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52화 (152/212)

34. 완승 (3)

타앗!

블랙호스의 발이 바닥을 걷어찼다. 저 괴물같은 BJ천마가 자신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놈의 움직임에 따라 자신이 앞으로 움직여야 할 길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떠오른다.

블랙호스도 나름대로 프로의 권역에 들어 있는 플레이어다. 나름대로 무빙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었지만.

‘미쳤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움직임을 자신 머릿속에 있는 ‘보법’이라는 것은 만들어내고 있었다.

과거에 이런 방식으로 머리에 지식을 집어넣은 플레이어가 폐인이 됐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번 버전은 그 부분이 개선된 버전이라고 했었지.’

물론 이런 보증은 마약상의 안정성 보증이나 다름없는 말이기는 했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프로그램과 함께 프로그램을 사용해주는 것을 댓가로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의 돈을 얻었으니까.

지금부터 그가 하는 일련의 게임들은 이를테면, 보너스 스테이지와 같은 것이었다.

카가각!

단천의 검이 거칠게 바닥을 긁었다. 하루에 두 번이나 자신의 검격이 빗나가다니. 그리 마음에 드는 결과는 아니었다.

확실히 저놈의 발에서 펼쳐지는 보법은 절세의 보법이다. 짭팔선보를 만든 취선이 들으면 기분이 나쁠지도 모르지만 짭팔선보보다도 깊은 무공이다.

단천은 날아오는 화살들을 피해냈다.

“결국 본좌의 천마군림보로밖에 상대할 수가 없다는 거지.”

단천은 미소를 숨기지 않았다.

단천의 천마군림보로 놈을 잡아낸다면 자신의 보법에 대한 이해도가 초대 천마도, 취선보다도 윗줄에 있다는 것이 증명되는 것이니까.

“하! 네놈은 결코 나를 잡을 수 없─!”

블랙호스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단천의 발이 앞을 향해 빛살처럼 쏘아졌다.

헉. 하는 소리가 블랙호스의 입에서 터져나오기도 전에 BJ천마의 몸은 블랙호스의 앞에 떨어져내렸다.

기겁한 블랙호스의 발이 뒤를 향해 도약했다. 실로 시의적절한 움직임이었다.

그러니 BJ천마와의 거리는 충분히 멀어질 것이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그 뒤 벌어진 일은 블랙호스의 상상을 뛰어넘은 것이었다.

타아악!

BJ천마의 몸이 블랙호스를 향해 도약했다. 아니. ‘향해’ 도약했다는 말은 옳지 않았다.

BJ천마의 도약은 블랙호스의 도약과 동시에 벌어졌으므로.

도약의 방향도, 세기도, 날아가는 거리도 같다. 마치 거울과도 같은 두 명의 발놀림.

“이걸로 두 걸음이로군.”

“이런 미친─!”

단천의 박도가 블랙호스의 머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는 몸놀림으로 블랙호스의 발놀림이 바닥을 박찼다.

하지만. 이번에도 BJ천마의 발걸음은 블랙호스와 완전히 똑같이 움직이고 있었다.

“이 개자식아! 따라하지 마!”

“이걸로 다섯 걸음. 여섯 걸음.”

상대방과 완전히 똑같이 움직인다면, 상대가 가진 보법의 묘리는 무력화된다.

단천이 떠올린 천마군림보의 요체가 바로 이것이었다. 거울 속의 자신에게서 도망칠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없는 법.

상대의 근육과 눈 움직임, 심리상태를 완전히 꿰뚫어보고, 상대가 움직이는 것과 완벽히 똑같이 움직인다는 신기에 가까운 기예.

이런 초인적인 능력을 왜 이딴 데 쓰냐는 서윤학의 억지가 있었지만. 그 억지는 3합의 물리적 논검으로 제압되었다.

─ ···그건 그렇다치고, 이런 방식의 보법이라면 일곱 걸음으로 천하를 발 아래 둔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블랙호스의 다리가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마치 그림자처럼 자신과 딱 붙어서 달려오는 저 미친 놈을 떼어내야만 했다.

타악!

블랙호스가 온 힘을 다해 언덕 위로 도약했다. 이 정도의 도약이라면 놈도 따라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떨쳐냈나?”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순간. 블랙호스의 다리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으아아악!”

[다리에 치명상을 입었습니다!]

[일시적으로 이동이 불가능해집니다!]

어느 순간 베였다는 것을 인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깔끔한 일격이었다.

사냥감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단천이, 한 번의 도약으로 블랙호스의 눈 앞에 섰다.

“이걸로 일곱 보.”

블랙호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저놈의 숫자는 왜 세고 앉아있단 말인가?

영문을 몰라하는 블랙호스의 표정과 달리 BJ천마의 얼굴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일곱 걸음으로 놈을 잡아냈으니 자신의 승리다.

“우문이었지.”

“뭐가 말이냐!”

“일곱 걸음으로 천하를 아래에 둘 수 있는 보법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단천의 검이 밝은 검광을 뿌렸다.

“일곱 걸음 안에 모든 자들을 쓰러트릴 수 있는 무력을 가지면 되는 것을.”

[BJ천마가 블랙호스를 처치했습니다!]

상대가 계란을 세우려고 한다면 계란을 산산조각내서 세우지 못하게 만들어버릴 힘이 있으면 되는 것. 실로 발상의 전환, 코페르니쿠스적 아이디어, 천하가 경천동지할 무학의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 무학이 아니라 깽판 아닙니까?

─ ···고작 저딴 개소리를 듣기 위해서 반년간 지옥을 살아온 거였다니···.

─ 저게 무학이면 동네 양아치들의 주먹질도 무학이지.

무알못인 천마대의 사소한 불평불만이 뒤를 따랐지만. 결국 단천은 결과로 증명했다. 중원 그 어떤 이도 자신의 천마군림보를 막아내지 못했으므로.

“자. 이제. 검증이 끝났으니. 도살을 시작해야겠지.”

단천의 눈이 멀리서 털레털레 다가오는 부활한 블랙호스에게 가 꽂혔다.

***

와아아아아!

거대한 함성이 VR 홀 안에 울려퍼졌다. 온 세상을 들썩이게 만들것만 같은 함성의 주인공은 물론 팀 ‘천마신교’였다.

“이걸 진짜로 이긴다고?”

“미쳤다 진짜!”

“천마신교 그들은 정말로 신인가?!”

시청자 대부분은 천마신교가 이긴다고 해도 탑을 중심으로 한 아슬아슬한 승리를 예측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 예상을 한참이나 뛰어넘는 것이었다.

탑을 제외한 다른 라인에서 순식간에 터져나온 1레벨 솔킬. 솔킬로 만들어진 우위를 천마신교는 시종일관 유지하며 게임을 끝까지 굴려나갔다.

그리고 탑은.

[37/0/0]

37킬. 처음 만들어진 격차 이후에 블랙호스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움직임을 해 보지 못하고 계속 BJ천마에게 킬을 헌납했다.

이래저래 어그로를 끌어서 비호감 이미지가 겹쳐 있는데도 마지막에 가서는 거의 불쌍하다는 여론이 대세가 될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단천은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풀창고들을 바라봤다.

“넥서스를 조금 더 늦게 터트렸어야지.”

“아니. 형. 저 사람들 프로라니까? 마지막에 한타 아슬아슬하게 이겨서 겨우 넥서스 깬 거야.”

“그리고 37킬이면 됐지 뭘 더 바래?”

“최소한 100번은 죽였어야 했는데.”

“정몽주도 아니고 사람을 어떻게 백 번을 고쳐죽일 생각을 해.”

“본좌에게 덤벼든 죄는 천 번을 찢어죽여도 부족하다.”

말하는 꼴을 보아하니 아직도 복수할 거리가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풀창고들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단천을 보며 단천에게는 절대로 덤벼들지 말아야겠다고 새삼 다짐했다.

블랙호스는 멍하게 자리에 앉아 있었다. 거듭되는 킬 때문에 신경쪽에 무리가 많이 간 모양이었다. 물론 신경의 무리만으로 저 모양일 리는 없고, 처참하게 찢겨서 졌으니 멘탈이 나가 있는 것일 테지만.

> 아니 어떻겤ㅋㅋ프로갘ㅋㅋㅋ37데슼ㅋㅋㅋㅋ

> 야 BJ천마 상대로 37데스면 잘한 거야!

> 잘하기늨ㅋㅋ개뿔ㅋㅋㅋ꼬시닼ㅋㅋㅋ

게임이 막 종료되었을 때에 불쌍하다는 여론이 일었던 것과 달리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슬슬 블랙호스의 플레이를 비하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 그러니까 탑에 원딜 들고오지 마라. 진짜 뒤진다

> 어떻게 남자간의 싸움에 들고오는 게 원거리 무기지

> ㄹㅇ;

“채팅창에서 보이듯. 원거리 무기는 비겁한 무기다. 너희도 가능하다면 근시일 내에 근거리 무기로 갈아타도록.”

제로콜과 토끼가면은 전혀 듣는 표정이 아니었다. 한 살이라도 오래 산 사람이 진심을 다해서 조언을 하는데 듣는 태도가 영 아니다.

‘훈련양을 늘려야겠군.’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모습이 띠꺼워서는 아니다. 그냥 문득 훈련량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 뿐이다.

***

[방송 데이터 집계중···.]

이태흠이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정식 대회도 아닌 대회 이후로 출시일을 잡아두는 것은 하인라인 쪽에서도 꽤 큰 모험이었다.

여기서 시청자수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면 그만큼의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이태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결과 나왔습니다.”

“시청자수는?”

“평균 시청자수, 310만입니다.”

“중국까지 합쳐서?”

“네. 황금방패가 있는 중국 IP를 제외하고도 이 정도 숫자가 나오네요.”

“310만.”

이태흠을 비롯해 모니터링하고 있던 직원들의 입에서 가벼운 탄성이 터져나왔다.

310만. 이벤트 대회라는 것, 거기에 제대로 출시가 되지도 않은 게임의 첫 경기라는 것을 생각하면 엄청나기 그지없는 성과다.

이런 대단한 성과가 터져나왔다는 것은 물론 직원들에게 헬게이트가 거듭 열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직원들의 얼굴에 스쳐지나갔다.

“대박이네요.”

“대박이지.”

“야근은요?”

“야근하기 싫은 사람 손 들어봐.”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실로 공정하고 투명하기 그지없는 회사 운영이었다.

“···추가로 손 남는 지인이나 후배 있으면 어떻게든 포섭해와. 곧 졸업 시즌이지? 포트폴리오 보고 괜찮다 싶으면 인맥 동원해서 다 잡아와. 추가 인센티브 팍팍 줄 테니까.”

“최대한 노력해 보겠습니다.”

“그래··· 나만 지옥에 빠질 수는 없지.”

“학과에서 꼴 보기 싫은 후배 전화번호 분명 저장해 놨었는데.”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된다던가. 하인라인에 입사를 적극 추천하려고 하는 직원들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통을 나누기 위한 계획을 세우던 직원들 사이에서, 데이터를 바라보던 한 직원이 입을 열었다.

“그보다. 이 시청률이 계속 이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왜지?”

“BJ천마가 화면에 나올 때만 유의미하게 시청자수가 올라가고 있거든요.”

“데이터 조합해 봐.”

화면에 나온 데이터를 조합하자 결과가 더 확실해졌다. ‘BJ천마’가 나오는 순간에만 유의미할 정도로 시청자 수가 튀고 있다.

이런 스파크는 보통 한 스포츠를 대표하는 프렌차이즈 스타가 있을 때에나 나오는 현상이다.

고작 스트리머 한 명이, 정식 대회가 출범하지도 않은 대회에서 이런 스파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BJ천마가 나왔던 1경기가 끝나자마자 시청자수가 가파르게 줄어들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래도 나름 할 수 있는 최대한 인기있는 선수들 모아서 만들었는데도 이러네.”

“그럴만도 하죠. 외모도 잘생겼고, 실력은 말할 건덕지도 없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 입장에서도 저 인간 언제 지는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게 하죠.”

진정한 슈퍼스타는 까와 빠를 모두 미치게 만든다던가.

의도한 것이건 아니건 BJ천마는 그 슈퍼스타의 재목으로 합당한 재능을 가진 인재였다.

문제는 그 인재가 모든 경기에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4강의 1경기와 결승전에는 나오겠지만. 4강의 나머지 한 경기에서는 BJ천마가 아예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잠시 고민하던 이태흠의 입이 열렸다.

“···그야 방법이 있지.”

경기에 나올 수 없다면. 경기가 아닌 곳에서 나오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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