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70화 (170/212)

39. 낙진이 끝나고 (3)

[히든 메시지]

[선택지 : ‘종말에서도 살아남는 것들’을 선택하셨습니다.]

[생존 포인트가 가산됩니다!]

[기부금 $10,000이 가산됩니다!]

“점수 가산?”

> 이런 점수도 있었냐

> 포인트 개쩔게 주네

> 아니 종자를 구한 것도 아니고 구하러 간다는 선택지만으로 천만원? ㅁㅊㄷ;;

> 포인트 낭낭하게 땄으니 이제 그냥 편한 데로 갑시다

> 뭐래 지금 가면 포인트 미친듯이 벌릴 건데 당연히 종자 구하러 가야지 ㅋㅋㅋㅋ

아마 단순히 종자 보관소로 간다는 결정만 나왔다면 채팅창에서 ‘왜 쓸모없는 짓을 하느냐’와 같은 말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점수가 가산된다는 말이 나와서 그런지 부정적인 반응은 전혀 없었다.

물론 채팅창이 부정적이거나 말거나, 시청자가 0명이거나 10억명이거나 단천은 자신의 뜻대로 했을 테지만.

> 그럼 앞으로 점수 가산 주는 선택지만 골라서 하면 되겠네?

> 근데 뭘 해야 점수 가산됨?

> 몰?루

“말해 두지만 본좌는 구태여 점수를 준다고 해서 불쾌한 선택지를 고르지는 않을 거다.”

생존 포인트를 얻기는 했다. 하지만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단순히 하고 싶은 선택지를 골라 하던 중에 얻은 선택지일 뿐이었다.

앞으로도 쭉 그럴 터였다.

구태여 포인트를 따기 위해서 하고 싶지도 않은 선택지를 고르며 알량거리는 것 따위는 질색이었기에.

“거의 도착했습니다.”

종자 보관소에 도착한 일행은 묵묵히 트럭에서 내렸다. 종자 보관소의 닫힌 문을 열고 지하로 들어서자 수천 종의 씨앗들이 있는 은행이 나왔다.

못해도 몇 톤은 될 법한 규모다.

“이걸 모조리 가져가야 하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이중한과 김용태가 나서서 자루에 씨앗을 종류별로 조금씩 옮겨 담았다. 한 종류당 10톨 정도. 벼를 비롯한 농작물의 경우에는 20톨 정도씩을 챙겼다.

“다 가져갈 필요는 없습니다. 이 정도만 가져가도 괜찮을 테지요.”

“남은 씨앗은?”

“···저희 말고 다른 누군가가 가져갈 수 있게 놔 두는 겁니다. 만에 하나 저희가···.”

“길거리에서 뒈져도 괜찮도록?”

“···대충 그렇습니다.”

“잘 챙기도록.”

> 말넘심 ㅋㅋㅋㅋ

> 아니 근데 맞잖아

> ㅇㅈ;

> 아니 근데 아무리 상황이 그래도 저런 식으로는 말 안 하지;;;

이중한과 김용태는 계란을 품는 암탉이라도 된 것처럼 씨앗이 든 주머니를 품 안에 집어넣었다.

[히든 메시지]

[선택지 : ‘종말에서도 살아남는 것들’ 클리어.]

[생존 포인트가 가산됩니다.]

“이제 더 챙길 건?”

“없습니다.”

“없어요.”

“더 찾아가봐야 하는 데는 있나? 가족들은?”

이중한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그게. 저는 결혼은 안 했습니다.”

“못 한 거지.”

“제 옆에 있는 김용태씨도 결혼 못 했고요. 아무래도 학위 따고, 포닥 따고, 연구소 잡고 교수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혼기를 놓쳤죠. 부모님은 돌아가셨습니다.”

“저도요 이런 꼴 안 보고 가셨으니 호상이셨다 싶네.”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군. 본좌도 천애고아다.”

일행의 눈이 자연스럽게 눈이 청연을 향해 모였다.

“저도··· 찾으러 갈 필요 없어요. 좀비 사태 터졌을 때. 어머니랑 영상통화 했거든요.”

영상통화를 했다. 그 이후에 말이 없는 것을 보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집에 안 찾아가봐도 되나?”

“···네.”

“집에서 유품이라도 챙기는 건.”

“괜찮아요. 이런 상황에 무슨 유품이야.”

대의를 중시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것’을 가벼이 여기는 경향이 있다. 유품이라도 하나 챙기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폐를 끼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일 터다.

“마음대로 하도록.”

“그럼 다음은 식량을 구할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걸로···.”

“그보다. 저긴 뭐 하는 데지?”

단천의 손가락이 종자 보관소 옆에 있는 철창으로 향했다.

철창 너머에는 꽤 큰 건물과 수많은 우리들이 있었다.

“저기요? 과거에 생물학과에서 사용하던 사육실입니다.”

“동물들을 키우는 곳이라는 거군.”

“동물들 많이 키웠죠. 소음 때문에 이런 한적한 곳에 설치된 곳이니까요. 원숭이, 쥐, 닭같은 것들부터···.”

“곰도 키웠나?”

“곰이요? 반달곰을 키운 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방사한 게 10년쯤 전일 겁니다. 북한산 어귀쯤에 한 쌍을 방사했는데. 그때 욕 엄청 먹었죠.”

“그렇군.”

“그런데 반달곰은 왜···?”

“저기에. 곰이 있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10년쯤 전에 방사를 했습니다. 저기가 빈 지는 오륙년쯤 되고요.”

그워어어!

꽤나 먼 거리다. 눈도 여전히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라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일반인의 귀에는 저 곰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을 터.

단천은 말을 더 하는 대신 검과 청룡언월도를 들고 철책을 향해 걸어갔다.

“···어디 가십니까?”

“곰 보러.”

“곰 없다니까요. 곰이 있다 그래도 구경하고 있을 시간이···.”

단천의 눈이 이중한의 품에 있는 씨앗들로 향했다. 이중한이 작게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씨앗 같은 것도 챙기는데 잠시 곰 구경도 할 수 있지. 란 눈빛에 더 할 만한 대답이 궁색해진 탓이다.

“저도 갈래요.”

“청연 학생도?”

“같이 움직여야죠. 리더 가는데.”

“야생 곰에게 습격당하면 어쩌려고요?”

“습격할 수 있는 곰을 북한산에 방사를 했어요?”

“그.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저희는 바이러스 연구 쪽입니다. 방사한 연구실이랑은 거리가 멀죠.”

> 책임회피 ㅁㅊㄷ

> 아무튼 제가 한 일은 아닙니다만?

청연이 움직이자 남은 연구자들도 함께 단천을 따라 사육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육실에는 단천의 말대로 반달곰 한 마리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반달곰 ‘이었던’ 것 한 마리다.

그워어어!

반쯤 부서져 버린 머리와 입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침. 반달곰이 어떤 상태인지 알아보는 데에는 신중하게 쳐다볼 필요도 없었다.

[좀비 베어]

[좀비화가 된 곰]

> ㅅㅂ

> 좀비 곰임?

> 그냥 곰도 못 이기는데 좀비 되면 이길 수 있냐?

> 튀어야 되는 거 아님? 왜 여기 온 거야;;

좀비화가 된 야생동물은 극도로 흉포해지며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을 찢어발긴다. 곰이라고 하면 산에서의 최상위 포식자. 그런 동물이 좀비화가 됐다면 평범한 인간으로서는 도망치는 게 상책.

그워어어!

그런데 좀비 베어의 상태가 이상했다. 분명히 소리가 났을 텐데도 좀비 베어는 괴성을 질러댔다.

침을 질질 흘리며 어딘가로 다가가려는 좀비 베어의 움직임.

하지만 움직임은 가로막혔다. 다름 아닌 좀비 베어 스스로의 앞발로 인해.

좀비베어의 앞발이 앞을 향해 움직이던 스스로의 머리를 후려갈겼다.

퍼억!

살점이 뜯어져나가며 좀비 베어의 몸이 뒤로 살짝 물러났다.

“뭐죠?”

“왜 저런 짓을?”

“저길 봐라.”

단천이 언월도로 겨눈 곳에는 조그마한 우리가 있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것은 우리보다도 조그마한 새끼 곰이었다.

아마도 이제는 좀비가 되어 버린 곰의 새끼이리라.

어미 곰은 좀비가 되어 버린 상태에서도 새끼 곰을 지키고 있었다.

그것도 다름 아닌 스스로에게서.

“어떻게 하죠?”

“바이러스에 감염된 곰 고기. 먹을 수 있나?”

“잘 익히면 먹을 수 있습니다. 부패하지 않았을 경우라면요.”

날씨가 추운 탓에 좀비 베어의 몸은 썩 괜찮아 보였다. 거기에 이 추위 속이라면 곰의 모피도 체온 보존에 유리할 테고.

“그럼 결정됐군.”

단천은 언월도를 꺼내든 다음 벽을 타고 좀비 베어의 목을 쳤다.

푸확!

다른 데 눈이 팔린 좀비 베어의 머리를 잘라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머리를 잃은 좀비 베어의 몸이 잠시 발광했다. 당황했다면 반격에 당했을수도 있지만. 상대는 BJ천마였다.

서걱! 서걱!

단천의 언월도가 좀비 베어의 관절부를 무너뜨렸다.

좀비 베어의 몸이 바닥으로 힘없이 엎어졌다.

[좀비 베어를 처치하셨습니다.]

> 왜케 쉽게 처리됨;;

> 좀비베어면 상대 더럽게 힘들지 않냐? 이거 버그임?

> 버그는 BJ천마 컨트롤이 버그지

> 관절부에만 정확하게 쑤시는 거 봄?? 미쳤다 ㄷㄷㄷ

> 왜케 쉬워보임?

> 그야··· BJ천마니까···

단천은 쓰러진 곰의 몸을 언월도록 뒤적였다. 언월도의 끝에 조그마한 덩어리 하나가 끌려나왔다.

“그건 뭐에요?”

“웅담.”

[웅담]

[곰의 웅담입니다. 섭취 시 스테미너 최대치와 체력이 향상됩니다.]

혹시나 해서 찾아봤는데 웅담이 역시나 있다.

“웅담 위치는 어떻게 아는 거죠?”

“웅담 위치를 알아야 곰을 만났을 때 웅담을 빼먹지.”

“제발 상식적인 대답을 해 주면 안 돼요?”

‘충분히 상식적으로 대답하고 있는 것 같은데.’

> 오늘도 저세상 대답 ON

[뉴비랍니다 님이 $1,00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웅담···위치를 기억해 둘 것··· 메모···.]

> 뉴비맨 오랜만이네 ㅎㅇ

> 오늘도 뉴비에게 쓸데없는 지식 쑤셔넣기 성공;

> 쟤 얼마전에 다키스트 에이지 클리어했더라

> 뉴비맨 재능충이었네;;;

단천은 만족스럽게 웅담을 손 위에 얹었다.

중원에서 가장 흔하게 만날 수 있는 영약이 바로 저 웅담이다. 중원에 있는 일류고수치고 웅담 위치를 모르면 마교에서 온 간첩 소리를 듣는 것이다.

물론 단천은 마교에서 온 사람이 맞긴 했다. 하지만 간첩은 아니었다. 정체를 구태여 숨기고 다닌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 지존. 저희 교를 증오하는 무리들이 많은데, 정체 좀 숨기고 다니면 안 됩니까? 혹시라도 암습이 있다면···.

─ 암습이 제발 왔으면 좋겠다니. 제발 그런 말씀 좀 하지 말아 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슬픈 표정을 짓던 서윤학의 얼굴이 떠오르거나 말거나 단천은 웅담을 가방에 집어넣었다.

“그렇게 쳐다봐도 안 준다.”

“먹을 생각도 없어요.”

“그래. 남은 사체는 해체 작업을 하고 트럭에 싣도록 하지.”

“그보다 쟤는 어떻게 하죠?”

청연의 눈이 갈 데 없이 동공이 흔들리고 있는 새끼 곰에게 향했다. 오랜 시간 굶은 탓인지 피골이 상점해져 있었다.

단천은 새끼 곰의 목덜미를 잡아 들어올렸다.

샤아앗! 샤악!

새끼 곰이 위협음을 내 봤지만 그 목소리조차도 거의 가라앉아 있었다.

“죽여 봤자 딱히 고기가 나오진 않겠군.”

“···먹겠단 생각으로 본 거에요? 저렇게 귀여운데?”

“새끼 상태이니 웅담도 작을 테고. 오래 굶어서 그다지 몸보신도 안 되겠지.”

“···버릴 거에요?”

“키워 보지.”

“키운다는게 웅담 보고 키운다는 소리는 아니죠?”

“이 녀석에게 먹일 간에 좋은 음식을 많이 확보해놔야겠군.”

> 키워먹을 생각 ON

> 뭐 종말에서 살아남으려면 동물 키워야되긴 함

> 보통 돼지나 개 키우지 곰은 안 키워

> 웅담 어케 참음?

“이름은··· 웅담이가 좋겠군.”

“안 돼요. 절대 안 돼.”

“저도 반대입니다.”

“반대입니다. 웅담이는 좀···.”

3대 1로 부결이다. 하지만 단천은 구태여 이름을 바꾸겠다고 억지를 부리지는 않았다.

단천은 중원에서 무수한 깨달음을 얻은 무인이었다. 단천이 얻은 깨달음 중에는 이름은 피상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깨달음도 존재했다.

무명승이 그랬었다. 이름은 아무 것도 아니오. 중요한 것은 실존과 본질이라고.

이 새끼곰의 이름이 뭐가 되건, 본질이 변화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마세요!”

청연이 새끼곰을 단천의 손에서 빼앗아든 후에도 단천의 눈은 웅담메이커(熊膽maker)에 한참을 고정되어 있었다.

“쑥쑥 크도록 해라.”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끼이잉.

단천의 말을 들은 것인지 웅담이가 청연의 품으로 한층 더 파고들었다. 청연은 위험물질이 가까히 있기라도 한 것처럼 뒷걸음질을 쳤다.

잘 크라는 덕담에도 저런 방식으로 반응이라니. 청연이나, 웅담이나 그리 성격이 좋지는 않다.

> 그런 표정으로 쑥쑥 크라고 하면 청연이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저렇게 반응해 ㅋㅋㅋ

> 웅담아 최대한 천천히 커라;; 그게 네 신상을 위해 이롭다;;;

> 그래도 게임에 마스코트 하나 생겼네

> 마스코트(시한부)

> 마스코트(겸 비상식량)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