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랭크 게임 (5)
크와아아아아아!
해골이 내지른 거대한 포효가 전장 전체를 뒤덮었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반대편 라인에까지 들릴 정도의 포효였다.
“뭐냐 저거?”
“말도 안 돼···.”
서군은 해골 폐광에서 꽤 큰 승리를 거뒀다. 게다가 추가 시간까지 얻어서 꽤 많은 해골을 모았다고 생각했는데.
저 말도 안 되는 크기의 거대 해골은 무엇이란 말인가.
“분명 적 네 명이나 잡아 죽였잖아! 근데 해골이 왜 저렇게 컸냐고!”
“그 대답은 본좌가 해 주지.”
상대편의 탑솔러. BJ천마가 앞으로 천천히 걸어나오며 말했다.
“본래 장기란 것은, 왕을 잡지 못했다면 승부는 모르는 것이니라. 차, 포, 마, 상, 졸, 사를 모두 잡혀도 왕만 살아있다면 아직 승부는 모르는 것이지.”
‘장기에서 그 상태면 게임 끝난거 맞지 않나?’
“···그러니까. 니가 해골을 잡아서 저렇게 된 거라고?”
“그렇다. 장기로 따지자면 본좌는 왕중의 왕인 기물. 황제들의 황제. 즉 천마라고 할 수 있지.”
‘장기에 천마라는 기물이 어디 있는데.’
BJ천마의 말을 서군이 듣고 있는 사이에 동군의 해골이 성채에 주먹을 날렸다.
콰아아아앙!
주먹질 한 방에 성채가 절반 넘게 부서져내렸다.
서군은 저 사이코와 말싸움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을 빠르게 깨달았다.
“어떻게 하냐?”
“해 봐야지. 랭크 게임인데.”
“포기하지 않는 기개는 높이 사지. 하지만 너희는 실력이 안 좋았다. 본좌를 같은 편으로 만났다면 이길 수 있었을 것을.”
“이 새끼가. 뭔데 계속 시비야?”
단천은 저 멀리 보이는 거대 해골이 바닥을 내리치는 것을 바라봤다. 콰아아아앙! 거대한 흙먼지가 터져오르는 것이 저 멀리 있는 라인에 보일 정도다.
“저 정도라면 게임이 끝나는 건 걱정 안 해도 되겠군.”
그렇다면 자신은 눈 앞에서 모기처럼 앵앵거리는 네 명의 탑솔러만 처치하면 된다는 말이다.
서군의 전력은 4명의 탑솔러. 거기에 해골을 모아 만든 거대 해골 한 명.
이전보다 전력이 늘었다.
“하지만 전력이 늘어난 것은 저쪽만 그런 게 아니지.”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오더부터 해! 뭐 어떡해? 귀환해?”
“귀환?”
서군의 해골이 몸을 일으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군의 거대 해골도 나름대로 크기가 꽤 크다. 그러니 1차 정도만 깨고 나서 본진으로 귀환해서 막으면 연결체가 터지기 전에 저 괴물 해골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눈 앞에서 박도를 까딱거리는 놈부터 잡아 죽여야 했다.
“놈을 죽여!”
크와아아아!
서군의 거대 해골이 BJ천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동시에 서군의 나머지 네명도 함께 스킬을 시전했다.
[방패 밀치기]
서군 탱커의 타게팅 스킬인 방패 밀치기가 BJ천마의 몸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번에야말로!”
콰아앙!
강렬한 타격음과 함께 BJ천마의 몸에 방패가 박혀들었다. 이번에는 이전과 같이 시야를 가릴 수 있는 지형지물이 전혀 없다.
“제대로 먹혔어! 연계스킬! 빨리!”
방패맨의 목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서걱!
스턴을 맞아서 움직이지 못해야 할 BJ천마의 검이 방패맨의 몸을 갈랐기 때문이다.
[BJ천마가 밥만먹고탱커만함을 처치했습니다.]
“뭐야!”
“이 새끼. 핵이냐?”
“핵이라니. 본좌는 그런 비열한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BJ천마의 손에서 해골 모양의 반지가 반짝였다.
[해골 반지]
[핵심 오브젝트]
[전체 능력치가 대폭 증가합니다.]
[사용시 모든 군중 제어 효과(CC)를 해제할 수 있습니다. (쿨타임 50초)]
“꽤 괜찮은 아이템이로군.”
해골 반지는 망령 기사를 처치하고 얻은 아이템이다. 능력치 상승도 상승이지만 진짜 능력은 바로 군중 제어 효과를 해제할 수 있다는 것.
비록 한 번에 불과하긴 하지만, 그 한 번 만으로도 충분했다.
방패 밀치기를 제외하고는 타게팅 CC가 적에게는 없었으니까.
“그럼. 이제 귀찮은 것도 없으니. 모조리 도륙을 내 버리면 되겠군.”
“스킬 쏴아아아! 쏴라아아아!”
빗발처럼 쏟아지는 스킬들 사이로 BJ천마의 몸이 빛살처럼 내달렸다.
***
[승리하셨습니다!]
[KDA : 19/0/0]
> 하 드 캐 리
> 혼자서 게임 집도해버리네 ㅋㅋㅋ
> AOS가 팀게임이라고 누가 그래
> 충분히 강하면 팀플따위는 필요없는 법이다
“숨 쉬듯이 쉬운 일이었다.”
게임이 한쪽으로 너무 크게 쏠린 탓에 너무 싱겁게 끝나버리기는 했지만. 꽤 즐거운 경험이었다.
시청자들도 꽤나 만족한 모양이고. 단천이 빙의했던 박정또한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완벽한 전투였다. 무혼이여.”
“본좌는 언제나 완벽하지.”
“이번 전투에서 전리품을 획득했는데. 확인해 보겠는가?”
“전리품?”
[해골 반지를 획득하셨습니다!]
[게임 내에서의 화폐를 소진하여 아이템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전용 아이템은 단 하나밖에 착용할 수 없습니다!]
> 오
> 전용아이템같은 거네
전용 아이템. AOS에서 보통 캐릭터가 강해지는 것은 세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가 바로 가장 단순한 레벨업. 그리고 두 번째가 맵 내부에 있는 버프를 몸에 두르는 것,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전용 아이템이다.
전용 아이템의 경우에는 게임 내에서 특별한 조건을 만족하면 해금되는 아이템이다.
게임 밸런스에 어느 정도는 영향이 가는 아이템이기는 하지만 이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크게 없었다.
형평성에 대한 문제보다도 이런 아이템들을 수집하고 사용하면서 오는 만족감이 더 크기 때문이다.
이런 전용 아이템들은 상위권 게임에서 한층 더 높은 특색을 부여한다.
최상위권 게이머들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캐릭터 고착화를 해결해 주는 것이 바로 이 전용 아이템이다.
제각각 다른 아이템들을 가지고 있으면 제각각 최선의 캐릭터가 달라지게 된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캐릭터들에 다양성을 부여해준다.
물론 밸런스 논란이 나오지 않을 만큼의 비용을 지불하도록 만들 필요가 있기는 하지만.
> 크 능력치 개달달하네
> CC해제면 거의 최상급 능력 아님?
> ㅇㅇ 천마님 유일한 약점이 타게팅 스킬이었잖아 그거 해결해주는 템이니까
> 어떻게 유일한 약점이 ‘타게팅 스킬’ㅋㅋㅋㅋ
***
이후로도 BJ천마의 하드캐리는 계속되었다. 맵에 대한 정보는 거의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J천마가 이기는 이유는 간단했다.
압도적인 피지컬.
결국 AOS가 전략적 요소가 크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느 정도 격이 맞을 때의 이야기. 배치고사에서 만나는 플레이어들의 실력은 대체적으로 낮다.
반면 BJ천마는 맵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다고 해도 그 실력만으로도 모든 것들을 부수기에 충분한 컨트롤을 가지고 있는 플레이어.
그러니 게임은 당연히 파죽지세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승리하셨습니다!]
“이걸로 배치가 완료됐군.”
마지막 배치고사를 완료한 단천은 담담하게 말했다. 10판의 배치고사에서 BJ천마는 단 한 판도 지지 않았다.
10승 0패. 그것이 BJ천마가 받아든 성적표였다.
남은 것은 티어 평가를 기다리는 것뿐.
> 배치 10승 0패 실화냐 ㅋㅋㅋㅋ
> 심지어 죄다 하드캐리함 ㅋㅋㅋㅋㅋㅋ
> 아 근데 뭐 10승하는 거 당연한 거 아니냐?(진짜 모름)
> 천마님 방송 처음 보시나봐요 이기는게 일상인데 ^^
채팅창은 경악과 환호성이 뒤섞여 있었다.
BJ천마가 유일한 약점이던 타게팅 스킬마저도 극복할 수 있는 아이템까지 장착했다.
10게임을 하면서 BJ천마가 탑에서 죽인 적들의 수만 해도 100명이 넘어갈 지경.
실로 비현실적일 정도의 하드캐리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환호가 당연히 터져나올만도 했다.
[배치 랭크 게임이 완료되었습니다!]
[당신의 플레이를 바탕으로 티어를 계산합니다!]
공중에 떠오른 티어 뱃지가 화려한 소리를 내며 색깔이 변하기 시작했다. 브론즈를 상징하는 동색에서 은색으로, 금색으로 변화했다.
> 플래티넘 ㄱㄴㅇ??
> 플래 뜨냐??
> 당연히 플래지 ㅋㅋㅋㅋ10승 개빡하드캐리했는데 ㅋㅋㅋㅋ
화르르륵!
골드를 상징하던 뱃지의 색깔이 영롱한 백은색으로 변화했다.
> 플래 간드ㅏㅏㅏㅏㅏㅏ
승패로만 랭크 게임을 판단하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의 랭크 시스템은 인게임에서의 플레이또한 점수로 환산해 랭크에 반영한다. 공식적으로 하인라인에서는 배치로 갈 수 있는 최대한의 티어가 플래티넘이라고 못박아 놓은 상태.
BJ천마가 10승을 거뒀으니 랭크가 플래티넘이라는 것을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그 티어의 숫자다. 최상위 티어인 플래티넘 1과 최하위인 플래티넘 5는 그 나름대로 차이가 큰 까닭이다.
배치고사로 플래티넘 몇이 나오냐도 스트리머 사이에서 꽤나 자존심 싸움이 되는 것이다.
> 플 몇이냐
> 3? 2?
> 1 뜨겠지 ㅋㅋㅋㅋㅋ 이걸로 플1 안나오면 그게 이상함 ㅋㅋㅋㅋㅋ
> 이걸로 플1안나오면 어떻게 해야 되냐 혼자서 1초만에 넥서스라도 부숴야 되냐
> 그냥 하인라인 본사 부수는게 빠를?듯?
[미션맨 님이 10,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플1뜨면 10만원!!!]
> 돈 거저주네 ㅋㅋㅋ
> 사실상 꽁으로 돈 주워가는 새전함임
자연스럽게 BJ천마의 시청자들도 숫자에 주목했다. 화려하게 변해가던 티어 뱃지가 찬란한 빛을 터트리며 티어 결과 측정이 완료되었다.
[배치고사 결과 측정이 완료되었습니다.]
[D - 5티어]
> ?
> 5??? 장난치냐??
> 하인라인 당장 불지르러 간다 딱대라
> 진짜 ㅋㅋㅋㅋ레전듴ㅋㅋㅋ겜알못쉒들ㅋㅋㅋㅋ
‘5’라는 숫자를 확인한 채팅창이 한 순간 타올랐다. 3이나 2도 아니고 플래티넘 5라니. 말도 안 되는 숫자이니 당연한 반응이다.
> ? 근데 티어가 이상한데?
> 플래면 P잖음. 지금 D라고 나오는데?
> 뭐래 D면 다이아 티어지
하지만 반응이 빠르게 바뀌는 데에는 몇 초 걸리지 않았다.
5라는 글자 앞에 적혀 있는 티어가 P가 아닌 ‘D’였기에.
> ????
> 플5가 아니라 다5인데요??
> 뭔데 티어 플래티넘까지밖에 안 나온대매???
> 아니 이론상 사람이면 플래티넘 1까지만 나온다고 분명 그랬음
> 근데 왜 다5가 나오냐고
> 천마님은 사람이 아니시다!!!!
> 실력 무쳤다
다이아몬드 5티어. 이론상 나올 수 있는 최대치를 넘어선 결과에 채팅창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 내가 누구?? 우주최초 천공 다이아몬드 티어 ‘BJ천마’ 시청자!!! 내가 누구?? 우주최초 천공 다이아몬드 티어 ‘BJ천마’ 시청자!!!
> 그런 거에 소속감 좀 갖지 마 ㅋㅋㅋㅋㅋ
> 역시 천마님이시다! 저희 천마신교 입단희망자들은 기쁘기 그지없습니다 ㅠㅠㅠㅠㅠ
“다이아몬드 5티어라. 나쁘진 않군.”
[미션맨 님이 1,0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플래티넘 1 달성 미션 실패 위로금입니다]
> 미션맨 겁나 오랜만에 1승하네
> 1승한거 맞냐 후원금이 10배됐는데
> 어떻게 위로금이 성공금 10배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