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74화 (174/212)

40. 좀비의 종말 (1)

[E-Tech 바이올로지컬]

이중한, 김용태와 함께 도착한 곳은 시의 외곽에 있는 실험실이었다. 실험실에 도착한 이중한과 김용태는 바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와. 역시 기업 지원을 받는 곳이라 그런가. 기구들 때깔부터가 다르네.”

“선배. 원심분리기 좀 보세요. 저희가 학교에 바꿔달라고 죽어라 요청하던 원심분리기 상위 호환이에요.”

“이 더러운 놈들. 돈을 쳐발라서 연구를 하다니.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를···.”

단천은 둘의 대화를 들으며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상태창이 말하기로는 ‘좀비 바이러스 극복’이 저 둘의 손에 달려 있다.

영 미덥지는 못하지만.

> 저 둘이 좀비 바이러스 해결하는 거 맞냐;

> 그냥 세상에 불만 가득한 매드 사이언티스트들 같은데

“헛소리는 거기까지 하고. 좀비 바이러스 해결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

“저희가 처음 만났을 때. 저희 전공이 뭐라고 했었죠?”

“바이러스 살포로 세상 멸망시키는 거라고 했었던가.”

> 사람을 매드 사이언티스트를 만들어 놨어 ㅋㅋㅋㅋ

> 신경안씀 ㄹㅇ

> 바이러스 머시기라는 거 기억한 것만으로도 장하다

“···저희가 악마도 아니고 그런 짓은 안 하죠. 저희 전공은 말씀대로 ‘바이러스’입니다. 정확히는 바이러스를 사용한 치료 및 백신 전파죠.”

그 이후로 둘의 기나긴 설명이 이어졌다. 요약하자면 보통의 바이러스가 인간들에게 병을 전파하는 것과 달리 바이러스의 RNA를 조작해서 병을 치료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본좌가 듣기에는 충분히 가능해 보이는군.”

“보통 들으면 고개부터 가로저으시던데. 천마님은 꽤 긍정적이시군요.”

“원래 이해하지 못하는 범부들이나 새로운 것에 저항감을 가지는 법이지. 본좌가 만든 혈맥 치료도 비과학적이라며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건 비과학적인 것 맞는 것 같은데.’

이중한과 김용태의 표정이 두둔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해도 BJ천마는 둘의 은인 아니던가.

거기에 BJ천마의 등에는 여전히 언월도가 단단히 매어져 있는 상태. 저 인간은 저 언월도로 수십 정의 총을 베어버린 인간이다.

둘은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 다음 앰플 하나를 꺼내 보였다.

“아무튼, 저희가 보존하고 있는 것은 과거에 세계 전체를 휩쓸었던 바이러스들입니다. 전파력이 어마무시하죠.”

“그런데. 전파력이 좋다고 해도 결국 질병 아닌가? 치료제가 없다면···.”

“그 치료제가. 어쩌면 있을지도 모릅니다. 바로 저 곰돌이의 몸 안에.”

이중한이 눈빛을 빛내며 청연이 품에 안고 있는 웅담이를 바라봤다.

뀨웅!

그 눈빛에 웅담이가 청연의 품으로 살짝 파고들었다.

“곰돌이 몸에 손을 대시려고요? 이 작은 애 어디 손을 대려고요!”

“미리 말해 두지만, 웅담이의 웅담은 본좌의 것이다. 아주 조금이라도 손을 대는 순간 팔족을 멸할 것이니 그리 알도록.”

> 천마님 몸보신거리를 탐낸다? 이거 역적 아닙니까?

> ㅇㅈ 어디 못된 놈들이 천마님 약을 탐내

“대체 곰돌이 웅담이 왜 천마 감독님 건데요?”

“하늘 아래 모든 물건은 본좌의 것이다.”

낮게 그르렁거리는 BJ천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중한과 김용태의 몸이 잠시 파르르 떨렸다.

“그. 피를 조금만 빼 보겠습니다.”

뀨에에!

웅담이가 서럽게 울거나 말거나 이중한이 웅담이의 팔을 묶고 혈액을 뽑아냈다.

“미리 말해 두건데. 아무런 성과가 없다면 웅담이가 흘린 피의 만 배를 보상해야 할 거다.”

“······.”

이중한은 곰보다도 인간의 권리가 낮은 아포칼립스 세계에 대해서 한탄하며 웅담이의 혈청을 분리해냈다.

“그리고··· 이게 좀비의 혈액입니다.”

“좀비 혈액은 언제 챙긴 거죠?”

“그, 좀비 사태 발생 초기에 챙겼습니다.”

“왜죠?”

“여, 연구를 하고 싶어서···. 괜찮습니다. 물릴뻔하긴 했지만 안 물렸거든요. 좀 긁히긴 했지만요.”

“용태 씨는 안 말리고 뭐 했어요?”

“좀비 팔다리 붙잡고 있었습니다.”

“······.”

> 이사람들도 ㄹㅇ 제정신은 아님

> 어떻게 파티원이 이상한 사람들만 모여 있냐;

관리감독을 하기 위해 군에서 파견된 부관과 군인들조차 주춤거리며 일행과 거리를 살짝 벌렸다.

저런 인간들 때문에 자신까지 도매금으로 묶여서 미친 놈 취급을 받다니.

“억울하군.”

> 제일 억울해하면 안 되는 사람 <<<<<<<

> 천마님이 왜 억울해요;;;

> 포브스 선정 세상에서 제일 억울하면 안 되는 사람 ‘BJ천마’

채팅창의 억까가 활활 타오르거나 말거나 단천은 담담했다. 세상이 억지로 자신을 욕하거나 말거나 중요한 것은 자신의 신념이었으므로.

“여러분들이 그렇게 바라봐도 저희는 아주 정상적인 연구원들입니다.”

“그렇겠지.”

“······아무튼, 섞어보겠습니다.”

이중한이 웅담이의 혈액과 좀비의 혈액을 섞어낸 다음 현미경의 대물 렌즈 앞에 혈액 샘플을 얹었다.

촤르륵! 스크린에 혈액 샘플이 확대된 화면이 화면에 띄워졌다. 스크린에 보이는 화면은 놀라운 것이었다. 회백빛을 띄는 세포가 활발하게 움직이는 다른 세포들에 의해서 먹히는 광경이었다.

“지금 저 먹히고 있는 건···?”

“좀비 바이러스에 잠식당한 세포들입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군요.”

웅담이는 만났을 때도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처음 곰돌이 주변에는 태반과 탯줄도 있었죠. 그렇다는 건 어미 곰이 좀비화가 되었을 때에도 몸 안에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곰돌이는 좀비화가 진행되지 않았죠. 감염이 됐을 게 분명한데도 말입니다. 그렇다는 건, 곰돌이의 몸 안에 좀비에 대한 ‘항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죠.”

“···당신들 지금 좀비 곰의 몸 안에서 태어난 곰을 아무 대책없이 반입한 겁니까?”

부관 한 명의 소소하기 그지없는 반론을 무시한 채 단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이해했다.”

> 이해 못했잖아 ㅋㅋㅋㅋㅋㅋ

> 아아··· 완벽하게 이해했다(이해못함)

그 이후는 일사천리였다. 이중한과 김용태는 일사불란하게 곰돌이의 몸에서 항체를 추출해내고, DNA를 분리해냈다.

“빠르군요.”

“원래라면 이것저것 따져서 만들어야 합니다. 생물 연구는 윤리 규제가 꽤 많거든요. 그런데 뭐, 알다시피 규제위까지 몽땅 날아가 버렸으니까요.”

“규제고 뭐고 하고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게 됐다는 거죠.”

“그리고 규제가 없으면 이 정도쯤이야 순식간이죠. 하하하.”

“···두 분. 매드 사이언티스트 아니죠?”

““아닙니다.””

> 너희들 매드 사이언티스트들 아니지?

> 네 아닙니다

> 그래 잘하자

치료용 바이러스의 효능이 검증되는 데까지는 반나절이라는 시간이 더 걸렸다.

[「좀비 치료제가 개발되었습니다.」]

[좀비 아포칼립스의 엔딩까지 큰 진전을 이룩했습니다.]

[포인트 $ 1,000,000이 가산됩니다.]

> ㅗㅜㅑ 포인트 뭐임;

> 개 화끈하게 쏘네 ㅋㅋㅋㅋ

> 일반적으로 게임해서는 절대 못 버는 포인트 ㅁㅊㄷ ㅋㅋㅋㅋ

“의외로 간단하게 끝났네요. 이걸로 좀비들은 모두 퇴치되는 거죠?”

“아뇨.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왜죠? 바이러스가 그냥 전파되게 두면 되는 거 아닌가요?”

“평소 상황이라면 그렇죠. 하지만 지금은 기온이 너무 낮아져 있는 상황입니다.”

설명에 따르자면 현재 기온이 너무 낮은 탓에 바이러스가 좀비들에게서 능동적으로 퍼지기까지 시간이 너무 걸린다고 했다.

> 요는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좀비들 사이에 퍼트릴 방법이 필요하다는 거네.

“요는, 바이러스를 인위적으로 좀비들 사이에 퍼트릴 방법이 필요하다는 거군.”

단천은 채팅창을 보고 읽은 것이 절대 아닌 깨달음을 중얼거렸다.

“그렇습니다.”

“이해가 빠르시군요.”

> 천마님 채팅 보고 읽으신 거 아니죠?

“아니다.”

> 아니신 거 맞죠?

> 어허 더 시끄럽게 군다면 천마펀치를 인중에 먹여주겠다

치료 바이러스는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이 바이러스를 좀비들 사이에서 퍼트릴 수 있는 ‘방법’만이 남은 것이다.

그리고. 이 방법을 맡을 사람은 BJ천마밖에 없었다.

“그 역할을. 본좌가 맡도록 하지.”

BJ천마의 입꼬리에 길쭉한 미소가 걸렸다.

***

“Oh, my god. 이게 진짜 되네.”

폴 레인은 화면 안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BJ천마의 모습을 바라봤다.

종말 생존자의 진짜 엔딩을 보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 중 하나가 바로 좀비 바이러스의 사멸이다.

문제는 이 좀비 바이러스를 없애는 백신 제작이라는 것 자체가 아포칼립스 상태에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데 있었다.

바이러스의 항체를 가지고 있는 존재를 파티 안에 들이고, 그것을 연구할 수 있는 사람들또한 얻는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것을 제작할 수 있는 제작환경까지 도달해야 한다.

이 모든 길은 아이러니하게도 ‘생존’에 반하는 짓을 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길들이다. 무가치한 파티원들을 들이고,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선택지를 골라야만 도달할 수 있는 위치.

생존에 절여질대로 절여진 플레이어라면 절대로 선택하지 않을 선택지들.

“···아마도 플레이를 해 본 유저였다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길이었겠지.”

게임을 시작하기 전 BJ천마의 종말 생존자 플레이타임은 0시간이었다. 비슷한 아포칼립스류 게임조차 전혀 해 보지 않은 자였기에 가능한 길.

이성과 반하는 짓을 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길.

인간성이라는 길 말이다.

“···킁.”

폴 레인이 코를 살짝 훌쩍였다.

“구린 메시지야.”

저런 메시지는 지금의 자신이라면 넣을 메시지가 아니었다.

과거의 자신이었기에 만들어낸 스토리다. 논리와 이성이 아닌, 인간성에 대한 애정만이 종말을 끝낼 수 있다는 메시지.

“저런 스토리라인을 어느 아포칼립스 게이머가 좋아하겠어.”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런 플레이로 얻을 수 있는 포인트가 말도 안 될 정도로 엄청나다는 것이다.

하나의 엔딩에 도달하면 얻는 포인트가 수십만 포인트니까, 인화 측에서 내야 할 돈은 수억, 혹은 십수억에 이르게 될 가능성이 컸다.

그거면 충분했다. 그것 외에는 필요없다.

저런 감성적인 게임은 아포칼립스 게임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어디. 블라이스 반응이라도 좀 볼까.”

블라이스의 「생존 VR」커뮤니티는 이런 생존류 게임을 플레이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다.

생존 VR 커뮤니티의 목표는 단 하나다. 아포칼립스류 게임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살아남는 것.

소위 ‘생존마’라고 불리는. 인간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생존 기계들의 사이트가 바로 블라이스 생존VR인 것이다.

“아마 지금쯤 욕을 할 수 있는대로 쏟아내고 있겠지.”

폴 레인은 중얼거리며 블라이스 화면을 켰다. 하지만 화면에 떠오른 블라이스의 글들은 폴 레인의 예상과 완전히 정반대의 것들이었다.

[이런 메시지도 나쁘지 않네.]

[종말 생존자를 한 번 더 플레이하고 싶어졌어.]

[나도. 가능할 지는 모르지만.]

“···어?”

몇몇 개의 글들이 아니었다. 인기글에 올라가 있는 글들도, 모두 종말 생존자의 스토리를 호평하고 있었다.

[어쩌면 저런 게 아포칼립스 게임의 본질일지도.]

[└이성과 반대되는 인간성 말이지?]

[그래. 우리조차 플레이를 하면서 감정적이 될 때 있잖아.]

[트롤 플레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나도 그런 트롤 플레이 자주 해.]

[나도.]

[다들 머저리들인 거로구만.]

채팅창의 게이머들은 하나같이, 과거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동조하고 있었다.

종말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언가에 대해서. 그리고 종말을 누구보다 잘 아는 플레이어들은. 생존을 위한 이성이 아니라 ‘인간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쩌면. 틀린 게 나였을지도.”

폴 레인의 눈이 차분하게. 블라이스의 글을 하나하나 읽어 나가기 시작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