이 시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는 거대한 저택을 가리켰다.
> 뭐야 방금 훈수보다 빨리 천마님이 움직인 거 같은데?
> 애초에 천마님은 훈수 안 들어!
> 근데 대저택에 뭔가 지하실 있는건 어케 암?
> 대저택 있을 정도의 부호면 개인 방공호정도는 만들어 놓지 않았을까? -> 대저택으로 가보자
> 논리력 ㅁㅊㄷ;
채팅창에서 BJ천마의 직감에 가까운 논리에 대한 찬사가 이어졌다.
‘상단전이라는 거. 역시 꽤 괜찮군.’
게임을 플레이하면 필연적으로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길을 잘못 든다거나, 탐색을 오래 한다거나. 이런 시행착오는 자연스럽게 게임의 플레이타임을 길어지게 만들고, 시청자들에게 고구마를 선사한다.
하지만 상단전이 있다면 그런 ‘헤멤’ 같은 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저기. 감독님 말씀대로면 위험한 곳인데. 그냥 안 가면 안 돼요?”
“위험한 곳인데 왜 안 가지? 위험하면 당연히 가 봐야 하는 것 아닌가?”
> 저기요 천마님 지금 아포칼립스 게임 중이신데요?
> 아포칼립스에서 가장 해야 하는 것 : 위험한 짓 하기
> 위험한데 왜 안가쉴??
자고로 위험한 곳일수록 강자가 있을 확률이 올라간다. 그리고 강자가 있다면 자웅을 겨루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 아니겠는가.
단천은 주저 없이 저택의 문을 향해 창을 내리그었다.
서걱! 강철로 된 철창이 두부 자르듯이 잘렸다. 청연이 단천을 노려봤다. 이대로 놔두면 BJ천마가 위험에 빠지게 될 것이다.
버리고 가는 것이 올바른 일이겠지만. 청연은 그러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왜 따라오지? 위험한 곳인데.”
“제 맘인데요.”
“귀찮기는.”
단천은 짧게 대답했다. 정파 놈들은 이렇게 귀찮다. 자신이 방해가 될 것을 알면서도 부득불 들러붙는 것이다.
“맘대로 해라.”
크웨에엑!
말을 마친 순간 저 멀리서 좀비가 달려들었다. 단천의 창이 좀비의 몸을 반으로 잘랐다.
서걱!
그리고 그 순간, 저릿한 기분이 단천의 머리를 휘감았다. 단천은 재빨리 언월도를 회수한 다음 창을 휘저었다.
태극권의 묘리가 언월도를 통해 펼쳐졌다.
“뭐 하는 거···.”
콰아앙!
반으로 조각난 좀비의 몸이 거대한 폭발음을 내며 터져나갔다. 수없이 많은 살점 하나하나가 무기가 되어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좀비가 터진 반경 다섯 자 안에서 무사한 것은 단천과 청연. 둘 뿐이었다.
“뭐, 뭐야. 좀비가 방금 터진 거에요?”
“보고도 모르나.”
“쟤가 왜 터져요? 그것보다, 방금 어떻게 막은 거에요?”
“창을 휘저어서.”
“설명 더럽게 못하시네요. 남 가르치는 감독 생활은 어떻게 하신 거에요? 아. 하긴, 남을 못 가르치니까 제가 이름도 못 들어봤던 거겠지만.”
> 우리도 항상 똑같은 생각 합니다
> 설명은 잘하는 편 아님? 설명을 실행하는게 불가능해서 그렇지
[뉴비맨 님이 $ 400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설명 못 한다뇨! 그래도 천마님이 레일 서바이버에서 보여주신 광선검으로 총알 막는 건 좀 할만해요!]
> 그게··· 할만하다고???
> 뉴비맨 쟤도 보면 볼수록 미친놈임
> 허언증 아니냐?
> 아닐걸?? 쟤 영상 업로드도 조금씩 하고 있더만
단천은 단 한 번도 자신이 남을 가르치지 못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당장 중원 사상 최강의 무림조직 혈귀단이 단천의 아래에서 배운 자들 아니었던가.
중원으로 한정하지 않더라도 지금 최상위권의 피지컬과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제로콜, 근래 스트리머 중에서도 손꼽힌다는 소리를 듣는 풀창고, 거기에 슬럼프를 이겨내고 대회를 휩쓸고 있는 한수아 등.
자신의 손길이 닿은 사람이라면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최고의 성과를 내는데. 자신이 남을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물론 이 말을 교육을 들은 교육생들이 듣는다면 ‘그렇게 죽어라고 사람을 굴리는데 당연히 실력이 늘지!’ 라는 반론을 하겠지만.
어쩌겠는가. 인간을 죽기 직전의 선 위에서 굴리는 것도 일종의 요령이고 가르침인 것을.
“본좌는 타인을 가르치는 것으로는 손가락에 드는 실력자다.”
“남 가르칠 때 패면 다 어떻게든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몰상식하고 구시대적인 인간일 것 같은데.”
“그건 구시대적인 게 아니다.”
“패기는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단천은 대답할 가치조차 없는 말에 대꾸하는 대신 좀비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조심해요! 터진다고요!”
“알고 있다.”
서걱! 단천의 검이 좀비의 목을 반만 베어갈랐다.
헤으에에엑!
좀비의 목에서 바람소리가 새어나왔다. 방금 좀비가 터지는 것은 놈의 목숨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였다.
“그러니 죽지 않을 정도만 만들어놓으면 되지.”
목숨을 간당간당하게 만들어놓은 좀비를 창으로 건져 저 멀리로 집어던져 버렸다.
멀리 던져진 좀비의 몸이 저 멀리서 터져나갔다. 뒤이어서 다른 좀비들의 몸도 공중을 날았다.
쾅! 쾅! 콰앙! 공중에서 폭죽이 터지듯이 좀비들의 몸이 터져나갔다.
아주 조금의 상처도 없이 폭발 좀비를 처리해낸 단천이 창을 등에 걸쳐맸다.
“죽지 않게만 만들어서 멀리서 죽게 만든다. 간단하군.”
“대체 지금의 어디가 간단한데요.”
“누구나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한 수순이었다.”
“감독 할 때 본인의 말도 안 되는 기준을 남한테 강요하고. 막 그랬죠?”
“본좌를 향한 근거 없는 비난은 삼가하도록.”
> 근거 충분하고도 남는 것 같은데요
> 와 어떻게 이렇게 잘 알지
> 인정 또 인정하는 바입니다
“이 정도면 요령만 알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이 정도도 못하면 천마교도 실격이라고 봐야겠지.”
> 애초에 저희는 천마신교 예비교도들인데요??
> 천마신교 컷 왜이렇게 높아;;
> 하버드 가는 것보다 어려울 것 같은데;;
> 질문! 이미 교도인 사람이 이렇게 못 하면 어떻게 되나요?
못 하면 어떻게 되냐고?
“별 일 안 생긴다. 본좌가 가능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 그래도 못 하면요?
> 죽나요?
“천마교도에게 불가능은 없다. 가능할 때까지 하면 된다. 그리고 죽는다니. 그런 편한 선택지는 천마교도에게 없다.”
> 개무섭네;;
> 정보) 이 사람은 그 제로콜을 레일 서바이버 챌린저로 만든 사람이다
> 정보) 제로콜은 아직도 심심하면 그때의 악몽을 꾼다
단천은 말을 계속하며 앞을 향해 전진해나갔다. 몸통이 터져나가는 좀비들을 헤쳐 도착한 저택 안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수없이 많은 예술품들과 사치품들. 그리고 척 봐도 비쌀 것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집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많은 사람의 집이었나 보네요.”
“아마도.”
“하지만 이제 예술작품들은 세상에서 딱히 커다란 의미를 갖지는 못하겠죠.”
“그건 모를 일이지. 아직 세상이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니까.”
“···인간이 세상에 다시 번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본좌가 그렇게 만들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청연이 픽 하고 웃었다.
“그래요. 힘내 봐요.”
“그래. 한 번 한 일. 두 번 못할 일도 없지.”
“이런 세상을 한 번 살아 본 것처럼 말하시네요.”
“서로가 서로를 죽이고, 증오만이 세상을 뒤덮는 곳에서 꽤 오래 살았었지.”
> 뭔 얘기임
> 탑솔 이야기하는 거 아님?
> 탑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장소이긴 했지;
단천이 처음 갔을 때의 중원은 결코 의과 협이 살아 숨쉬는 장소가 아니었다. 피로 피를 씻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 장소였다.
그런 까닭에 중원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서로를 죽이며 무림인들의 수는 서서히 줄어들었으며, 많은 무공들은 맥이 끊어지고, 협의를 부르짖는 인간은 사라져가고 있던 장소.
하지만 지금 이곳은 중원보다 낫다.
심을 곳도 없는 씨앗을 목숨마냥 품고 다니는 연구원이 있고, 남을 살리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버릴 줄 아는 인간이 있다.
“내가 원래 있던 곳에 비하면 여기는 천국이지. 살기 좀 팍팍하다는 것만 제외하면.”
> 탑솔에서 죽고 죽일 때에 비하면 살만한 건 맞긴 하지
> 근데 천마님은 탑에서 엄청 잘 살지 않았나?
> 천마 입장이 아니라 상대편 탑솔러 입장에서 생각해 봐
> 핵폭탄+좀비마경+빙하기+운석에서 살아남기 vs 상대 탑 BJ천마
> 어우야 나는 닥전이다
> ㅇㅈ;;;
단천은 미술작품들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트럭 안에 있는 씨앗이 의미가 있다면, 이 예술작품들도 의미가 있는 것일 터이기에.
“자. 잡설은 여기까지 하고. 지하실이나 찾아 보도록 하지.”
사실 ‘찾는다’는 것은 그리 맞지 않는 표현이긴 했다. 단천이 해야 하는 일이라고는 상단전의 목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기는 것 말고는 해야 할 일이 없었으니까.
지하실로 들어가는 장소가 숨겨져 있는 곳은 서재였다.
“서재에 진짜 지하실로 가는 길이 있을까요?”
“있을 거다.”
“너무 상상력이 빈약한 거 아니에요? 만약 가는 길이 있다손 치더라도, 가는 길을 찾아내려면 트리거를 발동시켜야 할 텐데···.”
“트리거?”
“네. 뭐 책을 일정 순서로 건드린다거나, 버튼을 누른다거나. 그래야 길이 열리죠.”
단천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모로 꺾었다.
“아니. 영화 안 보셨어요?”
“세상이 영화처럼 돌아갈 거라고 생각하다니. 우습군.”
“···지금 저희. 비밀통로 찾고 있는 거거든요? 장치를 안 작동시키면 어떻게 하겠단 거에요.”
단천이 픽 웃었다.
“중요한 건 비밀통로가 ‘있다’는 것이지. 그걸 어떻게 작동시키느냐가 아니다.”
“그게 무슨 말···.”
“여기쯤인가.”
벽을 짚던 단천이 언월도를 등에서 다시금 꺼내들었다.
후욱.
길게 호흡을 가다듬은 단천의 언월도가 일직선으로 앞으로 쏘아졌다.
카가가가각! 투콰아아악!
창이 꽂혀들자 뭔가 기계장치 비스무리한 것들이 휩쓸리는 모습과 함께, 감추어졌던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 가지.”
“······말도 안 돼.”
> 이거 맞냐 ㅋㅋㅋㅋㅋㅋ
> 충분히 강한 몸이 있다면 지능이 필요없다
> 몸이 안 좋으면 머리가 고생하지 ㅉㅉㅉ
BJ천마의 고개가 만족스럽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자고로 퍼즐 풀때 무력이 최고란 건 고르디우스의 매듭부터 이어져 온 유구한 사실이었다.
반박시 배교도.
> 고르디우스의 매듭 칼질로 푸는 거 보는 사람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
> 그때도 저딴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다들 생각하지 않았을까?
> 매듭 칼질로 푸는 놈한테 그런 소리 할 깡이 있는 사람이 어딨겠냐;
아무튼 중요한 것은 드디어 지하실로 향하는 길이 열렸다는 점이었다.
단천은 쓰잘데기없는 우민들의 헛소리를 무시한 채 지하실로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