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44화 (144/212)

32. 조 지명식 (1)

천마신교의 이름 아래에 두 명의 천마는 존재할 수 없다. 새로운 천마가 만들어지는 상황은 한 종류뿐이다. 원래의 천마가 더 이상에 세상에 없는 것.

하늘 아래 두 명의 천마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이 세계에는 자신 말고 또 다른 천마가 있다.

“역시 그 글자는 천마가 적은 글자였군.”

다키스트 에이지의 엔딩에서 나온 글자. 범상치 않은 수준의 글자는 역시 천마의 글자였던 것이다.

“하늘 아래 두 천마라.”

단천은 목을 좌우로 풀었다.

천마신교에 천마로서 이름을 남긴 자는 모두가 천하제일인이었다. 그것도 압도적이기 그지없는 천하제일인.

천마신교의 교주실 여기저기에는 그들이 남겼던 무공에 대한 흔적들이 존재했다.

단천은 그들이 남겼던 흔적을 보면서 언제나 생각했다. 기회가 생긴다면 한 번 붙어 보고 싶다고.

물론 중원에서는 불가능한 생각이었다. 우화등선을 해 버린 탓에 소혼술로 그들을 되살리는 것도 요원한 일이거니와 그들의 능력을 감당할 만한 육체 또한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 소원이 이루어지다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놈이 몇 대인지는 아직도 궁금하지만.”

글자의 주인이 천마라는 것이 확정됐다. 하지만 여섯 명의 천마들 가운데 누구인지는 아직까지는 모호하다.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적혀 있었던 글자에 담겨 있는 기세는 기이하기 짝이 없었으니까.

일곱 명의 천마들은 제각각 자신만의 세계에서 일가를 이룬 천외천의 존재들이다. 그러니 글자만으로도 그 기세가 배여 나와야 했을 텐데.

글자에는 패도적이면서 유연하고, 유연하면서도 고압적이며, 중후하면서도 가벼운 면모가 섞여 있었다.

“거기에 선대 천마라면 알 수 없을 뇌명검의 완성또한 알고 있었고.”

계속해서 고민하던 단천은 고개를 흔들어 머릿속에서 고민을 떨쳐버렸다.

분명한 것은 놈과 언젠가는 마주치게 될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 때에 놈을 베어내기 위해서라면 계속해서 강해져야 한다는 것. 두 가지다.

놈을 생각하자 단천의 상단전이 요동쳤다. 상단전은 지금도 계속해서 커져가고 있었다.

수련을 할 때마다 상단전이 커진다는 것은 특이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방송을 하면 할수록 상단전이 커진다는 것은 확실히 흥미로운 일이다.

─ 천하에 미치는 영향력으로 말미암아 상단전이 성장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상단전은 시주만의 것이 아니니까.

─ 시주의 상단전을 탐내다니! 빈승이 본인밖에 모르는 이기주의의 덩어리의 상단전을 탐내서 무얼 하겠소이까. 홀홀.

─ 약하니까 정신승리를 한다니. 강하기만 하지 정신머리가 애새끼인 시주와는 달리 빈승은 백년동안 입산수도한 몸이외다. 정신승리가 아니라 순수히 이론에 입각한··· 시주. 빈승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맞소?

결국 천마를 이기기 위해서는 마교 최후의 경지인 파천에 들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단전의 완성이 필수적이고. 상단전은 자신이 하고 있는 스트리밍과 꽤 관계가 되어 있다.

원리는 아직은 정확하지 않다. 그저 방송을 하는 것이 단천 자신의 완성과 결부되어 있다는 것 뿐.

“이러나 저러나 방송을 해야 한다는 거군.”

그야 바라는 일이기는 하지만.

***

첫 번째 랭크 게임이 끝난 뒤. 천공의 게임 순위는 전체 게임순위 4위까지 올라와 있는 상태였다.

물론 게임이라는 것이 초창기에 가장 순위가 높고,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낮아지는 것이 보통이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게임중 4위라는 것은 실로 커다란 성과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천공의 개발사인 하인라인은 이 바닥에서 꽤 오래 살아남은 게임사다.

“사장님. 그, 직원들이 많이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추가 인력 고용을 그렇게 했는데도 부족한가?”

“그게, 지금 저희가 예상하던 것보다 훨씬 더 인기가 많아서요. 타 국가들에서의 배급 계약 연장이나 조건 합의도 엄청 많이 들어오고 있고···.”

일이 썰물처럼 많다는 것은 그만큼 들어오는 돈이 많아진다는 것이니 환호성을 지어 마땅한 일이다.

그런데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다. 썰물이 아니라 해일 수준으로 일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그··· 게임 순위 회사에 이야기해서 순위 좀 내려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

저런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할 정도로까지 몰려 있는 것이 바로 지금 하인라인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천공의 CEO, 이태흠은 늘어난 다크서클을 매만지며 정신이 반쯤 나간 회의장을 노려봤다.

“다음 프로젝트인 대회 준비는 어떻게 돼 가고 있나?”

“게이머들 섭외는 거의 끝났습니다. 제일 논란이 될 만한 부분이 프로게이머도 아닌 BJ천마가 팀장이 되는 거였는데··· 이 부분은 BJ천마가 제 손으로 논란이 시작되지도 못하게 막아 버렸으니까요.”

프로게이머들을 죄다 때려잡으면서 얻어낸 1위. 그것도 마지막에 있었던 백건과의 승부는 현재도 말랑튜브 조회수 탑10에서 24시간 붙어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프로와 아마추어 간의 갭이 크다고 해도, 거기에 팀게임과 솔로 게임의 차이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이 정도로 확실하게 증명을 해 놓으면 논란 따위는 생길 수가 없는 것이다.

“백건조차 이길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말이죠.”

“BJ천마 덕분에 천공 순위도 한 두어 단계는 더 올랐으니 좋은 일이지.”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BJ천마 때문이었군요?”

“놈을 죽인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다···.”

상당히 험악해지는 회의장의 분위기를 보며 이태흠은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럼 섭외는 다 끝났고, 조 지명식만 준비하면 대충 일은 끝나는 건가요?”

일이 끝난다는 말에 회의장에 안도감이 감돌았다. 이 지옥과 같은 야근의 등대가 끝나는 날도 머지않았다는 뜻이었으니까.

환호성을 지르기 직전의 회의장의 분위기에 이태흠은 마른 침을 삼켰다.

“···그, 그게.”

“왜요. 사장님.”

“그, 다른 나라에 천공 런칭을 하기까지 있는 텀 있지?”

한국은 세계적인 게임 강국이다. 물론 게임 개발서는 꽤 뒤쳐진 상태기는 했지만 플레이어들의 평균적인 능력은 실로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경쟁형 온라인 게임들은 한국에서 우선 런칭을 하고, 그 뒤에 세계 런칭을 하는 형태를 띈다.

한국 런칭은 끝났을지언정 세계 런칭까지는 아직 꽤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니 회의장도 환호성을 지르기 직전의 분위기인 것이고.

그런데. 상황이 달라졌다.

“···런칭 일정, 조금 앞당기기로 했다.”

비록 게임을 플레이할 수는 없을지언정 영상은 쉽게 공유된다.

그리고 BJ천마의 움직임은··· 게임에 대해 몰라도, 언어에 대해 몰라도, 그 움직임만으로도 사람을 열광하게 하는 면모가 있다.

자연스럽게 BJ천마의 영상을 본 해외 게이머들이 너나할 것 없이 ‘천공’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번 대회 하면서 BJ천마가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게 될 거다. 당연히 천공의 인지도에도 물이 미친 듯이 들어오겠지.”

게임의 홍보효과는 종래의 매체들보다는 말랑튜브를 비롯한 신규 영상매체에서 효과가 훨씬 크다.

그리고 현재, 말랑튜브에서 ‘천공의 BJ천마’는 물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는 상황이었고.

런칭을 하기만 하면 돈을 쓸어담을 수 있는 상태.

“그러니까 런칭 타이밍을 최대한 앞당긴다.”

“안 됩니다!”

“이러다 저희 다 죽어요 사장님!”

“노동법은요? 인권은요?”

“휴가는요! 이 일 끝나면 휴가 준댔잖아!”

“여기 회의장에 있는 놈들. 죄다 이사진이지 않나?”

실제로 지금 회의장에 있는 사람들은 거의 전부가 스톡옵션을 배당받은 상태인 경영진이었다.

물론 게임기업의 특수적인 요건상 경영진과 실무진이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하지만 굳이 엄격하게 따지자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경영진이긴 한 것이다.

“···그렇죠?”

“경영진은 노동법 적용 안받아.”

“······.”

“노동법 중요하지. 그러니까 너네들 아래에 있는 직원들은 충분히 휴식 주고.”

“······.”

“그리고 너희가 휴가 준 만큼 일하면 된다.”

“······.”

‘BJ천마. 이태흠. 두 명. 언젠가 반드시 죽인다.’

‘두 번 죽인다.’

‘난 다섯 번 죽인다.’

이태흠의 말에 회의장의 분위기가 바닥까지 가라앉았다.

***

[천공 조 지명식]

지명식장에 도착한 단천은 알려준 지도를 따라 메이크업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지만 지명식장에 있는 하인라인 직원들에게서 살기를 느꼈지만. 아마 착각일 터였다.

하인라인에서 직접적으로 자신에게 악의를 가질 만한 것은 CEO인 이태흠이 전부다. 그러니 단천 자신에게 살기를 품을 만한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집단으로 자신에 대한 불만을 품을 이유는 더더욱 없다.

상단전이 클 데로 큰 상태인데도 이놈의 살기 감지는 나아질 생각을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단천은 메이크업실의 문을 열었다.

“아. BJ천마님 맞으신가요?”

“맞습니다.”

“와. 엄청 팬이에요! 이번 1위 쟁탈전 엄청 재밌게 봤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방긋 웃으며 단천에게 호들갑을 떨어댔다.

단천은 직원의 안내를 받아 메이크업 의자에 앉았다. 자신보다 먼저 와서 메이크업을 받고 있는 게이머들도 두어 명이 먼저 있었다.

“오. BJ천마님?”

먼저 앉아 있던 쪽에서 단천을 아는체를 해 왔다. 인지도가 높아지면 이런 점에서 편하다. 남이 자신을 먼저 알아보기 때문에 스스로를 굳이 소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

천하제일인의 자리에 올랐을 때에는 어딜 가든 스스로를 소개하지 않아도 됐다.

딱히 스스로를 소개하지 않아도 상대의 팔을 꺾는 순간 ‘개망나니에 이토록 고강한 무공이라니! 천마로군!’이라는 말이 튀어나왔으니까.

왜 앞에 개망나니라는 말이 붙는 것인지는 다소 의문이지만.

“이번에 대회에 같이 출전하게 된 불렛입니다.”

“블랙호스. 잘 부탁한다.”

불렛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쪽은 살갑게 인사를 건낸 반면 블랙호스 쪽은 말을 찍 싸갈기듯 내뱉는다. 딱히 살기가 생기지는 않는다. 저런 싸가지없는 놈들은 질릴 만큼 봐 왔으니까.

그냥 나중에 기회가 되면 늘씬 두들겨주면 된다.

“이번 1위 쟁탈전 엄청 재밌게 봤습니다. 백건 형을 이기다니. 상상도 못 했는데. 그 형이 1:1에서 지는 거 처음 봤어요.”

“솔직히 상성빨이 컸지.”

“그 정도 실력이면 우승후보 안에 들 지도요? 팀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래봤자 솔로 랭크잖아. 애초에 솔로 랭크랑 팀 게임은 아예 다른 게임이고.”

“···완전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

불렛의 말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삐딱하게 말을 내뱉는 블랙호스를 무시한 채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어깨 라인이 되게 예쁘네요. 직각이라 핏이 엄청 잘 살아요. 본판도 엄청 좋고. 메이크업 할 맛이 나겠어요.”

“이전에도 들었던 말입니다.”

“선심성 멘트에 헤벌레하기는.”

단천은 눈을 감았다. 이곳은 자신이 아닌 하인라인의 축제장이다.

그러니. 최대한 은밀하게 놈을 처리해야 했다.

단천은 내공을 손가락에 끌어모은 다음 손가락을 튕겼다.

피슝!

소림의 상승절예인 탄지신공이 블랙호스의 간자혈을 눌렀다.

“끄아악!”

간자혈은 단천이 독자개발한 건강혈의 위치 중 하나다. 건강혈답게 누르는 순간 엄청난 고통을 유발하고. 동시에 소화도 엄청나게 촉진한다.

고통과 동시에 찾아오는 소화증진. 이것을 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크, 으읏, 자, 잠시만. 화장실 좀.”

블랙호스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화장실로 사라졌다.

“배탈이라도 난 모양이군.”

단천은 담담하게 말했다. 간자혈을 눌렀으니 한 시간 정도는 화장실에 붙어있어야 할 터.

조용히 메이크업을 받을 시간은 충분히 번 것이다.

“···그리고 이벤트가 시작하고 나면. 그 때 다시 한 번 보자고.”

단천은 블랙호스가 사라진 화장실을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