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37화 (137/212)

30. 1위 쟁탈전 (3)

[로비에 입장합니다.]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오. BJ천마 아님?”

“진짜다. 필승캐릭 우리편에 걸렸네.”

“BJ천마? 그 사람 보통 이 시간에는 안 돌리지 않나?”

“오늘 랭크 막판이라서 달리나 보지.”

게임 로비에 들어서자 팀원들이 BJ천마를 알아봤다. 상위권 플레이어들은 서로가 서로를 아는 사이다. 랭크 1위를 다투고 있는 플레이어를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크. 랭크 막판에 천마님이 뜨네.”

“꽁승 너무 달달하고요.”

“이판 이기면 10위 진입! 제발 이기자!”

> 인기인이네 ㅋㅋㅋㅋㅋㅋㅋ

> 게임 하면 무조건 이겨주는데 당연히 인기인이지 ㅋㅋㅋㅋ

> 합법 버스 가즈아ㅏㅏㅏㅏㅏㅏ

BJ천마가 팀에 있다는 것이 확인되자마자 팀원들의 사기가 하늘끝까지 치솟았다.

BJ천마가 처음부터 이런 환대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초창기 게임에서는 팀에 BJ천마가 있다는 것 만으로도 불편함을 쏟아내는 플레이어들이 많았다.

그야 당연한 반응이었다. 탑에서 내려오질 않는 탑솔러를 두고 그 어떤 게이머가 불편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탑에서 붙박이처럼 플레이하는 것을 보며 욕설이 쏟아졌지만, 이 평가는 지금에 와서는 180도 뒤집어졌다.

지금 와서 BJ천마의 플레이스타일을 욕하는 천상계 플레이어는 한 명도 없었다.

왜?

게임을 혼자서 이겨 주니까.

결국 실력이 모든 것을 정당화하는 것이다.

> 나 어제 천마처럼 플레이하다 욕쳐먹음

> 천마님처럼 플레이하니까 욕쳐먹는 것

> 혼자서 게임을 이겨주는 사람이랑 그냥 탑신병자랑 똑같냐

> 혼자서 게임 못 이겨주면 합류좀 하라고 버러지야

“상대편에는 백건 잡혔다는데?”

“이야. 대박이네. 지금 둘이서 붙는건 오늘 처음인가?”

“이거 이기면 BJ천마가 1위. 지면 백건이 1위? 이거 진짭니까 천마님?”

“그렇다.”

“오오.”

팀원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랭크 1위가 걸려 있는 게임 마지막 판. 게임만 무성의하게 돌리고 있던 게이머들이라고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 나도 이기면 10위 진입인데요? 관심 좀?”

“10위따리가 어디서 나대냐?”

“BJ천마 지금 시청자 수 몇명임?”

단천은 시청자 수를 확인했다. 모니터링 화면에 찍혀 있는 시청자 수는 20만 명.

평소의 10만명 정도의 시청자수에 비하면 거의 2배나 되는 시청자수다. 현재 관전 중계방도 돌아가고 있을 것을 생각한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수가 지금 방송을 보고 있다고 봐야 했다.

“대충 20만명 정도 되는군.”

“와. 미쳤네 그냥.”

“초대박 터졌네요 천마형님. 시청자 부럽습니다.”

“왜 아부하냐. 아부하면 천마가 뭐라도 해 주냐?”

“나 이번판 이기면 10위라니까? 당연히 아부해야지!”

“지금 1위 결정전인데 10위가 어디 계속 입을 열어.”

“야. 그 말 하는 너는 지금 몇 위인데?”

“나? 82위인데?”

“···이 새끼가?”

> 82위의 10위 디스 ㅋㅋㅋㅋ

> 너무 자연스러워서 난 또 한 5위쯤 되는 줄 알았네 ㅋㅋㅋㅋㅋ

> 크큭···저는 이 중 최약체입니다만···?

> 그보다 직관 개부럽다 ㅅㅂ

>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대학 가지 말고 게임이나 할 걸 ㅠㅠ

> 실시간 특등석에서 BJ천마 1위가는거 구경할 수 있다니 ㄹㅇ 부럽긴함

채팅창에서 실시간으로 마지막 경기를 참여하고 있는 플레이어에 대한 부러움이 쏟아지는 중. 드디어 맵을 고르는 슬롯 머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곧 슬롯머신이 멈추고 랭크전 마지막 게임의 맵이 결정되었다.

[맵이 결정되었습니다.]

[맵 : 영혼의 제단]

[영생의 조각을 가진 적들을 모두 해치우고 최후의 승자가 되세요]

“영혼의 제단이로군.”

영혼의 제단. 천공의 다른 맵에서는 캐릭터가 무한히 부활할 수 있다. 죽더라도 계속해서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이 ‘영혼의 제단’에서는 한 플레이어당 부활할 수 있는 횟수가 제한된다.

최대 5번에서, 최소 0번까지.

플레이어들의 눈 앞에 ‘영생의 잔’이 떠올랐다. 이 잔에 있는 ‘영생의 조각’을 얼마나 마시느냐에 따라 부활할 수 있는 횟수가 정해진다.

부활 횟수가 적으면 적을수록 기본적인 능력치 버프가

생겨난다.

0번을 선택하면 그만큼 강한 기본 능력치를 얻게 되지만, 한 번 죽는 것만으로도 더 이상 게임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생긴다.

“부활은 몇 번을 갈까요?”

“고민할 것도 없지.”

그렇기에 보통은 이 능력치를 추가를 받으면서도 적당한 수준의 부활 횟수를 가지는 3회, 혹은 4회를 선택하지만.

단천은 조금의 고민도 없이 영생의 잔에 들어있는 영생의 조각을 모두 바닥에 쏟아버렸다.

[부활 횟수를 0회 선택하셨습니다.]

[한 번의 죽음만으로도 영원한 죽음을 얻게 됩니다.]

> 개상남자 ㄷㄷ

> 어차피 안 죽으면 다 해결된다~~ 이말이야~~~

***

[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이 시작되자 스코어보드가 떠올랐다. BJ천마는 평상시라면 스코어보드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게임을 하는 스타일이었지만.

영혼의 제단은 게임 시작시 강제로 스코어보드를 띄워준다.

각 플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부활 횟수가 몇 번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플레이어들의 부활 횟수를 머릿속에 집어넣던 단천의 눈이 한 곳에 멈췄다.

[백건 : 선택 부활 횟수 ‘0’회]

> 와 백건도 0회 선택했네 ㅋㅋㅋ

> 저쪽도 안 죽으면 된다는 생각 ㅋㅋㅋㅋ

BJ천마도. 백건도 부활 횟수를 0회를 선택했다. 백건과 BJ천마가 게임 내에서 가지는 캐리력은 그야말로 압도적 그 자체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건 한 번 죽으면 게임이 끝난다는 뜻.

“백건이라는 놈. 그래도 탑솔러로서 기본은 돼 먹은 놈인 모양이군.”

지금까지 이 맵을 하면 부활을 3회, 4회, 심지어는 5회까지 들고 탑에 올라오는 놈만을 만나왔거늘. 0회 부활을 가지고 온다니. 마음에 들었다.

탑에 단천이 도착하자 저 멀리에서 백건의 모습이 보였다.

백건의 캐릭터는 야수의 형태를 모방해 자신의 능력치를 강화하는 「상형권사 드라드」.

탑 라인전에서도 손꼽히는 강캐다.

“반갑다. BJ천마. 얼굴은 처음 보는군.”

“많이 봐 두도록. 모가지 따이고 나면 관전창으로밖에 못 보게 될 테니까.”

단천의 말에 백건이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단천은 박도를 들어 백건을 향해 까딱였다.

탑에 오면 언제나 하는 짓인 ‘일기토 신청’이다.

대충 최상위권 티어에 오고쯤부터는 BJ천마가 하는 일기토 신청을 받아들이는 플레이어는 한 명도 없었다.

BJ천마가 1:1에서 보여주는 압도적인 컨트롤이 알려질 대로 알려진 탓이다.

“한 판. 붙어 보지.”

> 붙어주겠냐 ㅋㅋㅋㅋㅋ

> 일기토 받아주면 게임 지는데 왜 받아줌?

하지만 채팅창의 반응은 완전히 빗나갔다.

백건이 주저 없이 앞으로 걸어나온 것이다.

> 와

> 상남자 ㄷㄷ

> 미쳤다 이걸 걸어나오네

“선공은?”

“양보가 필요한가?”

지금까지의 탑솔러들과는 달리 만족스럽기 그지없는 태도다. 태도보다 더욱 만족스러운 것은 백건의 자세에서 풍겨져나오는 위압감.

게임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진짜’의 향기다. 중원에서도 아주 가끔씩만 만날 수 있었던 진미眞味의 향기.

“사부는 있나?”

“그런 거 없다. 있더라도 잊어버렸고.”

뭔가 알아내보려고 운을 띄워도 제대로 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결국. 검을 섞어봐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단천의 박도가 선공을 점하며 백건을 향해 날아들었다. 백건이 몸을 거북이처럼 움츠리며 검을 받아냈다.

파캉!

수천 번은 적의 몸에 일격을 가했던 단천의 검이 튕겨져 나왔다.

> 박정 공격이 튕겨져나오네

> 와 저 캐릭 뭐임? 개사기 아니냐?

데미지 대부분이 저 ‘거북이 자세’로 인해 경감됐다. 거기에 단천의 검의 궤도가 흐트러져 다음 공격을 바로 이어가기 껄끄러운 위치에 서게 됐다.

‘호오.’

단순히 캐릭터의 성능이 아니다. 검이 만들어내는 충격을 몸의 탄력으로 상쇄해 비틀어낸 것이다.

소력. 강호에서도 외공의 절대고수 몇몇만이 사용했던 상승의 경지.

하지만 감탄을 계속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쉬익!

공격을 방어해낸 백건의 손바닥이 단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실로 적절하기 그지없는 일격이었지만. 이 정도도 막아내지 못한대서야 천마의 이름이 운다.

파캉!

단천은 박도의 손잡이로 백건의 손바닥을 막아냈다. 공격이 실패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백건이 뒤로 훌쩍 물러났다.

물러나지 않았으면 단천의 검에 몸이 베였을 것이 분명했다.

단천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백건을 바라봤다. 신화경에 오르고서는 웬만하면 단 한 합만으로도 적의 경지와 수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자의 능력은 단 합 만으로 재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높이에 있었다.

게다가 무슨 무공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백건이 사용하는 것은 중원. 그러니까 ‘기’가 존재하는 세계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사문이 어딘지, 그 발원지가 어딘지를 짐작조차 할 수가 없었다.

“재밌군. 재밌어.”

“위에서 내려보는 그 태도는 어디서 가르쳐주기라도 하는 건가?”

“본좌 말고도 이런 태도를 견지하는 인간이 있던가?”

백건의 입이 달싹였다. 음성도, 귓속말도, 혹은 전음도 아니었다. 글자 그대로 입이 달싹였을 뿐.

하지만 단천의 눈은 백건의 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상대의 입모양만으로 말을 읽어내는 독순술 정도는 단천도 익히고 있었으니까.

【보아하니 천마라는 이름을 쓰는 자는 죄다 그 모양인 모양이로군.】

단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한글이 아니다. 심지어는 중국어도 아닌, 중원의 언어. 하지만 그런 것은 놀랍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백건의 입에서 튀어나온 다른 천마가 있다는 듯한 말투였다.

단천은 마찬가지로 입을 달싹였다.

【다른 천마를 만난 적 있나?】

【칠대 천마를 만났지. 오만하기 이를데 없는 자식이었다. 대가리가 으깨진 뒤에는 오만하게 떠들지 못했지만.】

칠대 천마라는 이름이 백건에게서 튀어나왔다.

단천은 칠대 천마였다. 하지만 유일한 칠대 천마는 아니었다.

천마라는 이름은 불패의 이름.

천마는 패배하는 순간 패배자는 천마가 아니게 된다. 단천도 천마의 위에 오를 때에 칠대 천마를 베고 칠대 천마의 자리를 빼앗았다.

죽고 나서도 천마라는 이름을 쓸 수 있는 것은 죽기 전까지 불패不敗였던 자들 뿐.

죽기 전에 패배해 죽은 자는 더 이상 천마가 아니다.

그렇기에 기나긴 천마신교의 이름 아래에는 단지 일곱 명의 천마의 이름만이 있을 뿐이었다.

【놈의 이름은 기억나나?】

【안 난다. 별호는 고독 뭐시기였던 것 같긴 하다만.】

자신이 알기로 칠대 천마는 단천 자신까지 세 명이 있었다. 단천 자신이 베어죽인 전대 천마. 기문적귀 위지웅. 그리고 전전대 천마인 고독악패 사마용철.

그리고 그 고독악패를 죽인 자라면.

【전대 천하제일인. 백건인가?】

【내 이름을 아나?】

단천 자신의 앞에 있는 자는.

바로 전대 천하제일인. 백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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