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조 지명식 (3)
> 갈레온이 뭔데 씹덕아
> 이 망한 겜이 여기서 다시 나오네 ㄷㄷ
> 하인라인이 망한 게임들 오래 붙잡고 있는게 하루이틀 일은 아니라서
VR에 접속하자 채팅창이 함께 올라왔다. 방송이 그대로 연결된 모양이다.
[갈레온의 세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떠오르는 메시지와 함께 「갈레온」이 실행되었다.
“호오.”
갈레온이 실행되자 단천의 입에서 흥미에 찬 탄성이 터져나왔다. 지금까지 단천이 해 온 게임들은 죄다 VR게임이 제대로 만들어지고 나서의 게임들이었다.
가장 사양이 낮았던 리드미컬 세이버조차도 풀 VR이 만들어지고 나서 만들어진 게임이었다.
반면 지금 실행하는 갈레온은 풀 VR이 나오기도 전에 나왔던 게임.
“조잡하군.”
글자 그대로 조잡했다. 폴리곤이 군데군데 보이는 주변 풍경은 단천이 다시 돌아오기 한참 전에 했던 게임들을 자연스럽게 떠오르게 만들었다.
이런 게 레트로 감성이라고 하던가.
> 그래픽 버그난 듯?
> 버그가 아니라 원래 저런 게임임
> ???
> 잼민이구나··· 여기 앉아 봐라···개쩌는 게임 역사의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
> 이야 이런 그래픽 오랜만이네
시청자들이 과거에 한껏 젖어 있는 동안 단천은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자. 바로 게임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무기를 선택하십시오!]
게임이 시작되기 전에 앞서서 ‘갈레온’을 맞출 무기를 선택하는 시간이 주어졌다.
무기 선택이 시작되자마자 단천은 바로 검을 찾았다.
하지만···.
“···검이 없다고?”
일반적인 검은 물론이고 박도나 하다못해 레이피어 종류의 검조차도 없었다.
아. 딱 하나 날이 있는 무기가 있기는 했다.
[투척용 나이프]
[투척용 나이프입니다.]
> 당연히 없지 이 게임 공중에 있는 무기 맞추는 겜인데 ㅋㅋㅋㅋㅋㅋ
“쓰레기 게임 같으니라고. 왜 망했는지 알 것 같군.”
> 그 천마님 검이 없다고 게임이 망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 말대로면 광선검밖에 없는 레일 서바이버도 망했어야지
“광선검은 그냥 검이 아니다. 광선검은 홀로 검 수천 자루의 몫을 하니까.”
감히 광선검과 투척용 나이프를 같은 선상에 두다니 가소롭기 그지없었다.
어쨌거나 선택지가 없다. 단천은 투척용 나이프를 집어들었다.
[투척용 나이프를 선택하셨습니다.]
‘단검은 오랜만이로군.’
레일 서바이버에서도 투척술을 보여준 적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투척하는 무기는 비도가 아니라 수류탄이었으니.
비도를 쓰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라고 할 수 있었다.
비도를 고르고 나자 주변의 화면이 일변했다. 게임이 게임인지라 다소간의 지직거림과 함께 끊어지는 모션 이후에 나타난 장소는 평화로워 보이는 공터였다.
> 그래픽 허접한 거 실화냐
> ㅇㅈ ㅋㅋㅋㅋㅋㅋ
> 와 진짜 저때 게임 어떻게 했지
풀 VR이 대중화된 현재 게이머들에게는 어색하기만 한 화면에 다시 한 번 채팅창이 타올랐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 불평이 나올 만도 하건만 BJ천마는 담담할 뿐이었다.
[자. 「갈레온」의 룰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목표물인 갈레온을 맞추면 맞출수록 그 점수가 올라갑니다. 30점을 먼저 따는 쪽의 승리입니다!]
단순하고 알기 쉬운 룰이다. 룰이 어려웠다면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을 테니 이 게임이 선택될 수 없었을 터다.
“이런 룰이라면 본좌가 질 가능성이 없겠군.”
“그건 니 생각이고. 이 게임에서···.”
옆에 선 블랙호스가 이죽거렸다.
쉭!
블랙호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천의 단검이 블랙호스의 미간으로 날아들었다.
깜짝 놀란 블랙호스가 몸을 움츠렸지만 반응보다 한층 앞서 단검이 블랙호스의 미간에 꽂혔다.
틱!
하지만 단검은 맥없이 블랙호스의 몸을 튕겨져 나갈 뿐이었다.
[상대편에게 무기를 맞출 수 없습니다!]
[상대에게 무기를 던지는 것은 비매너 행위입니다. 룰과 매너를 지켜 주세요!]
“PK는 안 되는군.”
“당연히 안 되지! 이 빌어먹을 놈아! 사람이 말을 하고 있잖아!”
“말하고 있었나? 몰랐군.”
“이 새끼가···!”
> 몰랐군 ㅇㅈㄹ ㅋㅋㅋㅋㅋ
> 숨쉬듯이 도발 ㅋㅋㅋㅋㅋ
> 점수 올리는 게임인데 숨도 안 쉬고 상대방 죽일 생각부터 하는거 실화냐
> BJ천마 방송에서는 일상인데요?
> BJ천마특) 런닝돌에서도 다른 사람 다 죽여서 1등하는 인간임
> ···대체 뭘 하는 방송임?
> 1등하는 방송
> 꼭 와서 봐라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임
[게임이 시작됩니다!]
채팅창에서 BJ천마에 대해서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전도가 열심히 이뤄지고 있는 동안, 게임이 시작된다는 휘슬이 울렸다.
삐이익!
그리고 동시에 공중으로 튀어져 나오는 갈레온. 제각각의 크기를 가진 물체들이 공중으뢰 튀겨나왔다.
‘···근데. ‘갈레온’이 뭐지?’
갈레온을 맞추면 점수를 준다고 했는데. 튀어나오는 물건 중 갈레온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단천은 듣지 못했다.
‘일단은 뭐라도 맞춰보는 수밖에 없나.’
쉭!
단천의 손목이 비뢰술을 따라 움직였다. 팔목과 팔 전체를 휘감아 던져진 비도가 공중에 있는 동전을 꿰뚫었다.
> 와
> 개잘던지네
[갈레온을 맞혔습니다! 점수 +1]
보아하니 ‘갈레온’이라고 불리는 것을 제대로 맞힌 모양이었다.
정보가 하나 늘었다.
아니, 두 개 늘었다.
[상대편에게 무기를 맞출 수 없습니다!]
[상대에게 무기를 던지는 것은 비매너 행위입니다. 룰과 매너를 지켜 주세요!]
단천은 단검을 던지며 바닥에 있는 단검을 비적유성탄으로 블랙호스에게 날렸다.
그 결과, 블랙호스의 이마에 단검이 적중했다.
아쉽게도 데미지는 또다시 들어가지 않았지만.
완벽하기 그지없는 암습이었는데도 데미지가 들어가지 않았다.
“시스템이라는 것. 귀찮단 말이지.”
“이 새끼가! 안 된다니까 사람에게 그만 던지란 말이다!”
비록 데미지는 못 줬을지언정 블랙호스를 제대로 열받게 하는 데에는 성공한 모양이었다.
“심판이 있는 게임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 게임 시스템으로 다 돌아가는데 왜 심판이 필요함?
> 그거야 심판 몰래 암습으로 상대를 죽이면 되니까?
“그것도 있지만, 심판까지 처치해 버리는 것도 가능하다. 오히려 몰래 하는 것보다 그쪽이 더 쉽지.”
> 심판까지 없애버린다는 말이 뇌도 안 거치고 나오네
> 이사람 싸이코패스임?
> 사람이 아니라 천마님인데요?
> ㄹㅇ 천마님을 사람이라고 부르다니 무례한 줄 알아야지
> ㅄ들아 여기선 싸이코패스라는 걸 부인해야지;;
> 앗차차!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그 와중에도 블랙호스의 손은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었다.
철로 된 쇠사슬이 공중을 힘차게 긁었다.
파차차창!
[갈레온을 맞혔습니다! 점수 +1]
[갈레온을 맞혔습니다! 점수 +1]
[갈레온을 맞혔습니다! 점수 +1]
쇠사슬이 공중을 한 번 긁을 때마다 한 번에 점수가 몇 점씩이나 올라갔다.
기다란 쇠사슬은 언뜻 보기에 다루기 어려운 무기처럼 보이지만 실은 정 반대다.
쇠사슬 자체의 무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 다루기가 가장 쉬운 무기가 바로 이 쇠사슬이다.
거기에 공격의 범위는 점이 아니라 선이다. 경로 상에 있는 갈레온들을 모조리 집어삼킬 수 있다!
“그딴 단검을 고른 순간 네놈의 패배는 결정되어 있었다!”
“개소리하고 있네.”
파바박!
블랙호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천의 검이 튀어나오는 물건들을 꿰뚫었다.
[갈레온을 맞혔습니다! 점수 +1]
[갈레온을 맞혔습니다! 점수 +1]
[갈레온을 맞혔습니다! 점수 +1]
> 와
> 진짜 말이 안 되네 ㅋㅋㅋㅋㅋ
단검이 공중을 수놓을 때마다 터져나오는 감탄사들. 블랙호스가 이를 갈아붙였다. 단순히 근접 무기만 잘 쓴다고 생각했는데 투척무기를 이토록 잘 쓸 줄이야.
여유롭게 조롱을 하면서 게임을 하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다!
촤르르륵!
사슬이 쉴 새 없이 공중에 있는 물건들을 부숴뜨렸다.
숨가쁘게 올라가는 두 명의 스코어. 하지만 BJ천마의 점수가 올라가는 속도가 조금 더 느리다.
[스코어 27 : 25]
목표 스코어 30점까지 블랙호스의 점수는 불과 3점만이 남은 상황.
BJ천마의 단검 네 자루가 공중을 수놓았다. 이 네 자루가 모조리 갈레온을 적중해도 블랙호스가 거의 이긴 상황.
쉬익!
단검의 궤도를 본 블랙호스의 입에서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 자루 단검의 궤도가 어처구니없는 방향이었기 때문이다.
이 갈레온이라는 게임은 VR게임 태동기에 나온 게임이다. 게임의 조작감은 더럽기 그지없다.
얼마 전에 게임을 시작해서 최신 게임만 한 BJ천마가 제대로 적응할 수 있는 상태의 게임이 아니라는 거다.
어째저째 잘 버틴다 했더니. 마지막에 와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스코어 27 : 28]
그 결과 BJ천마의 점수는 29점이 아닌 28점.
‘물론 실수가 없었더라도 내 승리는 확실했지만!’
“내 승리다!”
블랙호스는 팔목에 힘을 줘서 쇠사슬을 들어올렸다. 아니, 들어올리려고 했다.
촤륵!
힘을 받아 움직여야만 할 쇠사슬의 궤도가 블랙호스의 생각과는 정 반대 방향으로 뒤틀렸다.
“?!”
단검 한 자루가 쇠사슬의 시작점에 꽂혀 있었다. 쇠사슬의 고리 두 개 사이를 정확히 관통해있는 단검이 쇠사슬의 움직임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런 미친!”
짧은 당황이었지만. BJ천마가 다음 단검을 던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파아악!
[BJ천마가 30점을 달성했습니다!]
[BJ천마 승리!]
“말도 안 돼··· 분명히 조작감이 바닥을 쳤을 텐데···.”
“확실히 조작감은 형편없더군.”
단천은 단검을 위 아래로 던지며 대답했다. 확실히 조작감은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단천은 이 세계에 온 뒤부터 내공 한 줌 없는 몸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VR게임의 최대 전력이 제한된 상태에서도 게임을 했다. 지금에 와서 최대 전력이 해방되고, 환골탈태를 하며 꽤 괜찮은 신체를 얻기는 했지만.
‘여전히 내 본신진력에 비하면 한참 모자라다.’
그 어떤 조작감의 개선도 단천이 중원에서 쓰던 몸에 비해서는 모자랐다.
언제나 거대한 쇠사슬을 가지고 게임을 하고 있었던 셈.
‘갈레온’이 주는 조작감의 조잡함은 그저 쇠사슬 하나가 더 달린 정도의 문제밖에 되지 않는다.
쇠사슬이 없는 사람에게 쇠사슬 하나가 더 달렸다면 거대한 족쇄가 되지만, 쇠사슬 수십 개를 달고 있는 자에게 쇠사슬 하나쯤은 그저 귀찮은 일이 하나 더 늘어났을 정도의 차이일 뿐이었으니까.
단천은 단검을 공중으로 던졌다. 그리고 뒤이어 다른 단검을 던져 첫 단검의 궤도를 바꿨다.
타악! 날아간 단검은 정확하게 블랙호스의 이마를 두드렸다. 실로 대단하다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정도의 기예를 부린 단천의 입이 열렸다.
“갈레온에 적응하는 데에는 10초면 충분했다는 말이지.”
[상대편에게 무기를 맞출 수 없습니다!]
[상대에게 무기를 던지는 것은 비매너 행위입니다. 룰과 매너를 지켜 주세요!]
역시 이 게임은 똥게임이다.
“이긴 상대를 맞힐 수 있었다면 망하지 않았을 텐데.”
> 게임의 흥망이 그런 걸로 결정되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동의하기 힘들군. 레일 서바이버도 광선검의 존재만으로 흥하지 않았더냐.”
> 레일 서바이버는 광선검 덕분에 흥한 게 아닌데요
그건 네놈의 생각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