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47화 (147/212)

32. 조 지명식 (4)

와아아아아!

단천이 VR캡슐을 빠져나오자 거대한 함성이 장내에 터져나왔다. 실로 아슬아슬하기 그지없는 상황에서 터져나온 슈퍼 플레이.

환성이 터져나오지 않을 수가 없는 상태인 것이다. 공식 채팅창의 상황도 다르지는 않았다.

> 정의구현 미쳤다 ㅋㅋㅋㅋㅋㅋㅋ

> 욕박더니 실력도 바닥인데? ㅋㅋㅋㅋㅋ

> 블랙호스 예전에 갈레온 랭커였다는데?

> 근데도 진 거임? ㅄ ㅋㅋㅋㅋㅋ

물론 공식 채팅방인 만큼 그 채팅의 수위가 훨씬 높기는 했지만.

그리고 저 공식 채팅방에서 만들어진 동영상 파일들이 실시간으로 커뮤니티 사이트들에 퍼져나갈 터였다.

실시간으로 흑역사 하나가 생겼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에 블랙호스의 얼굴이 파리해졌다.

“어, 엄청난 슈퍼플레이었습니다! 멋진 플레이를 보여준 두 명의 팀장에게 시청자 여러분들의 아낌없는 박수 부탁드리겠습니다!”

채팅창의 분위기를 본 진행자가 다급하게 진화를 하려고 했지만. 이미 블랙호스는 이전 상황에서 업보를 너무 많이 쌓아놓은 상태였다.

아마도 대회하는 내내 조롱과 멸시가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터.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무슨 말이지?”

“본좌와 붙어서 한 경기만에 떨어지게 될 테니까.”

> 크

> 도발 다시 안 얹어 주면 천마님이 아니지 ㅋㅋㅋㅋ

> ㅇㅈ합니다

그 이후에 이어진 갈레온에서도 BJ천마의 실력은 폭력적이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게임의 고인물조차 이기지 못했다.

게다가 갈레온의 조작감은 상상 이상으로 허접하다. 아무리 프로게이머라고 할지라도 BJ천마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BJ천마 승리!]

“이로서 압도적인 점수차로 BJ천마 선수가 승리했습니다! 소감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본좌가 1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그···렇군요!”

“그렇다.”

“그럼, 1위로서 지명권이 생기셨는데. 지명권은 어디 사용하시겠습니까?”

갈레온을 통한 상대 선정권. 선정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제일 쉬운 상대부터 처리하는 것이 순서겠지. 저 인간.”

“블랙호스 선수요?”

“이름은 모른다. 아무튼 제일 약해 보이니 저 자와 먼저 붙도록 하지.”

> 엌ㅋㅋㅋㅋ

> 이름 알잖아 ㅋㅋㅋㅋㅋ

실로 노골적인 트래시 토크. 하지만 블랙호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속으로 이를 갈아붙일 뿐.

‘빌어쳐먹을 새끼.’

그저 실제 경기에서 놈을 이겨먹겠다는 생각만이 블랙호스의 머리를 가득 채울 뿐이었다.

단천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잡졸이 자신에게 이를 바득바득 가는 것을 보며 속으로 코웃음을 터트렸을 뿐이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악의를 품는 사람이 생기는 것만으로도 밤잠을 설칠 수도 있을 일이었지만. 단천은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다.

자신에게 살의를 품었던 인간이 한둘이던가.

단천 자신이 중원에서 자애와 도덕심으로 치국평천하를 해 왔다는 것은 천마신교의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 명백할 사실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천의 정책에 불의한 마음을 품는 도당들이 중원에는 언제나 존재해왔다.

─ 매년 한 번씩 마교에 들러서 천마 놈과 비무를 하라니! 그게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더냐! 비무를 하고 싶다면 직접 찾아오란 말이다!

─ 바둑 질 때마다 매화주 한 병이라니! 악마 놈아! 네놈은 바둑 조금만 불리해도 격공섭물로 사람 팔을···아아악!

하지만 단천은 이런 역적도당들의 말 하나하나에 반응해 놈들을 토벌하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는 역적 무리들 하나하나에 신경쓸 시간에 자신을 갈고닦는 일이 군자의 도 아니겠는가.

“그럼, 대진표가 완성되었습니다!”

그렇게. 대진표가 완성되었다.

***

그렇게 대진표가 완성된 날 저녁. VR챗에 천마신교의 5명은 모두 모여서 대회 대비 모임을 시작했다.

“와. 시청자 수 실화냐.”

제로콜은 턱을 벌린 채 중얼거렸다. 대진표가 짜여진 기념으로 한 번 짧게 전략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모인 자리인데. 현재 시청자수는 3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던 것이다.

한국 시청자수의 파이를 생각한다면 뷰봇으로 의심받을만한 규모. 하지만 BJ천마가 뷰봇을 사용할 이유는 없다.

그런데도 이토록 많은 시청자가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모여든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 오늘 방송 매우 즐거웠습니다 LOL

> 욕설 플레이어에게 대단한 카운터 먹여준 www

> 무림 최고의 강함. 그것은 물론 천마의 것! 왜 그는 중국이 아니라 한국에 있는가!

한눈에 봐도 한국 시청자가 아닌 채팅들이 다수 보인다.

“해외 시청자들이 엄청 늘었네요.”

그야 당연했다. 지금까지 BJ천마의 방송은 마이너한 게임이거나 확연하게 글로벌한 게임만을 타겟으로 해 왔다.

해외의 시청자들에게 있어서 언어의 장벽을 무시하면서도 시청할 정도의 메리트가 있지 않은 방송이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천공’이라는 게임에 쏟아지는 지대한 관심과, 그 게임으로 열리는 첫 번째 대회.

해외의 이목이 쏠려 있는 상태에서 BJ천마가 보여준 압도적인 플레이가 터져나온 것이다.

“해외 시청자? 한글로 말하고 있는데?”

“자동 번역돼서 나오는 거니까요.”

“자동 번역?”

파파고인가 뭔가 하는 자동 번역기를 단천도 사용해 본 적이 있었다.

“스트리밍 시장이 커지면서 해외의 방송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자동 번역기가 엄청 활성화됐죠. 공식 방송이라면 여전히 통역사가 필요한 경우도 있지만, 요새는 거의 즉시로 번역해서 볼 수 있어요.”

“그렇다면 지금 내가 말을 하는 것도 바로 통역이 된다는 건가?”

“그렇죠.”

“호오.”

단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해외의 시청자들을 끌어모으기 위한 방법을 고심하던 찰나였는데. 이런 방식으로 해외 시청자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다니.

“운이 좋군.”

이런 방식이라면 따로 단천이 중국어를 해서 대만 시청자들을 모으고, 강한솔과 김진표를 시켜 실시간으로 영어 번역을 해서 영미권 시청자들을 모으겠다는 계획은 실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시청자수에 연연하지 말도록. 지금 시청자들은 우리들이 얼마나 잘하는지를 보기 위해서 온 시청자들이니까.”

실력 방송이 가지는 모순이라는 것이 그렇다. 실력 방송은 실력이 뛰어난 플레이어의 플레이를 보기 위해서 사람들이 모여든다.

하지만 스트리머의 실력이라는 것은 거의 언제나 그보다 잘 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 수밖에 없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계속해서 이기는 것 말고는.

‘쉬운 일이지.’

단천은 늘어난 시청자수에도 전혀 압박을 받지 않았다. 결국 시청자들은 실망을 하면 줄어든다. 그렇다는 건, 실망하지 않도록 계속해서 이겨 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긴다. 이번 대회도. 압도적으로.”

“그···압도적으로 이길 수 있을까요?”

“풀창고 오빠는 왜 이렇게 패기가 없어.”

“프로들이랑 붙는 건데. 자신감이 있는 게 이상하지 않아?”

“왜? 그런 건 본인 실력에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이나 그런 거고. 내 실력에 자신 있으면 프로건 아니건 뭔 상관이야.”

토끼가면이 왜 쫄아붙느냐는 듯이 대답하자 풀창고의 얼굴이 살짝 구겨졌다.

“야. 토끼가면. 너는 제대로 대회를 안 해 봤으니까···.”

“해 봤어. 나도.”

“초등학교 장기자랑 대회?”

“하. 진짜. 내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데. 이 가면만 벗으면 다들 깜짝 놀랄 정체가 숨어 있다고.”

“저 허언. 또 시작했네.”

> 토끼가면의 허언은 어디까지인가

> 가면 뒤에 숨어서 ‘월클’인 척 ㅋㅋㅋㅋ

> 지난 번에는 세계 1위라고 허언치다가 쿠사리 들음 ㅋㅋㅋㅋ

단천이 없는 동안 퍽 친해진 토끼가면과 팀원들이었다. 왜인지 토끼가면, 그러니까 한수아의 이미지가 허언증 이미지로 잡혀 버리긴 했지만.

“허언 아니라고! 이 인간들아!”

“네 다 허.”

“허언증 치료좀 받자. 월클인 척 그만 하고.”

토끼가면이 답답한 듯 가슴을 퍽퍽 쳤다.

뭐, 어쩔 수 있나. 지금 현재에도 프로 사격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한수아다. 실제로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가는 의도가 어찌 되었건 구설수에 휘말려 버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리고 저런 캐릭터성이 확고하게 잡혀 있으면 시청자들도 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보다. 합격술은 좀 익숙해졌나?”

“합격술?”

“팀워크.”

“팀워크? 완벽해졌다고 할 수 있지.”

“4 명이지만 한 몸처럼 움직인다고 봐야 하나?”

“맞아요 사부. 저희. 팀워크 하나는 엄청납니다. 물론 제가 머리라고 할 수 있죠.”

“뭐래. 내가 머리지.”

“내가 머리잖아! 이 이기적인 라이너 놈들아!”

“듣지마 형. 미드라이너가 바로 머리. 즉 내가 바로 팀워크의 머리니까.”

머리만 4개인 끔찍하기 그지없는 키메라 팀워크를 보며 단천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본래라면 팀워크나 아랫 라인에서 벌어지는 일 따위는 본좌와 하등 상관없는 일이다.”

실제로 BJ천마는 혼자의 힘으로도 게임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프로가 5명이 적이라고 해도. 혼자서 어떻게든 싸워서 이길 방도를 찾아내고 마는 것이 BJ천마였기에.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블랙호스라는 인간이 나타나서 본좌에게 도발을 걸어왔다. 그걸 갚아줘야 한다.”

“네. 완전 대박이었죠. 근데 그건 복수 다 했잖아요?”

“지금도 사이트에서 엄청 조리돌림 당하고 있던데?”

“알다시피 본좌는 군자다.”

‘?’

‘?’

> ?

> ?

채팅창과 천마신교도들의 머릿속에 모조리 물음표가 떠올랐다.

말을 참지 못한 제로콜이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아니. 형. 그래도 그건 너무 양심이 없···.”

“그, 그렇다고 칩시다.”

풀창고가 다급하게 제로콜의 입을 막았다. 저 입을 어떻게 막지 않았다가는 제로콜이 내일 아침해를 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기에.

“근데 군자인 거랑 복수랑 무슨 관계인데요?”

“아. 그런 말 있잖아요.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맞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을 이어지는 법이지.”

“?”

모두의 입이 멈췄다. 복수를 10년이나 하다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던가.

저 인간은 기억력도 좋으면서 대체 왜 기억하고 있는 말마다 살짝씩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본좌는 군자답게 블랙호스에게 도발의 값을 계속해서 치르게 할 생각이다.”

“···그래서?”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처럼 아슬아슬한 승리여서는 안 된다.”

갈레온에서 벌어진 승리는 아슬아슬한 승리였다. 시청자들 입장에서는 즐거울지는 몰라도 단천 입장에서는 찝찝하기 그지없는 승리가 바로 이번의 승리였던 것이다.

“그러면···.”

“너희들이 모든 라인에서 이길 수 있게. 본좌가 1:1 라인전을 하며 도와줄 생각이다. 수련이 끝나고 나면 너희 모두가 상대 라이너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가지게 될 거다.”

“···그게 돼? 상대 플레이어들은 죄다 프로들인데. 우리들은 겨우 챌린저에 턱걸이를 한 유저들이고.”

“걱정하지 마라. 상대 라이너를 이길 수 있을 때까지 특훈을 멈추지 않을 테니까.”

“···대회가 닷새밖에 안 남았는데?”

“괜찮다. 죽음에 가까운 시련은 인간을 다음 단계로 성장시키는 법이니까.”

‘우리가 안 괜찮아!’

풀창고들이 불만을 속으로 외쳤지만. 그 누구도 입 밖에 불만을 터트리는 자는 없었다.

불만을 가장 먼저 입 밖에 내는 사람부터 1:1 수련에 끌려갈 것이 분명했으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