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45화 (145/212)

32. 조 지명식 (2)

[조지명식 곧 시작하는데 다들 착석했냐?]

[8팀 죄다 라인업 살벌하더라 ㅋㅋㅋㅋㅋ]

[팀 라인업 다 나옴?]

[거의 확정된 것 같더라 내부 디코도 돌고. 라인업 개꿀잼 각임]

[근데 BJ천마 팀은 그냥 스트리머 5명인 팀이라던데 왜 끼우냐?]

[└BJ천마가 거기 있기 때문]

[└앗···아앗···]

“후아암.”

단천은 조지명식 회장에 앉은 채 길게 하품을 했다. 이런 격식 차리는 자리는 역시 별로 마음에 안 든다. 게다가 조명은 어찌나 뜨거운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냥 터트려 버릴까.’

조명 몇 개 터트려버리면 얼굴이 좀 덜 뜨거워질 것 같은데.

“여유롭나 보네? 하품도 하고.”

화장실을 드나들며 다소 수척해진 블랙호스가 또다시 단천에게 시비를 걸어왔다. 체력이 빠졌을 것 같은데도 꿋꿋하게 시비를 걸어오는 블랙호스를 보며 단천은 혀를 찼다.

‘그냥 터트려 버릴까.’

참자. 여기는 이목이 집중될 대로 집중된 곳이다. 여기서 사람을 터트려 버리면 관군들에게 수배된다. 관군에게 수배되면 여러 모로 귀찮다. 찾아오는 관군들을 상처 안 내고 돌려보내는 것도 못 할 짓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일단 시키면 당일 배송이 되는 온라인 쇼핑도 못 하게 된다. 손가락 몇 번으로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

거기에 일정 이상 구매를 하면 웹소설을 볼 수 있는 코인까지 주기까지 한다.

단천은 이런 크나큰 문명의 혜택을 포기하면서까지 눈 앞의 벌레를 터트리고 싶지는 않았다.

“당일배송 쇼핑몰에 감사하도록.”

“···그게 무슨 말이지?”

“그런 게 있다.”

블랙호스는 여유롭기 그지없는 BJ천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여기에 나와 있는 프로들은 죄다 좁디좁은 바늘구멍을 통과해 온 몸이다.

그런데 어디서 들어먹지도 못한 인간이 갑자기 나타나서 대회에 참가한단다.

심지어 대회에 참가하는 멤버들은 죄다 스트리머들이란다.

“쯧. 대회를 발로 보니까 그런 식···.”

“촬영이 시작하나 보군.”

말을 하던 블랙호스가 바로 입을 닫았다. 아무리 그래도 BJ천마의 시청자수는 압도적이다.

이런 오프 더 레코드가 나가면 자신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블랙호스가 아무리 기다려도 큐 사인은 떨어지지 않았다.

“뭐야. 촬영 안 하잖아.”

“본좌의 착각이었나 보군.”

“이 개새ㄲ···.”

“진짜 시작하는 모양이다. 저기 PD.”

흡.

PD가 다가오는 것을 본 블랙호스가 다시 한 번 호흡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큐 사인은 없다. 그저 촬영 전에 가벼운 당부를 하기 위해서 온 것 뿐이다.

“곧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다들 편안하게 해 주시면 됩니다! 트레시토크도 적당히 섞어 주시면 저희 입장에서는 더 좋고요!”

“···이 새끼가.”

두 번이나 농락당한 블랙호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표정.

“얼굴에 화기가 많아 보이는데 대추차를 마셔보도록.”

“필요 없어!”

블랙호스가 부들대는 모습을 보면서도 단천은 여유만만했다. 그 말싸움이 많은 중원에서도 단천과 말싸움을 하면서 화딱지가 안 나는 인간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기에.

저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송이 한 마리쯤 상대하는 것 정도는 무공을 쓰지 않고도 충분한 것이다.

···생각해 보니 이미 탄지신통을 한 번 쓰기는 했구나.

아무튼, 무공을 한 번만 쓰고도 충분한 것이다.

단천은 가져온 대추차를 입 안에 호록거리며 마셨다. 최대한 블랙호스가 열 받아할 만한 표정으로.

반응은 바로 왔다.

“이 개새···.”

“정말로 시작하는군.”

“이번엔 안 속아 개새꺄!”

[안 속아 개새꺄!]

[개새꺄!]

[개새꺄!]

블랙호스의 커다란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홀 전체에 울려퍼졌다.

당황한 블랙호스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역대급 방송사고다.

PD의 얼굴과 블랙호스의 얼굴이 동시에 파리해졌다.

“그, 죄송합니다! 오프 더 레코드가 저희 실수로 나왔네요! 시청자 여러분들께 사과드리겠습니다!”

가까스로 진행자가 수습했지만 이미 늦었다. 이미 욕설을 내뱉는 블랙호스의 영상이 녹화되어 깔리기 시작했을 테니까.

“그러게 조언을 하면 들어야지. 큐 사인을 보고 친절하게 말해 줬건만.”

주먹을 쥔 블랙호스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대형 사고가 터진 것 치고는 조지명식은 나름대로 나쁘지 않게 진행됐다.

이 모든 것이 진행자 덕분이다. TV에서도 꽤 유명한 MC라나. 확실히 프로라 그런가 대형 사고가 터졌는데도 어떻게든 수습해냈다.

“물론 사고가 안 터지는 게 더 좋았겠지만.”

단천의 중얼거림에 블랙호스가 눈에 쌍심지를 켜며 ‘네놈 때문이잖아!’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지만.

어쩌겠는가. 전적으로 본인의 잘못인 것을.

“이번 천공 대회는 전적으로 하인라인의 후원 하에 이뤄지며, 우승자에게는 1억, 준우승자에게는 5천만원의 상금이 수여됩니다!”

상금의 금액을 말하자 팀장들이 환호성을 터트렸다.

이틀로 끝나는 짧디짧은 일정의 대회인데도 불구하고 총 상금 2억.

하지만 상금뿐이 아니다.

여기에 나와 있는 프로들은 천공에서의 새로운 팀 창단을 보고 온 사람들.

대회에서의 활약으로 스폰서가 붙고 팀 창단멤버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단순히 숫자로 치환하기 힘들 정도의 이득인 것이다.

‘1위가 1억이라니. 그냥 1위 몰빵으로 2억을 하는 게 좋을 것을.’

···물론 이런 부차적인 이득따위는 심드렁한 채 금액에만 신경을 쓰는 인간도 존재하기는 하지만.

“자. 룰 소개는 여기까지입니다. 팀장님들의 포부 한 마디씩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언제나처럼 1위만 노리겠습니다!”

“방금 카오즈한테는 미안합니다. 1위는 저희 거라서.”

본격적인 조지명에 앞선 가벼운 트래시토크 시간이 이어졌다.

빠르게 이어지는 가벼운 트래시토크.

“그럼, 블랙호스 선수! 각오 한 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시청자 이목 좀 끌겠다고 알량한 마음으로 나온 인간 밟아버리겠습니다.”

“시청자 이목이라면 스트리머로 참전한 BJ천마 선수 말인가요?”

“맞습니다. 1위 좀 했다고 뭐라도 되는 양 구는데. 실력으로 보여줘야죠.”

꽤 수위 높은 트래시토크에 여기저기서 환호가 터져나왔다.

게임 전에 이런 트래시토크로 분위기를 돋우는 것은 연례행사다.

하지만 보통의 트래시토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의 블랙호스의 태도는 진심이 섞여 있다는 것 정도.

‘쯧.’

단천은 속으로 혀를 찼다. 프로게이머라는 것은 특별한 직업이다. 선택된 사람만이 벽을 넘어서 할 수 있는 세계.

이를테면 벌모세수를 받은 후지기수라고 할 수 있다.

재능과 실력으로 인정받는 인생.

그러니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이름에 취해 그 외의 사람들을 모조리 무시하는 태도를 가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BJ천마 선수. 방금 블랙호스 선수에게서 직접적인 디스가 들어왔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누군지 몰라서 관심 없다. 놈이 잘 했으면 랭크 1위를 찍었겠지.”

단천의 말에 블랙호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프로들은 보통 랭크 점수에 신경쓰지 않는다. 랭크 점수와 팀 게임은 다르다는 게 정설이기 때문이다.

대회에서는 엄청난 기량을 뽐내면서도 랭크에서는 제대로 점수가 나오지 않는 프로또한 존재한다. 가령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순간까지도 고작 그랜드마스터서 빌빌거리던 정글러도 AOS 세계에는 존재했으니까.

하지만. 보아하니 블랙호스는 자신의 랭크 점수에 상당히 신경쓰는 타입인 듯 보였다.

“랭크 점수는 팀 실력과 상관없다!”

저렇게 울그락붉그락 표정을 일그러트리면서 신경안쓴다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신경쓴다는 뜻이었으니까.

누가 그랬던가. 화 내면 진 거라고.

그에 따르면 지금의 트래시토크는 BJ천마의 승리였다.

실제로 중원에서도 먼저 칼을 뽑는 것이 말싸움에 졌다는 것이 정설이기도 했고.

‘덕분에 꽤 많은 말싸움을 이겼지.’

─ 말싸움에 지니까 발로 턱주가리를 날려? 가주님! 가주님! 정신차리십쇼! 모두 검을 들어라! 저 악적 마교 자식을 오늘 반드시 죽일 것이다!

─ 먼저 칼을 들었으니 말싸움을 이긴 거라니! 검만 안 뽑았을 뿐 먼저 출수한 쪽은 네놈이지 않느냐!

스스로는 칼을 뽑지 않고, 상대로 하여금 칼을 뽑도록 압박을 해 칼을 들게 만든다.

이것이 바로 마교에 대대로 전해지는 오의. 천마류 언쟁승리였다.

선대 천마들에게 전수받은 것은 아니고 단천 자신으로부터 시작된 전통이긴 했지만. 그런 부분은 소소한 부분에 불과하다.

전통이라는 것은 만들어 나가면 되는 것이기에.

***

블랙호스의 화가 가라앉는 데에는 그로부터 꽤 시간이 걸렸다. 간신히 블랙호스의 화를 가라앉힌 진행자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대회에 앞서 각오를 말하면서 언성이 다소 과격해진 점.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대회에 앞선 각오도 끝났으니. 이제 남은 것은 대전 지명식뿐이다.

사실 반쯤은 첫 상대가 정해져 있었다. 저기서 씩씩거리며 성난 황소처럼 구는 블랙호스가 첫 대전 상대일 것이다.

이 정도로까지 분위기가 조성됐는데도 다른 팀에서 BJ천마나 블랙호스의 팀에 대전 지목을 하는 경우는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차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 조 지명식을 제대로 해야 했다.

“조 지명식은 어떻게 하지?”

“조 지명식은 준비되어 있는 게임. 「갈리온」을 플레이해서 1위를 한 선수부터 지명 우선권을 받는 방식입니다.”

“갈리온?”

“네. 갈리온은 과거 하인라인에서 개발했던 게임입니다!”

“갈리온?”

“엄청 오래된 게임 아닌가?”

“이거. 게임 한 사람도 거의 없을 것 같은데.”

관객석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갈리온은 하인라인에서 출시했던 게임이다. 꽤 오래 된 게임인 동시에 굉장히 망한 작품.

“일단 갈레온을 해 본 적이 없는 분들을 위해서 자료화면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진행자의 말이 끝나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룰은 단순했다. 두 플레이어가 서서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갈리온’을 더 많이 맞추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너무 간단한 룰 때문에 동접자수가 3자리수를 겨우 넘다가 서버 종료를 하고 만 비운의 게임이지만.

이런 자리에서 흥을 돋궈주는 데에는 꽤나 괜찮은 역할인 것이다.

‘갈레온이라. 잘 됐군.’

조 지명권이 걸린 게임이 갈레온이라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블랙호스의 입꼬리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걸렸다.

“그럼 먼저 플레이하실 선수는 앞으로···.”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단천이 앞으로 걸어나왔다.

“오. BJ천마 선수가 나왔네요. 갈레온 해 본 적 있으십니까?”

“없다.”

“그런데도 자신있게 나오셨네요.”

“첫 번째니까. 본좌가 나오는 것이다. 1이라는 숫자는 본좌에게만 어울리는 글자니까.”

“그, 그렇군요. 다음으로 플레이하실 선수 없습니까?”

블랙호스가 걸어나왔다.

블랙호스는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이 「갈레온」의 전 랭커 출신이었다.

랭크 출신이라고 해 봤자 랭크게임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의미는 없었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이 게임의 정보를 거의 다 알고 있다는 점이었다.

블랙호스는 이 게임에서 나오는 무기들의 성능과 사기성, 플레이 방식을 모조리 알고 있다.

이 게임이라면 아무리 BJ천마라도 자신을 이길 수 없다는 확신이 블랙호스에게는 있었다.

‘저 빌어먹을 자식의 미소가 사라지는 것도 곧이다!’

블랙호스의 입꼬리가 뒤틀렸다.

그리고.

‘저 자식의 미소가 사라지는 것도 곧이군.’

맞은편에 선 단천또한 완전히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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