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1위 쟁탈전 (2)
[골드 승급전에 원딜이 미드달렸다··· 질문 받는다···.]
[진짜 어떻게 실버에는 사람새끼가 한 명도 없냐?? 정상인이 어케 하나도 없냐고!!!!]
[주차해놓고 게임 던지는 예티새끼들 진짜 예티 사는 설산에 파묻어버리고 싶네]
평소에도 혼돈 그 자체인 천공 게시판. 하지만 랭크 게임 말일의 천공 게시판은 평소보다도 더욱 더 혼돈이 가득했다.
패닉에 빠져 있는 사람 대부분은 티어를 가르게 되는 위치에 걸쳐 있는 사람들이었다. 골드냐 플래티넘이냐, 실버냐 골드냐, 브론즈냐 실버냐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
반면 티어를 가르는 선을 벗어나 있는 사람들은 광기에 휩쌓인 사람들을 바라보며 조금 더 여유롭게 게시판을 이용하고 있었다.
[ㅋㅋㅋㅋ그러게 티어 좀 일찍일찍 올리지 ㅋㅋㅋㅋ]
[걍 기본만 해도 티어 올라가는데 ㅋㅋㅋㅋ]
[지금 티어순위는 어케됨?]
[1위 백건 2위 BJ천마]
이런 여유로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말일의 티어 경쟁은 거의 의미없는 것이었다. 어차피 게임을 하나 안하나 티어의 색이 바뀔 일이 없는 사람들이기에.
그리고 이 사람들은 자신의 티어가 아닌, ‘최상위 티어’의 상황을 관전하는 데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어떻게 1위 2위가 둘다 탑솔러 ㅋㅋㅋㅋ]
[AOS는 미드겜 아니냐 왜케 탑 둘이서 치고받고 싸우냐]
[AOS가 미드겜이라는 건 초창기 AOS나 그랬고. 요새는 그런 거 없음]
[1위 2위는 거의 확정이지?]
[ㅇㅇ 3위랑 차이가 좀 나서 1위 2위는 고정됐고 누가 1위냐만 남은듯?]
[둘이 점수차 꽤 나지 않냐?]
[지금 점수차 엄청 줄었음 ㅋㅋㅋㅋ 50점도 차이 안남 ㅋㅋㅋㅋ]
그리고 이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단 하나. 과연 BJ천마가 1위를 탈취할 수 있을 것인가에 쏠려 있었다.
최초의 1위를 가져가는 것은 프로게이머 출신일 것인가, 혹은 비프로게이머 출신일 것인가.
거기에 관심이 더욱 쏠리는 데에는 둘의 극명한 스타일의 차이도 한몫을 했다.
적 탑을 부순 다음 그 영향력을 다른 라인으로 퍼트려서 게임을 집도하는 ‘백건’.
그리고 팀플레이따위는 필요없다는 듯이 상대 탑을 찢어발겨 버리는 전형적인 탑신병자. ‘BJ천마’.
[ㅅㅂ 못참겠다 방송 링크나 좀 켜 줘라]
[탑건은 방송 안하고 BJ천마만 방송함]
[알겠고 링크나 내놓으라고]
[백건과 BJ천마. 둘 중 누가 최강자인가? 그것은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 않다.]
[교과서에 나오겠냐]
***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군.”
단천은 혀를 끌끌 차며 시계를 바라봤다. 랭크게임 종료시각까지 남은 시간은 고작 1시간 남짓.
> 이거 아슬아슬하겠는데
> ㄹㅇ 될수도 있고 안될수도 있음 ㅋㅋㅋ
백건과 BJ천마와의 랭크점수 차이는 40점.
2판을 이긴다면 BJ천마의 1위가 확정된다.
반면 2판을 이기지 못하고 1판만 이긴다면 백건이 1위가 되는 상황이다.
“짜증나는군.”
게임을 빠르게 부숴뜨리는 것이라면 크게 문제가 없다. 타임어택이라면 자신있었으니까.
하지만 생각보다 랭크 게임이 잡히는 속도가 느리다는 게 문제였다.
상위권으로 가면 갈수록 랭크가 잡히는 속도는 느려진다. 거기에 BJ천마의 랭크 점수는 꽤 큰 차이로 2위를 달리고 있는 상황. 거기에 맞는 팀원들을 서로 매칭해 주기 위해서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시간이 오래 걸리는군.’
그냥 대충 아군을 아무나 잡아 주고 게임을 시작하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시스템을 상대로 소리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랭크게임이 끝나고 나면 하인라인에 정식으로 가서 항의를 하던지 해야겠다고 단천은 생각했다.
[랭크 매칭중 : 검색 시간 (16분)]
> 오래 걸리네
> 진짜 시간이 너무 아슬아슬함 ㅋㅋㅋㅋ
> 근데 사람들이 왜 질 거라고는 생각도 안 함?
> 져 본 적이 있어야 질 거라고 생각을 하지 ㅋㅋㅋㅋㅋ
시청자들또한 단천과 마찬가지로 초조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가장 초조하게 지켜보는 것은 소위 ‘탑신병자’그룹이었다.
[탑신병자협회장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BJ천마 1위로 탑신병자 세계를 열어젖히자!!!]
[진짜탑협회장 님이 1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옳소!!!! 우직하게 탑 라인을 밀어 주십시오 천마님!!]
> 아니 탑 밀지 말고 합류나 좀 하라고 미친놈들아
[탑최강자협회장 님이 12,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탑솔러는 다른라인에 가는 외도따위는 걷지 않는다!!!]
> 아찔하다 진짜
> 그와중에 셋다 협회장인거 개열받네
> 탑솔러는 다른 자의 밑에 가지 않는 법이다!!!
> 심지어 주는 돈도 1000원씩 늘어남 ㅋㅋㅋㅋ
> 내가 저놈보다는 더 낸다는 마음가짐 ㅋㅋㅋㅋ
> 어떻게 후원하는데도 탑신병자끼가 묻어나오냐
> 정신병자가 탑에 가는 것인가, 아니면 탑에 가서 정신병자가 되는 것인가···.
그렇게 후원금이 쏟아져 나오고 있던 와중. 단천의 눈에 채팅 하나가 보였다.
> 야 백건 게임 접속함
> ㄹㅇ???
“접속을 했구만.”
백건은 1위를 찍어놓은 상태에서 꽤 점수차를 벌린 이후부터는 게임을 돌리지 않았다.
백건이 보유하고 있는 점수가 너무 높아서 졌을 때의 점수 감소폭이 너무 크다. 그러니 게임을 돌리지 않는 것은 랭크 유지를 위한 합리적인 결정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BJ천마가 2판을 돌릴 수 있게 된다면 눈뜨고 앉아서 1위를 강탈당하는 셈. 반면 BJ천마와 맞싸움을 해서 한 판을 이긴다면 백건은 1위가 확정된다.
자신의 손에 운명을 맡기느냐. 타인의 손에 운명을 맡기느냐.
여기서 후자를 선택하는 인간은 탑솔러로서의 자격이 없다고 봐야 했다.
“애초에 지면 손해이니 안 싸운다는 것부터가 탑솔러의 마음으로는 글러먹은 것이기는 하지만.”
> 그럼 탑솔러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먹어야 되는 거임??
“왜 진다는 가정을 하지? 싸우면 반드시 자신이 이긴다고 생각하고 사는 것. 그것이 천하제일인의 마음가짐이니라.”
> 크으
> 미쳤다
> 확실히 미친것같긴 함
>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 ‘BJ천마방송’
> 경찰 아저씨 여기 있는 사람들 죄다 잡아가세요
그렇게 훈시를 내리던 단천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뒤를 돌아봤다.
야수도 박정이 단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고 있군.”
“마지막 시간은 무슨. 어차피 전쟁은 계속될 텐데.”
“···그야 그렇지.”
단천은 이 천공에 존재하는 영웅들이 부러웠다. 자지도, 먹지도 않고 계속해서 싸움만 할 수 있는 장소라니.
‘천국이 있다면 아마 이런 곳이겠지.’
단천은 언제나 중원에서 말하는 낙원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허허 웃으면서 바둑이나 두는 신선이 있는 곳이 어떻게 낙원이란 말인가.
자고로 낙원이라고 한다면 무한한 쾌락과 즐거움이 있는 장소. 영원히 이어지는 전장이 없다면 낙원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 시주는 가끔 가다 삼두육비의 수라나찰이나 할 법한 말을 진지하게 내뱉소.
왜 무명승이 일침이라며 내뱉은 헛소리가 생각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래서. 왜 갑자기 부른 거지?”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었네.”
“고맙다고?”
“···알 지 모르겠지만. 나의 능력은 천공의 가장 윗자리에 앉기에 부족하다네.”
박정의 능력치나 스킬은 다른 화려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본래라면 언감생심 천공의 최고 자리에 앉는 것이 불가능하다.
아니, 불가능해야 했었다.
그러나 지금 박정의 눈 앞에 있는 단천은 그 불가능을 현실로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무혼이여. 만에 하나라도 그대가 실패하더라도 괜찮네. 그대 덕분에 나는 꿈을 꿀 수 있었네. 그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만족스럽다네.”
박정은 진중하게 말했다. 만에 하나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자신 눈 앞에 있는 무혼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박정 자신이 부족해서라고 말하기 위해서였다.
천공의 정점에 선 다음 아내를 만날 수 있다는 소원을 기대할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박정은 BJ천마에게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건지. 상상력이 풍부한 건 부럽군.”
“헛소리라니! 나는 진지하게···!”
“본좌를 그렇게 봐 오고서도. 본좌가 진다는 상상을 할 수 있다는 게.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단천은 혀를 끌끌 찼다. 하긴, 천하통일을 하고 나서도 단천을 못 믿는 자들이 천마신교에는 꽤 있었으니까.
─ 지존!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번개를 자를 수는 없습니다!
─ 아니, 지난 번에 지존이 번개 가르시는 거 봤지만, 아무리 그래도 인간이 산을 뭉개버릴 수는 없습니다!
─ 지존께서 번개도 자르시고, 산도 뭉개버린 건 압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천공에서 날아오는 유성을 부술 수는 없습니다! 신궁을 버리고 도망치셔야 합니다!
되돌아보니 의심하는 놈은 죄다 서윤학이었다. 하여간 의심병 도진 놈 같으니라고. 평생에 걸쳐서 의심만 하니까 머리가 그렇게 빠지는 거다.
심지어 서윤학은 자신의 탈모를 단천의 탓으로 돌리기까지 했으니 두 배로 괘씸하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오기 전에 훨씬 더 많이 조져놓고 왔어야 했는데.’
조금 더 평소에 자주 대련해 놨어야 한다는 후회를 하며 단천은 박정을 쳐다봤다.
“너는 본좌가 선택한 존재다. 본좌는 야수도 박정. 네놈의 무혼으로 네놈을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겠다고 판단했다.”
“······.”
“네가 가장 최고의 자리에 올라설 수 없다는 말은
본좌의 사람 보는 눈이 틀렸다는 뜻이다.”
단천은 확신 가득한 눈으로 박정을 바라봤다.
“본좌는 한번도 사람의 재능을 보는 데 실패해 본 적이 없다.”
단천은 단호하게 말했다. 의심의 화신 서윤학이 가장 커다란 증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서윤학을 보고 천하제이인이 되기에는 비천한 재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서윤학의 무공은 나날이 발전했다.
결국 단천이 지구로 돌아오기 직전의 서윤학이 천하제이인임을 부정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혹자는 단천이 매일같이 서윤학을 죽기 직전까지 수련시켰기에 서윤학이 천하제이인이 된 것은 아닌가하는 가설을 내놓기도 했지만 가설은 가설에 불과한 법.
즉. 단천의 사람 보는 눈은 누구보다 확실하다.
[랭크 게임이 잡혔습니다!]
“게임이 잡혔군.”
게임이 잡혔다는 메시지만 떠올랐을 뿐, 적과 아군이 누구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단천은 상단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번 판. 자신이 마주하게 될 탑이 백건이라는 사실을.
“못 믿겠다면 이번 게임으로 증명해 주지. 네놈이 옥좌에 오를 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 무혼이여. 그대는 내가 봐 온 가장 강한 존재다.”
“그래도 눈알은 있는 모양이군.”
“그대가 나에게 최강이라고 말했다. 그대와 같은 강한 자가 나에게 최강이라고 말했으니. 나는 최강인 것이다.”
박정의 두 눈에는 확신이 어려 있었다. 자신이 이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는 확신이.
이제야 좀 볼만한 표정이 됐다.
“어떤 소원을 빌지나 생각하고 있도록.”
[게임 로비에 입장합니다!]
그렇게, 최고의 자리를 결정짓는 마지막 게임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