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해설 (1)
대회 이틀째 날.
[경기가 종료됩니다! 승리는 팀 천마신교!]
팀 천마신교는 꽤 쉽게 두 번째 승리를 가져갔다. 결과는 BJ천마의 하드캐리.
두 번째 상대한 팀 타임워치의 탑이 상대적으로 약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끝났네요.”
“팀플이 전혀 안 맞던데.”
“후후. 이대로면 나, 프로로 전직해 버릴지도.”
> 버스 제대로 타놓고 입만 살았음
> 버스 탑승자분들! 조금 조용히 하실게요!
> 탑승객들이 제대로 못 타서 버스 뒤집어질뻔함;;;
> 야 근데 스트리머들이 저 정도로 버티는 것도 거의 기적이나 가까운 일 아니냐?
“시청자 분들. 억까하지 말아주세요. 천마 형이 90%정도 했다 치면 저희도 나머지 10%정도는 했거든요?”
“맞아. 내가 그 중에 9% 했고.”
“내가 9% 했지.”
“쯧쯧. 나는 너희와 달리 9.9%정도는 했어.”
> 기적의 백분율
> 여기 혹시 러시아인가요??
> 네 명 합쳐서 벌써 합쳐서 117.9%인데?
“그러면 풀창고 형이 마이너스 17.9퍼센트를 하신 걸로.”
“와. 그러면 딱 100%네.”
“······.”
풀창고가 팀원 키워봤자 아무 소용없다는 표정을 짓거나 말거나 팀원들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승리를 견인한 것은 거의 모두가 BJ천마의 공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만이 승리의 요소는 아니었다.
실제로 풀창고들의 실력은 실로 엄청나게 늘어 있었으니까. 프로들의 실력에는 아직까지 못 미치지만. 그 턱밑까지는 실력이 따라와 있었다.
“이 모든 게 천마 형의 훈련 덕분이지.”
“알면 됐다.”
맞는 말인데. 맞는 말이라서 말을 꺼낸 건데. 막상 그걸 아주 조금의 텀도 없이 인정하는 BJ천마를 보니 왜인지 속이 뒤틀린다.
> 풀창고야 니가 참아
> 안 참으면 뭐 어쩌실 ㅋㅋㅋㅋㅋ
> 집에 돌아가서 유동닉으로 악플 쓰면 됨 ㅋㅋㅋ
> 그러다 잡히면 유해도 안 남을듯 ㄷㄷㄷ
풀창고는 뭐라고 반론을 제기하려다가 그만뒀다. 실제로 지금 자신들이 거두는 성적의 대부분이 BJ천마의 덕분이라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성인이 되고 나서의 게임 실력은 쉬이 늘지 않는다.
그리고 또한 단순히 ‘열심히 한다’고 해서 실력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특이하기 그지없다.
지금 자신들의 실력이 늘어난 것은 자신의 배 아래에서 꿈틀대는 ‘무언가’의 덕분. 그리고 VR게임에서의 ‘싸우는 법’을 가르쳐주는 BJ천마의 덕분이다.
‘정말 특이한 사람이란 말이지.’
풀창고는 눈 앞에 있는 BJ천마를 바라봤다. 정체가 뭐냐고 묻는다고 해서 제대로 된 대답은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지난 번 사석에서 물어봤을 때 단천은 무림에서 온 사람이라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로 어물쩡 넘어갔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굳이 가르쳐주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굳이 알려주고 싶지 않다면야 캐물을 필요는 없지.’
단천은 선한 사람이다. 그러니 숨기는 것이 있더라도 딱히 악의는 없을 것이다.
[BJ천마에게 운영진의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메시지? 무슨 메시지?”
메시지를 확인한 BJ천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경기를 준비해야되겠군.”
“왜? 우리 경기는 끝났잖아?”
“오늘 아침에 섭외가 들어와 있더군.”
“섭외? 무슨 섭외?”
“4강 2경기를 해설해 달라는 섭외가 들어왔거든.”
***
보통 이벤트전 경기는 유동적으로 진행되는 부분이 많다. 기본적인 일정을 잡아 놓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세세한 일정이 바뀌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해설’또한 이 부분 중 하나다.
“아, 앞서 4강 1경기의 해설을 ‘댄디라이온’ 선수가 맡아주셨던 것처럼. 4강 2경기는 BJ천마 선수가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한다.”
> 캬ㅑㅑㅑㅑㅑㅑ
> 천마님 해설하신다!!!
> OMG! 갓 페가수스가 해설!
공식 해설이었다면 반말로 해설을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들 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벤트 매치. BJ천마의 캐릭터성이 저 고고하고 오만한 곳에 있다는 것을 아는 시청자들은 반말을 하는 것에 전혀 반감을 가지지 않았다.
단천은 쏟아지는 호응에 짧게 고개를 까딱거린 다음 자리에 앉았다.
이번 대회의 캐스터를 맡은 김준은 눈 앞에 떠오르는 텍스트 보드의 메시지를 읽어내렸다.
[현재 연결 지연 상황 발생. 해결까지 BJ천마에 대한 사설 이야기로 분위기 띄워 주세요!]
김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준은 자신의 옆에 앉아있는 BJ천마가 현 천공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에 대해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김준 또한 한 명의 탑솔러였으니까.
운이 극도로 없어서 아직까지 브론즈3에 머무르고 있었지만, 김준의 목표는 언젠가 BJ천마와 같은 라인에서 자웅을 겨뤄보는 것이었다.
물론 실제로 이뤄지기에는 살짝 먼 꿈이기는 했지만.
‘끝나고 싸인 받아야지.’
아무튼 위에서 합법적으로 대화를 좀 할 수 있게 자리를 마련해줬다.
“아. 지금 밴픽 이전에 짧게 연결이 지연되는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관객 여러분들께 사과의 말씀 전해드립니다. 최대한 빨리 밴픽 시작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 ㄱㅊㄱㅊ
> 알겠고 탑 라인전 꿀팁이나 좀 해달라고 하셈
> 선수들 실력 도대체 어떻게 끌어올린 거임?
대회에서의 메인 컨텐츠는 물론 ‘대회’다. 그렇기에 보통 대회 시작이 지연되면 불만이 빠르게 올라오기 마련인데. 불만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BJ천마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집중되어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황이었다.
“기왕 시간이 남았으니. 짧게 인터뷰를 해 봐도 괜찮을 것 같네요.”
“궁금한 게 있나?”
“탑에 올 때의 마음가짐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가 궁금합니다.”
마음가짐이라.
“모름지기 탑이라면 스스로가 최강이라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그렇지 않더라도요?”
“물론이다. 실제를 이야기하면 본좌 말고는 스스로가 최강이라고 하는 모든 생각은 망상이지.”
> 그 말은 본인은 최강이라는 거잖아 ㅋㅋㅋㅋ
> 패기 미쳤다 ㅋㅋㅋㅋㅋ
> 패기샘 혹사ing
첫 이야기를 기점으로 김준이 능수능란하게 단천의 이야기를 받아나가기 시작했다. 프로다운 티키타카 덕분에 대화가 이어져나갈 때마다 시청자들에게서 탄성과 폭소가 번갈아 터져나왔다.
[밴픽 준비됨. 슬슬 마무리.]
“지금 레일 서바이버에 이어서 천공까지 1위를 연속으로 달성하셨는데. 앞으로의 목표나 꿈 같은 게 있으십니까?”
“꿈이라.”
단천은 잠시 침묵했다. 마교제일인을 이룩하고, 천하제일을 이룩했다. 그리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은 물론 고금제일인이다.
하지만 단천의 궁극적인 목표는 고금제일인이 아니었다.
“영원.”
“네?”
“본좌의 목표는 영원제일인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사람과, 앞으로의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되는 것.”
김준은 BJ천마의 말에 잠시간 말을 잊었다. 펴엄한 상황이라면 농담이라고 웃어넘겼을 터다. 하지만 농담이 아니라 진지하기 그지없는 대답이라는 것이 BJ천마의 표정에서는 보였다.
“패기가 대단하시네요. 멋집니다.”
> 미쳤다 진짜 ㅋㅋㅋㅋㅋㅋㅋㅋ
> 닉네임? BJ천마. 목표는? ‘영 원 제 일 인’
> 남자로 태어났으면 저 정도 목표는 가져야지 ㄹㅇ ㅋㅋㅋㅋㅋ
> 와 난 기껏해야 천하제일인 정도 나올 줄 알았는데 ㅋㅋㅋㅋ
> 초등학교때 고작 세계대통령같은 목표를 가졌던 스스로가 옹졸해진다···
> ? 세계대통령이면 이미 충분히 큰 꿈 같은데?
> 하지만 영원제일인만큼은 아님
> 그건 맞지;
“아, 방금 드디어 서버 연결이 완료됐다고 합니다. 이제 밴픽 화면으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김준의 말이 끝나자 환호성과 함께 폭죽이 터져오르며 화면이 전환됐다.
픽 화면으로 화면이 전환되자 김준은 빠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분위기가 썩 나쁘지 않다. 원래 메인 해설을 맡고 있는 서준엽도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BJ천마의 해설을 위한 판을 깔아주겠다는 손짓을 해 보였다.
[서리궁수가 선택되었습니다.]
[마탄의 사수가 선택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픽을 바라보던 단천은 감상에 젖어 있었다. 중원에서 자주 있는 것이 바로 비무대회다. 그리고 단천은 그 무위 덕분에 자주 비무대회의 해설을 하고는 했었다.
‘추억이로군.’
“아. 가장 먼저 나온 게 바텀 픽이네요. 서리궁수와 마탄의 사수. 이 상성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단천은 바텀 라인전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상성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평범한 대답이다.
하지만 단천의 입에서는 즉시 대답이 터져나왔다.
“반반이다.”
“반반인가요? 어떤 점에서?”
“어느 쪽이건 본좌가 플레이하는 쪽이 이긴다. 그러니 반반인 것이지.”
“······.”
상상도 못한 답변에 산전수전 다 겪은 캐스터인 김준의 입이 일순간에 멈췄다.
> 와 방금 방송사고날뻔 ㅋㅋㅋㅋ
> 와 김준이 멘트 멈추는거 살면서 처음 봄 ㅋㅋㅋ
> 그만큼 충격적인 대답이셨다는 거지
“아, 그, 그렇군요! 그러면 방금 잡힌 미드 라인의 상성은 어떻습니까?”
“미드도 반반이로군.”
“혹시 미드가 반반인 이유도···.”
“본좌가 플레이하는 쪽이 이기기 때문이다.”
‘이 인간. 상상 이상인 인간이다.’
김준의 입이 또다시 일순간 멈췄다. 시청자로서의 김준이 BJ천마의 커다란 팬이다.
하지만 그건 시청자로서의 입장이고. 현재 방송을 이끌어나가는 캐스터의 입장은 정반대다.
이대로라면 어떻게 되건 방송사고가 터질 게 분명하다.
마른침을 삼킨 김준이 바로 서준엽에게 헬프 사인을 보내왔다.
“아, 아무래도 「얼음 불새」쪽이 냉기의 벽을 활용하면 「플레임 마스터」를 상대하기가 편하죠. 최상위권 게이머들 말로는 대충 7대 3정도의 상성이라고 합니다!”
“그, 그렇군요! 서준엽 해설의 말씀도 일리가 있으십니다!”
“흠. 아무리 생각해도 본좌 생각에는 5대5인 것 같군.”
“네! BJ천마님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 결국 무기는 누구에게 쥐어지느냐의 문제인 것을···
> 존윅에게 들려진 연필(학살병기)
> BJ천마에게 들려진 박정(랭크1위)
> 5대5의 화신 BJ천마 ㄷㄷㄷㄷ
[픽이 완료되었습니다!]
“자. 밴픽 끝났네요. 밴픽에 대해서 한줄평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밴픽이란 게 결과론이지만, 지금 상황으로 말하자면 팀 거울전쟁이 다소 유리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흥비롭게도 탑, 정글, 미드, 원딜, 서폿에서 모두 5대5인 결과가 나왔군. 그러니 완전히 5대5인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람 대체 누가 섭외한거야.’
팬심은 온데간데없고 속으로 BJ천마를 섭외한 인간을 씹어대는 김준이었다.
물론 게임이 끝나고 싸인은 받을 테지만!
할 수 있다면 1:1로 한 번만 붙어 달라고 부탁도 할 테지만!
그것과 해설은 다른 영역이니까!
그래도 다행인 점은 픽이 완전히 끝났다는 점이다.
[게임이 시작되었습니다!]
“자. 경기 시작되었습니다!”
게임이 시작되고 김건은 마음을 살짝 놓았다. 밴픽에서야 BJ천마가 저런 소리를 해도 라인전의 해설마저 저런 방식은 아닐 것이다.
특히나 BJ천마는 라인전에서 신이라고 칭해질 정도로 극강의 플레이를 보여주는 게이머 아니던가.
그러니 게임이 시작되면 해설이 조금은 편해질 터였다.
“라인전이 시작됐네요.”
“탑. 방금 킬각이었는데. 킬각을 놓쳤군.”
“네? 방금 서로 마주쳤는데요?”
“그러니까. 눈이 마주쳤으니 킬각이었는데. 왜 싸우지 않는지 모르겠군.”
“······.”
이 인간. 라인전에서의 해설도 본인이 기준이다.
> 탑솔만의 미친 킬각
> 상대 탑이 꼬나보는데 안 싸워?? 탑솔러 맞냐???
> 눈 마주치면 싸워야지 ㅡㅡ
> ㅇㅈ ㅋㅋㅋㅋㅋㅋㅋㅋ
시청자들은 BJ천마의 발언에 시종일관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지금의 대회가 이벤트전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시청자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그 무엇보다 바라마지않는 결과다.
물론 그것과 별개로 해설 난이도는 지옥불이 펼쳐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김건은 청명하기 그지없는 하늘을 바라봤다. 구름 한 점 없어야 할 VR챗의 하늘이 부옇게 흐려진 것은 아마도 착각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