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32화 (132/212)

28. 광고주 (1)

무림인에게 있어서 집이라는 것은 사실 있어도, 없어도 크게 상관이 없는 것이다. 물론 있어도 없어도 크게 상관이 없다면 있는 것이 좋다. 그리고 기왕 있을 거라면 거대한 편이 좋다는 것이 선대 천마들의 생각이었다.

그런 까닭에 천마신궁은 꽤 커다란 규모를 자랑했다.

‘천마신궁이 자금성보다 조금 더 큰 규모라고 했던가.’

자금성의 방 갯수가 1만개라는 거짓말을 해 놓고 실제로는 고작 9천개인 데 반해 천마신궁의 방 갯수는 실제로 1만개를 넘었다.

“이 집. 어떻게 생각해?”

“작네.”

“동생아. 무슨 집을 가던지 ‘작다’는 소리 말고 다른 말은 할 줄 모르는 거야?”

‘작은 걸 어쩌라고.’

실제로 단지은과 함께 보고 있는 집들은 모조리 단천 입장에서는 작은 집들이었다. 24평이건 100평이건 지금 살고 있는 집이건, 실제로 크기가 작다는 생각 말고는 딱히 다른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다.

작다는 말이 불만족스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자고로 무인이라면 오롯이 제 한 몸 누일 장소와 옆에서 심심할 때 대련할 천하제이인만 있으면 충분한 법이기에.

다만. 단지은이 좋아하는 모습은 퍽 만족스럽기는 했다.

“여기 봐! 자동 환풍 시스템이 갖춰져 있대!”

“요새 집에서는 기본적으로 다 갖춰져 있는 시스템이죠. 이 가구 같은 경우에는 AI 시스템을 활용해서···.”

“오오오!”

단지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환풍기를 켜고 끄며 집의 환풍기가 작동되는 소리를 감상했다.

‘그냥 창문 열면 되는 거 아닌가.’

단천은 저런 환풍 기능이 굳이 필요한 성능들인가 싶었다. 하지만 지금 사는 장소는 단천이 아닌 단지은이 살 물건이다.

구태여 저렇게 즐겁게 듣는데 찬물을 끼얹을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 집은 어떻게 생각해?”

“좋네.”

“너는 어떻게 작네, 좋네밖에 모르냐? 너도 살 집이라니까?”

“실제로 좋으니까.”

“어디가 좋은데?”

“누나가 좋다고 하는 점.”

단천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이 짜식이.”

단지은은 물론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았지만.

새 집이 정해지고 이사를 가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기 걱정은 따로 하지 않아도 됐다.

“누나가 변호사잖아. 사기 같은 거 안 당해!”

딱히 단지은의 직업 때문은 아니고 사기를 당해도 단천이 나서서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건들은 다 챙겼어?”

“어.”

오래 된 집이라 오래된 물건들이 많았다. 털털거리는 냉장고, 다리가 덜그럭거리는 식탁, 단천이 입원하기 전부터도 쓰던 수저들까지.

버려도 될 물건들이건만 단지은은 한사코 물건들을 가져가는 것을 선택했다.

“그냥 좀 다 버리고 가자니까. 돈 없는 것도 아닌데 물건도 이제 새로 사야지.”

“내가 준 싸구려 선물들 신줏단지처럼 들고가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가만 보면 내로남불의 화신이야. 천아. 너 시청자들이 내로남불 심하다고 뭐라고 안 해?”

“안 하는데?”

단천은 근거없는 중상모략을 간단하게 받아쳤다. 단천 자신은 중원에서부터 지금까지 내로남불이라고는 단 한 번도 없이 공명정대하게 평생을 살아온 인물인 것이다.

***

[천공 게시판]

[오늘자 랭크 순위 떴다!!!]

랭크 게임이 오픈되고 나서의 천공 게시판의 가장 커다란 관심사 중 하나는 역시나 ‘순위표’다. 최상위권 사람들의 등수가 어떤지, 그 사람들이 어떤 아이템을 쓰는지, 어떤 캐릭터를 쓰는지는 거의 즉각적으로 피드백되고 가십거리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천공 랭크 순위에서 가장 핫한 두 사람이 있었다.

그 중 한 명은 바로 NOW에서 넘어온 최상위 플레이어인 ‘백건’이었다.

Rank 1. 백건 (D-1 80p)

[백건 역시나 1위 ㅋㅋㅋㅋ 미쳤다 ㅋㅋㅋㅋㅋ]

[아니 이 사람은 대체 왜 게임 넘어온거임 ㅋㅋㅋㅋ]

[그야 ‘재미있으니까’]

[그냥 혼자서 게임을 다 하던데???]

백건은 최상위 게임의 최상위권 1옵션 플레이어라는 것을 증명하듯이 게임 초반에 올라선 랭크 1위에서 단 한 번도 내려오지 않고 점수를 계속해서 올리고 있었다.

‘애매할 때면 백건 따라하면 맞는다.’는 소리가 나올 지경이었으니 실로 압도적인 영향력이고 할 수 있었다.

탑솔러라면 백이라면 아흔아홉은 백건이 사용하는 방식의 운영을 하고, 게임을 주도하며, 플레이한다.

게임 전체적인 능력에서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언터쳐블인 존재가 바로 지금의 백건이었다.

그리고 이 반대편에.

‘누구나 따라하는 플레이’ 인 백건의 대척자가 존재했다.

누구도 따라할 생각을 안 하는 게이머.

Rank 36. BJ천마 (D-2 14p)

[스트리머 무시하던새끼 다들 어디감???]

[요새 다 추종자로 바뀌었던데??]

[아니 잘하면 뭐하냐고 ㅋㅋㅋ보고 배울 게 없는데 ㅋㅋㅋㅋ]

[뭐래 천마님한테 배울 게 얼마나 많은데]

[배울게 뭐가 있는데?]

[‘탑은 우직해야 된다?’]

BJ천마의 게임은 일반적인 사람이 따라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의 플레이의 향연이었다. 몸에 스치듯이 스킬샷을 피하고, 후방에서 격중당한 CC기조차 걸리지도 않은 것처럼 해제하고, 결코 탑에서 벗어나지 않은 채 적을 모조리 도륙내기만 하는 플레이.

팀플레이 게임으로써는 0점이다. 하지만 BJ천마의 실력은 그 승률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29승 0패.

우악스러운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아슬아슬한 상황도 자주 연출되고, 팀 내부적인 불만도 자주 튀어나왔지만, 결국 끝나고 보면 게임을 집도하는 것은 모조리 BJ천마였다.

화려하면서도 우직스럽기 그지없는 플레이때문에 다대일 상황도 매우 자주 나오고, 혼자서 적들을 모조리 도륙내버리는 상황도 자주 나온다.

그런 까닭에 BJ천마의 언급량 자체는 천공 게시판에서도 수위를 다툴 정도로까지 커져 있었다.

[방금 매드무비 봤다. 제 2의 BJ천마 목표로 게임한다]

[ㅅㅂ 탑신병자 한마리 더 늘었네;;]

물론 이런 독특하기 그지없는 플레이의 결과로 천공 게임 내부적으로 탑신병자를 매우 많이 양성하고 있다는 부작용이 생기기는 했지만.

이견이 없는 사실 하나.

BJ천마의 실력만큼은 진짜다.

물론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천마단 새끼들 띠껍네]

[잘하는 건 맞는데 그래봤자 순위 30위권 아님???]

[아니 꼴랑 30판 남짓 해 놓고 최강이니 뭐니 ㅋㅋㅋㅋ 당치도 않은 소리 하네 ㅋㅋㅋㅋ]

그것은 BJ천마의 판수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BJ천마는 첫 날을 제외하고는 하루에 많아야 다섯 판, 적으면 세 판 정도밖에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지 않았다.

이렇게 판수가 적은 탓에 10위권 내의 최상위권의 플레이어들과 매칭된 게임도 고작 두 판에 불과했다.

그러니 이런저런 내려치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와. 이 겜알못 새끼들.”

키보드를 막 두드려대던 테크니컬 지니어스의 사장, 김대호는 씩씩거리며 바닥을 내리쳤다.

“BJ천마가 얼마나 잘하는지를 보고도 저런 소리를 한단 말이야?”

김대호가 주먹을 쥔 채 바들바들 떨었다. 테크니컬 지니어스는 하이엔드 VR캡슐을 전문적으로 주문제작하는 국내외에서 손꼽히는 회사다.

또한 테크니컬 지니어스는 게이머 프로들에 대한 플레이 정보또한 꽤나 많이 가지고 있다. 대외로 유출할 수 없는 내부문건이기는 하지만.

[대호 : 아니 그러니까 BJ천마 반응속도나 전략 판단 속도가 최상위권 프로게이머들보다 빠르다니까?????]

[아니 니가 내부자도 아니고 그걸 어케알어 ㅋㅋㅋ]

[자료라도 들고 오고 씨부리던지 ㅋㅋㅋ]

[대호 : 곧 회의 있어서 자세하게 설명은 못하는데 BJ천마 플레이 개쩐다고]

[방구석 백수새끼가 ‘회의’같은 소리하고 있네 ㅋㅋㅋㅋ]

[대호 : 진짜 회의있어]

[어그로에 먹이 ㄴㄴ]

[저번에 보니까 지가 뭐 하이엔드 VR캡슐 사장이라나 뭐라나]

[저새끼 유명한 어그로임 차단하셈]

[대호 : 진짜라고 이 [email protected]!$%#]

[욕설 사용으로 게시판에서 72시간 차단 되셨습니다.]

“와. 나. 돌아버리겠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키보드로 싸울 때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내부 문건이라 실제로 보여줄 수도 없는 탓에 김대호는 열불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싸움박질을 하다가 차단을 당한 김대호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 이 겜알못 자식들.”

“사장님. 바쁜 중에 죄송하지만 회의 시간입니다.”

“어. 가 보자고.”

어차피 안 쫓아냈어도 겜알못들이랑은 더 대화 안 하려고 했다. 72시간 뒤에 보자. 겜알못 자식들아.

김대호는 72시간 알람을 맞춰놓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향했다.

“오늘 회의는 알다시피 우리 회사 차세대 게임 기기 홍보에 관해서다. 모델 섭외는 잘 돼 가지?”

“저. 그게.”

섭외를 맡았던 임원의 표정이 살짝 흐려졌다.

“왜. TPG 팀이랑 지난 번 계약 연장만 하면 되는 거잖아. 추가 옵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지금 홍보 모델이던 프로들이 코인 스캠 의혹이 있다고 합니다. 정황상 스캠 코인에 주축으로 가담한 게 거의 확실한 걸로···.”

“···뭐? 지난 번 조사에서는 깔끔했잖아!”

“그게, 이번 시즌 상금을 별로 못 타서 이래저래 돈을 벌려고 벌인 것 같습니다.”

“하. 이 새끼들이···.”

코인 스캠은 VR게임을 이용하는 청중년층에게 직격인 이슈다.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해서 코인의 가격을 펌핑하고 팔아먹는 일종의 사기 행위.

법제화가 안 됐을 때의 초창기라면 그나마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을지언정 지금은 코인 스캠 관련한 법들이 쌔고쌨다.

아니, 설령 법이 없다고 하더라도 게이머의 이미지를 팔아먹어야 하는 홍보회사 입장에서는 치명타인 것이다.

“아이씨. 다른 홍보모델은? 지난 번 소유진 전 프로가 VR광고 하고 싶어한다고 하지 않았나?”

“···소유진 씨는 저희 경쟁사인 미라클 런이랑 계약 완료됐습니다.”

“다른 전 프로들은?”

“이름 있는 프로들은 대부분 광고계약이 있죠.”

김태호가 한숨을 토해냈다. 하이엔드 게임 기기의 경우에는 모델로 쓸 수 있는 사람의 폭이 굉장히 제한된다.

하이엔드 기기의 특징상 기기를 구매하는 사람들은 게임에 대해서 깊게 파고드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모델로는 불가능하다. 게임을 잘 하는 사람인 동시에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어야 하는 것이다.

이 둘을 모두 만족하는 것은 보통은 프로게이머다. 문제는 프로게이머 대부분은 스폰서로 보급용 VR캡슐 기기가 이미 들어와 있다는 점이지만.

그 틈을 비집고 겨우 TPG와 계약을 따 놨더니. 스캠질로 더 이상 홍보가 불가능하게 됐다.

김태호가 눈썹을 찡그렸다.

게임을 압도적으로 잘하고, 인지도도 높고, 이미지도 좋은 사람중에 VR캡슐 광고가 아직 없는 사람.

사장의 자리에까지 올라오기 위해서는 과감한 결정과 직관력이 있어야만 한다.

“BJ천마 연락처 알아와서 보고하도록.”

지금 김태호가 보여주는 결정은 팬심은 아니었다. 키보드 워리어짓을 하다 억울하게 차단을 72시간 당해서는 더더욱 아니다.

100% 논리적이기 그지없는 통찰과 직관에 의한 과감한 결단인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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