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75화 (175/212)

40. 좀비의 종말 (2)

수없이 많은 좀비들 가운데로. 오토바이 한 대가 굉음을 내며 질주했다.

“느리군.”

“지금 시속 200키로거든요? 시내에서 이 정도 속도면 말도 안 되는 폭주라고요!”

“너무 느려.”

오토바이의 속도라고 해 봤자 초일류에 갓 접어든 삼류 무인만도 못한 것이니 단천 입장에서는 마음에 찰 리가 없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은 해야 하겠지.”

단천은 언월도를 가장 가까운 좀비들에게 내질렀다. 촤좌좌좍! 순식간에 불어나는 언월도의 잔상 하나하나가 좀비들의 머리를 노렸다.

수콱!

깔끔하기 그지없는 일격은 아주 조금의 실수도 없이 좀비들의 머리를 허공으로 솟구치게 만들었다.

실로 아름다운 일격이었다.

> 크

> 컨트롤 미쳤다

> 아니 이 속도에서 어케 저렇게 하는거냐 ㅋㅋㅋ

“쉽군.”

“······.”

“뭐 불만이라도 있나.”

“지금 저희가 뭐 하고 있는지는 알고 계시는 거죠?”

“물론이다.”

지금 단천이 가지고 있는 무기에는 바이러스 치료제가 발려 있다. 그리고 단천이 이곳에 온 목적은 이 ‘치료제’가 좀비들 사이에서 최대한 많이 전파되도록 하는 것.

“···근데 좀비들을 저렇게 만들어놓으면 어떻게 하자는 거에요?”

청연이 턱짓으로 가리킨 곳에는 모가지가 잘려진 채 쓰러진 좀비 무더기가 있었다.

살아남아서 전파하기는 커녕 바닥에서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는 시체가 되어 버린 좀비들.

“문제 있나?”

“좀비들을 죽이면 안 된다고요! 쟤들 몸에 바이러스가 들어가서 전파돼야 하니까!”

“······뭐. 라고.”

단천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그러니까 놈들을 죽이지 않아야 한다고?”

“네. 그냥 살짝 경상만 입히세요. 바이러스가 몸에 잘 침투될 수 있게. 아시겠죠? 아! 저기 또 좀비 무리 있어요!”

오토바이가 다시 좀비 무리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단천의 공격.

슈칵!

이번에도 여지없이 좀비들의 모가지가 하늘을 날았다.

“······방금 이야기 들은 거 맞죠?”

“······.”

단천의 입술이 굳게 닫혔다.

> 아니 살살 치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

> 안 죽일만큼만 상처 입히면 되잖아 ㅋㅋㅋㅋ

> 뭐하는거임 ㅋㅋㅋㅋㅋㅋㅋ

단천의 눈이 살짝 떨렸다. 방금 자신은 할 수 있는 최대한 손속에 자비를 뒀다. 천마대의 누군가가 봤다면 단천이 아닌 무언가가 단천의 몸을 빼앗았다고 생각할 정도의 자비로운 일격이었다.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좀비들의 모가지가 모조리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

“···상대를 죽이지 않는다는 것. 정말 어렵군.”

단천은 방금 최대한 손속에 자비를 두려고 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최대한 비효율적으로 창을 휘둘렀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단천은 좀비들을 살려놓는 데 실패했다.

평생동안 몸에 새겨온 무학武學들을 정면으로 반하는 움직임을 따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실로 자기 자신과의 승부.

단천의 눈에 승부욕이 타올랐다.

“확실히. 이 정도로 어려운 미션이 있어야 재미가 있겠지. 다시 한 번 해 보지.”

“······이번엔 제대로 해요.”

다시 한 번 오토바이가 도심을 질주했다.

부와앙! 좀비 무리를 향해 달려드는 오토바이.

세 번째 기회다. 이번에는 실수하지 않는다.

단천은 호흡을 멈췄다. 모든 기감氣感을 닫았다.

그리고 눈을 감고. 창을 역수로 쥔다.

이 정도의 패널면 충분할 터.

슈쾃!

다시 한 번 들려오는 익숙한 파열음. 눈을 뜨자 하늘로 솟구치는 좀비들의 머리통이 또다시 보인다.

이번에도 살아남은 좀비는 한 마리도 없었다.

“······.”

“······감독님 일부러 이러시는 거죠.”

> 하다하다 눈감고 창 거꾸로 쥐는데도 원킬나네 ㅋㅋㅋㅋ

> 뭐하는 거야 ㅋㅋㅋㅋㅋ

> 안 죽게 살살 하라고 ㅋㅋㅋㅋ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단천이 일격에 좀비를 죽이지 않고 상처만 내는 데에는 여섯 번의 좀비무리가 더 희생되어야만 했다.

“요령만 알면 쉬운 일이었군.”

“···잘 하셨어요.”

모가지가 반 넘게 잘린 채 간신히 서 있는 좀비를 바라보던 청연은 미적지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걸 성공이라고 해도 되는 걸까.’

청연은 고개를 좌우로 가로저었다. 실패에 한없이 가까운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서 있는 좀비가 있는 게 어딘가.

“이젠 뭘 하면 되지?”

“일단 감염이 잘 전파되는지부터 좀 지켜봐야겠죠.”

그어어어!

살아남은 좀비 1호가 괴성을 내며 다른 좀비무리를 향해 걸어갔다.

그워어어!

“가거라. 본좌의 걸작이여.”

> 걸작 상태가 다 죽어가는데요

> 걸작(죽기 직전의 중상)

좀비의 몸에서 흐르는 비릿한 혈향. 다른 좀비들이 단천류 걸작좀비 1호에게 다가섰다.

그워어어어!

콰드득!

다가선 좀비들이 걸작좀비 1호의 몸에 이빨을 박아넣었다.

끄워어억!

걸작좀비 1호가 당하는 모습을 본 단천이 언월도를 집어들었다.

“뭐 하게요?”

“가서 본좌의 걸작을 도와야 한다.”

“···저게 정상적인 반응이에요. 그러니까 지켜보기나 하세요.”

걸작좀비 1호의 몸이 파먹혀 쓰러지고 나자, 살을 파먹은 좀비들의 움직임이 서서히 둔해졌다.

털썩! 털썩!

바닥에 쓰러지기 시작한 좀비들. 그리고 살 냄새에 꼬여드는 다른 좀비들.

“치료제가 제대로 잘 먹히네요.”

이중한이 말했던 이상적인 바이러스 전파다. 좀비 치료제가 듣기 시작한 좀비의 몸은 다른 좀비들에게 ‘인간’으로 인식된다. 그리고 치료제가 든 좀비의 몸은 다른 좀비들에게 뜯어먹힌다.

이것이 반복되며 좀비들 사이에서 치료제가 퍼져나간다.

실로 완벽한 매커니즘이다.

“다 본좌의 걸작 좀비 덕분이지.”

“감독님이 똑바로만 했어도 훨씬 더 많이 치료를 했을 텐데요.”

단천은 자신을 향하는 청연의 억까를 무시한 채 창을 곧추들었다. 요령을 깨달았으니 이제는 실행하는 것밖에 남지 않았다.

“다음 좀비들을 사냥하러 가도록 하지.”

성원 시의 좀비들을 모조리 토벌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요령이 생긴 단천의 움직임이 가면 갈수록 정교해졌기 때문이다.

슈콱!

때로는 비도가.

서걱!

때로는 검이.

촤좌작!

때로는 언월도가 좀비들의 몸을 베어갈랐다. 상처가 난 좀비들이 곳곳에서 치료제가 되어 시 전체를 뒤덮어나갔다.

“이 정도면 충분할 거다.”

시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치료 바이러스는 전파되고 있다. 그러니 최소한 성원 시에서는 더 이상 좀비 바이러스가 전파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좀비 바이러스 : 해결」이 막바지에 치달았습니다.]

[추가 포인트가 지급됩니다.]

[기부금 $ 30,000가 누적됩니다.]

좀비들을 잡을 때마다 올라가던 포인트 지급량도 이제는 하늘을 뚫고 있었다.

> 지금 인화가 내야 되는 기부금 얼마임?

> 억대 넘어갈 것 같은데???

> 인화 이거 감당되냐 ㅋㅋㅋㅋ

> 보통 포인트라고 해 봤자 수백 포인트 정도인데 천마님은 좀비 무리 쓸어먹을 때마다 수만 포인트씩 받음 ㅋㅋㅋ

> 어차피 베끼는 걸로 돈 존나 벌었는데 그거 뱉어낸다고 생각해야지

채팅창에서는 인화가 얼마나 더 기부금을 내야 하는가에 대해서 채팅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보통 ‘기부’라고 하면 좋은 의미에서 하는 일인 만큼 좋은 말이 오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화가 먼저 승부를 걸어왔다는 점. 그리고 인화가 내놓은 생존투쟁이 지금 BJ천마가 플레이하고 있는 게임의 하위호환이라는 점이 치명적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 단천과 경쟁하고 있는 스트리머 ‘판하오’ 쪽도 게임이 엄청나게 잘 풀리고 있었다.

하지만 판하오 쪽에서 플레이가 아무리 잘 되어가고 있다 한들 판하오가 플레이하는 것은 수천 번은 봐 온 생존 게임일 뿐이다.

실시간으로 결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종말 생존자와는 그 파급력을 비교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시청자의 유입으로 이어졌다.

> 나는 중화 시청자다. 판하오 쪽의 게임보다 이쪽이 더 재미있어서 시청을 바꾸었다.

> 이것이 진짜 게임입니다. 인화는 게임을 베끼기만 한다. 쓰레기같은 기업.

보통 중국 내에서만 돌고 도는 중국 시청자들마저 판하오가 아닌 BJ천마의 시청자가 되어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 아니 뭔 하다하다 중국 시청자들도 늘어나냐 ㅋㅋㅋ

> 진짜 글로벌 대기업이 되어가고 계신 BJ천마님···

중국 시청자들이 타 지역 방송을 보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을 뚫어야 한다. 그런데도 중국의 시청자들은 BJ천마의 방송에 유입되고 있었다.

> 천마는 중국 사람인 것입니까?

“중국인이 아니다. 본좌는 순혈 한국인이다. 그리고 천마신교를 무시한다면 네가 어디 사는 누구건 베어버릴 테니 주의하도록.”

> 단호박 ㄷㄷ

> 국적 변경은 못참지 ㄹㅇ

“미리 말해 두지. 시청자 수가 늘어나거나 말거나 BJ천마의 교 운용교리는 전혀 바뀌지 않는다. 하나. 본좌는 하늘 위의 하늘이다. 둘. 본좌가 하는 일은 무엇이건 옳다.”

> 뭔 미친 소리야

> 너야말로 무슨 소리임 방송 내내 천마님 맘대로였는데 ㅋㅋㅋㅋ

> 천마님!! 여기 반동분자를 잡아냈습니다!!

> 이 사람. 실로 매력적인 대협입니다!

중국 시청자가 들어오면 보통은 채팅창이 난장판이 나게 되는 경우가 잦다. 폐쇄적인 인터넷 환경에서 자기들만 아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바로 중국 시청자들이었으므로. 하지만 단천은 구태여 중국 시청자라고 해서 탄압할 생각은 없었다.

단천의 목표는 결국 온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시청자가 되도록 하는 것이었기에.

결국 중국 시청자들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딱히 거슬리는 채팅을 하지 않는다면 중국 채팅이라고 해서 제재하지는 않을 테니 그리 알도록.”

어디 살건, 뿌리가 누구건 포용한다. 그것이 바로 천마신교의 도道이니까.

중국 시청자라고 해서 차별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杨鼎新님이 $ 10,0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천마! 실로 장백산과 같은 호협함을 가진 사람!]

후원을 본 단천의 눈이 꿈틀거렸다.

“장백산?”

[杨鼎新님이 30일 후원 금지처리 되셨습니다.]

“장백산이 아니라 백두산이다. 백.두.산. 다음 번에는 후원 금지로 끝나지 않을 테니 그리 알도록.”

포용은 포용이고. 선은 넘으면 안되지. 이곳이 중원이었다면 거꾸로 매달아다가 백두산 천지에 몇십 번은 빠트렸을 소리다.

그런데도 고작 후원 금지로 끝나다니.

누가 그랬던가. 문명인들은 개소리를 해도 머리가 쪼개지지 않기에 예의가 없다고.

> 杨鼎新 : 천마. 백두산과 같은 호협함을 가진 사람입니다!

> 백두산! 백두산! 백두산!

> 언어패치 바로 완료되네 ㅋㅋㅋ

> 아 강퇴당하면 천마님 방송 못 본다고 ㅋㅋㅋㅋ

그렇게 단천이 잘못된 중국인들의 언어사용에 대해서 짧게 훈계를 하고 있는 중에.

쿠르르.

바닥이 자그맣게 떨리는 것이 단천에게 감지되었다. 단천의 고개가 돌아갔다.

“느껴지나?”

“뭐가요?”

단천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청연을 지나친 다음 바닥을 바라봤다.

지하에서 떨려오는 미세한 진동. 그리고 머릿속의 상단전이 보내오는 ‘경고’까지.

“그냥 좀비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보아하니 자신을 즐겁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더 준비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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