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낙진이 끝나고 (6)
“이능자?”
“이능자. 코드 네임은 따로 있지만 현재 우리들은 그렇게 부르네.”
좀비 바이러스라는 정체 모를 질병이 중국의 어딘가에서 유래된 후.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다. 그러나 이런 일은 단순히 어두운 면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 이원혁이 하는 말의 요지였다.
“세계 곳곳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초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했지.”
“예를 들면?”
“염동력이라거나. 최면이라거나. 소위 젊은 애들 보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능력들 말일세.”
“그냥 도시전설 아닌가? 근거 없는 소리에 군이 흔들리면 안 될 것 같은데. 자고로 괴력난신이란 국가에서 가장 배격해야 하는 것이니라.”
그렇게 단천이 말을 끝내는 순간. 화륵. 하는 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이원혁의 옆에 서 있던 부관의 손가락에서 불꽃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 오
> 괴력난신··· 뭐라고요?
> 초능력같은 게 종말에 생겨날 수도 있는 거냐?
> 근데 나는 이 겜 하면서 왜 한 번도 못 봤냐;
> 중복 종말이 선택이 안 되어서 그런 거겠지. 스토리 모드란 게 지금 나오는 게 전부니까.
실제로 그랬다. 이어지는 ‘종말’들이 개연성을 가지고 연이어서 나오게 되어 있는 스토리모드에서만 생성되는 것이 바로 이 ‘이능자’였던 것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단천은 손에서 피어오르는 화염을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별 것 아니군.’
삼매진화 정도야 일류 좀 넘어서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잡술이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지금 눈 앞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크기는 기껏해야 라이터 불 수준이다.
여기가 천마신교면 고작 그 정도 불도 삼매진화냐고 잡아다 치도곤을 당했을 수준.
아무튼 중요한 것은 저런 종류의 연단술이 이 세계에도 존재한다는 것.
“당신이 총알을 잡아낸 것도 일종의 이능력이겠지.”
“이능력이 아니라 무도武道라고 한다.”
“무도라. 능력의 이름인가. 멋진 이름이군.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수 있나?”
“본좌의 능력은 하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영원제일인.”
“···말해줄 생각이 없나보군.”
방금 단천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모두 말했는데도 이원혁은 제대로 들어먹지 않았다.
> 천마님 표정 굳었다
> 살짝 짜증났네
> 곧 피바람 몰아칠듯 ㄷㄷㄷ
턱을 만지작거리던 이원혁이 입을 뗐다.
“총알이 발사되는 상황을 유도하고 여유롭게 총알을 받아냈다. 그 과정에서 보여주는 능력은 단순히 ‘반응속도’라고 말하기에는 초월적인 속도를 보였지.”
“······.”
단천이 마음대로 생각하라는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이원혁은 말을 이어나갔다.
“이야기를 듣기론, 총알이 빗발치는 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돌파했다던데. 그것도 그 무도의 능력이겠지.
···그렇다면 자네의 능력은 ‘예지’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데.”
뭔 헛소리야. 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단천이 총알을 수월하게 받아낸 것은 상단전이 열리면서 얻은 예지능력 덕분이기는 했으니까.
“내 생각이 맞았나 보군.”
“완전히 틀리지는 않았다.”
“저, 정말이에요?”
단천의 말에 뒤에 있던 청연이 눈을 크게 떴다.
“그, 그러고 보면 계속되는 상황에 말도 안 되는 대응을 계속해서 보여줬죠. 좀비들이 나타난 것도 그렇고, 제가 있는 곳을 찾아낸 것도 그렇고.”
“그게 다 미래를 읽어냈단 건가?”
“···단시일 내만 되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면··· 미래에 닥칠 또다른 일도 볼 수 있는 건가요?”
단천은 잠시간 실눈을 떴다. 한 마디도 보태지 않았는데 죽 치고 장구치고 이야기가 이어진다. 거기에 옆에 멀뚱하게 서 있던 이중한과 김용태는 단천을 꽤 흥미로운 실험체 보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아마 단천이 보여준 무위가 아니었다면 실험체로 잡아다 어디론가 데려가고 있지 않을까 하는 시선이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진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거짓 또한 아니었다. 자신은 실제로 이 세계에 닥칠 미래를 알고 있었기에.
단천은 실눈을 뜬 그대로 눈을 옆으로 돌려 ‘상태창’을 바라보았다.
[다음 종말 ‘D’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합니다.]
[다음 종말 ‘E’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합니다.]
[다음 종말 ‘F’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합니다.]
···
> 따지자면 미래 예지능력 있는게 맞긴 하지 않음?
> 앞으로 뭔 종말이 언제 올 지 알고 있긴 하니까
> 완전 구라는 아니긴 하네
> 와;; 그럼 스토리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만들어져 있었던 거임?
채팅창에서 경악과 놀라움이 터져나왔다. 보통 이러한 종류의 게임에서 ‘종말이 닥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플레이어의 존재는 기묘하기 그지없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왜냐하면 플레이어는 어떤 종말이 언제 올 지 알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종말 생존자에서의 플레이어는 ‘이능자’라는 설정을 통해 플레이어가 ‘어떤 종말이 언제 올 지 알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스토리 안으로 편입시키고 있었다.
> 빌드업 미쳤다;
> 아니 이 빌드업을 왜 플레이 불가능한 난이도에 집어넣냐고 ㅋㅋㅋㅋ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고 나자 주변의 모든 시선은 단천에게 쏠렸다. 거의 확신에 가까운 눈초리지만 확언을 바라는 눈빛들.
“혹시. 이 세상에 ‘다음 종말’이 닥쳐오나요?”
“그래.”
“···시간은 얼마나 남았죠?”
“대충 일주일 남짓.”
“닥치는 종말은요?”
단천은 다시 한 번 종말 카운터를 바라봤다.
“닥치는 종말은··· ‘운석 충돌.”
[종말 D : 「운석 충돌」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합니다.]
[7일 7시간 12분]
운석 충돌이면 그래도 괜찮은 편, 이라는 말을 청연이 시작하려는 찰나에 다시 한 번 BJ천마의 입이 열렸다.
“그리고. ‘해일’이다.”
[종말 E : 「해일」까지 남은 시간을 표시합니다.]
[7일 7시간 12분]
다음으로 닥칠 종말은. 한꺼번에 두 가지였다.
***
> 조졌네
> 타이머 이제 봤는데 저거 뭐냐 ㅋㅋㅋㅋ
> 한개로도 막막한데 두개 동시에 터지면 어쩜???
패닉 상태인 채팅창과 달리 장내는 꽤 담담했다.
“운석이 충돌하고, 그 여파로 해일이 밀어닥치는 거군요.”
“그럴 가능성이 크지. 규모는 어느 정도지? 그런 것도 알 수 있나?”
“알 수 없다.”
> 그래도 운석 충돌은 꽤 버티기 쉬운 미션임
> 꽤 정도도 아니고 그냥 엄청 쉬운편 아님?
> ㅇㅇ 맞음 그냥 지진 좀 크게 났다고 생각하면 되는 정도 난이도임
“정정하지. 그리 크지는 않은 운석인 모양이다.”
“그런게 실시간으로 갱신도 돼요?”
“가끔은.”
다행인 점은 운석이 그렇게까지 커다란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정말로 지구를 반으로 부숴 버릴 수 있는 종류의 운석이었다면 지금의 상태로는 처리하기가 상당히 까다로웠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지금의 본좌의 몸으로는 아쉽게도 운석과의 정면승부는 피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운석과 정면승부라뇨.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 그러게 누가 들으면 운석이랑 1:1로 충돌한다는 이야기인줄 알겠네
> 천마님이면 쌉가능 아님?
> SF 그만봐 인간이 어떻게 운석이랑 맞다이를 까냐?
단천의 눈이 일자로 찢어졌다. 중원에서의 무위를 가지고 있었다면 당장 저 헛소리하는 것들에게 운석을 모래조각으로 만드는 것을 보여줬을 터인데.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종말 생존자의 일행들은 몰라도 시청자들은 그토록 많은 것들을 보여 줬건만.
그 정도 보여 줬으면 자신이 운석 정도는 잘라버릴 수 있다는 능력을 믿어야 하는 게 인지상정 아니던가.
믿음이라고는 없는 서윤학 같은 놈들이 세상에는 참 많다.
“···운석. 그리고 해일이라.”
“지금 성원 시에서 벗어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성원시는 다리로 이어져 있는 해양 중심의 도시다. 높은 파도가 치면 땅이 그대로 수몰될 가능성이 높다. 평소라면 수몰이 되고 땅이 돌아올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라도 있겠지만. 지금은 기나긴 겨울이 와 있는 상태.
도시가 물에 잠기게 되면 끝장이 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도시를 나가면 어디서 살아남는단 말입니까?”
대규모의 시민들이 이주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작업이다. 아무리 가까운 도시를 생각해도 몇십 키로미터는 움직여야 하는데. 불가능한 일이다.
“가능한한 최소한의 인원만 선별해서 이주를 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지.”
대부분의 사람들을 희생하고 최소한의 인원만 데리고 탈출을 하겠다는 말이다. 논리적인 대답이었으나 장내의 그 누구도 고개를 끄덕이지는 않았다.
“···왜 동의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지껄인 본인도 실행할 의지가 없으면서 큰 소리는.”
“···군인은 국민을 지키는 게 0순위다. 지키기로 판단한 민간인의 범주가 있다면. 한 명도 버릴 수는 없어.”
민간인을 조금도 버리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도 저런 말을 했다는 건. 다른 수단이 있다는 뜻이었다.
소위 가오 잡는 정파 놈들이나 하는 짓이 바로 지금 이원혁의 표정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저렇게 가오 잡는 경우엔 뭔가 다른 수단이 있다는 점 정도다.
“다른 수단은?”
“피난을 시 외부로 하는 것은 무리지만. 시 내부에서 내부로 하기에는 시간이 충분해.”
“하지만 대피할 만한 곳이 있나?”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시의 동부 지역이네. 서부 지역은 지대가 높아서 해일로부터 큰 피해 없이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문제는···.”
“문제는?”
“서부 지역이 좀비들로 완전히 점령했다는 데 있지.”
“그럼 안 되는 것 아닌가?”
“안 되는 거지.”
정정하자. 이원혁의 표정은 가오는 오지게 잡으면서도 별 다른 대책이 없는 ‘세상 망했는데 아무튼 가오는 잡는’ 정파놈들의 표정이었다.
썩을 놈 같으니라고.
단천은 발로 이원혁의 목을 걷어차고 싶다는 생각을 실행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어차피 별 도움이 안 되면 자신의 심기를 건드린 값은 치러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단천이 출수를 하려는 찰나.
“···도심지의 좀비들이라면, 처리할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말을 한 것은 지금까지 별 말 없이 계속 상황을 듣기만 하던 김용태였다.
“미리 말해 두는데. 지금부터 되도 않는 말을 하다간 방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 놈과 한 배를 타게 될 줄 알도록.”
> 이사람 방금 이원혁 줘팰 생각 하고 있었던 거임?
> 아니 최소한 무장한 군인들이면 대우는 좀 해 줘라 ㅋㅋㅋ
> 그런 거 대우하면 천마님임?
> 그건 맞는 말이긴 해
> 남, 녀, 노, 소, 인종, 성별, 종교, 국적, 강자와 약자, 그 어떤 것 상관없이 공명정대 그 자체인 천마님;
> 공명정대(하게 줘팸)
“좋아. 이해했다면 말을 해 보도록.”
단천의 차분한 말에 잠시간 오소소 몸을 떤 김용태가 살짝 눈치를 보며 입술을 축인 다음, 그 입을 열었다.
“그, 좀비들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히든 메시지가 떠올랐다.
[히든 메시지]
[시나리오 「종말 극복 : 좀비 바이러스」가 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