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63화 (163/212)

37. 기부 행사 (4)

[방송을 시작합니다.]

> ㅎㅇㅎㅇㅎㅇ

> 기부 이벤트 가즈아ㅏㅏㅏㅏ

방송이 시작되자 여느때처럼 채팅이 채팅창을 가득 뒤덮었다.

천공을 플레이하면서 불어난 시청자들이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BJ천마의 시청자수는 세계 전체로 봐도 순위권 안에 들어갔을 정도로 규모가 커졌다. 방송을 시작하면 트인낭의 가장 상단의 순위권에 자주 노출된다는 뜻이다.

거기에 ‘생존투쟁’과 ‘종말 생존자’가 정면으로 맞붙었다는 소식은 전 세계에 전파된 상태.

즉. 세계에서 유입되는 시청자들이 더욱 늘어나고 있는 상태라는 뜻이다.

> OMG 그가 방송을 켰어!

> 영미권 발화자들은 얼마나 있나?

> 꽤 많은 것으로 보이는군!

> 따로 방을 만들 생각은 없나?

외국인 시청자들이 늘어난 만큼 번역기를 사용한 듯한 채팅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서유나에게 듣기로는 이런 규모의 방송에서는 시청자들의 언어에 따라 방을 따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방송에서 스트리머가 한 말을 제대로 번역해주는 동시통역사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단천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천마의 이름 아래 모인 이들을 구태여 나누지 않기 위해서다. 그리고.

“본 방을 최고로 즐기고 싶다면 한글을 배우도록.”

단천은 중원에서 중원어를 썼다. 꼽고 더러웠지만 중원어를 안 쓰면 의사소통이 안 됐기 때문이다.

천마위에 오르고 나서는 한국어보다 중원의 언어가 더 익숙해져서 구태여 한국어를 반포할 의미를 찾지 못하게 됐고.

뭣보다 세종대왕의 가장 큰 업적인 한글을 중국에서 반포해 버린다는 것이 굉장히 기분이 나빴던 탓에. 아쉽게도 중원의 한국어화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아무튼. 결론은 목마른 놈이 우물을 파야 한다는 것이다.

“본좌가 한국어를 쓰니 꼬우면 한국어를 배우도록.”

> 맞지 우리 방송이 한국어 방송인데 ㅋㅋㅋㅋㅋ

> 양키놈들아 천마님 방송 100% 즐기고 싶으면 빨리 한글 배워라ㅋㅋㅋㅋ

> OMG. 그의 패기에 저는 한국어 학당을 등록했습니다!

> 나는 돈을 사용해 한국어 번역사를 쓸 생각입니다!

> 오 개꿀 한국어 할줄 알면 이제 취직 되는거냐?

> 방구석 트붕이 취준서 출격준비 완료!!

> 아니 한국어랑 외국어까지 2개국어가 돼야지 취직이 되지 ㅋㅋㅋㅋ

> 방구석 트붕이 취준서 출격취소!!!

게다가 다양한 사람들이 섞여 있는 채팅창이 단천은 훨씬 마음에 들었다.

정, 사, 마가 모두 용광로처럼 섞여 있게 됐던 단천이 있던 시대의 중원처럼.

‘잘 지내고 있으려나.’

단천이 천마의 위에 오른 이후 정, 사, 마는 서로 으르렁거리기는 했어도 그 교류가 활발했다.

마치 힘을 합쳐서 함께 상대해야만 하는 희대의 무림공적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공공의 무림공적이 누군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잘 화합이 되는 무림이 그만큼 태평성대였다는 거다.

[기부 이벤트가 시작됩니다!]

[이벤트 중 참여 스트리머분들의 후원금은 기부금으로 환산됩니다!]

단천은 떠오르는 메시지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이전의 중원에 대한 생각을 지웠다. 지금 중요한 것은 돌아갈 수도 없는 중원에 대한 생각이 아니었으니까.

[스트리머 BJ천마가 참여한 게임은 ‘종말 생존자’입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게임을 실행한다.”

휘오오오오!

게임을 시작한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스쳐지나갔다.

단천이 서 있는 곳은 황량한 들판이었다. 들판을 뒤덮고 있는 회색빛깔의 재. 하늘에서 떨어져내리는 수많은 유성우. 그리고 저 너머에서 보이는 짐승들의 눈빛까지.

바닥에 반쯤 묻혀 있는 시계의 초침이 클로즈업됐다. 시계의 초침이 서서히 느려지고, 이내 멈췄다.

그리고 떠오르는 글자들.

[종말 생존자]

[생존하십시오. 할 수 있는 최대한까지.]

종말 분위기가 나는 게임 시작화면에 단천은 가볍게 감탄했다.

> 크으으으으

> 오랜만에 보는데도 뽕은 오지네 ㅋㅋㅋㅋㅋ

> 야 진짜 보면 잘 만들긴 했다

> 생존투쟁의 이펙트가 더욱 좋아 보인다!

> 응 다음 인화 첩자 ㅋㅋㅋㅋ

> 베껴가서 리터칭을 돈 발라서 했으니 더 좋아 보이지 ㅋㅋㅋㅋ

분탕을 치기 위해 들어온 것처럼 보이는 채팅이 슬슬 보이기 시작했다. 채팅창에서 벌써부터 보이기 시작하는 싸움의 기미. 하지만 단천은 구태여 들어온 분탕을 처리하지 않았다.

‘결국 플레이로 증명하면 저런 채팅들은 단숨에 묻어 버릴 수 있다.’

그런 확신이 단천에게는 있었다.

“그보다. 종말 생존자는 생존 게임인 모양이군.”

> ????

> 그걸 이제 알았냐 ㅋㅋㅋㅋㅋㅋㅋ

> 기부 이벤트인데도 게임 공부 하나도 안 해옴 ㅋㅋㅋㅋ

[페브리온 님이 $10을 기부해 주셨습니다!]

[평소대로의 천마님입니다만????]

> 그건 맞지

> ㅇㅈ ㅋㅋㅋㅋ

> 근데 이름만 들어도 서바이벌 게임인 건 알 수 있지 않냐?

“···물론 알고 있었다.”

> 몰랐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

> 조용히 하도록 천마님의 검을 모가지에 쑤셔박고 싶지 않다면

> 조용히 안 하면 천마님한테 검 맞을 수 있는 건가요??

순식간에 올라가는 채팅들. 분탕처럼 보이던 채팅은 이제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

물론 단천 자신이 게임에 대해 준비해오지 않았다는 근거 없는 낭설이 채팅창을 점령하기 시작했지만.

“그보다. 자세한 기부금 산정 방식은 어떻게 되는 거지?”

[기부금 산정 방식을 공지합니다.]

단천의 물음에 답하기라도 하듯 기부급 산정 방식이 떠올랐다.

[1. 종말에서 생존한 시간만큼 기부금이 증가합니다.]

[2. 종말의 난이도에 따라 기부금 상승폭이 올라갑니다.]

[3. 종말에서 오래 생존할수록 기부금 상승폭이 올라갑니다.]

[4. 기부금 상승 수치는 인게임에서 표시됩니다.]

···

뒤에도 여러 가지 조건들이 있지만 요는 오래 살아남을수록 그 금액이 올라간다는 거다.

> 그럼 그냥 제일 낮은 난이도로 계속 버티면 되는 거 아님?

“그건 안 된다.”

기부 이벤트는 사흘동안 이어진다. 배율이 낮다면 사흘 내내 버티더라도 후원금을 높게 받지 못할 확률이 있다.

“게다가 이건 인화의 ‘판하오’와의 목숨을 건 혈투다.”

> 혈투가 아니라 기부 아니었냐?

>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ㅋㅋㅋ 기부하는 좋은 마음인거지 ㅋㅋㅋ

> 천마 표정은 좋은 마음이 있는 사람의 표정이 아닌데?

> (포 떠서 죽여버리겠다는 표정)

이런 기부 이벤트에 앞서서 소위 ‘바이럴’이라고 할 수도 있는 vs구도를 만드는 일은 꽤 흔했다. 상대가 있으면 그만큼 의욕도 솟고, 기부하는 사람들의 수도 늘어나니까.

그리고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단천와 인화 사이의 관계가 진짜라는 것만 빼면.

“최선의 선택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난이도에서, 최대한 오래 버티는것이겠지.”

> 근데 그러면 천마쪽이 불리한 거 아니냐?

> 왜?

> 생존투쟁 개 쉬운 게임이잖아

카피캣인 ‘생존투쟁’은 종말 생존자에 비해서 훨씬 쉬운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포칼립스 생존 게임은 게임의 특성상 능동적인 활동이 극도로 제한되기까지 한다.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플레이가 적다면 그만큼 쉽게 점수를 벌 수 있는 생존투쟁 쪽이 유리하다.

> 근데 그래서 판하오쪽은 기부금 얼마나 모임?

> 계속 방송 왔다갔다하면서 기부금 확인해야 됨?

하지만 기부금을 일일히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에 메시지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판하오가 생존투쟁의 플레이를 시작했습니다!]

[곧 판하오 측의 기부금을 화면에 표시합니다.]

[판하오 측의 누적 기부금 : $30,000]

> 3만?

> 방금 시작했대매

> ㅁㅊ 장난아니네;;;

> 왜 저렇게 기부금이 늘어난 거임?

> 중국에서 후원금 개많이 들어와서 그래

중국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시장이다. 게다가 인구수도 엄청나게 많다.

실제로 판하오의 평균 시청자수는 100만이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숫자였으니까.

잠깐 대화가 이어지는 와중에도 누적 기부금은 눈에 보일 정도로 늘어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빨리 시작해야겠군.”

[종말 난이도를 선택하세요!]

[운석 충돌 : 기부금 상승률 1.0(기본)]

[해일 : 기부금 상승률 1.4]

[폭설 : 기부금 상승률 1.15]

[좀비 아포칼립스 : 기부금 상승률 1.7]

···

[핵전쟁 : 기부금 상승률 2.0]

화면에 십수 가지의 종말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옆에는 제각기 기부금 상승률이 적혀 있었다.

> 핵전쟁 ㄱㄱㄱㄱㄱ

> 판하오는 핵전쟁으로 시작했음

> 한시라도 빨리 시작해야됨

> ㄱㄱㄱㄱㄱㄱ

단천은 주저 없이 가장 높은 배율인 ‘핵전쟁’을 눌렀다.

[핵전쟁만을 선택하셨습니다.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시작]

> ㄱㄱㄱㄱㄱㄱㄱㄱㄱ

> 가즈아ㅏㅏㅏㅏ

> 가자!!!!!

> 핵전쟁에서 살아남기 가자아아아아아

시작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바로 시작될 것이 분명한 화면. 하지만 단천의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다.

> ?

> ???

> 뭐함

“이거. 무슨 의미지?”

> 뭐가?

단천의 눈은 떠오른 메시지를 다시 한 번 읽고 있었다. 지금 ‘생존투쟁’을 플레이하고 있는 판하오의 경우에는 핵전쟁을 선택했다고 했다.

“궁금한 것이 있다.”

> ?

“짭퉁 생존자의 경우에는···.”

> 짭퉁 생존자 아니라 생존투쟁

> 아니 그래도 공식 스트리머인데 짭퉁이라고 하면 안 되지 ㅋㅋㅋㅋ

“크흠.”

단천은 짧게 헛기침을 한 다음 다시 입을 열었다. 정확하게 말을 할 필요가 있었다.

“짭.퉁.생.존.자의 경우에는. 종말을 고르면 바로 게임이 시작되나?”

> 발음 정확해진 거 보소 ㅋㅋㅋㅋ

> 이 인간 빠꾸없이 지르네 ㅋㅋㅋㅋㅋㅋㅋ

> 후진기어가 없는 남자 BJ천마 ㅋㅋㅋㅋ

> 후진 왜하냐고 다 밟고 나가면 되는데 ㅋㅋㅋㅋ

> 미친놈인가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질문에 대답은 없고 ‘ㅋ’만 도배되는 광경을 보고 단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후원마 님이 $4 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ㅇㅇ 짭퉁 생존자는 종말 종류 고르면 바로 시작됨]

“역시 그런가.”

단천은 다시 자신의 눈 앞에 떠올라 있는 메시지를 바라봤다.

[핵전쟁만을 선택하셨습니다.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단천의 손가락은 시작 버튼을 누르는 대신.

촤라라락!

다른 ‘종말’들을 선택해나갔다.

[운석 충돌을 선택하셨습니다.]

[해일을 선택하셨습니다.]

[폭설을 선택하셨습니다.]

[좀비 아포칼립스를 선택하셨습니다.]

···

[핵전쟁을 선택하셨습니다.]

순식간에 떠오르는 십수 줄의 종말 선택 메시지.

[운석 충돌, 해일, 폭설, 좀비 아포칼립스··· 핵전쟁을 선택하셨습니다. 게임을 시작하시겠습니까?]

> ????

> 이거 여러 개 선택되는 거였냐?

“핵전쟁만 ‘을’ 선택했다는 말은. 핵전쟁 외에도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게임을 베껴 만들어서 하나밖에 선택이 되지 않는 것과 달리 말이지.”

> ㅁㅊㄷ ㅋㅋㅋㅋ

> 이런걸 캐치하네

> ㄴㄴ 걍 공부해 온 거라니까??

> 뭐래; 공부해 오고 말고 종말 생존자에서 여러 개 선택을 왜 함

> 2개만 골라도 절대 못버팀 ㅋㅋㅋ 객기부리지 말고 핵전쟁만 고르셈 ㅋㅋㅋㅋ

여론은 반반이었다. 여러 가지 종말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는 종말 생존자를 플레이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

그리고 종말 생존자를 아는 듯한 고인물들은 만류를 시작했다.

종말 생존자에서 종말이 여러 개가 겹쳐지면 얼마나 지옥같은 난이도가 펼쳐지는지를 아는 사람들이 바로 고인물들이었기에.

> 아 여러 개 하면 못 버팀?

> 너는 해일이랑 좀비 동시에 오는데 살아남을 수 있음?

> 못 살아남지

> 그런 거임

> 그런 거구나

> 그냥 다 빼고 핵전쟁만 하자

> 그래도 천마님인데 2개 정도만 하는 건 어떰? 좀비 아포칼립스 핵전쟁이면 해볼만해 보이는데

고인물들의 정보가 퍼지자 시청자들의 의견도 빠르게 움직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종말 하나만, 혹은 두 개만 선택해도 충분하다는 이성적인 채팅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채팅을 치고 있는 스트리머는. 이 세상에서 이성과는 가장 거리가 먼 인간이었다.

“너희는. 본좌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단천의 손가락이 아주 조금의 주저도 없이 게임 시작 버튼을 눌렀다.

[게임을 시작합니다.]

> 돌겠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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