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72화 (172/212)

39. 낙진이 끝나고 (5)

>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 그러게;;

현재의 성원시의 상황을 들은 채팅창의 분위기는 성원시가 생각보다 잘 살아남아 있다는 것에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다.

원래의 성원시는 무슨 종말을 선택하던지 다방면으로 완전히 부서져 버리는 도시다. 좀비 아포칼립스의 경우에는 좀비의 번창을 막지 못해서 멸망하고, 핵전쟁의 경우에는 전역에 핵폭탄이 죄다 쏟아져 내려서 멸망하고, 혹한의 경우에는 도로가 완전히 얼어붙어서 죽음의 도시가 된다.

그런데 지금의 성원시의 상황은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다.

“이를테면 여러 가지 종말이 겹치면서 상황이 좋아졌다는 거군.”

좀비 아포칼립스가 제대로 퍼지기 전에 핵폭탄이 발사됐고, 원래라면 쏟아졌을 핵폭탄들도 좀비들로 인해 여러 곳으로 퍼진 덕분에 많이 쏟아지지 않았다.

이독제독, 혹은 이이제이의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이게 다 천마님 덕분임

> 그게 그렇게 되냐

> 인생사 새옹지마 ㄷㄷ;;

“시민들도 대부분 통제 상태에 들어왔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서 직업도 재분배되고 있죠.”

“이 모든 일들의 책임자는?”

“16군단장의 군단장님이신 이원혁 대장님입니다.”

상황이 모두 파악되자 단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쪽의 소개가 끝났으니 이쪽의 소개를 간단하게라도 하는 게 쌍방간에 편하다.

“본좌는 여기에 생존을 위해 왔다. 본좌 주변에 있다면 앞으로 닥칠 종말들에서 살아남기가 꽤 편할 거다.”

“···앞으로 닥칠 종말들이라뇨? 앞으로도 이런 거지같은 일들이 계속 일어난다는 겁니까?”

“그럴지도.”

단천은 흘긋 눈으로 남아 있는 종말 타이머를 확인한 다음 가볍게 대답했다. 성원시에 살아남은 사람의 수가 꽤 많다는 것은 마음에 드는 일이었다. 다음에 닥칠 종말들은 사람이 많아야 유리한 류의 종말들도 섞여 있었으니까.

“들어온 이유는 모두 설명했으니,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지.”

“···지금 그냥 안으로 들어가신다면 전 부대 차원에서 추적이 들어갈 겁니다.”

“협박하는 거냐?”

“아, 아니, 혀, 협박이 아니라 걱정을···. 악! 악! 아악!”

단천의 언월도가 이호진의 몸을 몇 대 후려갈겼다.

> 협박이 아니라 걱정한 것 같은데

> ㄹㅇㅋㅋㅋㅋㅋ

“고작 인간 따위가 본좌의 안위를 걱정하지 마라.”

“······.”

“하지만 말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군.”

‘그러면 왜 때린 건데.’

이호진의 눈이 불만으로 가득찼지만 이호진은 군 생활 짬밥이 꽤 있는 인간이다. 말도 안 통하는 인간 상대로 불만을 얘기했다가 추가로 매를 버는 짓을 하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 BJ천마 안티팬 +1

> 진정한 슈퍼스타는 팬과 안티를 모두 미치게 만드는 법;;

> 근데 그냥 다 썰어버리고 왕으로 군림하면 되는 거 아님?

> ㄹㅇ 아포칼립스면 절대왕정제 부활 쌉가능이지

> 천마신교 지부 설립 가즈아ㅏㅏㅏㅏ

채팅창에서는 또다른 천마신교 지부를 만드는 것을 요청하는 채팅들이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채팅창의 반응과는 달리 단천의 반응은 심드렁했다.

“천마신교라는 것은 마냥 다른 파벌의 머리를 따고 천마신교 간판만 갈아치우는 방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엄격히 본좌의 눈으로 골라낸 인재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곳이 바로 천마신교인 것이다.”

> 그랬?나?

> 생각해 보니까 진짜 그러네.

> 근데 엄격하게 골라서 들여보낸 것 맞음?

> 사실 들여보낸 건 아니고 강제로 납치하는 거에 가깝지

“납치는 아니다. 거부의사를 표현한다면 천마신교에 들어오지 않을 수 있다.”

> 거부의사는 어떻게 표현합니까?

“본좌를 무력으로 이기면 된다.”

> 안 된다는 소리잖아 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가능은 하다는 거지.”

> 지상 최강의 악질 집단이네

> 그래도 들어가고 싶어하는 사람 널렸음

> ㄹㅇ 채팅창에도 천마신교 예비교단원 뱃지 달고 있는 사람들 넘쳐나잖음

결론은, 머리를 처리하지는 않는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이 지역을 지배하고 있는 이원혁과 담판을 짓는 수밖에 없다.

“이원혁을 만나러 가야겠군.”

***

이원혁을 만나러 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무전을 통해 상황을 설명하자마자 이원혁의 부관 쪽에서 먼저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했기 때문이다.

이원혁이 있는 곳은 원래의 부대가 있는 곳이었다.

“으으. 살면서 다시는 짬냄새 나는 곳에 안 오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저도요.”

이중한과 김용태가 노골적으로 표정을 구기는 것을 보고 청연이 되물었다.

“방공호도 짬냄새 나는 곳 아닌가요?”

“거긴 다르죠.”

“맞습니다.”

“뭐가 다른데요? 쓰는 물품들이나 식량이나 그게 그거인 것 같은데.”

“분위기라거나, 막사에서 풍겨나는 냄새라거나··· 아무튼 다릅니다.”

“거 참. 나라 지켜주는 사람들한테 말이 심하시네들.”

> 으 막사 분위기 미쳤다

> 진짜 이런 것까지 구현해야 됐냐?? 너무한 거 아님???

> 왜케 군인들 싫어함; 나라 지켜주는 고마운 사람들인데

> 군인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전역하고 나서 군대 알러지가 생기는 거임. 일종의 PTSD랄까.

PTSD라. 그러고 보면 중원에서도 황군 생활을 오래 하던 놈들이 황군 생활을 끝내고는 두번 다시 군대와 관련된 일을 하기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은 적이 있기는 했었다. 그런 자들이 황군을 더욱 노골적으로 싫어한다는 것도.

황군뿐 아니라 문파에서 있는 각종 무력대도 상황은 비슷했다. 상명하복식 문화가 철저한 데다가 한 번 가입하면 반강제적으로 일정 기간을 복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다행인 점은 단천이 있었던 혈귀단에서는 그런 불순한 종자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혈귀단은 한 번 단원이 되면 스스로 나가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이었다.

─ 혈귀단 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방법은 두 가지지. 저 또라이 단주를 줘패서 이기거나, 스스로의 목을 자르고 북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거나. 나는 후자를 추천하지. 그게 더 쉬울 것 같거든.

─ 아. 그게 아니면 어디 전투에 휘말려서 뒤지는 방법도 있긴 하지. 근데 알다시피 우리 혈귀단은 뒤져도 이름은 그대로 남는다. 단주가 사망계를 절대 안 올리니까. 그렇게 전투에서 뒤지면 술자리에서 매일같이 까여. 그 새끼 뒤져서 자리 모자란다고.

─ 단주 그 새끼도 미친 놈이라니까. 애초에 뒤진 놈은 뒤진 놈이지 살든 죽든 부대원이라고 사망계 안 올리니까 맨날 인원이 부족하잖···.

─ ······뒤? 뒤에 뭐가 있는데?

─ ···단주. 언제부터 계셨습니까?

당시 서윤학의 얼굴은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단천을 확인하고 강낭콩꽃보다도 더 파리해졌었다. 서윤학 인생에 꼽힐 정도의 파리한 얼굴이었다.

평생 최악은 아니었다. 그 다음날 부단주 실력 확인용 대련을 통해 시체 직전까지 갔던 탓에 그보다 더 파리해졌으니까.

아무튼 단천이 기억하는 ‘황군’의 느낌. 혹은 시청자들이 말하는 ‘짬내’가 부대 안에도 똑같이 흐르고 있었다. 세상 군대가 풍기는 분위기는 죄다 비슷한 모양이다.

부대 안은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이곳저곳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경비가 삼엄하네요.”

“딱히 그렇지는 않다. 당장 지하를 통한 습격에 대한 대비가 되어있지 않으니까. 본좌라면 십오 분 내에 탈취할 수 있을 거다.”

“어련하시겠어요.”

> 15분 내에 군부대 탈취(실제로 가능함)

> 15분이 뭐냐 적당한 무기 주면 10분 컷도 가능함

> 적당한 무기 뭐

> 광선검

> 광선검이면 10분이 아니라 1분컷이지;;

> ㅇㅈ합니다

심드렁한 일행의 반응과는 달리 채팅창은 BJ천마가 군부대를 털면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채팅이 얼마나 이어졌을까. 일행은 군단장이 있는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잘 왔네.”

이원혁이 단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형적인 꼿꼿한 무인처럼 보이는 표정과 행동거지.

‘이 인간도 띠껍구만.’

관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인간도 전형적인 협객 군상의 인간이다.

어째 이번 게임에서는 여기저기 다닐 때마다 중원에서는 협객이라고 불리는 인간군상들을 많이 만나는 느낌이다.

중원에서는 평생 싸돌아다니고도 스무 명도 겨우 채운 정도였던 것 같은데.

방 안에 있는 사람은 이원혁. 그리고 이원혁 옆에 있는 부관이 전부였다.

“본좌가 암살할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나?”

“그래서. 나를 암살할 건가? 방법은 있나? 무장은 다 해제한 채일 텐데?”

“무기는 수단이 아니지. 암살 수단은 본좌의 존재 그 자체다.”

아리송한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말거나 단천은 다리를 꼰 채 자리에 앉았다.

“보아하니 인간으로는 보여줄 수 없는 몸놀림을 보여줬다고 하던데.”

“그럴지도.”

“조금 보여줄 수 있나?”

“그거. 던져줘 보도록.”

단천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것은 이원혁의 책상에 있던 커터칼이었다. 커터칼이라고 해 봤자 무기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원혁이 던져준 커터칼을 단천은 받아들었다.

“원한다면. 보여 줘야겠지.”

말을 끝낸 단천의 몸이 튕겨오르듯이 일어나 이원혁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런 미친!”

부관이 바로 가지고 있던 권총을 꺼내들어 단천을 향해 발포했다.

탕!

교과서에 나와도 될 정도로 깔끔하기 그지없는 사격이었다. 초근접거리의 사격이었던 만큼 빗나갈 일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BJ천마의 몸은 총알에 관통되지 않았다. 심지어 총이 쏘아졌는데도 주변 그 어디에도 발포로 인해 생겨났을 구멍이 생겨나지 않았다.

“?”

모두가 당황하는 순간. 부관은 바로 다음 발포를 하기 위해 손가락을 움직이려 했다.

“멈추게.”

“하지만···!”

“저 천마라는 사람의 움직임이 멈췄잖나. 그냥 자네의 발포를 얻어내기 위한 동작이었을 뿐이야.”

“···알겠습니다.”

“상황파악이 빠르군.”

“칭찬 고맙군.”

“총알은 어디 있지?”

“여기 있다.”

쏘아진 총알은 다름 아닌 단천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 ???

> 뭐고

> 이건 또 뭐야 ㅋㅋㅋㅋ

쏘아진 총알을 반으로 갈라내는 것은 쉽다. BJ천마의 시청자들이라고 한다면 총알을 반갈죽하는 BJ천마의 모습을 보고 또 봐 온 것이었으니까.

실제로 너무나 친근한 장면인 나머지 동작을 흉내내는 시청자들도 매우 많은 것이 바로 검으로 총알을 갈라내는 것이었다.

물론 성공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지만.

하지만 지금의 장면은 그보다 훨씬 충격적인 것이었다. 쏘아진 총알이 거의 온전한 상태로 BJ천마의 손바닥 위에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뉴비님이 $1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 이건 뭐 어케한 거임?]

“그냥 단순한 손장난이다. 검을 총알 속도에 맞게 휘둘러 부서지지 않게 받아내는 것 뿐이다.”

> 대체 어디가 단순하냐고

> 그냥 평소처럼 피지컬로 다 때려받는 개사기 컨트롤 고인물 무빙이었구나

> 단순(언제나처럼 원리만 단순)

> 진짜 저러다 허위광고로 고소당해야 정신차리지;;

채팅창의 분위기가 언제나 자조로 물들고 있거나 말거나. 이원혁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만족하나?”

“충분히 만족스럽군. 역시. 자네도 ‘이능자’인 모양이군.”

“이능자?”

그게 뭔데 씹덕아.

처음 듣는 소리에 단천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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