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59화 (159/212)

36. 사사 (5)

카가각!

셔벗은 날카로운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화끈한 통증이 등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신경통. 전형적인 VR캡슐을 과도 사용했을때의 증상이다.

‘왜?’

과도 사용이라는 것은 싸구려 캡슐을 사용하거나 정말로 오랜 시간을 사용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통증이다.

셔벗이 그렇게 몸을 지지는 것 같은 작열감 아래에서 의문을 느끼고 있을 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끝난 모양이군.”

BJ천마다. 셔벗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그러고 보니. 지금은 격렬한 전투 중이었다. 그런데, 직전까지의 상황들이 머릿속에 선명하지 않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장면들은 기억나지만. 마치 자신이 아닌 사람이 움직인 것만 같은 느낌이다.

마치 해킹을 당해서 누가 자신의 캐릭터를 움직인 것만 같은 기분이다.

하지만 해킹은 아니었다. 이곳은 대회장이었으므로. 폐쇄된 인트라넷을 사용하고 있는 곳에서 해킹이 일어났을 가능성은 0에 가깝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직접 한 것도 아니었다. 그녀 스스로는 이렇게 잘 싸우지 않는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는 대회에서는 더더욱.

“얼떨떨한 모양이군.”

슈팟! BJ천마의 광선검이 셔벗을 향해 날아들었다. 네 갈래로 뻗어나오는 검격. 정교하기 그지없는 페이크 모션이다.

자신의 실력으로는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페이크인지 알 수 없다. 원래라면 운에 맡겨야만 할 정도의 정교한 공격.

그러나 셔벗의 손은 자신이 생각하기도 전에 움직였다.

카앙!

페이크를 막아냈다. 바로 레이피어를 찔러들어간다. 왜? 라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당연히’ 그래야 한다는 것처럼 몸이 움직인다.

셔벗은 그제서야 정말로 스스로가 이전까지의 싸움을 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게다가.

“잘 움직이는군. 이제는 관객들이 전혀 신경쓰이지 않는 모양이야.”

“···아!”

셔벗의 눈이 깜빡였다. 자연스럽게 움직임을 이어 나가서 몰랐는데. 지금의 자신은 전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있지 않았다.

실력이 채 10초도 되지 않는 순간에 올라갔다. 거기에 자신을 괴롭히던 타인의 시선도 더 이상은 자신을 괴롭게 하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기연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연의 시작점은 바로 눈 앞에 서서 재수없게 웃고 있는 BJ천마다.

“왜 절 도와준 거죠?”

“강한 사람이 세상에 많았으면 좋겠거든.”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든 소리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BJ천마가 자신을 도와줬다는 것. 그리고 그 덕분에 자신이 ‘벽’을 넘어왔다는 것.

그것이 전부다.

“고맙습니다.”

“감사 인사는 검으로 하도록.”

무심한 표정과 무뚝뚝한 대답.

하지만 그 안에는 숨기지 못하는 기대감이 숨어 있었다.

“그 말이 맞네요.”

BJ천마가 자신을 도운 이유는 강해진 자신과 검을 나누기 위함.

그러니.

감사는 검으로밖에 할 수 없다.

광선검과 레이피어가 공중에서 맞부딪혔다. 한 순간에 수십 합의 검격이 공중에서 얽혀들었다.

> 와 ㅅㅂ 미쳤다 ㅋㅋㅋㅋㅋㅋㅋ

> 이게,,,이게 머선 일이고,,,

광선검과 레이피어가 맞부딪힐 때마다 허공에서 계속해서 피어오르는 불꽃들에 사람들은 말을 잊은 채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전투입니다! 실로 눈이 호강하게 되는 전투!]

[으아아아아! 셔벗이 너무 쎄요오오오!]

함께 말을 잊고 있던 해설진도 해설을 이어나갔다. 다소 진이 빠지는 결말이 나오는 와중에 이토록 화려한 전투라니.

대회의 마지막으로는 최고의 이벤트 아니겠는가!

두 명의 화려하기 그지없는 전투는 장내에 있는 모두를 매료시켰다.

“시청자 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습니다.”

“저런 싸움을 하는데 안 올라가는 게 이상하지.”

둘의 싸움을 바라보고 있던 이태흠이 대답했다.

“와. 이번 방송 초대박이네요.”

“그리고. 물이 계속 들어오고 있으니 노를 저어야겠지.”

이태흠이 빙긋 웃었다.

“···노를 젓다뇨? 이미 야수도 박정 스킨으로 노 젓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실제로 이 경기가 끝나면 야수도 박정의 스킨은 실로 날개가 돋힌 듯 팔려나갈 것이다.

하지만 이태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뭘 모르는군. 지금 BJ천마가 혼자서 게임을 하고 있나?”

“네? 그거야···.”

“그 상대인 ‘셔벗’에게도 이입하고 있는 시청자가 충분히 있을 거다.”

묵직하고 단순하면서도 위력적인 BJ천마의 움직임과 달리, 셔벗이 플레이하고 있는 「성기사 레나타」는 반대로 화려하고 빠른 움직임을 보여준다.

> 셔벗 이겨라ㅏㅏㅏㅏ

> 가자ㅏㅏㅏ

> BJ천마 뒈져라!!!!

게다가 언더독이기까지 하니. 셔벗에 이입하는 시청자들도 꽤 있는 상황.

“그렇다는 건···.”

“1주일 내로, 「성기사 레나타」의 전설 스킨 출시할 수 있도록. 되도록이면 BJ천마의 스킨과 쌍이 맞는 스킨으로.”

“······.”

“SF 세계관 스킨들의 출시 일정도 빠르게 앞당겨야겠군. 물이 들어오는데 노를 저어야지. 안 그런가?”

“그렇습니다.”

천공의 스킨 제작팀의 미래에 암운이 미친 듯이 몰아치고 있는 와중에도 전투는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바닥이 파괴됩니다!]

천공 격투장에 남아있는 바닥이 거의 없었다. 남아 있는 발판의 갯수는 단 3개.

타악!

BJ천마와 셔벗이 거의 동시에 마지막 남은 발판 하나씩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남아 있는 발판은 단 하나.

‘저 발판을 밟으면 이긴다!’

공중에서의 체공시간은 아무리 BJ천마라고 해도 늘릴 수단이 없다. 자세를 바꾸는 것으로 떨어지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해도 고작해야 1초도 되지 않는 시간을 벌 수 있을 따름.

그러니. 마지막 발판을 밟는 자가 승자가 된다.

물론 셔벗이 여기서 이긴다고 해도 팀의 승리는 물 건너가 있지만. 셔벗의 머리에는 그런 생각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탑솔러가 해야 하는 일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자를 이기는 것 뿐이였으므로.

타앗! 셔벗의 발이 마지막 남은 발판을 디디자 마지막 발판이 아래로 추락했다. BJ천마의 몸은 여전히 공중에 떠 있는 상황.

하지만 그 순간.

BJ천마의 검이 셔벗을 향해 날아들었다. 자신이 떨어져서 죽기 전에 날리는 마지막 일격이리라.

“어딜!”

BJ천마가 얼마나 강한지는 이미 질리도록 알고 있다. 하지만 불안정한 자세에서 BJ천마가 날리는 일격도 막지 못할 정도의 격차는 아니다.

셔벗의 레이피어가 BJ천마의 검을 막아냈다. 셔벗은 승리를 확신했다.

‘이겼다!’

하지만. 그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막힌 검격을 무시한 채 BJ천마의 몸이 셔벗에게 파고들었기에.

셔벗은 BJ천마의 두 발이 자신의 두 어깨를 밟고 재도약을 하는 모습을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올려다봤다.

“아쉽군. 이런 경기장이 아니었다면 더 오래 싸울 수 있었을 텐데.”

[‘셔벗’이 전사했습니다!]

실로 깔끔한 승리였다.

***

[‘셔벗’이 전사했습니다!]

[팀 천마신교의 승리!]

결과 메시지가 떠올랐는데도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팀 천마신교를 응원하던 사람들도. 셔벗을 응원하던 사람들도. 그리고 심지어 해설진마저도 할 말을 잃고 잠시동안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플레이어들이 재소환됩니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고 있을 때. 양 팀의 플레이어들이 재소환되어 회장에 나타났다.

“왜 이렇게 조용하지. 본좌의 플레이를 못 본 건가.”

이 무지막지한 침묵을 만들어낸 당사자가 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탄성과 환호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의 조그마한 탄성이 모이고 모여서 바다처럼 커다란 소리가 되어 회장을 울렸다.

“으어어!”

엄청난 환호성에 저도 모르게 풀창고는 귀를 막고 말았다. 예의가 아닌 건 알면서도 놀랄 정도의 환호성이다.

“그래. 이 정도는 돼야지.”

“소리 너무 큰 거 아니야?”

“그다지 크지도 않다. 본좌가 한창이던 시절에는 목에서 각혈이 터져나오는 자가 최소한 백여 명씩은 나왔었으니.”

‘뭔 미친 시절이래.’

백명씩 각혈이 터져나오다니. 지가 무슨 마이클잭슨이라도 된다는 말이던가.

그렇게 환호성이 터져나오는 중. 거대한 폭죽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팀 천마신교. 우승!]

이번에도 그래픽팀이 고생했을 것이 분명한 용이 하늘을 솟구치더니 한 마리의 공룡으로 변했다.

“오.”

하늘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공룡이라니. 무던한 단천조차 감탄할 정도로 장대한 광경이었다.

그렇게. 결승이 끝났다.

***

[천공 일매출 4백억 돌파 ㅋㅋㅋㅋㅋ]

[실화냐 ㅋㅋㅋㅋㅋ]

[아니 뭔 AOS 일매출이 4백억 ㅋㅋㅋㅋㅋ]

[인기 ㅁㅊㄷ]

이벤트전이 끝나고 나서의 천공은 글자 그대로 엄청난 기세로 유저 수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름대로 괜찮은 수준의 게임이 등장했다는 평가가, 지금에 와서는 AOS계를 통일할 게임이 드디어 등장했다는 평으로까지 바뀌었다.

“반응이 좋구만.”

단천은 절벽에 거꾸로 매달린 채 휴대폰을 바라봤다. 물론 훈련 중에 휴대폰을 보는 것은 금기지만. 지금은 휴식 중이었으니 괜찮다.

다른 사람이 봤다면 절벽에 거꾸로 매달린 채 한 손가락으로 몸을 지탱하는 것이 뭐가 휴식이냐고 말했겠지만.

커뮤니티를 확인하던 단천은 주식 창을 켰다.

천공의 대박으로 하인라인의 주가도 끝 모를듯 치솟고 있었다. 단천이 가지고 있는 주식을 생각한다면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준의 상금이 입금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스킨 판매금과 우승 상금을 안 받는다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현재까지의 스킨 매출을 집계합니다.]

[당일 매출(원화) : 1,908,002,000]

단천은 만족스럽게 자신의 스킨 판매 매출을 확인했다. 일매출만으로도 20억 가까운 매출이 나오고 있다. 천공의 캐릭터들이 수백 명이나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압도적인 점유율이다.

공룡. 변신. 로봇이라는 삼대 치트키에 ‘천마’까지 얹어졌다.

안 팔리는 게 이상한 스킨인 것이다.

[다음 스킨으로 바로 레나타 신스킨 나온다는데?? 박정이랑 연관 스킨으로 나온다고 함 ㅋㅋㅋ]

[아 돈없는데 하인라인이 또 털어가네]

[기계공룡 변신 레나타···사야겠지···?]

[이새끼들 요새 보면 강도임 안사고 못 배기는 스킨을 계속 냄]

인터넷의 평가도 폭발적이고. ‘천공’은 앞으로 계속 날아오를 일만 남아있는 상태다.

단천의 말랑튜브 구독자, 그리고 트인낭의 시청자 수도 세 배 가까히 늘었다. 해외 시청자가 워낙에 늘어난 탓에 해외 채팅을 따로 관리하는 관리자를 고용하기까지 했으니 말 다 했다.

“또다시 선택의 기로로군.”

‘천공’의 시청자수는 앞으로도 폭발적으로 늘어난다. 이곳에서 자리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최고의 자리를 유지하는 단천은 수없이 많은 시청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보통은 이 정도 규모가 된다면. ‘천공’에 안착해서 천공 전문 스트리머가 되는 것도 생각해봄직했다.

잠시 생각하던 단천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자신은 엄연히 ‘종합 게임 스트리머’다. 여전히 이 세계에는 수없이 많은 게임이 있으며, 다양한 게임을 보는 시청자들이 있다.

그러니. 전문 스트리머는 하지 않는다.

“문제는 할 만한 게임이 없다는 건데.”

천공을 통해서 엄청난 이목을 끌어모았다. 지금에 와서는 ‘종합 게임’ 스트리머로서의 BJ천마를 보는 사람보다 ‘천공’ 스트리머로서의 BJ천마를 보는 사람이 더 많은 상태.

이 상태대로라면 다른 게임으로 넘어갔을 때에 시청자 수에 엄청난 타격을 받을 게 분명하다.

“뭔가 방법이 없으려나.”

그렇게 고민하던 단천은 휴대폰을 들어 서유나가 보내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번 달에 온 프로모션 제의입니다.]

수만 건이 온 광고제의 중에서 할만한 것들을 서유나가 추려서 보내온 메시지다.

이 안에. 뭔가 답이 있을 게 분명했다.

이리저리 휴대폰을 움직여가며 화면을 확인하던 단천의 눈이. 메시지 하나에 고정됐다.

[32. ‘말랑튜브’ 주최 연말연시 기부 이벤트]

“···이거. 나쁘지 않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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