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25화 (125/212)

26. 코인이 뭔데 (4)

“이 정도면 새 검이 나올 때까지는 쓸 수 있겠군. 쓸만한 무기는 다 챙겼으니 나머지는 알아서 하도록.”

‘창고 안에 검이 하나도 안 남았는데.’

애초에 검 말고는 다른 무기는 하나도 챙기지도 않았다.

“검 말고는 필요 없는 건가?”

“검은 만병지왕. 검 외의 무기들은 모조리 잡기에 불과하다. 다른 무기는 급박한 순간에만 사용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그냥 그러려니 하자. 말싸움 해봤자 나만 손해다.’

앤더슨은 매우 빠른 속도로 단천의 성격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연륜이 주는 삶의 지혜인 것이다. 나이가 40쯤 되면 미친놈과는 상종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법이니까.

“···꽤 괜찮은 검들이군.”

단천은 바닥에 있는 검 중 하나를 꺼내들며 중얼거렸다. 중원에서의 검보다 확연하게 그 질이 뛰어나다. 물론 무기를 만든 앤더슨의 능력이 뛰어난 것도 있겠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금속의 질 자체가 매우 뛰어나군.”

“합금강을 만들어내는 기술력 자체가 많이 발전했으니까. 아마 무협지에 나오는 보검도 지금 나온다면 가정에서 쓰는 식칼만도 못한 절삭력을 가졌을 걸세.”

“니가 써 봤냐?”

“뭐?”

“별 말 아니다.”

단천이 무기에 대해서 크게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그렇다는 것이 검을 보는 눈이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중원에서 명장이 제대로 벼려낸 검들은 가정에서 사용하는 식칼은 물론이고 지금 눈 앞에 있는 검들도 단숨에 잘라낼 수 있는 수준의 능력이 있었다.

“아. 그보다, 지금부터 만들 검의 대금을 치러야 할 텐데. 생각하는 가격은 있나?”

“대금? 설마 대금을 받을 셈이었나?”

“그럼 그냥 낼름 받아갈 생각이었나? 지금 있는 검들을 무료로 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히 여기게!”

보통 심마와 같은 문제들을 해결해 주고 나면 공짜로 이것저것 퍼 주지 않나?

중원에서는 단천이 도움을 주고 나서 천마라는 정체를 밝히면 사람들이 간이며 쓸개며 다 내놓을 양 물건을 내어놓고는 했었는데.

─ 다, 당신이 단천? 집에 있는 모든 금품들을 가져와라! 가산을 한 톨도 남기지 말고 가져와! 그래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 이게 집안에 있는 모든 물건들입니다. 제발 이것만 받고 넘어가 주십시오!

─ 차라리 악마와 거래하는 게 나았을 텐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그런데 지금은 그냥 예전에 만들었던 검이 전부라니. 중원의 푸짐하기 그지없던 인심에 비해서 21세기는 인정이 심하게 야박하다.

뭐. 인정이 야박한 건 야박한 거고. 돈을 바라니 적당한 돈은 내야할 터.

“그럼 금액은 어떻게 되지?”

“대충 이 정도면 어떤가? 인건비는 빼고 재료비만 친 가격일세.”

제작비를 받아든 단천의 눈 끝에 자그마한 살기가 감돌았다.

‘강도인가.’

단천은 강호의 도의를 어지럽히는 강도를 이곳에서 벌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돈이 많이 부담이 되나?”

“부담이 되지는 않는다. 돈이란 것은 만들어내면 되니까. 다만 그저 여기서 당신의 머리에 협의를 주입할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을 뿐.”

‘협의 주입이라는 말이 심각할 정도로 끔찍하게 들리는데.’

앤더슨이 불안감을 살짝 가지며 눈을 떨었다.

“그런데 뭐, 이 정도 돈이야 쉽게 해결할 수 있지 않나? 당신이 가지고 있는 신체능력이라면 무슨 일을 해도 돈은 쓸어담을 수 있을 텐데.”

“돈 자체는 꽤 버는 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

“무슨 일을 하고 있지?”

“스트리머.”

“···스트리머?”

앤더슨은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망나니를 바라봤다. 이런 인간이 무슨 방송을 하는지 언뜻 떠오르지 않은 탓이다.

“시청자를 잡아다가 고문하는 쇼 같은 거라도 방송하나?”

“본좌를 도대체 무슨 종류의 인간으로 보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나쁘지 않은 의견이다.

나중에 댓글을 개판으로 다는 시청자를 대상으로 협의 주입을 콘텐츠로 방송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시청자 수는 어느 정도지?”

“근래에는 대충 10만정도쯤 보는 것 같던데.”

“10만?”

“그래. 10만.”

앤더슨의 눈에 불신이 어렸다. 이곳이 중원이었다면 단천 자신의 말을 의심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을 텐데. 여러 모로 귀찮다.

단천은 휴대폰을 켜서 방송 통계를 켜 앤더슨의 눈 앞에 들이밀었다.

“정말로 평균 시청자가 10만이로군.”

10만명이라는 시청자는 결코 적지 않다. 앤더슨은 단천의 방송명인 BJ천마를 이리저리 검색하기 시작했다.

말랑튜브에 나와 있는 영상을 확인한 앤더슨의 입이 천천히 벌어졌다.

“대단하군. 정말로.”

검기를 뿜어내는 것을 보고 그 능력이 대단할 것이라고는 예상했다. 하지만 VR게임에서 단천이 보여주는 능력은 앤더슨의 상상 그 이상의 무위였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BJ천마는 대부분의 게임을 화기가 아닌 냉병기, 그 중에서도 검만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데. 10만명이나 시청자가 있는데 내 검 한 자루를 사는 것이 부담되나?”

“아쉽게도 방송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게임 스트리머들은 시청자 대비 후원금이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고도 하더군.”

“···후원금이 많지 않다는 게 수입이 적다는 뜻은 아닐세.”

“후원금이 적으면 수입이 적다. 그건 당연한 상식 아닌가?”

앤더슨은 단천의 말을 듣고 다시 방송을 확인했다. 방송 화면은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전후좌우 어디에도 광고가 안 붙어 있었다는 말이다.

“광고 계약을 하나도 안 하고 있군.”

“···광고 계약?”

“방송을 하면 게임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 광고 배너를 삽입하지. 게임 스트리머들의 주 수입원 중 하나가 바로 이 광고 배너일세.”

그러고 보니 서유나가 단천에게 배너 삽입은 할 생각 없냐는 소리를 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단천은 광고를 넣을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화면에 광고를 집어넣으면 시청자 입장에서 광고가 눈을 가려서 화면 내의 게임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니 광고는 넣을 생각이 없다.”

“···자네는 도대체 몇 년도를 살다 온 건가?”

“뭐라고?”

“광고가 플레이를 가리지 않게 된 것이 거의 10년이 지났는데.”

앤더슨이 영상 하나를 틀었다. 풀창고의 다키스트 에이지 실시간 플레이 영상이었다.

풀창고는 커다란 용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전투가 벌어지는 곳은 성벽으로 뒤덮여 있는 고성이었다.

“여길 보게.”

“벽을 왜 보라는 거지?”

“잘 보기나 하게.”

[흐랴아아아!]

기합을 터트리는 풀창고의 움직임 너머, 고성의 벽면에 광고가 삽입되어 있었다.

[에너지 업UP 파워 드링크!]

청량해 보이는 음료와 함께 처음부터 거기 박혀 있었다는 듯이 박혀 있는, 실로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광고였다.

마치 축구나 야구에서 전광판에 광고가 새겨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의 광고가 풀창고의 화면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화면을 직접적으로 가리던 과거의 광고들과 달리 지금의 광고는 AI가 자동으로 화면을 가리지 않는 위치에 광고를 붙여넣어 주게 되어 있네.”

“······.”

“실제 게임 화면 안에 있으니 게임 화면을 가리지 않아 좋고, 자연스럽게 간접광고가 돼서 광고주 입장에서도 노출효과가 더 좋다고 하더군.”

“······.”

“설마 몰랐나?”

“물론 알고 있었다.”

“···그걸 알면서도 광고를 안 넣다니. 꽤 특이한 일이군. 혹시 광고를 넣는다면 우리 공방의 광고를 넣는 걸로 제작비를 갈음하려고 했는데.”

“고작 광고로 검 제작비가 갈음이 된다고?”

“갈음되다 뿐일까. 10만 시청자라면 반 년 계약으로도 내 검 네다섯 자루는 그냥 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광고 계약을 해 볼까 했는데. 할 수 없군. 광고를 안 받는다니···.”

“하지. 계약.”

“안 한다면서?”

“생각해 보니. 경험을 해 보고 판단하는 게 낫다고 생각이 드는군.”

경험하지 않고 나쁘다고 판단하는 것만큼 오만한 일은 세상에 없는 법이다.

***

계약서를 성공적으로 완료한 단천은 잔뜩 눈살을 찌푸린 채 집에 도착했다.

“도검소지허가자격증이라니. 그딴게 왜 필요해?”

도검소지허가자격증이 없는 탓에 날 있는 검을 소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도검소지허가자격증을 단천이 따게 되면 그 날로 검을 받을 수는 있기는 하지만. 당장 검을 쓰지 못한다는 것은 단천 입장에서는 짜증이 날 대로 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던 것이다.

“뭐. 그래도 이 정도로 만족해야겠지.”

스릉.

단천은 허리에 걸려 있던 검을 뽑아들었다. 날이 전혀 세워져 있지 않은 가검이었다. 검보다는 몽둥이에 더 가까운 물건.

이 정도로도 검을 수련하는 데에는 전혀 문제가 없기는 하다.

그냥 기분이 안 나서 문제지.

단천의 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세계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펼쳐 보는 제대로 된 검식이었다.

천마신공.

1초식. 창천향.

콰드드득!

검에서 거대한 압력이 솟아올랐다. 미증유의 거력이 공간을 잡아찢고 부서트렸다.

“후우.”

단천의 뺨에 한 줄기의 땀이 흘러내렸다.

확실히 제대로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것은 아직까지는 무리다.

내공이 조금 더 쌓이고 나야 일초식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것이다.

“뭐, 그건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될 일이지.”

단천의 검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천마신공 한 번만에 내공을 거의 다 빨렸다. 그런 까닭에 더 이상의 검술 수련은 몸에 무리가 따른다.

물론 그것보다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막대기가 벌써부터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는 이유가 더 컸지만.

단천의 손에 들려 있던 검에는 벌써 길다란 균열이 가 있었다.

아마 다시 천마신공을 사용하는 순간 산산히 부서질 것이 분명했다.

“잘 만들어진 무기라고 하더니. 한번 버티고 이 모양이라니.”

단천은 가볍게 혀를 찬 뒤 검을 째려봤다.

검에 균열이 갔으니 천마신공이 아닌 다른 무술을 수련하는 수밖에 없다.

더 빨리 강해질 필요가 있는데. 이래서야 당분간은 천마신공을 사용할 수 없는 것은 여전하지 않은가.

상단전이 경고하는 ‘육도천’의 강함은 단천 자신의 상상 이상이었으니까.

놈과 만날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곧. 만날 수 있겠지.’

최소한 놈이 단천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됐다는 것은 확실할 것이다.

놈과 직접 대면하는 것은 무리일지라도, 놈이 키운 수하와 만나는 것은 그리 먼 미래가 아닐 터였다.

그리고 놈이 나타날 장소는 반쯤은 뻔했다.

“방송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겠지.”

놈은 VR게임에 둥지로 틀고 있다. 그리고 VR게임을 통해서 무언가를 계획하고 있다.

그렇다는 것은 단천 자신은 하던 대로 방송을 이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단천 자신이 할 것은. 최대한 강해지는 것. 그리고 방송을 계속하는 것 뿐.

“단순해서 좋군.”

따로 뭔가를 해야 했다면 놈을 찾아나서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수련도, 방송도, 놈이 시키지 않더라도 단천이 할 일이었으므로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후웅!

단천의 검이 다시 한 번 공중을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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