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50화 (150/212)

34. 완승 (1)

천공배 초청 대회 첫 날 당일.

“흐흑···드디어 끝났어···.”

대기실로 만들어진 VR챗에 주저앉은 풀창고가 흐느끼며 주저앉았다.

말을 할 수 있는 상태였던 풀창고는 그나마 상태가 온전한 편이었다. 정유채도, 제로콜도, 심지어 체력 좋은 걸로는 어디 가서 안 밀리는 토끼가면도 바닥에 주저앉은 채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토끼가면. 넌 뭐 체력 엄청난 것처럼 굴더니. 왜 다 죽어가냐?”

“···따로 하는 운동 다 하고 훈련을 했으니까.”

“비시즌이라며.”

“비시즌이라고 그냥 노냐?”

> 토끼가면 허언증에 구멍 송송;;

> 아니 비시즌이면 놀지 안 놀고 뭐함

“비시즌에도 훈련해요 이 사람들아. 너무 오래 쉬어서 기초체력도 다시 올려야 되고. 감 안 잃도록 주기적으로 훈련도 해 줘야 되고.”

> 월클인 척 에반데 ㄷㄷ

> 누가 보면 한수아쯤 되는 줄 알듯 ㅋㅋ

토끼가면의 머리에 가느다란 힘줄이 솟거나 말거나 채팅창의 도발은 몇 분간 이어졌다.

“와. VR게임 오래하니까 진짜 엄청 힘드네요.”

“그렇지. 겉으로 보기엔 쉬워 보일 순 있는데 마냥 쉬운 건 아냐. 신경을 혹사하는 편이니까.”

VR게임은 오래 하면 할수록 신경에 피로를 가중시킨다. 게임이 더욱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리고 정교한 모션이 필요하면 필요할수록 더욱 더 신경이 느끼는 피로는 커진다.

그리고 지금 엎어져 있는 네 명이 닷새 내내 상대한 것은 그 BJ천마다.

웬만한 게임의 최종보스보다도 더 신경을 혹사시키는 라인전을 하루종일 계속했으니 정신적으로 느끼는 피로감이 클만도 한 것이다.

이 라인전은 방송이 꺼진 다음에도 하루종일 계속됐다. 대회 전 준비 컨텐츠로 준비해 놨던 맵 탐구, 적 챔피언 탐구, 적의 플레이어 탐구와 같은 컨텐츠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종일 BJ천마와 라인전을 해야만 했던 것이다.

“···근데 우리야 네 명이서 나눠 했다 쳐도. 사부는 하루 종일 라인전만 계속했잖아.”

“그렇지.”

“대체 신경줄이 어떻게 생겨먹은 거야?”

아무리 여기 앉아있는 네 명이 BJ천마에 비해서는 떨어진다고는 해도 팀 랭크 챌린저의 끄트머리에는 들어가는 플레이어들이다.

그런 플레이어들을 상대하는 BJ천마의 검은 단 한 순간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몰라. 신경줄이 강철로 된 거 아닐까?”

“강철도 두드리면 부숴져.”

“그러면 다이아몬드.”

“다이아몬드도 계속 두드리면 깨지지?”

“그러면 탄소 나노 튜브로 하자고. 그 뭐냐, 행성 규모로 비틀어도 안 부서진다던데.”

“그래. 그건 가능성이 있다.”

팀원들이 두런두런 말을 하고 있는 중에 VR챗에 익숙한 인영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BJ천마가 입장했습니다.]

입장한 것은 물론 BJ천마였다. 단천은 VR챗에 입장하자마자 바닥에 물 먹은 수건처럼 널부러져 있는 네 명을 불만족스럽게 바라봤다.

단천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처음 나흘동안은 꽤 가혹하게 훈련을 시켰다. 하지만 어제는 훈련을 일찍 마쳐줬다.

다음 날이 대회인데도 수면시간을 보장해주지 않을 정도로 단천은 단순무식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충분히 잘 시간도 줬는데 엄살은.”

“잘 시간만 줬잖아!”

“우우! 우리는 게임만 하는 기계가 아니다!”

“꼽다면 본좌를 사퇴시면 되는 일 아닌가?”

“오? 사퇴시키는 것도 가능한 거야?”

“물론이다.”

BJ천마를 사퇴시킬 수 있다는 말에 팀원 네 명의 눈빛이 빛났다.

> 희망 ON

“어떻게 하면 돼요?”

“본좌와 싸워서 이기면 된다. 다대일도, 1대1도 모두 가능하지. 신청하면 언제든지 받아줄 테니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덤비도록.”

‘절대 안 된다는 말이잖아.’

> 희망 OFF

“그보다. 열심히 하긴 했는데··· 진짜 이걸로 이길 수 있는 건 맞아?”

“그러게. 1레벨 싸움만 주구장창 했잖아.”

닷새 내내 1레벨 기준으로만 라인전을 해 왔다. 확실히 처음에 비해서는 나아졌다는 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길 확신이 생겨난 것은 아니었다.

“뭐.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겠지.”

단천의 입에 자신만만한 미소가 걸렸다. 이 준비가 통할지 안 통할지는 모두 결과가 말해 줄 터였다.

그리고 단천은 내기를 한다면 전 재산을 자신의 팀원들이 라인전을 이긴다는 쪽에 걸 수도 있을 정도였다.

실제로 중원에서도 자신의 수하의 승패를 건 내기에서 단천은 거의 진 적이 없었기에.

─ 이겨! 죽어도 이겨!

─ 단주 표정 보이지! 네놈이 여기서 쓰러지면 우리까지 다 죽일 눈빛이야!

─ 전생과 현생과 이생의 모든 힘을 다해서라도 이겨어어어어!

눈에서 핏방울이 떨어질 정도로 응원하던 혈귀단을 떠올리며 단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곧 1라운드 시작하니까 팀 ‘천마신교’와 ‘다크호스’는 출전 준비를 해 주세요!]

“이제. 게임을 시작할 시간이군.”

[준비 완료되셨나요?]

“준비됐다.”

[대회 홀로 이동합니다.]

대기실이 순식간에 대회장으로 바뀌었다.

“BJ천마! BJ천마! BJ천마!”

“와아아아!”

“토끼가면 누나! 팬이에요! 라인전 꼭 이겨 주세요!”

대회장을 뒤덮고 있는 수없이 많은 인파들이 만들어내는 커다란 소리가 홀 전체를 울렸다.

슈퍼컴퓨터로 하는 연산인데도 불구하고 화면에 순간적인 렉이 걸릴 정도.

[홀로그램 직관 인원 : 10만]

“와우.”

“엄청나네요.”

“홀로그램 직관 표 좀 비싸게 판 걸로 아는데. 그런데도 10만명이라니. 엄청나네요.”

풀창고가 혀를 내둘렀다. VR챗을 확장한 시청 방식인 홀로그램 직관 방식은 실제 시청자들이 대회장에 갔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홀 대관’ 시스템이다.

한 장소에 있는 VR챗의 인원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서버 부하가 막대해지는 탓에 표 가격이 꽤나 높게 책정되는데.

그런데도 불구하고 10만명이나 되는 인원이 여기에 모여 있다.

물론 VR 직접참여가 아니라 평소와 같은 간접 참여도 가능하다. VR챗과는 달리 채팅창으로밖에 참여할 수 없기는 하지만.

> 아 진짜 ㅅㅂ 어떻게 표가 5분만에 매진됨?

> 세계 전체에서 다 몰려들었더라 ㅋㅋㅋㅋㅋㅋ

> 진짜 글로벌한 ‘천공’··· 진짜 한국 게임 맞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 오늘 천공 해외 런칭 발표도 한다던데

채팅창의 반응을 보아하니 아슬아슬하게 10만명을 채운 것도 아닌 모양이다.

어마어마한 VR챗의 시청자수를 보고도 단천은 심드렁했다.

“그렇게 많지도 않군. 인파가 많이 모인다고 하면 최소한 백만 명은 되어야지.”

“형은 가끔 보면 숫자 개념이 너무 없는 것 같아.”

“본좌의 목표는 전 세계인의 천마신교화다. 고작 10만명으로는 목표에 발만 살짝 담근 정도에 불과하지.”

“···그래. 꿈이 원대해서 좋긴 하다.”

그렇게 단천이 담담하게 주변을 메운 시청자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고 있을 때.

[팀 다크호스가 입장했습니다.]

블랙호스의 팀. 다크호스가 한 템포 늦게 입장을 완료했다.

[두 팀의 입장이 완료되었습니다!]

쩌렁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대회 시작을 알리는 폭죽이 터져나왔다. 거대한 폭죽이 하늘로 솟아올라 하늘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거대한 용을 그려나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용이 별안간 몸을 꿈틀거리더니. 하늘 높을 곳을 향해 솟아올라 사라졌다.

“호오.”

확실히. 이런 것은 VR이라는 것만이 가능한 기술이다. 아무리 현실이 발전한다고 해도 실제로 하늘에서 움직이는 그림은 만드는 것이 불가능하니까.

“용 모션은 괜찮은데. 좀 흔하지 않나? 요새 한강에서 하는 프로포즈도 움직이는 모션 그래픽 지원해 주는데.”

“저런 게. 실제로도 되나?”

“많이들 하죠. 드론 띄워서 그림 움직이게 하면 되잖아요. 설마 안 된다고 생각한 거에요?”

“물론 된다고 생각했다.”

단천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술의 발전이라는 것은 원래 대단한 것이다. 기술이라는 것으로 불가능하다고 상상하는 사람들이 멍청한 것이다.

그리고 움직이는 그림이 대수이던가. 저게 진짜 용도 아닐진데. 아니, 실제 용이라도 검으로 베어 버리면 그만 아니던가.

그렇게 용이 솟아오른 자리에 남은 빛무리들이 글자 형상을 갖추기 시작했다.

[‘천공’ 전 세계 런칭 일정 발표!]

“와아아아아아!”

“역시! 하는구나!”

“Oh my god! 이것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해외 게이머들이 기를 쓰면서 이번 대회를 참가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천공’ 세계 통합 서버 런칭 일정 발표.

“근데. 한글로 쓰여져 있는데도 다 읽을 수 있나?”

“자동 번역기를 쓰는 경우도 있는데, 반응 보면 아마 그래픽 모션 자체를 국가별로 따로 설정한 모양으로 보이네요.”

“그래픽 팀이 고생했겠군.”

“그렇게 엄청 고생하진 않았을 걸요? 보통 런칭 일정같은 경우에는 반년쯤 전부터 조율하니까. 시간은 넉넉했을 거에요.”

“그런가?”

“그렇죠.”

단천은 눈을 들어 관계자석에 앉아 있는 ‘그래픽팀’을 바라봤다.

풀창고의 말에 따르자면 일정이 충분하다고 했는데도 왜 저 사람들의 눈 밑에 기다란 다크서클이 달려 있는 것인지.

그리고 왜 필생의 숙적이라도 바라보는 것처럼 자신을 바라보는지.

여전히 모를 일이다.

누가 보면 단천 때문에 런칭 일정이 당겨지기라도 한 줄 알겠다.

아무튼, 하늘에 떠오른 글자들은 형형색색의 빛깔을 뽐내며 하늘에 새겨진 글자를 다시 한 번 변화했다.

[런칭 일정 : 한국 시각으로 ‘천공’대회가 끝난 즉시!]

“와아아아아아아!”

글자가 떠오르자마자 환호성이 다시 한 번 홀 전체를 터트릴 듯이 터져나왔다.

> 미쳤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실화냐 ㅋㅋㅋㅋㅋㅋㅋㅋ

> 이거 맞냐? 대회 끝나자마자 런칭 ㅋㅋㅋㅋㅋㅋ

> ㅁㅊㄷ ㅋㅋㅋㅋㅋㅋㅋㅋ

채팅창의 반응도 다르지는 않았다. 보통 런칭 일정이라고 한다면 그 나라의 하루 일정에 맞도록 조정하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지금 나오는 런칭일정은 ‘대회가 끝나는 즉시’로 시간을 잡아두고 있다.

그 말인즉. 대회를 보며 천공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라는 뜻이다.

“대회에서 멋진 모습을 최대한 많이 보여줘야겠군.”

“어쩌나. 네놈은 여기서 탈락할 테니.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할 텐데.”

블랙호스가 이죽거리며 단천의 말을 받았다.

“아쉽군.”

“뭐가?”

“이게 천공이었다면 방금 말이 끝나기 전에 턱주가리가 날아갔을 텐데. 갈레온도 그렇고, VR챗도 그렇고. 직접 공격이 안 되는 곳에서만 보다니. 운 좋은 줄 알도록.”

“······.”

블랙호스의 얼굴에 짜증이 올라왔다. 뭔가 반박을 하려고 해도 BJ천마가 갈레온에서 보여준 무위는 실로 입신의 경지에 달해 있었으니까.

‘빌어먹을 자식.’

하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가지는 못할 터였다. 자신이 머릿속에 얻은 ‘프로그램’은 저 빌어먹을 BJ천마조차 이길 가능성이 없는 프로그램이었으니까.

‘네놈이 자신만만한 것도 여기까지다.’

빠드득!

블랙호스의 입에서 살벌한 이 가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단천은 이를 바득바득 가는 블랙호스를 바라봤다. 놈은 여러 모로 운이 좋았다. 자신에게 도발을 세 번이나 하고도 두 발로 걸을 수 있는 것은 중원에서도 손꼽히는 행운아들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좋은 운도 이제는 끝이었다.

“멋있게 쓰러질 준비나 하도록. 수십만 명의 시청자들이 보고 있으니까.”

> ㅎㄷㄷㄷㄷㄷㄷ

> 패기 ㅁㅊㄷ ㅋㅋㅋㅋㅋ

> 오랜만의 패기샘 발현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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