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종말 선물 세트 (3)
부와아아앙!
그워어어어!
질주하는 오토바이 배기음을 따라 엄청난 수의 좀비들이 쫓아오고 있었다.
“피리 부는 사나이가 된 기분이군.”
“엄청 여유로우시네요. 앞에 한 덩어리 더 있어요.”
뒤에서 몰려오는 좀비들은 크게 문제가 없다. 그러나 앞에서 달려드는 좀비들은 따로 처리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처리를 하는 것은 물론 BJ천마의 몫이었다.
단천의 언월도가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번쩍였다.
푸확!
좀비들의 몸체가 잘려나가는 동시에 옆으로 깔끔하게 치워졌다. 오토바이는 속도를 전혀 줄일 필요도 없이 앞으로 질주해나갔다.
> 와 미쳤다 거의 관운장 ㄷㄷㄷ
> 오관돌파하냐 ㅋㅋㅋㅋ
“이렇게 빨리 달리고 있는데도 잘도 창을 휘두르시네요. 국대 출신이에요?”
“국대?”
“국대 몰라요? 국가대표.”
“본좌는 국대따위가 아니다. 본좌는 굳이 따지자면 시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오토바이를 몰던 청연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모로 꺾었다.
“특이한 사람이네.”
> 우리도 똑같이 생각함
> 처음 볼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런 인간임
> 그보다 핵 터지는 건 얼마나 남음?
[핵무기가 곧 발사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방사선을 피할 수 있는 장소에 빠르게 몸을 숨기십시오!]
“곧 핵무기가 떨어질 거다.”
“그보다 핵폭탄이 떨어진다는 건 어떻게 아시는 거죠?”
“그거야.”
“···하긴. 좀비가 이렇게 설쳐대고 있으니 핵무기를 쏜다는 발상 자체는 이해가 되네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국민들 아닌가? 생각보다 더 좀비들이 많이 창궐한 걸까요?”
“그거야 모르지.”
“설상가상이네요. 영화 보면 이런 종말은 하나씩만 오던데. 뭐가 잘못됐다고 이런 짓이 연달아서 오는 건지.”
> 죄다 천마님 때문임
> 당신이 세상을 이렇게 만든 거야!
> 근데 애초에 그렇게 따지면 게임 설치를 하질 말았어야지
> 그렇게 따지면 게임 만든 것부터가 잘못 아니냐?
> 인간이 존재해서 게임이 만들어진게 잘못 아니냐?
> 그러면 물고기가 뭍으로 기어나온 것부터가 잘못이지;;
> 맞네 물고기가 잘못했네
이 모든 잘못을 애꿎은 물고기가 뒤집어쓰고 있을 무렵 둘은 방공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방공호에 도착한 단천은 쫓아오는 나머지 좀비들을 베어냈다. 청연도 도왔다. 청연의 검술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주장이긴 한 모양이었다.
그워어어어!
“으윽!”
“다리를 좀 더 크게 움직여라. 근력이 약하면 그만큼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으아아아!”
물론, 나쁘지 않다는 것이 단천의 눈에 찬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단순히 죽도를 대기만 하면 점수를 따내는 경기와 실전은 다르다. 적을 확실하게 끝장낼 수 있을 만큼의 힘을 담아야 한다.”
“감독님은 왜 그렇게 잘 알아요? 누가 보면 수만 명은 죽여본 줄 알겠네.”
“본좌가 악귀도 아니고 수만명을 죽이지는 않았다.”
> 하는 거 보면 수만명 죽여봤을 것 같은데
> ㄴㄴ 게임에서 죽인 적들 다 합쳐도 수만마리는 안 됨
> 수만명은 못 죽였지만 악귀는 맞음
> 겜악귀 ㅇㅈ합니다
좀비들이 정리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단천의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청연이 좀비를 베어내는 데 익숙해진 덕이다.
후. 헉. 헉. 헉.
청연이 마지막 좀비를 베어내고 바닥에 주저앉아 헉헉거렸다.
“물렸나?”
“···힘드냐고 물어보는 게 먼저 아닐까요?”
“물렸나?”
“안 물렸어요.”
“안 물렸다면 일어서도록.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있지 않다.”
바로 뒤에 산을 끼고 만들어진 방공호는 몇 겹의 철문이 이어져 있는 공간이었다. 내부에는 꽤 많은 양의 식량이 비축되어 있다. 최소한 둘이 며칠간 버티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단천은 방공호에 들어간 다음 문을 완전히 닫아잠궜다.
[안전장소에 도착했습니다. 휴식을 취하십시오.]
단천은 몸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안 씻어요? 피가 그렇게 많이 묻었는데.”
“얼마나 오래 버텨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물을 낭비하는 것은 그리 좋은 짓이 아니다.”
“그냥 귀찮은 건 아니고요?”
> 창질 하는 거 봤을 텐데도 할 말 다 하네 ㅋㅋㅋㅋ
> ㄹㅇ; 뭔 깡다군지 모르겠음
> 목숨을 잃는게 두렵지 않은 사람 ㅋㅋㅋㅋ
청연이 몸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난 다음 단천도 몸을 씻어냈다.
[몸에서 피비린내가 사라집니다. 좀비들에게 위치를 들킬 확률이 줄어듭니다.]
[청결도가 올라갑니다. 병에 걸릴 확률이 줄어듭니다.]
몸을 씻었을 뿐인데도 상태 메시지가 떠오른다.
“꽤나 친절한 상태창이로군.”
> 아무래도 종말에서 신경써야 할 게 워낙 많으니까
> ㄹㅇ 신경쓸 거 너무 많음;;
단천은 음식의 수량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핵이 터지고 나면 며칠간은 내부에서 버텨야 할 터였다.
“음식의 수량은 아슬아슬한 수준이다.”
“아마 그렇겠죠. 오래 되고 관리도 잘 안 돼 있는 곳이니까.”
그래도 두 명이면 나름대로 괜찮은 수준이다. 거기에 망보기를 할 수 있는 일행도 있으니 기본적인 수준의 생존력은 갖춰졌다고 봐야 한다.
그렇게 잘 준비를 하려던 단천의 귀에. 희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문 두드리는 소리다.
“누군가가 왔군.”
“···저희 말고 다른 생존자가 왔다고요?”
“그래. 문에서 소리가 들린다.”
청연이 귀를 기울였지만 그녀에게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 뭔 소리남?
> ???
> 천마님이 소리난다고 하면 나는 거임;
> 다른 생존자가 있다고?
BJ천마의 청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여러 번 증명된 상태였음에도 시청자들은 다른 생존자가 찾아왔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애초에 좀비 아포칼립스가 터진 상태고, 이곳은 거의 고립되다시피한 장소였기 때문이다.
“어떻게 할 거지?”
“어떻게 하긴요. 들여보내야죠!”
“미리 말해두지만. 식량의 양이 많지 않다. 바깥에서 온 사람은 아마 두 명.”
“명 수까지 알 수 있어요?”
“대충은. 아무튼 두 명을 들이면 먹을 수 있는 식량의 양은 반으로 줄어든다. 생존을 위한 물품들도, 방호복도, 방진 마스크도 수량이 절반이 되는 셈이지.”
“그 사람들을 구하지 않는 쪽이 맞다는 듯 말씀하시는군요.”
“실제로도 그렇다.”
> 이거맞음
혼자서 버티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두 명은 필요하다. 하지만 두 명은 최소인수인 동시에 최적화된 사람의 수이기도 하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사람의 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생존은 불리해진다.
“도와줘야 해요.”
“그럼 구해야겠군.”
단천은 무표정하게 대피소의 문을 열어젖혔다.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청연이 물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신 거죠? 저는 사람들이 왔다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저 사람을 구하는 게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굳이 저한테 안 알려주셔도 됐잖아요.”
“나는 저들을 구할 생각이었다.”
“···아까는 사람이 늘어나면 생존이 힘들어진다면서요?”
“본좌는 사람이 최대한 많이 살아남기를 바란다.”
“···왜요?”
> 그러게
> 왜?
> ㄹㅇ; 왜 사람 살리려고 하는 거임?
“별 거 아니다. 사람이 많이 살아남아야 본좌의 위대함을 대대손손 전할 테니까.”
단천은 말을 마친 다음 문을 열었다. 문 밖에는 문을 두드리던 사람 두 명이 서 있었다.
“멀뚱이 있지 말고 빨리 들어오도록.”
BJ천마의 채근에 두 명이 문으로 들어왔다. 단천은 두 명이 들어오자마자 방공호의 문을 다시 걸어잠궜다.
방공호의 문을 닫자마자 떠오르는 메시지.
[핵전쟁이 시작됩니다.]
쿠웅.
온 세상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
인화의 모니터링실. 모니터링실에 켜져 있는 것은 두 스트리머의 방송이었다.
한 쪽은 중화권 최대의 스트리머중 한 명인 ‘판하오’. 그리고 그 반대편에 있는 쪽은 BJ천마였다.
“판하오 쪽은 어떤가?”
“아이템 수급 굉장히 원활합니다. 버티기 좋은 방공호도 선점했고, 멤버도 에이스중의 에이스로 선택했습니다.”
“이 정도면 사흘을 모두 버틸 수 있겠군.”
“물론입니다.”
“BJ천마 쪽은?”
“···그게. 두 명을 추가로 방공호에 들였습니다.”
“미쳤군.”
리 창퐁의 얼굴에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스쳐지나갔다.
“들여보낸 두 명은?”
“그게, 확인은 안 되지만 연구원 쪽의 사람으로 추정됩니다.”
“저 인간. 아포칼립스물 게임이 처음인가?”
“게임 타이머로는 그렇습니다.”
아포칼립스류 게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기심이다. 한정된 자원, 부족한 생존자원,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물건은 얻을 수 없고, 자연히 사람의 수는 적으면 적을수록 생존에 유리해진다.
그런데도 사람을 네 명으로 늘렸다는 것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플레이다.
“하긴. 처음부터 종말을 다 선택한 것부터가 게임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는 것이긴 하지.”
BJ천마는 종류별로 종말을 죄다 선택을 해 놓은 상태다. 해일도, 핵겨울도 모조리 선택해놓은 상태. 만에 하나 오래 살아남는다면 급속도로 기부금이 커지겠지만.
“저 상태면 잘 해봐야 인게임에서 이틀 정도면 끝나겠구만.”
종말 생존자는 타이머가 1:1로 대응되는 VR게임과는 달리 체감시간을 극도로 늘리는 종류의 게임이다.
인게임 타이머로 이틀이라면 실제 시간으로는 얼마 되지도 않는 시간인 것이다.
“지금 BJ천마의 시청자 수는?”
“40만명을 좀 넘었습니다.”
40만명. 사실 중국의 방송으로 따진다면 40만명은 엄청나게 많은 수의 시청자수는 아니다. 기껏해야 중위권에 들 정도의 시청자 수.
하지만 BJ천마의 시청자는 한, 일, 유럽, 북미에서 방송을 보는 소위 알짜배기 시청자들이다.
구매력도 높고, 충성도도 높은 시청자들.
그리고 BJ천마가 죽는다면 바로 저 시청자들은 ‘판하오’의 시청자로 유입이 될 터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종말 생존자의 엔딩을 보고 싶기는 할 테니까.
“대박이로군.”
고작 몇만 달러 수준으로 이런 대형 이벤트를 할 수 있다니. 거기에 종말 생존자와 생존투쟁이 갖고 있던 인지도는 한층 더 벌어질 터.
“다른 나라에서의 인지도 개선도 확실하게 되겠지.”
리 창퐁이 킬킬거리며 웃었다.
“어이. 폴 레인에게 영상통화 연결하도록.”
몇 번의 통화음이 끝나자 리 창퐁의 휴대폰에 폴 레인의 수척한 얼굴이 떠올랐다.
“오랜만이로군. 버디.”
[버디는 개뿔.]
리 창퐁과 폴 레인은 한때 미국의 대학에서 동문수학한 동기였다. 폴 레인은 학교 내에서 언제나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물론 학교를 다니다 개발을 하겠다며 중간에 중퇴를 하기는 했지만.
“얼굴이 수척해 보이는군. 사업이 잘 안 되나?
[······.]
폴 레인은 리 창퐁의 이죽거림에 대답하지 않았다. 리 창퐁이 자금력을 동원해 뒤에서 사업투자를 받지 못하게 회사들을 압박하고 있다는 것을 모를 만큼 멍청이가 아니었기에.
“방송은 잘 보고 있나? 보아하니 네가 고른 말이 그렇게 오래 살아남지 못할 것 같은데.”
[그럴지도.]
“저놈이 곧 뒈지고 나면 너희 회사도 이제 완전히 끝장나겠지.”
리 창퐁은 폴 레인의 저주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폴 레인은 리 창퐁의 말에 쿡. 하는 웃음을 터트렸을 뿐이다.
“뭐가 웃기나?”
[아니. 뭐, 천마가 죽거나 말거나 우리 회사는 거의 끝난 상태인걸. BJ천마가 죽는 것과 우리가 망하는 것에는 연관이 없다는 말이다.]
“벌레가 주제파악은 잘 하고 있군.”
[그리고 BJ천마는 곧 죽지 않는다. 저 BJ천마는 그리 호락호락하게 게임오버를 당해주지 않을 거다.]
리 창퐁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리 창퐁도 종말 생존자를 플레이해본 경험이 있다. 두 개 이상의 종말을 선택한 상태는 생존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의 지옥도가 펼쳐진다.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놓고도 모르나? 게임을 안 해 본 건가?”
[해 봤지. 실제로 나도 종말 두 개를 고르면 하루도 못 버텨. 종말을 모두 선택하면 클리어 근처도 못 가지.]
“그런데 왜 BJ천마가 버틸 수 있다고 단언하는 거지?”
[단언하진 않았어. 하지만 최소한 클리어를 위한 첫 번째 조건은 통과했거든. 그러니 방심하지 마라는 뜻이다.]
“···클리어를 위한 조건?”
[그래. 클리어를 위한 조건.]
클리어. 폴 레인은 분명히 ‘클리어’라고 말했다.
종말 생존자는 클리어가 있는 종류의 게임이 아니다. 그저 멸망한 세계에서 오래 버티는 종류의 ‘엔드리스’ 형태의 샌드박스 게임일 뿐.
“아포칼립스류 게임에 엔딩은 없어. 그저 ‘버티는 것’ 밖에는.”
[그렇게 상상하니까 네가 베끼기밖에 못하는 삼류인 거다.]
“이 개새끼ㄱ─!”
뚝.
[통화가 종료되었습니다.]
폴 레인은 수화기를 놓은 다음 킬킬거리며 웃었다.
리 창퐁이 자신의 도발에 길길이 날뛰고 있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놈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베낀다는 말이다. 원래 베끼기 좋아하는 놈은 베껴 만들었다는 소리를 못 참는 법이다.
폴 레인은 계속 울려대는 휴대폰을 완전히 끈 다음, TV로 BJ천마의 방송을 바라봤다.
종말 생존자는 자신이 만들었지만 최악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는 게임이다. 하지만 어쩌면 저 인간이 엔딩에 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폴 레인은 얼핏 했다.
“잘 해보라고. 천마.”
히든 클리어 조건 중 하나인 ‘인원 늘리기’를 선택한 BJ천마를 바라보며 폴 레인은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