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62화 (162/212)

37. 기부 행사 (3)

“알겠습니다. 오케이. 대금 지불은 최대한 빨리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라쿤 컴퍼니의 CEO. 폴 레인은 전화를 끊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게임 ‘종말 생존자’를 만든 라쿤 컴퍼니의 상황은 그리 좋지 않았다.

방금 전 전화로 그나마 사정을 봐 주던 회사에서도 대금 지불 요청이 들어왔다.

“끄응.”

폴 레인이 의자에 앉아 머리를 짚고 있는 중에. 또 다시 휴대폰이 울렸다. 안 봐도 뻔하다. 다른 대금 지불 독촉 전화겠지.

“지금 자본 마련을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자본 마련? 무슨 말이지?]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번역기로 발음되는 듯한 남자의 목소리였다. 섞여 들어오는 원래의 발음을 보건데 동양의 어느 나라쯤이지 싶다.

‘피싱 전화인가?’

번역기가 활성화되고 나서 피싱 전화는 한층 더 활발해졌다. 편견을 가지기는 싫지만 이런 전화는 동양. 그 중에서도 중국에서 가장 잦게 이뤄지는 사기였다.

하지만 폴 레인은 편견을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다시 정중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지?”

[본좌는 스트리머 BJ천마다. 라쿤 컴퍼니. 맞나?]

“맞다.”

BJ천마라면 손가락에 꼽히는 대형 스트리머다. 폴 레인도 몇 번 그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실로 위대하다고 말해도 될 정도의 컨트롤.

[본좌가 이번 이벤트에서 그쪽의 게임인 ‘종말 생존자’를 플레이하게 됐다.]

‘사기 맞네.’

폴 레인은 바로 이게 사기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애초에 BJ천마는 천공에서 어마어마한 숫자의 시청자를 얻었다. 그리고 ‘천공’은 기부 이벤트에 이번에는 빠졌다.

BJ천마가 구태여 기부 이벤트에 참여할 이유도 없고. 만에 하나 참여했다고 해도 구식 게임인 ‘종말 생존자’를 플레이할 가능성은 더더욱 낮다.

아마 부스에 있는 연락처를 보고 연락을 한 보이스피싱이겠지.

“이 악질 사기꾼 새끼.”

[뭐?]

“사기 칠 시간에 떳떳하게 돈 벌 생각이나 해.”

[···말을 잘 하도록. 본좌가 아직 능공허도는 할 수 없으나 등평도수는 충분히 가능하다. 네놈의 집에 찾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르릉거리는 저주파음에 폴 레인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기묘한 일이었다. 사람이 하는 말인데도 마치 거대한 야수의 위협음을 듣는 듯한 느낌이다.

몸을 떨던 폴 레인은 겸손하게 휴대폰을 양 손으로 잡아들었다. 사기꾼의 전화다. 그러니 끊어도 상관없지만 왜인지 그래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집에 찾아온다는 헛소리가 진짜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이 강력하게 들었던 것이다.

“당신. 무슨 일로 전화를 한 거지? 사기를 쳐 봤자야. 우리 회사엔 더 돈이 없다고.”

[본좌는 천마가 맞다. 정 못 믿겠다면 본좌의 방송 다시보기를 보도록.]

폴 레인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으로 BJ천마의 방송을 찾아 켰다.

[다시 보기]

[가장 시청자들이 많이 열광한 부분을 재생합니다.]

[본좌가 이번 기부 이벤트에서 플레이할 게임은. ‘종말 생존자’다.]

“······.”

화면 안의 BJ천마가 자신들의 게임인 종말 생존자를 플레이하겠다는 말을 내뱉고 있었다.

“다, 당신. 진짜야?”

[물론 진짜다. 세상에 천마는 본좌 한 명 뿐이다.]

그러고 보니 휴대폰 너머의 인간도 ‘본좌’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었다.

그리고 숨길 수 없는 저 오만함까지. 평범한 사기꾼이 흉내낼 수 있는 종류의 어법이 아닌 것이다.

그제서야 폴 레인은 휴대폰 너머에 있는 것이 진짜 BJ천마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정말로 우리 게임을 플레이해주는 건가?”

[물론이다. 보아하니 인화 쪽과 제대로 이야기가 되지 않은 모양이군. 하긴, 하는 꼬라지를 보니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것 같기는 했지만.]

“인화? 방금 인화라고 했나?”

인화라는 말에 폴 레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지금 자신들이 자금난에 시달려서 폐업 직전에 있는 것이 인화 때문이었으니까.

“놈들이 대체 무슨 상관이지?”

[보아하니 조금 설명이 필요할 것 같군.]

“······.”

뭔가를 말해야 할 타이밍이 분명한데도 휴대폰 너머에서는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왜 말을 안 하는 거지?”

[설명해 주기 귀찮은데. 직접 찾아보면 안 되나?]

“······.”

폴 레인이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관련된 기사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BJ천마 ‘종말 생존자’플레이 확정.]

[게임사 ‘인화’, 표절논란 정면돌파?]

관련 기사창은 이미 BJ천마가 종말 생존자를 플레이한다는 소식으로 뒤덮혀 있었다.

빠르게 기사를 읽은 폴 레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된 거군.”

[21세기가 좋긴 좋아. 중원은 대신 설명을 해 줄 놈을 데리고 다녀야 했는데.]

마치 본인은 21세기 말고도 살아본 경험이 있다는 듯이 말하는 BJ천마였다. 폴 레인은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해 온 개발자다. BJ천마와 말을 오래 섞어서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어렴풋이 감지했다.

“···일단. 놈들의 요청을 나는 방금 처음 들었다.”

[그런가.]

“···솔직히 말하면, 받아들이고 싶지 않군.”

레인도 ‘종말 생존자’와 ‘생존투쟁’의 겉보기 퀄리티가 꽤 차이난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옆에 두고 비교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인화 쪽과는 사실 연결조차 되고 싶지 않아.”

[왜지?]

대답을 맡겨놓기라도 한 것처럼 당당한 물음이다. 본인은 남에게 인터넷을 뒤지게 만들어 놓고서는 자신은 대답을 듣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

레인은 순간적으로 ‘너도 인터넷으로 찾아봐’라는 말을 할 뻔했지만 참아냈다.

문명인이라는 것은 상대와 똑같이 대응하지 않는 것이 레인의 믿음이었으므로.

“놈들이 종말 생존자를 그대로 베껴서 게임을 만들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렇다.]

“···만약 그것만으로 끝났다면 괜찮았을 거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어.”

물론 인화 놈들 때문에 중국에서 판매되었어야 할 종말 생존자의 판매량이 바닥을 찍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뿐이 아니었다. ‘인화’의 진짜 막장 짓거리는 그 이후에 벌어졌던 것이다.

“우리 라쿤은 종말 생존자를 통해 벌어들인 돈 전액을 차기 게임. 「심해의 위협」을 개발하기 위해 투자했다.”

개발은 굉장히 순조로웠다. 개발진 내에서는 그 흥행한 종말 생존자보다도 더 잘 팔릴 것이 분명하다는 이야기도 심심하면 돌았다.

그렇게 게임 ‘심해의 위협’이 최종 개발을 끝내갈 쯔음.

[‘인화’신작. ‘아틀란티스 데스티니’출시!]

[처음으로 인화가 선보이는 오리지널 생존게임!]

인화가 심해의 위협보다 먼저, 심해의 위협과 똑 닮은 게임을 출시했다.

“단순히 비슷한 정도가 아니었다. 게다가 클라이언트를 뜯어보자 나온 파일들은 모조리 우리가 만든 게임의 소스를 그대로 따온 것들이었지.”

[···내부의 누군가가 파일을 그대로 가져간 거로군.]

“그 덕분에 우리는 심해의 위협을 출시할 수 없었다.”

완전히 동일한 컨셉에 먼저 출시된 AAA게임. 심지어 눈으로 보이는 그래픽도 압도적으로 인화쪽이 좋다. 출시를 하면 오히려 이쪽이 표절로 몰릴 것이 명백한 상황.

그런 상황에 게임을 출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폴 레인은 길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심해의 위협을 출시하지 못한 탓에 지금 자신의 회사인 라쿤은 파산 직전에 몰려 있었다.

“아마 우리가 파산한다면 개발 핵심 직원들을 뿔뿔히 흩어질 것이다. 아마 대부분은 인화에 채용될 거고.”

말을 내뱉어내는 폴 레인의 목소리에는 회한과 포기가 함께 섞여 있었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무슨 일이었지?”

[본좌가 양념치킨집을 중원 최초로 만들었는데. 빌어먹을 놈들이 본좌의 양념치킨을 제멋대로 베꼈지.]

“···그런가.”

양념치킨이 개발된 지는 벌써 50년이 넘어간다. BJ천마의 나이는 잘 봐 줘도 30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BJ천마가 양념치킨을 개발했다는 것은 망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폴 레인은 이런 부분을 구태여 짚지 않기로 했다.

[요는. 인화 놈들과는 엮이고 싶지 않다. 이건가? 옆에서 비교당하면 너희가 별볼일없는 게임으로 몰릴 것 같아서?]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다.”

[싸워 보지도 않고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건가?]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 라는 말에 폴 레인이 입술을 질끈 물었다.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게 아니다. 최소한 우리가 만든 게임이 원조라는 자긍심 정도는···.”

[자긍심?]

휴대폰 너머에서 픽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뭘 웃는 거지?”

[자긍심은 싸움을 선택한 자나 말할 수 있는 말이다. 싸우지 않고 도망치기를 선택한 놈들이 자긍이니 긍지니 하는 말을 지껄이는 게 아니다.]

아까와 같은 그르릉거리는 낮은 저주파음이다.

“싸워 봤자 못 이겨.”

이벤트의 기부금액 산정은 일방적으로 인화에 유리하게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뿐만이 문제는 아니다.

“기부금액뿐 아니라 시청자들의 숫자 자체도 엄청나게 차이나.”

인화는 중국에서 압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굴지의 게임 재벌이다. 놈들이 동원할 수 있는 시청자수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BJ천마가 아무리 시청자수가 많다고 해도 인화가 동원하는 시청자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시청자수가 적으면 그만큼 동원능력도 떨어지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비율도 줄어들어. 게임이 그냥 ‘비슷하다’ 정도로만 말하는 사람들이 여론으로 찍어 누를수 있다는 거다. 그뿐 아니라···.”

[더 듣고 싶지 않다. 질 이유가 네놈에게는 수만 가지쯤은 되는 것 같으니까.]

“알아들은 모양이군.”

[아무 의미없는 이유들이다. 네놈에게는 그딴 자잘한 수만가지의 질 이유를 박살낼 수 있는 이길 이유가 있다.]

인화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이유는 수천 가지는 존재한다. 그런데 BJ천마는 당연하다는 듯이 자신들이 이길 수 있는 이유가 있다는 듯 말을 하고 있었다.

“그게 뭐지?”

[본좌가. 네놈들의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

“큭.”

어처구니없어서 터져나오는 헛웃음이 폴 레인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젊은 사람이라면 응당 가지고 있는 종류의 말도 안 되는 패기로움이다.

‘그러고보면 나도 저럴 때가 있었지.’

대학을 자퇴하고 게임을 만들겠다고 덤벼들었을 첫 무렵에.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대작을 만들겠다는 패기로움이 있었다.

이길 거라는 생각은 여전히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BJ천마가 바라는 대로 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차피 이 이벤트는 기부 이벤트다. 사람들의 이목을 더 끌 수 있고 기부가 한 푼이라도 더 된다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

폴 레인은 자조 섞인 웃음을 터트렸다.

“···제기랄. 될 대로 되라지.”

[허가한 것으로 알겠다.]

“잘 해 보도록. 어차피 이기지는 못할 테지만.”

[본좌가 놈들의 기부금을 넘어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군.]

“당연하지.”

[그럼 내기 하나 할까.]

“내기?”

[본좌가 놈들이 모은 기부액의 액수를 넘어선다면. 출시를 멈춘 심해의 위협을 출시하도록.]

“뭐?”

[그리고 그렇게 출시한 판매로 발생한 수익의 절반은 본좌의 것이다.]

정말 밑도끝도 없는 조건이다.

그러나 어차피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다. 판매 수익 절반이고 뭐고 가져가건 말건 상관없다.

“맘대로 해.”

[본좌는 어차피 평생 마음대로 살고 있으니 걱정해주지 않아도 된다.]

뚝.

BJ천마가 고맙다는 말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 폴 레인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 뭣이냐. 동양인들은 예의를 중시한다고 하던데. 다 거짓말이었나보군.”

하긴 동양인들이 예의를 중시한다고 하는 것도 편견의 일종이다. 세상에 예의를 중시하는 동양인이 있다면 세상 높은 줄 모르고 제 멋대로 사는 동양인도 있어야 우주의 균형이 맞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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