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60화 (160/212)

37. 기부 행사 (1)

“으아아암.”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 단지은이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있었다. 꽤나 편안한 모습이다.

요새는 하루 걸러 한번씩 말하던 ‘일 그만둘까’ 같은 소리도 하지 않는다. 경제적으로 나아지고 나서 일을 그만둔다는 소리가 멈췄다는 건 모순적인 일이다.

“넌 운동을 어떻게 하길래 맨날 땀에 범벅이 돼서 돌아오냐?”

“요새는 절벽을 손가락 두개로 오르고 있어.”

“누나가 안 본다고 허풍만 늘어서는.”

단지은은 가볍게 혀를 찬 뒤 다시 휴대폰에 눈을 고정했다.

“뭐 봐?”

“올해는 기부 어디에 할지 찾아보고 있었어.”

“기부를 아직까지 하고 있었어?”

“그럼.”

단지은은 단천이 무림에 떨어지기 전부터 연말이면 기부를 해 왔었다. 다 쓰러져가는 집에 있으면서 무슨 기부냐는 핀잔을 한 적이 있었지만 단지은은 기부를 하는 것을 멈춘 적이 없었다.

호의를 받아야 하는 사람일수록 남에게 호의를 베풀어야 한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었다. 돈을 쓰고 남은 만큼 기부를 하면 그 선행이 새 선행을 낳고 낳아 자신에게 백 배로 돌아오게 된다나.

여전히 단천 입장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소리였지만 단지은이 제 멋대로인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었으므로 단천은 그러려니 했다.

“이제 우리 동생도 다 컸는데 기부해 볼 생각은 없어? 굳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안 그래도 기부 좀 하려고.”

“그래?”

“어. 연말에 방송 플랫폼에서 기부 이벤트가 있거든.”

연말에는 할로윈이나 크리스마스같은 이벤트가 꽤 많이 몰려 있다. 이런 이벤트들도 꽤나 인기가 많은 편이지만 트인낭에서 가장 큰 축제는 역시 ‘연말연시 기부 축제’다.

게이머들이 제각각의 게임을 플레이하고, 게임사는 스트리머의 업적에 따라 정해진 금액을 기부하는 방식의 이벤트다.

게임사 입장에서는 게임을 홍보할 수 있어서 좋고. 스트리머 입장에서는 기부를 할 수 있고, 자신의 방송이 홍보되기 때문에 많이들 참여하는 행사다.

“오. 그럼 게임을 잘하면 잘할수록 더 많이 기부할 수 있는 거야?”

“그렇지.”

“오오. 그럼 실력에 비해서 시청자가 적은 스트리머한테 유리한 구조네?”

“그렇지.”

“그러면 천이 네 입장에서는 엄청 유리한 구조네?”

“그렇지.”

단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실력에 비해서 시청자수가 적다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으므로.

“내 실력을 생각한다면 시청자수는 최소한 1000억명은 돼야 하니까.”

“···전 세계 인구가 70억명인 건 알고 하는 소리지?”

“알아. 그래도 사실이 바뀌지는 않아.”

단지은은 구태여 꿈에 젖어있는 단천을 괴롭히지는 않기로 했다. 그녀 입장에서는 동생이 오랜만에 사회에 좋은 일을 하겠다는데 찬물을 뿌려대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 기부 많이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무슨 게임을 할 건데?”

“그걸 지금부터 정해야 돼. 안 해 본 게임 중에서 골라 보려고.”

“내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본인이 잘 하는 게임으로 출전하는 거 아냐?”

“나는 모든 게임을 잘해.”

“방금 안 해 본 게임 중에서 고른다며.”

“안 해 본 게임이라도 나는 최강이야.”

“······.”

단지은은 입술을 꽉 깨물어서 내면에서 차오르는 악플러 본능을 참아냈다.

가끔은 애를 너무 오냐오냐 키웠나 싶다. 병상에 있을 때는 귀여웠는데 건강해진 지금에 와서는 싸가지가 좀 없다 싶다.

“그래. 좋은 결과 있으면 좋겠다.”

“물론이지. 걸리는 게임사는 각오해야 될 거야. 밑바닥까지 탈탈 털어갈 테니까.”

“······그래. 힘내라.”

겨우 응원의 말을 단천에게 건내는 단지은이었다.

***

스트리머 게시판은 평소라면 방송을 하고 있는 스트리머에게 관심이 집중된다.

대화의 주제가 될 만한 소재 자체가 방송중인 스트리머와 방송을 하지 않고 있는 스트리머 사이에 간극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방송을 하며 소통을 하고 있는 스트리머와 이미 방송이 끝나고 소재도 탈 대로 다 탄 스트리머중, 이야기를 할 만한 소재가 많은 것은 실시간 방송 중인 스트리머가 많은 것이 당연한 일이기에.

하지만 지금의 스트리머 게시판의 상태는 달랐다.

[아니 BJ천마 방송 언제 켜냐고ㅗㅗㅗㅗㅗ]

[야 대회 끝난지 6시간 됐음 ㅋㅋㅋㅋ]

[아니 하루에 6시간이나 방송을 쉬는게 말이나 됨???]

[ㄹㅇ 스트리머면 하루 24시간 방송이 기본 아니냐?]

지금의 스트리머 게시판의 대화 주제는 오롯이 BJ천마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랭크에서도 1위를 차지하고, 대회 내내 압도적인 캐리력을 뽐냈으니 게시판이 거의 도배되다시피 BJ천마로 가득찰 수밖에 없었다.

[진짜 마지막 싸움 계속 돌려보는데 미쳤음 그냥 ㅋㅋㅋㅋㅋ]

[천마님도 대단한데 ㅅㅂ 셔벗? 인가 하는 애는 어디서 튀어나온거임?]

[이번에 초대형 오퍼 받았다는데?]

[뭔 대회 한게임 잘했다고 초대형 오퍼가 오냐 말이 되냐]

[└이새끼 장담하는데 마지막 경기 안 봤다]

[ㅇㅈ 봤으면 저딴소리 못함 ㅋㅋㅋㅋㅋㅋㅋ]

BJ천마의 무위가 강하다는 것은 수없이 검증된 사실이었지만. 그게 ‘어느 정도냐’에 대해서는 분분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러나 BJ천마는 AOS 최고의 탑솔러중 한 명인 김건을 꺾었고, 셔벗을 상대로 실로 눈이 호강하는 싸움을 보여줬다.

더 이상 BJ천마의 실력에 대한 의심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근데 이러면 BJ천마는 계속 천공만 하는 건가?]

[아마 그렇겠지? 천공만 해도 시청자는 따놓은 당상이잖아.]

동시에. BJ천마가 앞으로는 ‘천공’ 전문 스트리머로 활동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최고 수준의 AOS에서 최고 실력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메리트였으므로.

[ㅅㅂ 레일 서바이버 개재밌었는데]

[나는 리드미컬 세이버]

[리세는 그래도 방송 시작할 때 한 번씩 해 주잖아]

[런닝돌도 레전드였지]

[솔직히 다른 게임 하는거 더 보고 싶은데]

그만큼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도 있었다. 원래의 BJ천마의 시청자층은 ‘종합 게임 스트리머’로서 BJ천마를 봐 왔으니까.

기존 시청자들은 BJ천마가 다양한 게임을 하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이다.

그러니 한 게임이 정착하게 될 거라는 예측이 드니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더 많은 게임에서 BJ천마의 게임을 보고 싶은 것이 기존 시청자들의 바람이었으므로.

[야 근데 아직 확정난것도 아니지 않냐?]

[ㅇㅈ 천공말고 다른게임 충분히 할 수 있음]

[ㅋㅋㅋㅋㅋ 진짜 행복회로 타는소리 여기까지 들리네 ㅋㅋㅋ]

[너네들 종겜스 천공 갔어!]

[아니야! 천마님이 분명 곧 돌아오신다고 그랬다고!]

물론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알고 있었다. 지금의 BJ천마의 시청자수를 생각한다면 BJ천마가 다른 게임을 선택할 가능성은 없다는 사실을.

지금도 스트리머중 손꼽히는 수준으로 컸는데 왜 굳이 다른 종류의 게임을 하는 모험을 한단 말인가?

[근데 BJ천마니까 혹시 모르지 않음?]

[ㄹㅇ 천마면 혹시 모른다]

[ㅇㄱㄹㅇ]

[수십만명 유입 빨고 여전히 종겜스한다? 그럼 진짜 ㅇㅈ한다;;]

[ㄹㅇ ㅋㅋㅋㅋ]

아주 간간히. BJ천마가 다른 게임을 할지도 모른다는 글이 올라왔지만. 그런 글들은 조금의 추천도 받지 못하고 바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BJ천마 온에어]

[갤주님 떴다ㅏㅏㅏ]

[드가자!!!!!]

[아니 어떻게 사람이 7시간이나 방송을 쉬냐고!!!]

[아니 시작한 지 1분도 안 됐는데 시청자수 5만 ㅋㅋㅋㅋㅋ]

[거의 광신도들이네;]

BJ천마의 방송이 켜지자마자 급속도로 올라가던 게시판이 잠시 침묵에 잠겼다.

하지만 침묵은 길지 못했다.

[근데 방제 뭐냐?]

[? 방제가 어떻길래?]

[‘기부행사 참여 게임 선정’이라고 돼 있는데?]

[??]

[기부행사 게임에 천공 없지 않냐?]

[없지 애초에 신작 게임이기도 하고]

BJ천마의 방제는 다름아닌 ‘기부행사 참여 게임 선정’이었기 때문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 하나는 BJ천마가 각종 스트리머가 참여하는 ‘연말 기부 행사’이벤트에 참여한다는 것이며.

동시에, ‘천공’을 하지 않는다는 의미기도 했다.

***

“반갑다.”

방송을 켠 단천은 짧게 인사를 한 다음 시청자수를 바라봤다.

한 호흡도 되기 전에 시청자수가 3만을 돌파했고, 1분이 되기도 전에 5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극도로 발달된 단천의 눈으로도 시청자수의 상승속도를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다.

> 천-하

> 그보다 기부 이벤트 들어감??

> 기부 이벤트면 초대형 행사가 맞긴 하지

‘기부 이벤트’는 트인낭에서 하는 초대형 이벤트다. 총 시청자수로는 트인낭에서는 댈 수 없을 정도로 큰 이벤트가 바로 연말 기부 이벤트인 것이다.

거기에 이벤트에 대한 호감도도 매우 높다. 이벤트로 발생하는 수익금은 전부 기부금으로 투명하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스트리머들 사이에서도 ‘방송의 공백으로 인한 손해보다 이미지 개선효과가 더 크다’는 소리가 공공연연하게 나올 정도니 말 다 했다.

> 근데 무슨 게임 하기로 함?

> 천공은 기부 이벤트에 없는데??

> 무슨 게임 하실건지 300번째 묻습니다

“그걸 지금부터 정할 거다.”

> ?? 무슨 겜할지 안 정함?

> 장르는?

“장르도 안 정했다.”

> ㅁㅊㄷ

> FPS단 모여ㅕㅕㅕㅕㅕㅕ

> 리듬게임리듬게임리듬게임리듬게임리듬게임

> 던전탈출물던전탈출물던전탈출물던전탈출물

> 레저판타지아 해주세요 레저판타지아 해주세요

[후원맨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언더 더 우드! 초갓겜입니다! 언더 더 우드!!!!]

[파오리 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테일 언더! 샌즈 아시죠! 그 게임입니다!!!! 테일 언더!!!]

채팅창이 순식간에 BJ천마가 무슨 게임을 할 지에 대해서 도배되기 시작했다.

‘계획대로군.’

단순히 앞으로 할 게임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면 ‘천공을 계속 하자’라는 여론이 거셌을 터다.

하지만 지금 단천은 다름아닌 기부 이벤트를 위한 게임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기부를 하겠다는데 천공을 하자고 말할 정도의 시청자들은 많지 않다.

거기에 더해서 이벤트에 대한 여론이 좋은 만큼 시청자들도 단천이 ‘다른 게임’을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서윤학이 자주 활용했던 성동격서의 묘리다. 시선을 다른 데 돌리고 중요한 것을 자연스럽게 통과시키는 방법 말이다.

─ 단주. 단주가 동쪽에서 저들의 시선을 끌면 그 동안 우리가 서쪽에서 놈들의 본진을 격파하겠소.

─ 반대로 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우리가 시선을 끌라니! 그게 무슨 말이오! 단주 그대는 혼자란 말이오! 야! 미친놈아! 말 들어! 달려가지 마아아아아!

단천은 혈귀단이 서쪽에서 시선을 끌고 있을 동안 단천이 홀로 흑월밀교의 본진을 박살냈던 과거를 떠올렸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었던 일을 왜 굳이 시선을 끌어야 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지만···.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단천은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 플라이 더 바바리안!!! 플라이 더 바바리안!!!

> 다키스트 에이지!! 다키스트 에이지!!!

> 다 닥쳐 오늘부로 타임포털 코인 풀매수 간다ㅏㅏㅏㅏ

실제로 채팅창을 보건대 효과는 확실했다. 더 이상 ‘천공’에 대한 이야기는 나오지 않고 있었으니까.

단천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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