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42화 (142/212)

31. 랭크전이 끝나고 (2)

“꽤 잘 나왔군.”

단천은 대추차를 입 안에 호르륵 삼키며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단천의 휴대폰에 도착해 있는 것은 단천이 요청한 박정의 ‘사이버 야수도 박정’스킨의 컨셉 아트였다.

박정에게 스킨이 생겨나고 나서도 언제든지 스킨 해제를 통해 원래 몸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꽤 만족할 만한 수준이다.

호로록.

대추차를 마시는 단천을 본 단지은이 방에서 걸어나오다 혀를 끌끌 찼다.

“할아버지. 오늘은 대추차 마시세요?”

“대추는 오장을 편안하게 해 주고 팔다리를 따뜻하게 유지해 주지. 실로 만방의 약재라고 하여도 크게 틀리지 않은 물건이다. 그런 물건을 이리도 싼 가격에 마실 수 있다니. 역시 21세기라고 할 수 있다.”

“지나가다 아파트에 있는 노인정 구경했는데, 요새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커피 좋아하시더라.”

“그래서?”

“대추차 마시는 본인이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안 하는데.”

“그래. 너 하고싶은 대로 살아.”

“벌써 그렇게 살고 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같이 검은 콩 태우고 우려낸 물을 마시는 알못들과 더 이상 무슨 대화를 하리오.

단천은 마지막 남은 대추차를 싹 긁어먹으며 천공 게시판의 게시글들을 확인했다.

[갤주 매드무비 떴다]

[어제부로 확정된 천공 초대 1인자.jyp]

[결국 탑솔러는 캐리 안된다던 탑신병자들 다 어디감??]

[천공계의 메시··· 그것이 바로 BJ천마···]

하루가 머다하고 누가 더 잘하는지 싸움박질을 하던 천공 게시판이었지만 지금은 더 이상 논쟁이 존재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실력으로 자신을 증명해보인 BJ천마가 있는 상황에 다른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천공 게시판 뿐 아니라 많은 스트리머 관련 게시판에서도 난리가 난 상태였다.

그야 AOS는 VR게임의 손가락에 꼽히는 게임인 데다가 프로게이머와 일반 게이머간의 간극이 가장 큰 게임 중 하나로 꼽혔으니까.

이런 게임에서 일반 스트리머가 혜성처럼 등장해서 프로들을 모조리 꺾고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실로 커다란 소식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소식은 물론 당연히 BJ천마의 시청자 상승으로 나타날 터였다.

‘시청자 수 증가는 얼마나 되려나.’

마지막 게임에서 나온 BJ천마의 최대 시청자수는 30만명. 화제성은 엄청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천이 생각하던 만큼 많은 숫자는 아니었다.

시청자수라는 것 자체는 끝없이 올라가는 일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시청자의 총 파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한국 내의 종합 스트리밍에서도 이미 손꼽히는 시청자수를 얻은 것이 바로 BJ천마의 시청자수.

30만명이라는 동시시청자 숫자는 이 한국의 총 시청자수를 생각을 해야 할 정도의 규모인 것이다.

‘···이 정도라면 당분간은 한국 내에서의 시청자수는 답보 상태겠군.’

물론 걱정한다고 해서 뚜렷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기는 하다.

천하통일을 목표로 한다고 해서 천하만을 바라보고 있어서는 눈 앞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문제보다 당면해 있는 대회를 걱정하는 것이 우선일 터.

‘그러고 보니. 팀 랭크는 챌린저를 달성했으려나.’

그런 생각을 한 순간. 문자가 도착했다.

[풀창고 : 형 우리 다 챌린저 티어 들었어]

첨부된 사진에는 눈알 밑으로 길게 다크서클이 늘어져 있는 풀창고와 함께 팀 랭크 챌린저 순위가 함께 떠 있었다.

챌린저 입성을 목표로 잡아 놨던 풀창고 쪽 멤버들도 모두 챌린저에 든 모양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문자가 늦었지?]

[풀창고 : 막 게임 끝나자마자 쓰러졌거든. 막판에 거의 3일동안 잠도 못 자고 달렸다고. 막판에 졌으면 유채 챌린저 못 달았어. 형한테 유채 죽을뻔 했다고!]

‘왜 정유채만 죽는다고 생각하는 거지.’

천마신교에서 한 개의 분대는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존재. 함께 실패했다면 함께 죽는 것이 당연지사가 아니던가.

분대원을 인원을 자신의 목숨처럼 여기지 않는 풀창고를 바라보며 단천은 정신교육을 좀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풀창고 : 뭐지 집에 바람 새나? 등골이 갑자기 오싹해]

[몸이 허해서 그렇다. 대추차를 마셔 보도록.]

[풀창고 : 그런가? 운동 많이 해서 몸은 좋아졌는데 등골이 자주 오싹하단 말이지]

[너무 걱정되면 본좌가 건강혈을 찍어줄 수 있다.]

[풀창고 : 괜찮아졌어. 완전 괜찮아졌어! 대추차 한 번 마셔 볼게!]

대추차를 마신다는 소리를 하는 풀창고의 문자.

역시 대추차는 위대하다. 말만으로 풀창고의 문자에 활력이 가득하게 만들어주지 않던가.

되도 않는 각성효과로 일시적으로 활력을 불어넣는 척 하는 까만 콩 볶은 물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렇게 대추차를 모두 홀짝인 단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속 시간이 슬슬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가게?”

“어. 약속이 있어서.”

“약속? 친구?”

“친구는 아니고. 어제 싸웠던 적.”

“···현피인가 뭔가 하러 가는 건 아니지? 이럴 때 쓰려고 그렇게 운동한 거야? 누나는 사람 때리는 동생으로 키운 적 없다?”

“현피는 아니야.”

현피는 아니었다. 정보를 얻기 위해서 만나는 것 뿐이다. 아쉽게도.

***

“왔나?”

백건은 단천보다 먼저 약속을 한 카페에 도착해 있었다.

백건의 외견은 크게 운동을 많이 한 상태의 몸이 아니었다.

“운동을 하지 않나?”

“꽤 한다고 생각하는데.”

물론 기본적인 수준의 단련은 되어 있다. 어딜 나가서도 좋은 수준의 몸이라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 세계’수준의 기준일 뿐. 백건의 단련 상태는 풀창고나 제로콜의 그것에 비해서도 월등히 떨어졌다.

중원이었다면 길 지나다가 시비 걸려 객사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뿜어져나오는 기세도 천공에서만 못하다.

“실망스럽군.”

“뭐가 그리 실망스러운지 모르겠군.”

기세를 일으켜 봐도 그 기세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무시해 버린다.

만족스러운 수준의 상대였다면 정보고 뭐고 무시하고 바로 박투를 들어가려고 했는데. 이 정도 수준이어서는 있는 투지도 완전히 없어져 버린다.

단천은 자리에 물을 내려놓고 백건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냥 물인가?”

“메뉴에 대추차는 없기에.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샷을 다 빼 달라고 그랬다.”

“점소이 멱살은 안 잡고 흔들어서 다행이로군.”

“본좌를 대체 뭘로 생각하는 건가?”

“하고싶은 대로만 인생 사는 개망나니?”

“······.”

“대추차라. 중원에 있을 때에는 참 많이도 마셨는데. 여기 오고나서는 훨씬 맛있는 게 많으니 잘 마셔본 적 없지만.”

백건의 앞에 놓여져 있는 것은 설탕을 칠 대로 친 커피였다. 단천은 머릿속의 공책에 ‘백건─맛알못’ 이라는 정보를 적어넣었다.

그러고 보면 옷차림도, 가지고 있는 물건들도 죄다 중원의 취향과는 동떨어져 있는 물건들이다.

“이 세상에 잘 적응한 것 같군.”

“그야 온 지 시간이 꽤 지났으니까.”

“이 세계에 온 지 얼마나 됐지?”

“대략 육, 칠년 정도쯤.”

육칠년. 단천이 중원에 떨어졌다 돌아온 10년이라는 간극보다는 적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지금 백건의 나이보다도 적은 나이다.

“그렇다는 건 이 몸이 네 원래 몸은 아니라는 뜻이겠군.”

“맞다.”

“원래 주인은 어떤 사람이지? 너를 이 세상에 데려온 사람이 있나?”

“···그게 정보가 거의 없다.”

백건은 커피를 목 안에 한 입 더 털어넣었다. 백건은 정도를 걷는 인간이었다. 아무래도 타인의 몸을 자신이 차지하고 앉아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입장에서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 분명했다.

“이 ‘백건’이라는 사람에 내가 들어오고 나서 안 정보들은 이 백건이라는 인간이 나와 똑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원래 식물인간 판정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고아라는 것. 이 정도가 전부다.”

“식물인간인데 고아.”

식물인간은 연명을 하는 데만도 엄청난 돈이 들어간다. 당연히 고아가 이런 막대한 비용을 감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는 것은, 그 너머에 누군가가 있다는 것.

“놈들이 이 세상에 너를 데려온 거군.”

“아마 그렇겠지. 그 작자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놈들은 나를 평생 책임질 생각은 없었던 모양이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쫓겨나다시피 병원에서 나와야 했으니까.”

“어떻게 생활했지?”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게 구걸을 했다.”

“돈은 안 훔쳤나?”

“정도正道를 걷는 인간으로서 남의 돈을 훔치는 것만은 할 수 없었다.”

“거 참. 빌려 쓰고 나중에 갚아 주면 되는 것을.”

“소매치기를 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나중에 갚아 준단 말이냐?”

“그거야 채무자가 아니라 채권자가 생각해야 되는 일 아닌가?”

백건이 눈을 질끈 감았다. 자신의 눈 앞에 앉아있는 인간이 천마, 그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힐 것이 분명한 미친 천마라는 것을 잠시간 잊어버렸다.

멀쩡하게 생겼길래 평범한 대화를 하려 했는데. 씨알머리부터가 다르다.

놈과 정상적인 대화를 하는 것보다는 길에 있는 돌멩이가 진화를 하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아무튼. 구걸을 하는 생활이 그리 쉽지는 않았다. 알다시피 이 세상에서 현금을 들고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거든. 사흘도 되지 않아 굶어죽기 직전의 상황에 처했지.”

“그래서, 강도질을 했나?”

“···강도질을 할 정신머리였다면 처음부터 소매치기를 했겠지.”

“구걸이나 소매치기나 그게 그거인 것 같은데.”

“다르다! 완전히 다르다!”

백건이 빽 소리치는 통에 단천은 귀를 막았다.

계속 느꼈지만 백건은 깐깐하기 그지없는 정도중의 정도다. 요약하면 인간성 없이 자신한테만 가혹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개방도 놈들도 심심하면 하는 게 소매치기고, 농사 안 돼서 민심 험악하다 싶으면 하는 짓이 강도질이었는데.

본인은 뭐가 그리 깨끗하다고 먹고살수도 없는 상황에서까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지.

세상에서 자신의 신념을 위해 죽겠다는 놈들만큼 미친 사람은 없는 법인데.

“그런 유도리도 없이 잘도 살아남았군.”

“이 세상에서는 그걸 유도리라고 하지 않고 ‘도덕률’이라 한다.”

세상이 도덕률대로 돌아가면 전쟁은 왜 있냐? 도덕률대로면 전쟁 일으키는 빡빡머리 독재자 머리에 총알이 천 번은 박혔어야지.

“그래서. 소매치기를 안 했으면 어떻게 했는데?”

“길에서 굶어죽기 직전에 나에게 밥을 주는 은인을 만날 수 있었지.”

“···그런 사람이 세상에 아직까지 남아있었군.”

21세기가 험악하디 험악한 곳이라고는 해도 그래도 최소한의 인정은 있는 장소였던 모양이다.

어쩌면 정파에서 말하는 인간의 선이 바로 그러한 것이겠지. 천마신교의 적자생존만이 해답은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

“···그 은인이 운영하는 VR게임 작업장의 노예로 하루 20시간씩 부려먹긴 했지만.”

···취소.

21세기는 인간의 도덕따위는 진창에 쳐박은 인류 최악의 시대다. 인간은 이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자도생해야만 한다.

각자도생에 살아남을 수 있는 인간은 정파따위의 가르침이 아니라 천마신교의 적자생존뿐인 것이다.

역시 천마신교야.

절대 가르침이 틀리는 법이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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