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1위 쟁탈전 (5)
[미니언이 생성됩니다.]
합쳐진 성채에서 뛰쳐나온 미니언들이 중앙에서 격돌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나오는 플레이어들.
“냉기의 결계상!”
와지지직!
동군의 미드 라이너. ‘자연산인공감미료’는 BJ천마의 요청대로 바로 냉기의 결계를 바닥에 깔았다.
바닥에서 냉기를 뿜어내는 결계가 일직선으로 바닥에 깔렸다.
냉기의 결계는 적은 물론이고 아군에게까지 영향을 주는 장판형 궁극기.
적을 다가오지 못하도록 시전하는 것이 보통의 사용처지만. 지금 깔린 냉기의 결계의 방향은 전장을 직선으로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적의 진영도, 아군의 진영도 반으로 갈라내고 있는 궁극기.
> 뭐냐
> 저 바닥을 왜 저딴 식으로 씀??
> 스킬 잘못 쓴 거 아님?
> 그래도 챌린저인데 챌린저가 스킬을 이따구로 쓰네 ㅋㅋㅋㅋ
> 자연산인공감미료. 너는 랭크 10위의 자격에서 ‘탈락’이다
하지만 자연산인공감미료를 비롯한 BJ천마의 팀원들은 침착함 그 자체였다.
“···이게 맞는 걸까. 나 이거 이겨야 10위인데.”
“힘내라. 천마님이 캐리해 주실 거야.”
“제발 인생을 날로 먹게 해 주세요···.”
지금 이 스킬샷은 다름아닌 BJ천마가 직접 지시한 스킬샷이었기 때문이다.
반으로 갈린 전장 한쪽에는 BJ천마와 적 4명이,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동군의 팀원 4명과 백건만이 남았다.
BJ천마의 요청은 단순했다.
“본좌가 4:1로 적들을 박살내는 사이에 백건의 파밍만 막으면 된다.”
간단하기 그지없는 전략이다. 물론 그 전제가 성립할 때의 이야기지만.
“와··· 아무리 그래도 이쪽은 궁극기까지 장착한 4명인데. 이걸 덤빈다고?”
“못 할 것 없지.”
서군 진영의 4명이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지금의 4:1은 평소에 BJ천마가 보여주던 다대일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평소의 BJ천마가 보여주는 다대일은 적 탑을 완전히 무너뜨리면서 충분한 성장을 한 뒤에 보여주는 무쌍이다.
하지만 지금의 BJ천마는 백건을 뚫어내지 못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상태.
> 이 상태에서 무쌍이 되겠냐?
> 너무 무리수 아님?
> 근데 그건 저기 있는 백건도 마찬가지 아니냐
채팅창에서 올라오는 불안감을 가르며 BJ천마의 몸이 적을 향해 도약했다.
파아앗!
“죽여!”
말과는 달리 BJ천마를 향해 스킬샷이 모조리 쏘아지지는 않았다.
BJ천마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피지컬을 보유한 인간인지는 이미 서군의 팀원들도 모조리 알고 있었으니까.
단순 논타겟이라면 BJ천마가 맞아줄 리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확정 CC를 먹인 후에 논타겟 스킬샷을 날려 제압한다!
“선 CC 날린다!”
[파멸의 시선]
메두사의 확정 스턴기인 파멸의 시선이 BJ천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해골 반지를 사용합니다!]
[CC효과가 해제됩니다!]
그리고 파멸의 시선을 맞는 것과 동시에 사용되는 해골 반지.
> ㅅㅂ CC를 맞았으면 맞은 티라도 내라
> 단 0.01초도 멈추지 않는 무빙 ㄷㄷㄷㄷ
“다음 CC 날려!”
[룬 구속!]
파지직! 룬으로 만들어진 결계가 BJ천마의 몸 위에 덧씌워졌다. 일시적으로 멈춰 버린 BJ천마의 몸.
“죽여!”
BJ천마의 몸이 멈췄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서군의 스킬샷이 BJ천마의 몸에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확정 CC를 맞았으니 앞으로 2초 정도는 아무 것도 못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상황.
하지만.
[CC기가 해제됩니다.]
한참을 멈춰 있어야 할 BJ천마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
BJ천마를 향해 달려들던 서군의 정글러의 얼굴에 당혹감이 어리는 것을 BJ천마의 박도는 놓치지 않았다.
촤아악!
[BJ천마가 우유조절장인님을 처치했습니다!]
뒤이어 쓰러지는 우유조절장인의 몸을 방패로.
파바바바박!
쏟아지는 스킬샷 태반을 막아냈다.
“이런 미친.”
“뭐야? 어떻게 움직이는 거야!”
당황스런 목소리가 서군에서 터져나왔다. 단천은 눈살을 찌푸리며 냉기의 결계 너머를 바라봤다.
“늦잖느냐.”
“맞는거 보자마자 썼는데요?”
결계 너머에서 들려오는 동군의 서포터. ‘최강한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맞고 나서 0.2초나 본좌가 경직되어 있었다.”
“0.2초면 바로 풀어준 거 아닌가요?”
“0.2초라면 본좌는 네놈을 15번정도는 도륙할 수 있느니라.”
‘냉기의 결계’는 전장을 가로지르는 것을 일시적으로 차단한다. 하지만 스킬이 넘어가는 것까지 차단하지는 않는다.
4:1상황을 만든다는 눈속임을 상대방에게 강요하고.
냉기의 결계 너머에서 CC기 해제 지원을 받는 것이 메인 플랜이었던 것이다.
“이런 아이디어가 어떻게 바로 떠오르지?”
“진짜 미쳤음.”
“이제 본좌의 전략능력에 토를 다는 자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 근데 이건 전략이 아니라 꼼수 아니냐
> 사짜급 눈속임이잖아 그냥
> 속은 놈이 잘못이지
> 생각부터가 일반인들과는 다릅니다
> 근데 게임에서는 속은 놈이 잘못 맞잖아;;
잡담을 길게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BJ천마의 몸이 다시 도약해 붕괴된 적의 진형을 향해 파고들었다.
CC기가 먹혔다는 것을 확신하고 스킬샷을 모조리 쏟아부은 적에게, 더 이상 BJ천마를 막아낼만한 수단은 남아 있지 않았다.
[BJ천마가 딜레이라마님을 처치했습니다!]
[BJ천마가 정의의팬티가면님을 처치하셨습니다!]
[BJ천마가 메시는전설이다님을 처치하셨습니다!]
순식간에 서군을 정리해낸 단천은 바로 박도를 들고 적 진영을 향해 파고들었다.
“어···어?!”
목표는 죽고 나서 부활해서 달려오고 있던 적의 정글러. ‘우유조절장인’.
상황파악을 할 새도없이 우유조절장인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펜타 킬!]
그리고 뒤이어 나오던 서군의 팀원들도 우유조절장인과 같은 결과를 맞이했다.
[BJ천마가 딜레이라마님을 처치했습니다!]
[BJ천마가 정의의팬티가면님을 처치하셨습니다!]
[BJ천마가 메시는전설이다님을 처치하셨습니다!]
> 뭐지
> 데쟈뷰인가
> 아니 입구에서 자동사냥 돌리는 미친놈이 있다니까요?
> 자동 사냥 유저 신고합니다 ㅡㅡ
「우유물조절 장인의 몸이 완전히 스러집니다.」
「우유물조절장인의 힘이 BJ천마에게 모조리 흡수됩니다!」
···
적을 모조리 처치하자 영구 사망 메시지와 능력치 향상 메시지가 떠올랐다.
“3번 이상 부활이 남았던 적 플레이어는 없었던 모양이군.”
4명이 가지고 있던 영혼 조각이 BJ천마의 몸에 흡수되기 시작했다.
한 명, 한 명의 영혼이 흡수될때마다 몸 안에서 힘이 휘몰아쳤다.
그렇게 모든 영혼을 흡수가 끝났을 때. BJ천마의 능력치는 실로 압도적인 수치까지 올라가 있었다.
‘몸이 가볍군.’
단천은 움직이는 자신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이 정도라면 무림으로 따져도 초절정과 엇비슷한 수준의 몸 상태다.
초절정이 낼 수 있는 무력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초절정 이상의 무력이라고 해도 되는 상태.
본신의 무력에 비하자면 다소 아쉽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단천의 눈이 아군 진영에 있는 적. 백건에게 고정됐다.
“막아! 막아아아!”
콰드득!
[백건님이 최강한화를 처치하셨습니다!]
“쯧.”
백건또한 단천처럼 동군의 플레이어를 도살하고 있었다.
상황을 읽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1번 죽으면 그대로 영구 사망인 팀원부터 죽였겠지. 거기서 얻은 초월 능력치가 있다면 나머지 팀원들을 죽여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었을 터다.
털썩!
마지막 남은 영웅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리고 죽은 동군 영웅들의 영혼이 백건의 몸에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지금 공격한다면 우세한 상황에서 전투를 시작할 수 있을 터다.
하지만 단천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기다려 주는 건가?”
“기습을 하면 진 게 아니라고 우겨대는 놈들이 세상에는 종종 있거든.”
“나도 그런 놈들을 자주 만났지. 짜증나는 놈들이다.”
“동의한다.”
[전장에 영웅 두 명만이 남았습니다!]
전장에 남은 영웅은 BJ천마와 백건. 둘 뿐. 두 천하제일인은 서로를 노려봤다.
“그런 피지컬을 가지고 대체 어떻게 승률이 고작 90%밖에 안 되는 거지?”
“합류해서 팀원들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이길 판도 지게 되더군.”
“그러게, 본좌처럼 우직하게 탑을 밀지 그랬나. 유아독존만이 전장을 이기는 유일한 길인 것을.”
“그럴걸 그랬군.”
이기기 위해서 팀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BJ천마와 자신의 승률 차이로 나타난
것이었으니까.
백건의 입에 쓴 웃음이 걸렸다.
‘어쩌면 이 세계에 너무 오래 있었던 것일지도.’
> 아니 백건님 거기 동의하시면 안되죠 ㅋㅋㅋㅋㅋ
> 백건도 동의했다. 앞으로 탑은 무조건 ‘우직’메타다
> 천공 켰다! 오늘 나는 ‘진짜’ 탑솔러로 거듭난다···!
> 제발 합류해 주세요 여러분들은 BJ천마가 아니에요
> 나는 나보다 약한 자의 말은 듣지 않는다!!!
> 비상!!! 랭크게임 초 비사아아앙!!!
채팅창에서 공포에 질린 사람들의 아우성이 이어졌다. 팀워크가 중심이라는 백건마저 탑신병자중의 탑신병자인 BJ천마의 말에 동의하다니.
실로 어마어마하기 그지없는 수의 탑신병자가 게임에 유입되는 순간이었다.
‘생각하고 있던 것 중 최악의 상황이로군.’
사실 단천은 사실 이 상황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상황을 유도한 것은 제대로 백건과 승부를 겨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대 일의 상황으로 끌고가서 어거지로 이기는 것은 단천의 스타일이 아니었으니까.
【그럼. 천하제일을 가리도록 해 볼까.】
【오랜만이다. 천하제일의 자리를 쟁탈하는 것은.】
【긴장은 안 되나 보군.】
【왜 그렇게 생각하지?】
【웃고 있기에.】
백건의 얼굴에는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웃음이 걸려 있었다. 아마 백건이 전대 천마인 고독악패와 싸울 때에도 저런 웃음을 지어 보였을 터다.
그리고 또한, 저 웃음은 단천 자신의 얼굴에도 맺혀 있을 게 분명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천공이라는 세계의 법칙은 중원과 다르다. 지금 둘이 가지고 있는 힘도 중원에는 미치지 못한다.
둘이 가지고 있는 신체능력이라고 해 봤자 초절정에 겨우 달하는 능력치. 고작해야 21세기의 전차 대여섯 대밖에 상대할 수 없는 미력하기 그지없는 힘이다.
하지만 아쉬울 것은 없었다.
지금 둘이 서 있는 곳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승패가 확실하게 나오는 전장이 있다.
그리고 자신의 눈 앞에는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적수가 있다.
그것이면 충분하지 않던가.
단천은 입을 열었다.
【중원에서. 져 본 적 있나?】
【나는 져 본 적 따위 없다. 그대는 져 본 적 있나?】
【없지.】
【그렇다면. 우리 둘 중 한 명은 처음으로 패배를 경험해 보겠군.】
“틀렸다. 패배를 할 것은 본좌가 아니라 네놈으로 결정되어 있으니 말이다.”
“그 위세가 모가지가 떨어질 때까지도 이어졌으면 좋겠군.”
부서져 내리는 세계 위에서 한 줄기 뇌전이 내리꽂혔다.
콰르릉!
그것을 신호로, 단 한 번의 패배도 경험해 본 적 없던 두 무인 두 명의 격돌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