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해설 (2)
김건이 해설의 난이도에 눈물을 흘리거나 말거나
게임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크와아아아!
[화염 드래곤이 생성되었습니다!]
그리고 화염 드래곤에 모여드는 양쪽의 게이머들. 탑도 예외는 아니었다.
파지지직!
회오리치듯 솟구치는 번개 전류와 함께 양쪽편의 탑이 드래곤이 있는 바텀 지역으로 텔레포트를 완료했다.
“아. 탑솔러 둘이 텔레포트 스크롤로 용싸움에 합류하네요. 「소환수의 협곡」은 오브젝트인 용이 주는 능력치가 상당하기 때문에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로 정석적인 선택. 하지만 해설을 하고 있는 BJ천마의 눈썹은 살짝 찡그려져 있었다.
“뭔가 문제가 있습니까?”
“고작 용을 얻기 위해서 탑을 떠나다니. 기본적인 마음가짐이 안 되어 있군.”
“···화염 드래곤은 공격력 버프를 10%나 팀원에게 추가해주는 오브젝트입니다. 합류를 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옛 성현이 한 말 중에 그런 말이 있다. 재물을 버리면 조금 버리는 것이요, 명예를 버리면 많이 버리는 것이요, 탑을 버리면 전부를 버리는 것이라고.”
‘그딴 말을 어느 성현이 하는데.’
> 크흑···너무 감동적인 말이야
> 탑을 버리고 합류하는 탑에게는 탑의 자격이 없다!
> 그의 말이 맞는 것입니까? 그의 탑 퍼포먼스는 실로 파괴적입니다!
일견 듣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실로 폭발적이었다.
먼저 지금 시청자 가운데 BJ천마의 방송을 오래 봐 왔던 예비 천마신교 교도들이 엄청난 수가 있었다.
거기에 BJ천마가 보여준 압도적인 퍼포먼스가 있으니 무슨 헛소리를 해도 그 말에 설득력이 생기는 것이다.
소위 유명해지니 무슨 말을 해도 설득력이 생기는 상황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크흠, 그거야 BJ천마님과 같은 압도적인 퍼포먼스가 있는 분들의 경우나 그런 게 아닐까요?”
“결국 실력이라는 것은 마음가짐으로부터 나오는 것. 여차하면 합류하겠다는 각오로 탑에 오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지.”
“···그렇군요.”
> 그의 말이 옳습니다! 천공이 나오면 저도 천마처럼 플레이할 것!
> 그에게서 정말 많은 팁을 얻습니다!
> 탑이야말로 천공의 모든 것!
원래 ‘탑신병자’라는 밈은 한국에서만 유행하는 밈이었다. 다소 폐쇄적인 게임구조와 한국인이 가지는 독특한 에고(ego)가 결합된 것이 바로 ‘탑신병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BJ천마로 말미암아 외국 국적을 가진 검은 머리 탑신병자가 순식간에 그 세를 불려 나가고 있었다.
문명의 전파는 첫 전파자가 중요한 법. 해외 서버는 저 검은머리 탑신병자들로 말미암아 탑신병자들의 세계가 자리잡고 말 것이다.
‘이 세상은 앞으로 어떻게 되려는 걸까.’
BJ천마라는 한 명으로 말미암아. AOS라는 게임 장르에 서서히 암운이 드리워지고 있었다.
***
4강 2경기. 「레인보우 셔벗」과 「갬빗 게임즈」간의
싸움은 실로 명경기라고 할 수 있는 엎치락뒤치락하는 경기였다.
화려하기 그지없는 이펙트들과 쉴 새 없는 전투, 그리고 오브젝트를 활용한 전략적 전투까지.
하지만 시청자 유지에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것은 물론 BJ천마라고 할 수 있었다.
“이 한타는 레인보우 셔벗이 일방적으로 유리하다. 원거리 딜러가 점사되기 힘든 언덕 위치에서 포격을 시작했으니.”
“포탑은 내 줬지만 갬빗 게임즈가 아이템을 꽤 많이 챙겼다. 그러니 다음 한타는 그리 만만하지 않을 거다.”
“천공에서 공성을 할 때에는 포탑의 사거리를 제대로 아는 게 중요한데. 방금 한타에서는 레인보우 셔벗의 원거리 딜러가 포지셔닝이 너무 앞으로 쏠렸다. 포탑만을 사거리에 넣을 수 있도록 하는 모습이 필요하지.”
단순히 탑신병자의 모습만을 보이는 것이 아니었다. 게임 전반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이해도를 보여줬다.
심지어 설명또한 명료하고 간단하기 짝이 없다.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어주는 해설.
“방금 탑끼리 눈이 마주쳤는데도 또 킬각을 놓쳤군.”
그런 인간이 왜 도대체 탑만 관여되면 해설의 퀄리티가 저 모양이 되는지는 여전히 미스테리였지만.
게임의 챌린저 1위답기 그지없는 해설 덕분에 해설 전체적인 질이 매우 올라가 있었다.
게스트로 BJ천마를 부른 것은 실로 신의 한 수였던 것이다.
물론 게임 내내 터져나오는 BJ천마의 뜬금없는 발언들 덕분에 해설진들은 진이 반쯤 빠져 있었지만.
그러라고 돈을 받는 것 아니던가.
“아무튼, 이걸로 4강전이 종료되었습니다. BJ천마님! 내일 결승전에 임하시게 되는데.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어차피 승자는 정해져 있으나, 그 과정또한 중요한 것. 기회를 놓치면 그대들의 손해인 것이다.”
“···네! BJ천마님의 패기롭기 그지없는 우승 선언. 잘 들었습니다!”
> 어떻게 마지막까지 패기롭냐 ㅋㅋㅋㅋㅋㅋ
> 내일 꼭 보겠습니다···
> 사실 우승은 반쯤 정해졌다고 봐야지 ㅋㅋㅋㅋ
> 그래도 내일 「천공 격투장」이라서 봐야되긴 함
***
[블라이스]
블라이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커뮤니티 중 하나다. 영미권, 중화권을 막론하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커뮤니티가 바로 블라이스인 것이다.
그 사용자의 비공식 집계 규모는 십수억 명에 달한다는 낭설까지 있을 정도.
그리고 이 블라이스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규모의 ‘VR GAMES’ 탭이.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타오르고 있었다.
[(사우디) 천공 다운로드 어디에서 진행하는가?]
[(중국) 천공 핵 배포 아직인지?(부적절한 단어 감지로 제재되었습니다)]
[(영국) 제재 빠르네]
[(EU) 게임에서 핵 찾는 놈은 죄다 가스실에 집어넣어야 되는 것]
물론 VR GAME 탭에서 현재 타오르는 주제는 게임 ‘천공’이었다. 그간 한국은 게임 제작의 불모지나 다름없다는 취급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었다.
그나마 온라인 게임에서 제대로 흥행을 한 작품인 레일 서바이버조차 나온 지 한참 되었다는 것과, 하는 사람만 즐기는 갈라파고스화가 극도로 진행됐다는 것을 생각하면. 오랜만에 저 반도에서 나온 기대 신작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블라이스의 이목이 가장 집중되어 있는 것은 다름아닌 ‘BJ천마’라는 플레이어였다.
[(일본) 탑 챔피언 추천하실 수 있는지?]
[(멕시코) 플레이어 ‘천마’가 사용하는 캐릭터 이름을 알고 싶다.]
이틀간을 보여주며 BJ천마가 보여준 퍼포먼스는 실로 경이적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천공’의 이벤트전에 등장한 게이머들은 죄다 프로 게이머, 그 중에서도 AOS게임을 한 경험이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들어본 경험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게이머들이다.
그런 게이머들이 고작 스트리머에게 도륙이 나는 것을 전 세계인들이 함께 본 것이다.
이 충격적인 광경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송출됐다.
그리고 송출된 광경은 또다른 의문을 불렀다.
‘대체 BJ천마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의 과거 행적이 기록되어 있는 말랑튜브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영국) OMG. BJ천마의 과거 영상을 봤는지? 경이롭기 그지없다.]
[(중국) 그의 플레이를 보건데 핵 플레이어를 100% 확신한다! (부적절한 단어 감지로 제재되었습니다)]
[(사우디) 영상의 편집도 편집이지만, 플레이가 실로 경이적이다.]
[(미국) 나는 그가 플레이한 모든 게임을 방금 사 플레이하고 있다. 그의 플레이가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것인지는 직접 해 봐야만 알 수 있다.]
한동안 구독자수가 증가하고 있지 않았던 BJ천마의 말랑튜브의 구독자 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구독자 수 : 173만 명]
[구독했습니다. 앞으로 좋은 영상 부탁드립니다.(IP : 사우디)]
[구독완료. 그의 영상은 실로 어메이징합니다!(IP : 필리핀)]
[구독자 구매 물품은 아직 없습니까? 내 돈을 당장이라도 빼앗기고 싶다!(IP : 일본)]
“······씨발.”
이틀만에 구독자 수가 2배가 넘게 늘어난 것을 본 강한솔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안 그래도 연일 늘어나고 있던 구독자 수 때문에 일거리가 계속 늘어나고 있었는데. 불과 이틀만에 세 배로 구독자가 늘어나 버린 것이다.
이제는 슬슬 집에 있는 가족들의 얼굴도 희미해져갈 지경이었다.
“···말도 안 돼.”
“그러게요!”
오랜만에 BJ천마의 사무실에 출근한 서유나가 기쁘게 폴짝였다.
강한솔과 김진표는 서유나를 질렸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서유나는 둘에 비해서도 훨씬 많은 작업량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언제나 에너지가 넘친다.
게임사를 다니며 별별 워커홀릭을 다 봐 왔지만 저 정도의 워커홀릭은 처음 본다.
그리고 워커홀릭은 자신도 모르게 부하직원을 혹사시키는 경향이 있다.
“와. 역시 열심히 노를 저은 보람이 있네요! 시청자수가 이렇게 갑자기 늘다니! 저희가 열심히 한 걸 하늘이 알아준 게 틀림없어요!”
“하늘이 우리가 이렇게나 열심히 하는데 이따위로 보답한다고?”
“에이. 강 편집자님. 또 앓는 소리 하신다. 강 편집자님이 이번에 만든 다키스트 에이지 매드무비. 엄청 반응 좋았잖아요. 그거, 2편, 3편도 만들어보죠?”
“······.”
“지난 번에 아쉬웠던 개선사항 메모해 놨으니까! 더 좋은 영상 만들 수 있을 거에요! 남은 영상 소스도 엄청 많고요!”
“······.”
분명히 딱 하나만 만들면 된다고 해서 영혼을 갈아넣어서 만들었는데. 난이도가 오히려 더 올라가다니.
강한솔은 하늘을 바라보며 이 모든 사태를 만들어낸 하늘을 저주했다.
“그. 추가 편집자는 더 없습니까?”
“아. 안 그래도 꽤 많은 분들이 지원을 해 주셨죠.”
“오오.”
추가 편집자라는 말에 강한솔과 김진표의 눈에 희망의 불이 들어왔다.
“근데, 지원해 주신 분들 가운데에는 아직 강 편집자님과 김 편집자님들처럼 열정과 실력이 있으신 분이 안 보이더라고요.”
“저희가 그렇게까지 열정 있게 지원은 안 했는데.”
“에이. 하인라인 퇴사까지 하시고 들어와놓으시고 겸손은. 두 분의 실력이 늘어나는 속도는 제가 봐도 엄청날 정도였다고요!”
그거야 실력이 안 늘면 죽이기라도 할 것 같은 인간이 바로 옆 방에서 매일같이 방송을 하고 있으니 그러지.
하지만 강한솔도 김진표도 이 말을 직접적으로 꺼낼 만큼의 깡다구가 있지는 않았다.
“······아무튼 그래서요?”
“그래서, 추가 모집을 더 받기로 했어요! 아마 1,2주 정도면 좋은 편집자님을 구할 수 있을 거에요!”
그러니까 당분간은 여전히 이 세명이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론 수당은 천마님이 필요한 만큼 쓰라고 하셨어요. 이번 개편 끝나면 가족이 같이 갈 수 있는 해외여행도 끊어주신대요! 기쁘지 않나요?”
그거야 기쁜 일이지.
가족들이 하하호호 해외여행을 즐기는 동안에도 자신들은 노트북으로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는 크나큰 문제가 있을 뿐.
‘엄마. 퇴사하고 싶어.’
강한솔의 어머니는 얼마 전 사내복지로 나온 카드로 최고급 안마의자를 사셨다.
─ 이정도 챙겨주는 사장이 요새 어딨냐! 한솔아,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하면 천벌 받는대이!
어머니가 그렇게 기쁘게 웃는 모습을 봤던 강한솔은 차마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다시 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은 김진표도 마찬가지였다.
가족을 인질로 삼아서 계속 일을 하게 하다니. 인질범이나 할 법한 악랄하기 그지없는 수법이다.
‘착하게 살았어야 했는데.’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악귀를 만나자마자 뒤돌아 도망치는 것을 선택할 텐데.
21세기의 기술력으로는 타임머신은 아직도 머나먼 세상 이야기였다.
또르륵.
가혹하기 그지없는 게임개발사에서도 몇 년씩 버텨왔던 두 명의 눈에서 회개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저 그들이 기원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우승이라도 못 해라. 제발.’
BJ천마가 이벤트전에서 우승하는 순간. 글자 그대로의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 빤했다.
물론 이 바램이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대회장에 나가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BJ천마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