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61화 (161/212)

37. 기부 행사 (2)

보통 스트리머가 다음으로 할 게임을 정한다고 할 때에는 대략적으로 무슨 게임을 할 지를 정해 오는 경우가 많다. 많아야 두세 종류중 하나의 게임을 정하고 온다.

그렇기 때문에 게임을 ‘정하는’시간 자체가 그리 길지 않다.

사실 스트리머 입장에서도 잘 할 수 있는 종류의 게임은 정해져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거기에 기껏 고른 게임이 별로이기라도 하면 대참사가 나는 경우또한 존재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자연스럽게 시청자들의 기대도 크게 높아지지 않는다.

“어떤 게임을 하는 게 좋을까.”

> 제발 퍼즐게임 한번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아니 종말의 성황님 한번만 해보라니까? 초갓겜이라고!!!

> 귀여운 벌레들이 가득한 공허기사 하쉴? 짱재밌서오!

하지만 BJ천마의 경우에는 다르다. BJ천마의 실력은 게임의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 이미 수차례 검증됐다.

거기에 하는 게임들마다 그 특유의 플레이로 여러 차례 레전드를 찍는 상황.

시청자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BJ천마가 하는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리고 시청자들만이 열광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 방송인. 인기가 좋군.”

쉴 새 없이 올라가는 채팅창을 바라보던 남자가 짧게 중국어를 내뱉었다.

지금 BJ천마의 방송을 유심히 보고 있는 남자는 중국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의 게임사인 인화人和의 CEO인 리 창퐁이었다.

인화는 중국 내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거대한 VR 게임 기업이었지만 다른 중국 게임사와는 다른 점이 있었다.

내수판매량에 거의 전적으로 기대는 게임사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내수판매량에 전적으로 기대는 이유는 단순했다. 표절 논란 때문이었다. 게임계가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받는 것은 당연한 일. 시대를 선도한 게임을 따라가는 후발 주자가 표절 논란에 종종 휩싸이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인화의 게임들은 그 정도가 심했다.

[이 새끼들은 저따위로 게임 베끼고도 떳떳하냐?]

[게임 출시 중국이 느리다고 먼저 베껴놓고 배째라임 ㅋㅋㅋㅋ 미친놈들 ㅋㅋㅋ]

그리고 이 표절 논란은 사실 논란이 아니기도 했다. 실제로 다른 게임의 파일을 해킹해 그대로 도용하는 것이 개발사 ‘인화’의 전략이었으므로.

하지만 이런 전략도 슬슬 한계에 봉착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도 개발능력이 뛰어난 게임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중국 게이머들의 눈과 지식도 그만큼 늘어나고 있었으므로.

그러니 다른 활로가 필요하다는 것이 리 창퐁의 결론이었다.

“어이. 이 천마라는 사람 아나?”

“네. 근래 스트리머중에 최고의 실력자라고 불리는 사람입니다.”

“인지도는?”

“영미권에서 시작한 초대형 스트리머만큼은 아니지만 근래 폭발적으로 시청자가 늘어서 아시아 내에서는 손 꼽히는 수준의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판하오와 비교하자면?”

‘판하오’는 인화의 게임만을 플레이하는 전문 종합 스트리머다. 실력도 출중하거니와 꽤 화려한 플레이 덕분에 중국 이외에도 팬덤이 꽤나 존재하는 스트리머다.

물론 그 ‘인화’의 게임만 플레이하기에 호의적인 분위기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스트리머로서의 판하오는 매우 인기가 높다.

“아직까지는 판하오가 더 큽니다. 하지만 시청자 추세로 본다면 늦어도 반 년 이내에는 추월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군.”

“좋은 생각이 있으신 겁니까?”

“물론이지.”

리 창퐁의 고개가 만족스럽게 끄덕였다.

저 BJ천마라는 인간이 판하오에 비해서 형편없다는 것이 보여지는 순간 BJ천마의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판하오의 것이 될 것이 분명했으므로.

***

[해적왕이될거야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항해시대 사략선장 플레이 해 주세요! 제발요!]

[미카엘슈마허 님이 $400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F5는 어떰? 레이싱 게임인데 반응속도 좋으시니까 개재밌을듯?]

어느 순간부터 채팅창뿐만 아니라 후원까지 쏟아지고 있었다. 후원으로 쏟아지는 게임 추천 메시지들을 바라보던 단천은 입을 열었다.

“여러 가지 게임을 추천해 주고 있지만. 후원을 많이 한다고 해서 본좌가 그 게임을 선택하는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괜히 큰 금액을 쓰지는 말도록.”

[미션맨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ㄹㅇ 불순한 동기로 게임 추천하면 안 됨]

> 저사람 걸핏하면 TG 게이밍 기어 추천하는 사람 아님?

> TG 사장이라는 소문도 있음 ㅋㅋㅋ

> 야 사장이 무슨 날백수도 아니고 천마 방송에 하루종일 있냐 ㅋㅋㅋㅋㅋ

> 사장이 저런 식으로 후원하고 있으면 회사가 존폐 위기지 ㅋㅋㅋㅋㅋ

상처를 받은 미션맨이 후원을 멈추거나 말거나 단천은 후원 메시지와 채팅창을 이리저리 훑어봤다.

> 근데 천마님은 무슨 게임을 하고 싶은 거임?

> 그러고 보니 천마님이 뭐 하고 싶은지는 안 물어 봤네

평소의 단천이라면 ‘무슨 게임이건 상관없다’는 말을 했을 터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명확한 목표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걸 물어보기까지 해야 하나? 본좌가 하고 싶은 게임은 명확하기 그지없는 것을.”

> ??

“이번 이벤트는 트인낭에서 주최하는 후원 행사다. 그럼 본좌의 목표는 무엇이 되겠느냐.”

> ?

> 후원 행사에 목표도 있음?

> 그냥 하면 되는거 아님?

단천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래도 꽤 오래 방송을 봐 온 사람들이 많을 텐데도 자신의 마음을 읽어내는 사람이 없다니.

“본좌의 목표는 당연히. ‘최고 후원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다.”

> 느닷없는 1등선언문 ㅋㅋㅋㅋ

> 아니 좋은 행사로 하는 후원인데 승부욕 불태우지 마라고 ㅋㅋㅋㅋㅋㅋ

어떤 것이건 최고가 된다. 그것이 천마의 길인 것이다. 기부행사또한 마찬가지다.

“내 기부 1위를 막는 자가 있다면 놈을 베어내서라도 1위를 쟁취할 것이다.”

단천은 비장하게 중얼거렸다.

> 아니 기부행사하는데 기부하는 다른 사람을 베어버리면 어떡해 ㅋㅋㅋㅋㅋ

> 돌겠네 진짜

> 기부 1위하는 게 중요하냐? 마음이 중요하지

“본좌에게는 기부 1위또한 중요하다.”

> 뭘 해도 하는에 선다.

> ㄹㅇ 천마의 마음가짐 그 자체 ㄷㄷㄷ

채팅창이 질렸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말거나 단천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본좌가 기부 1위가 되기 위해서는 최대 기부액이 높은 게임이어야 한다.”

기부 행사는 행사에 참여한 스트리머의 플레이에 따라서 그 금액이 증가한다. 더 어려운 플레이를 하면 할수록 그 후원금이 늘어나는 형태인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부 게임들의 경우에는 이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 시간 제한이 있거나 금액의 최대 상한선이 있거나.

이런 상한선이 없는 게임은 대부분 AAA게임으로 불리는 초대형 게임사의 게임들뿐이다.

이런 필터를 거치고 나서도 게임은 수십 가지가 넘게 남은 상태.

[인화게임즈 님이 $ 5,000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우리 인화 게임즈에서도 이번 행사 참여했다. 생각 있다면 참여 부탁한다.]

> ?

> 인화? 거기 짭퉁 만드는 게임사 아님?

짭퉁 게임이라는 말이 채팅창에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 ‘인화’의 게임이 얼마나 악명높은지는 누구나가 아는 일이었으니까.

“저 인화라는 게임사. 그리 소문이 좋지 않은 모양이군.”

> 개악질임 상도덕도 없고 다른 게임사 게임 해킹도 함

> 맞다. 우리 중국인들도 매우 혐오하는 게임사다.

“보아하니 다른 게임사의 게임을 도둑질한다는 소문도 있는 것 같은데?”

[인화게임즈 님이 $ 6,000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완전히 틀렸다. 우리 인화는 다른 게임사의 게임을 도둑질하지 않는다.]

> 개소리 ㄴㄴ

> 이번에 행사 나오는 ‘생존투쟁’도 인디게임 ‘종말 생존자’ 베낀 거잖아 ㅋㅋㅋㅋㅋㅋㅋ

> 종말 생존자도 기부행사 나왔는데 낯짝도 두껍지 ㅋㅋㅋㅋ

[인화게임즈 님이 $ 7,000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완전히 틀린 말이다. 우리는 독자적으로 생존투쟁을 개발했다. 플레이해보면 알 거다.]

채팅창의 분위기가 엄청나게 험악하다. 사실 단천도 굳이 저런 평가를 듣는 게임사의 게임을 할 생각은 없었다. 스트리머에게는 이런 부분에서의 인지도도 중요하다.

세상에 할 게임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구태여 저런 논란이 있는 게임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본좌는 너희 게임사의 게임을 할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러니 사라져 줬으면 좋겠군.”

게다가 이 자식은 언제 봤다고 반말인지. 21세기가 좋기는 좋다. 중원에서 자신에게 다짜고짜 반말을 했다면 황하 강에 사흘 밤 사흘 낮을 담궜다 뺐다를 반복했을 텐데.

그렇게 축객령으로 정리가 됐다고 생각한 순간.

[인화게임즈 님이 $ 10,000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기부 가능액은 어마어마하다.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불가능하다.”

> ㅋㅋㅋ 천마님을 물로 보네 ㅋㅋㅋㅋ

> 천마님 표정만 보면 1조달러쯤 기부할 기세인데 ㅋㅋㅋㅋ

> ㄹㅇ ㅋㅋㅋㅋ

> 천마방송 처음 온 티내네 ㅋㅋㅋㅋㅋ

> 그냥 대충 천마님 호감도에 묻혀서 세탁 돌려보려는 것 같은데 ㅋㅋㅋㅋ 어림도 없지 ㅋㅋㅋㅋㅋ

단천의 단언에 당황했는지 인화게임즈의 말은 잠시 멈췄다. 하지만 그 침묵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당신이 우리 ‘생존투쟁’을 플레이하지 않아도 된다.]

“생존투쟁을 플레이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다.]

“어떻게 하면 되지? 아니. 애초에 너희의 게임을 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후원금을 측정하겠다는 거지?”

[당신은 우리의 위대한 게임인 생존투쟁을 플레이하지 않는다. 대신 ‘종말 생존자’를 플레이한다.]

인화는 지금 생존투쟁의 원형 게임이라고 불리는 종말 생존자를 플레이하는 것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었다.

[당신의 기부금액은, ‘생존투쟁’과 같은 방식으로 누적된다.]

“그걸로 너희가 얻게 되는 건?”

[우리 게임이 더 재밌다는 것. 우리가 게임을 베끼지 않았다는 것.]

> 개소리하네 ㅋㅋㅋㅋㅋ

> 와 옆에 두고 비교해보자는 거네 ㅋㅋㅋㅋ

인화의 요청사항은 분명했다. 인지도 높은 BJ천마가. 자신들이 베껴 만든 게임인 ‘종말 생존자’를 플레이하는 것.

인화가 만든 ‘생존투쟁’은 인디 게임인 종말 생존자에 비해서 여러 가지로 ‘때깔 나는’ 게임이다. 그래픽부터 시작해서 세계의 크기, 텍스쳐 등등의 모든 것.

핵심되는 플레이 부분만이 종말 생존자와 거의 같을 뿐.

종말 생존자가 원조 게임이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두 게임을 옆에 놓고 플레이한다면?

아는 사람이야 ‘종말 생존자’가 원형인 것을 알겠지만. 다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훨씬 더 매끄러운 그래픽의 ‘생존투쟁’을 진짜 게임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거기에 BJ천마의 시청자들이 인화 스트리머인 ‘판하오’에게 유출되는 것은 덤이다.

절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실로 속이 뻔히 보이는 행동이지만.

“준비한 기부 최대 금액은 충분한가?”

[충분하다.]

“그러니까 충분 얼마.”

[···1억 달러 정도를 준비해 뒀다. 당신의 플레이로 쌓인 기부금은 ‘BJ천마’ 그리고 ‘종말 생존자’의 이름으로 기부될 거다.]

지금 저 채팅을 치고 있는 인화의 관계자놈은 저 1억 달러중 극히 일부만이 기부에 쓰여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기껏해야 몇만 달러, 혹은 몇십만 달러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하지만 단천은 고작 그 정도로 끝낼 생각이 없었다.

“좋다. 승부를 받아들이지.”

1억 달러. 첫 기부 금액으로는 나쁘지 않은 금액이다.

‘조금 적기는 하지만.’

단지은이 그랬던가. 원래 기부란 것은 소소하게 시작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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