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55화 (155/212)

36. 사사 (1)

[결승전 준비 로비]

결승전 당일. 천마신교의 준비 로비는 긴장감으로 휩싸여 있었다.

“와. 진짜 가슴 떨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내 플레이 보러 온 거 처음이야.”

“걱정 마라. 너를 보러 온 게 아니라 본좌의 플레이를 보러 온 것이니.”

“···형은 입에 발린 말 하면 입에 가시라도 돋아?”

“입에 발린 말은 약자나 하는 짓이지.”

풀창고는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하긴. 실제로도 시청자들의 대부분은 BJ천마의 플레이를 보러 온 것이다. 자신의 플레이에 크게 신경쓰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후우. 역시 천마 형이야.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려고 배려해준 거구나.”

단천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풀창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풀창고 말고도 긴장되는 사람 있나?”

“긴장한다면 어떻게 되는데요?”

“지금 본좌가 찾아가서 긴장에 효과가 있는 혈도에 침을 놔 줄 수 있다.”

“······전혀 긴장 안 됩니다.”

“사부! 나는 평생 살면서 긴장이라고는 해 본 적이 없어!”

“다리가 살짝 떨리는 것 같은데?”

“곧 있을 살육의 즐거움에 흥분돼서 그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까지 항변하는 것을 보니 진심인 모양이다.

대기실의 팀원들은 스스로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긴장을 덜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왜 이렇게 긴장이 안 되지.’

‘그냥 평소 방송하는 거랑 별 다를바가 없는 느낌인데.’

대회를 많이 경험해 본 한수아야 긴장을 안 한다는 게 이해는 간다.

하지만 나머지 정유채, 풀창고, 제로콜은 모두 스트리머에 불과하다. 스트리머의 방송을 봐 주는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의 팬인 사람들이다.

반면 대회는 팬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모습을 보여주는 일.

자신의 팬인 사람들 앞에서 모습을 보이는 것과 팬도 아닌 다수의 사람들에게서 실력을 보여주는 것은 아예 다른 일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다지 긴장감을 느낄 수 없었다.

‘왜지?’

제로콜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전에 레일 서바이버때도 이와 비슷한 기분을 느꼈었다.

그리고 이제야 자각했지만 지금 대회중인데도 사실 긴장감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것은 특이한 일이었다.

[결승전이 준비되었습니다.]

[콜로세움으로의 전송이 시작됩니다.]

와아아아아아!

전송이 완료되자 가상현실인데도 몸을 진동시킬 정도로 커다란 환호성이 온 몸을 흔들었다.

실로 몸이 부서질 것만 같은 음파의 압력에 일순간 모두의 몸이 굳었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BJ천마의 몸이 앞으로 주저 없이 걸어나갔다. 그 어떤 긴장도, 위협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한 걸음걸이다.

그는 홀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질러대는 환호성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아.’

제로콜의 고개가 미미하게 끄덕였다. 그제서야 자신들이 왜 압박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토록 거대한 압박을 오롯이 받아내고 있는 저 사람. BJ천마가 있었으니까.

자신감은 전염된다. 그리고 그 자신감이 근거가 있을 때는 더더욱 쉽게 전염된다.

BJ천마가 있는 한, 자신들이 질 리는 없다. 그런 확신이 천마신교에는 있었다.

그러니 사람들이 얼마나 많던지 간에 긴장감을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드디어 ‘천공’ 이벤트전! 마지막 날이 밝았습니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어엎고 결승전에 오른 팀 ‘천마신교’와, 팀 ‘레인보우 셔벗’의 승부입니다!]

> 천마신교 처음부터 우승후보였는데?

> 뭔 개소리야 스트리머 팀이 어케 우승후보임 ㅋㅋㅋㅋ 지금 되고 나니까 우승후보 이야기 나오는거지 ㅋㅋㅋㅋ

> ㄹㅇ 이 새끼들 말하는 것만 보면 거의 시간여행자임

원래라면 프로게이머가 즐비한 레인보우 셔벗이 이길 것이라고 점쳐져야 하는 상황.

하지만 상황은 그 정 반대로 레인보우 셔벗이 언더독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예상 외로 단단한 팀플레이와 그보다 훨씬 강력한 초반 라인전.

그리고 가장 커다란 BJ천마의 파괴력.

꿀꺽.

레인보우 셔벗의 팀장. ‘셔벗’은 침을 꼴딱 삼켰다. 셔벗은 대회에 참가한 팀장들 가운데 가장 실력이 쳐진다고 평가받는 선수였다.

[셔벗이면 그냥 평범한 2군 선수 아니냐?]

[애초에 팀장 급도 아닌데 왜 데려옴? BJ천마도 그렇고 셔벗도 그렇고 ㅋㅋㅋㅋ]

[그냥 자리 모자라서 데리고 온듯?]

처음 대회에 참여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에는 이런 평가가 계속 따라붙었다.

그런 그녀가 대회에 참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가장 먼저 ‘천공’으로의 이적을 발표했던 것이 첫 번째.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바로 그녀가 ‘연습실 본좌’라고 불릴 정도로 관계자들 사이에서 평가가 좋았던 덕분이다.

후우. 후우.

셔벗은 숨을 빠르게 몰아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긴장감에 가슴이 요동친다. ‘연습실 본좌’라는 것은 시청자가 없는 연습실, 혹은 스크림 경기에서 엄청난 경기력을 뽐낸다는 의미다.

반대로 뒤집어 이야기하자면 사람이 있다면 결코 제대로 된 실력을 뿜어내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만성적인 새가슴.

그것이 바로 셔벗의 고질적인 단점이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저렇게 안 떨지.’

자신을 비롯한 좌우로 도열해 있는 아홉 명의 선수들에게서는 긴장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고작해야 손이 살짝 떨린다거나. 얼굴이 살짝 굳어진다거나 하는 것이 전부다.

벌써 20만명이 넘는 시청자수가 있는데도 말이다.

물론 천마신교가 긴장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소간 BJ천마의 덕분이었지만 셔벗이 그런 것을 알 리가 없었다.

생기는 것은 끝없는 고평가. 그리고 자괴감뿐.

‘그러니까 프로를 하는 거겠지.’

“잘 부탁한다. 본좌가 승리하는 것을 똑똑히 눈에 새겨두도록.”

물론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저기서 표정 하나 변하지 않은 채 시청자들을 내려다보는 BJ천마다.

긴장을 안 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에게 야유하는 관객들을 도발하고, 응원하는 관객들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지.’

다른 선수들은 그래도 다소간은 긴장하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하지만 BJ천마에게서는 전혀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대회에 처음 나왔을 때도, 해설을 할 때도, 그리고 이목이 모조리 집중된 결승전도. 그를 전혀 당황하거나 긴장하게 만들지 못했다.

‘부럽다.’

셔벗은 그렇게 생각했다.

***

‘나쁘지 않군.’

단천은 적의 탑솔러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21세기에 오고 나서 여러 게이머들을 보다 보면 가끔씩 보게 되는 ‘진짜’의 냄새.

무림도 존재하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는 생과 사를 가르지도 않는 게임이 전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 도는 이어진다.

만류귀종이라고 하던가.

거기에 오랜만에 만난 ‘진짜’가 탑솔러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그 기쁨이 배가됐다.

모름지기 무인이라 함은 당연히 탑에 서야 되는 것이 올바른 자의 자세 아니겠는가. 자신이 아닌 달마나 초대 천마, 장삼풍이 왔어도 탑을 고수했을 것이 분명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심약함.’

축 처진 어깨와 가빠진 숨소리, 떨리는 몸. 잘 다져져 있는 무인으로서의 움직임과는 다르게 신체적인 징후들이 긴장감으로 점철되어 있었다.

심마와는 다르다. 그저 타고 난 성정이 유약할 뿐.

그런 유약함에도 불구하고 저런 성취를 이뤄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오성을 타고난 모양이긴 하지만.

‘조금 도와줘 둘까.’

무림에서는 비인부전이라는 말이 있다. 인연이 없는 자에게는 무공을 전수하지 마라는 가르침.

하지만 단천은 이런 비인부전이라는 말을 결코 믿지 않았다.

그저 재능이 싹틀 가능성이 있다면 무공을 전수해주는 것이 바로 단천이었으니까.

그 결과 단천은 걸어 다니는 절세기연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 천마의 눈에 띄면 절벽에서 떨어져서 절세기연을 얻게 되는 것이나 다름없지.

─ 그런데도 왜 피하냐고? 절세기연은 얻는데 절벽에서 떨어진 꼬라지가 되는데 누가 그 밑에서 수련을 받으려고 하겠나?

자신을 까내리는 정사파의 음해가 붙은 평가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남을 정파 사파 가리지 않고 가르치는 것이 바로 단천이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마음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단천의 눈이 셔벗의 눈과 마주쳤다.

단천은 눈썹을 모아 살짝 찌푸렸다.

흠칫!

무인이라면 최소한의 승부욕은 있을 법도 하건만, 눈이 마주치기만 했는데도 바로 눈을 깔아버린다.

심약함이 정도 이상이라는 증거.

저런 자를 제대로 일깨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서서히 교육을 통해서 마음을 열게 만들거나.

아니면 죽을 정도의 시련을 통해서 강제로 강하게 만들거나.

─ 그러다 죽으면 어떡합니까?

─ 자연사라뇨? 지존이 굴리다가 미래의 후기지수가 피어 보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는 일 아닙니까! 그게 어찌 자연사라는 말씀이십니까!

모름지기

“자. 이번 대회의 가장 커다란 폭풍! BJ천마님과 말씀 나눠 보겠습니다. 상대 탑이 꽤 오래 탑 생활을 해 온 프로게이머 ‘셔벗’님이신데. 각오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죽을 때까지 죽여 주지.”

> ㅎㄷㄷㄷ

> 개살벌하네 ㅋㅋㅋㅋㅋ

> 눈빛보소 ㄷㄷㄷ

> 블랙호스 쳐다보던 때보다 훨씬 무섭게 쳐다보는데?

“눈빛이 엄청 맹렬하신데. 혹시 셔벗 선수와 악연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런 건 없다. 그냥 한 수 가르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 한 수 가르쳐준다(수백 번 죽여서)

> 진짜 악연 없는거 맞냐? 둘이 랭크에서 만나서 뭐 시비라도 붙은 거 아님?

말을 마친 BJ천마의 눈이 한층 더 매섭게 타올랐다. 실로 마음가짐을 전파해주겠다는 선의가 가득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것을 선의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진짜 내가 뭐라도 잘못했나.’

셔벗의 등 뒤로 땀이 흘러내렸다. 이글거리는 BJ천마의 표정을 바라본 셔벗은 한 마리의 거대한 범 앞에 선 쥐라도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셔벗이 바들바들 떨고 있는 와중에 BJ천마의 발언이 끝나고, 자신에게 발언기회가 돌아왔다.

“자. 셔벗 선수! 저런 무시무시한 패기를 가진 BJ천마님께 한 마디 하시죠!”

“그. 그, 호, 혹시 기권도 가능한가요?”

“네?”

잠깐 눈을 깜빡이며 셔벗을 바라보던 김건이 별안간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농담 한 번 잘하시네요! 패기에 유쾌함으로 답하다니! 아무래도 긴장은 하나도 안 되신 모양입니다! 셔벗 선수의 각오 잘 들었습니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와 셔벗도 패기 미쳤네 ㅋㅋㅋㅋ

> BJ천마가 저렇게 쳐다보는데 농담따먹기로 응수 ㅋㅋㅋㅋ

> 진짜 다른 건 몰라도 간담 하나는 ㅇㅈ이다

> 이래야 결승전이지 ㅋㅋㅋㅋㅋㅋ

‘농담 아닌데.’

이를 달달 떨던 셔벗이 고개를 돌렸다. 비록 시청자들과 해설자는 농담이라고 받아들였지만, 자신과 함께해온 팀원들이라며 자신의 진심을 알아줄 터였다.

그러면 진짜로 기권이 가능할지도···.

“이야. 팀장. 패기 한 번 죽여주네.”

“와. 나는 저 인간 눈빛만 보고도 살짝 지린 것 같은데. 역시 팀장이군.”

“그래. 천마고 뭐고 제깟 놈도 인간이지! 한 번 제대로 해 보자고!”

“······.”

가장 열의에 차 있는 게 바로 자신의 팀원들이었다.

그리고. BJ천마의 눈은 한층 더 이글거리며 타오르고 있었다.

“본좌를 상대로 농담따먹기를 하다니. 참으로 오랜만의 경험이로군.”

아까의 눈이 30년 묵은 대호의 것이었다면 지금은 거의 백년이나 천 년 묵은 이무기나 용의 눈빛이다.

당장이라도 기권을 하고 싶어하는 셔벗이었다.

물론 그게 가능할 리는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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