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33화 (133/212)

28. 광고주 (2)

중원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은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중원의 시대 자체가 농업 사회였기 때문이다.

무림인이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라고 해 봤자 지역 안에 있는 상권을 보호해주며 얻는 보호비와 기부금, 그리고 관광수입 정도가 전부다.

물론 그것은 중원인의 입장이고, 중원에 간 21세기의 한국인이라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이 꽤 있었다. 가령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치킨 프렌차이즈를 연다거나.

─ 단주. 오늘은 웬일로 식사당번을 한다고 나선 거요? 평소에는 식사당번 같은 것에는 눈도 두지 않더니.

─ 설마 내가 단원들에게 음식 솜씨로 칭찬받은 게 그리도 배가 아프셨던 겐가? 크하하핫!

─ 양념 치킨? 듣도 보도 못한 발음이로군. 한식? 그 동이족의 음식을 말하는 게요? 별 기대는 안 하지만 잘 만들어 보시오!

─ 오오오옷! 이 맛은!!!!

─ 미미美味 그 자체인 맛이오!

─ 세상에 이런 맛이 존재하다니!

실제로 단천도 반응이 좋았던 치킨을 사용한 프렌차이즈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한식 그 자체인 양념치킨과 전통의 강자 프라이드 치킨을 필두로 한 ‘혈귀치킨’.

치킨집을 처음 창업했을 때 단천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중원은 요리법에 대한 저작권이 존재하지 않는 장소였다.

눈 깜빡할 사이에 중원에 생겨난 수만 개의 치킨집들을 모조리 지워 버리는 것은 당시의 단천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천하통일을 하고 나서는 중원천지에 존재하는 짭퉁 치킨집을 모조리 세상에서 지워버리기는 했지만.

반면 21세기는 꽤나 돈을 벌 수 있는 방식이 다양했다. 당장 단천 자신이 하고 있는 스트리머만 해도 중원에서는 불가능한 직업 아니던가.

‘···거기에. 광고 제의까지.’

단천은 커피숍에서 시킨 녹차를 입 안으로 홀짝였다.

스트리머의 수입은 시청자들의 후원금과 광고. 두 가지로 양분된다. 그리고 종합 게임 스트리머의 가장 큰 수입원은 다름아닌 ‘광고’였다.

물론 단천이 지금까지 BJ천마가 광고를 크게 많이 하지는 않았었다. 하지만 실제로 단천은 다키스트 에이지 2의 광고를 통해서도 꽤 많은 수입을 통장에 받았었다.

‘대략 5천만원 정도였던가.’

계약이 되었던 것은 다키스트 에이지 2의 첫 한 번만의 게임뿐. 그러니 대충 4~5시간의 방송으로 5천만원을 받은 셈이다.

한번의 광고를 통해 받은 돈 치고는 굉장히 큰 수준의 수입.

거기에 김태흠에게 뒤로 받은 주식또한 있다. 하지만 뒤로 받은 주식은 제대로 쓸 수 있는 자본이 아니다.

‘딱히 쓸 일이 없었으면 싶은 돈이기도 하고.’

이번에 들어온 광고는 제작형 VR캡슐 회사인 테크니컬 지니어스의 광고였다. VR캡슐 광고. 서유나의 말에 따르자면 전 프로 중에서도 실력이 뛰어난 게이머들에게만 들어오는 광고가 바로 VR캡슐 광고라고 했다.

VR캡슐 광고가 들어왔다는 것은 최상위권의 실력파라는 것을 인정받았다는 뜻.

‘대충 호사가들이 말하는 천하 백대 고수쯤이 됐다는 말이지. 예전 사교권의 남궁사윤과 백치권의 이협 사이의 실력자쯤인가?’

남궁사윤과 이협 사이쯤이라고 생각하니 머리에 쏙쏙 들어와 이해가 된다.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중원으로 생각하는 것이 최고다.

그렇게 현재 자신에 대한 평가가 어느 정도인지를 떠올리던 단천의 귀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BJ천마님?”

단천을 향해 말을 건 것은 말끔한 차림의 남자였다. 갓 40대쯤 되었을 법한 모습이다.

“맞습니다만.”

“아! 역시! VR 캐릭터와 완전히 같은 모습이시군요! 저는 태크니컬 지니어스, 그러니까 TG의 사장인 김대호라고 합니다!”

김대호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보통 이런 계약의 경우에는 광고를 맡는 파트의 직원이 나오기 마련인데도 사장이 직접 나왔다.

“사장님이 직접 나오셨군요.”

“아, 그게, 제가 BJ천마님의 팬이라서 그렇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단천은 이런 입 발린 말에 흔들릴 정도로 멍청한 인간이 아니었다. 천마신교의 신도를 자처하면서 암습을 노리는 중원의 의심암귀들을 겪어온 단천은 ‘팬이다’라는 말 한 마디로 넘어갈 정도로 만만한 인간이 아닌 것이다.

“그. 혹시 기억하실지는 모르겠는데··· 가끔 후원하는 ‘미션맨’이 접니다.”

“그러시군요.”

···하지만 미션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한다. BJ천마의 방송을 초창기부터 봐 오면서 수시로 여러 미션을 걸어온 것이 바로 ‘미션맨’이었으니까.

단천은 삐딱하게 앉아있던 자세를 0.5도 수정해서 김대호가 더 잘 보이게 만들었다.

물론 여전히 긴장을 풀어서는 안 된다. TG는 꽤나 빠른 속도로 크기를 키워가고 있는 스타트기업이라고 했다.

맨손으로 자신의 손으로 한 기업을 키워낸 사람이라면 팬심과 실제 사업을 구별하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아. 싸인 부탁좀 드려도 될까요?”

“싸인은 힘들 것 같습니다. 붓과 먹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안 와서.”

“괜찮습니다. 문방사우는 제가 준비했습니다. 먹도 갈아놓은 게 있고요.”

김대호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서류가방에서 문방사우를 꺼내들었다. 100% 팬심으로밖에 볼 수 없는 순박한 웃음이다. 그 너머에는 그 어떤 검은 의도도 없어 보이는 순수한 웃음.

···사업이랑 팬심을 구별 못할 리가 없는 거. 맞는 걸까.

“크흠. 팬심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김대호가 단천의 싸인을 족자에 말아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계약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기선제압은 물 건너간 상황이다.

이 상황을 알기는 아는지 김대호는 연신 헛기침을 해 댔다.

“크, 크흠. 계약 광고 조건에 대해서는 대충 이야기를 들으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VR기기는 제각각 플레이어의 몸에 극도로 맞춘 성능 향상을 목표로 합니다.”

단천은 김대호가 제시한 자료를 빠르게 훑어내렸다. 무슨 말인지 모를 글과 실험자료, 레퍼런스들이 쫘악 나열되어 있다.

“BJ천마님은 실력파 스트리머이시다 보니 게이밍 기어에도 엄청 민감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실제로 사용하시는 기기도 블루 아이즈 시리즈의 하이엔드 기기를 사용하고 계시고요. 아마 관련 설정도 본인에게 맞게 조정하셨겠죠.”

“그렇습니다.”

“역시 그렇군요. 관련 자료들도 어느 정도는 읽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저희 회사의 실력도 바로 알아채실 수 있으실 테고요.”

단천은 자료를 다시 읽어나갔다.

실제로 단천은 「컴맹부터 시작하는 스트리밍」을 통해 캡슐을 세부조정 해놓기도 한 상태였으니까. VR캡슐에 대해서도 충분하고도 넘치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 정도의 자료쯤은 눈 감고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자료에 있는 글자만 꼼꼼하게 읽은 단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한 기술력이군요.”

“역시! 뭘 아시는군요!”

단천의 머리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은 하나도 없었다. 지금은 21세기다. 그러니 사용되는 것도 훌륭한 기술력일 터였다.

“계약기간은 1년입니다. 앞으로 1년 동안은 저희 VR캡슐만 사용해 주시면 됩니다.”

“다른 방송의 합방이나 대회 출전의 경우에는 어떻게 합니까?”

“그런 경우에는 어쩔 수 없죠. 하지만 저희에게 미리 연락을 주신다면 사용하시던 캡슐을 그대로 사용하실 위치까지 이동시켜 드릴 수 있습니다. 쓰시던 기기를 그대로 쓰시면 천마님 입장에서도 편하실 겁니다.”

꽤 꼼꼼한 일처리다. 한두 번 이런 일을 해 본 게 아닌 모양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협의사항을 이야기하고 나자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시작됐다.

“그럼. 계약금은 어느 정도를 생각하십니까?”

적어도 지난 번의 5천만원보다는 많은 돈이어야 했다. 고민하던 단천의 손이 천천히 8자를 그렸다.

“대충 이 정도는 받아야 될 것 같습니다만.”

“···그렇게나요.”

김대호가 살짝 입술을 적셨다. 반응을 보아하니 ‘8’은 꽤 무리인 모양이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희 측에서 준비한 금액은 6이 한계입니다.”

“6이라. 좀 아쉬운 금액이군요.”

“하지만 사실 바라시는 금액을 맞춰드릴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방법?”

“특약을 몇 개 넣는 거죠. 방송 시작 화면에 저희 기업 로고를 띄워 주시고, 천마님께서 나오는 광고를 한 편 추가로 찍게 해 주신다면 제 선에서 8까지는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방송 준비 시간에 로고를 띄우고 광고 한 편 찍어주는 정도로 2천만원이라. 못할 것 없는 일이다.

“그리고··· 계약서에는 안 적겠지만···.”

“네?”

“챌린저 1위. 꼭 찍어 주세요. 굳이 따지자면 ‘미션맨’으로 드리는 비밀 미션입니다.”

랭킹 1위를 하면 주는 비밀 미션이라. 단천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면 광고는···.”

“1위 달성하시면 바로 찍고 송출하는 걸로 할 겁니다.”

“평소처럼 공짜나 다름없는 미션이로군요.”

“믿겠습니다.”

“저만 믿으십시오.”

“네.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겜알못 자식들이 천마님 팬이라고 얼마나 무시하던지. 제발 그 자식들 코를 납짝하게···.”

김대호가 그 뒤로도 한참을 울분을 토해냈다.

보아하니 어디서 단천이 누구보다 잘한다고 말했다가 괴롭힘이라도 당한 모양이다.

72시간을 게시판에 못 들어가게 된 게 뭐가 그리 슬픈 일인지는 몰라도 눈에 살짝 눈물까지 맺혀 있었다.

“그럼. 이제 대충 된 것 같은데, 계약서 작성하겠습니다.”

김대호가 빠르게 특약 관련된 계약 페이지를 꺼내들고 재빠르게 계약사항을 고쳐나갔다.

“이야기 나눈 대로의 계약서입니다. 읽어 보시고 싸인하시면 됩니다.”

단천의 눈이 빠르게 계약서를 읽어내렸다. 믿을 만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과 계약서의 사항은 또한 다른 것이니까.

계약서의 내용은 이야기를 나눴던 대로다. 딱히 특별한 점이나 사기로 생각될 만한 부분은 한 군데도 없었다.

다만 잘못된 부분이 한 부분 있었다.

“이거. 계약금액이 잘못 표기되어 있습니다.”

“네? 그럴 리가요.”

“0의 갯수가 잘못 표시되어 있습니다.”

단천의 말에 김대호가 계약서를 다시 확인했다.

“···금 팔억 원 정. 0 여덟 개 맞는데요. 잘못된 부분이 있나요?”

팔억이라는 말에 단천의 몸이 짧게 멈췄다. 자신의 앞에 앉아 있는 것이 무림의 고수였다면 치명적일 만한 멈칫거림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김대호는 평범한 사람. 단천의 멈칫거림을 전혀 감지해내지 못했다.

잠깐의 멈춤이 끝나자마자 단천은 내공을 운기해서 빠르게 손을 계약서로 뻗었다.

쉬리릭.

깔끔하기 그지없는 태극권이 김대호의 손에서 계약서를 받아냈다.

계약서에는 계약금액 팔억 원. 0 여덟개. 옆에 ‘팔억원정’이라고 친절히 적혀 있었다.

“···확실히 8억원이 맞군요.”

하긴. BJ천마의 방송 규모를 생각하면 8억원이 당연한 것이다. 단천은 광고를 겨우 8천만원으로 만족하겠다는 생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것이다.

꾸욱.

단천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절대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인주를 가득가득 발라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