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23화 (123/212)

26. 코인이 뭔데 (2)

단지은은 단천이 어린 시절부터 자주 단천에게 선물을 해 주고는 했다. 없는 가정 형편에 선물이라고 해 봤자 대단한 것들은 아니었다. 학교 문방구에서 파는 색종이나 색연필, 병원 오는 길에 예쁘게 핀 꽃과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단천에게 준 선물의 종류가 워낙 많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선물, 아니, 모든 선물을 기억한다. 동생과 함께한 추억들은 단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러니 선물을 해 줬다고 한들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코인을 내가 너한테 선물해 줬었다고?”

그런데 지금 단지은의 동생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선물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래. 기억 안 나?”

“안 나는데.”

“언제쯤이었더라. 내 이름으로 계좌를 만들고 코인 몇백 개를 샀다고 했었잖아. 기억 안 나?”

“안 나.”

“반은 내 거, 반은 누나 거라고 했었잖아. 그러니까 나 죽으면 안 된다고. 코인 돌려줘야 되니까 오래 살아야 된다고 했었는데. 기억 안 나?”

“안 나는데. 그런 적 없어.”

보통 이렇게까지 말하면 기억난다고 말을 할 법도 하건만. 단지은은 기억이 안 난다고 계속 우기고 있었다.

20년 전의 일이라 잘 모르겠다고 할법도 하건만, 실로 놀라운 기억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단천류 기억비틀기를 써서 기억을 조작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기억 비틀기를 사용하고 나서는 상대의 팔이 최소 6개월은 사용 불가능에 빠지니까.

단지은이 무림인이었다면 시도를 생각해 봤겠지만 무림인도 아닌 사람에게 기억 비틀기를 사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야. 진짜 기억 안 난다니까? 코인 선물해 준 거 맞긴 해? 니가 잘못 기억하는 거 아니고?”

“누나한테는 20년 전 일이라도 20년 자다가 일어난 나한테는 1년도 채 되지 않은 일이야. 상식적으로 누나 말이 맞겠어. 내 말이 맞겠어?”

“···그것도 그렇네.”

그제서야 단지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그래도 20년 전의 일이다. 단지은 자신의 기억보다는 단천 본인의 기억이 훨씬 믿음직할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단지은은 단천에게 코인을 선물해준 적이 있었다. 그냥 동네 문방구에서 파는 가짜 동전이기는 했지만. 그러니 단천의 말이 완전히 거짓말은 아닌 것이다.

당시에 받은 동전은 지금도 단천의 방 서랍에 들어가 있다. 따지자면 그 때에 받았던 동전의 가치는 지금 단지은이 받을 돈의 열 배는 된다. 그러니 오히려 이득이라고 봐야 했다.

“아무튼, 그 코인은 내가 잘 보관하고 있어. 코인이라는 게 그렇게 비싸졌다면 높은 가격에 팔 수 있을 거야.”

“···그래?”

단지은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단지은이 멍해 있는 동안 단천은 휴대폰을 움직였다.

“어디 보자. 그 때 코인이 지금 가격이···.”

“얼마야. 얼만데?”

“···이 정도네.”

휴대폰을 확인한 단지은의 입이 천천히 숫자에 찍힌 단위를 헤아려 나갔다.

“이 돈이면, 새 집 살 수 있겠다. 그치?”

“그러게. 그···러게.”

“울어?”

“안 울어.”

단지은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

단지은이 잠들고 난 새벽. 단천은 집 꼭데기에 앉은 채 술을 홀짝이고 있었다.

“여기도 이제는 볼 일 없겠군.”

코인을 팔았을 때 벌리는 돈을 확인한 단지은은 그 자리에서 세금을 계산하더니 들어갈 수 있는 집을 빠르게 추려냈다. 근시일 내로 이사를 가고 나면 이 동네도 이제는 안녕이다.

집값은 단지은 몫의 코인으로 사기로 했다. 단지은의 말을 빌리자면 ‘반을 받는 것도 이미 고마운데 더 많이 받을 수는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의도치 않게 돈이 꽤 남아버렸군.”

꽤 남아버린 돈으로 무엇을 할지에 대해서 단천은 고민했다. 환약을 만드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그러고서도 돈이 꽤 남는다.

“슬슬 검이 필요하긴 한데.”

내공의 양도 꽤 높아졌고, 몸을 만드는 과정도 끝났다. 그러니 슬슬 검으로 수련을 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대한민국에는 자그마한 문제점이 있었다.

“···대장간이 없다는 거지.”

아무리 주변을 뒤져 봐도 대장간 비스무리한 곳도 없었다. 애초에 더 이상 무기를 패용하고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는 만큼 대장간이라는 것 자체가 더 이상 없는 것도 당연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직접 단조를 해서 무기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했다.

“어디 무기를 쓰는 무인이라도 있다면 어디서 무기를 사면 되는지 물어볼 수도 있으련만.”

단천은 말을 중얼거리다 문득. 머릿속에 아직까지 무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떠올랐다.

한수아였다.

총을 무기라고 하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아쉬운대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단천은 휴대폰을 들어 한수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 사부! 웬일로 전화하신 거에요?]

“혹시 개인적인 무기를 수주받는 대장간이 있나?”

[대장간? 아. 커스텀 웨폰 제작하는 곳 말씀하시는 건가요?]

“대충 그런 곳.”

[음, 아는 사람이 몇 있긴 있어요.]

“그 중에서 가장 능력이 좋은 사람은 누구지?”

[제일 실력 좋은 사람? 그랜드마스터. 그러니까 명공으로 불리는 사람이 있긴 해요. 그런데···.]

“그런데?”

[그 사람한테 무기 받기는 힘들 텐데.]

중원에서도 무기를 만들어 줄 수 없다는 종류의 대장장이들은 종종 있었다.

[제가 다른 사람 알아봐 줄게요. 명공만큼은 아니지만 꽤 실력 있는 사람 중에···.]

“상관없다. 본좌는 가장 실력이 좋은 자에게 무기를 받을 것이다.”

[뭐, 알아서 하세요. 연락처 보내 드릴게요 근데 그거 외에는 용무 없나요?]

“그 외의 용무라니.”

[아니 뭐, 귀국하면 어디서 밥이라도 먹자거나, 팀에 들어오라거나 하는 말 같은 거요.]

“없다.”

[···그렇군요.]

용무를 전한 단천은 휴대폰을 끊었다. 왜인지 미미한 살기가 느껴진 것 같지만 아마 큰 일은 아닐 터였다. 애초에 단천의 살기 감지 능력은 때때로 고장나고는 했다. 혈귀단이 가득한 천마신교 한복판에서도, 평정심이 가득한 소림사의 방장실에서 살기를 느끼고는 했었으니까.

특히나 평생을 수련한 고승인 무명승에게서 살기가 뿜어져나온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이던가.

그러니 아마 이번도 자신의 기우일 터였다. 단천은 빠르게 자신이 느꼈던 살기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그럼. 검을 만들러 가 볼까.”

***

[막야 공방]

단천은 공방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단천이 살아온 대부분의 대장간은 좁고 난잡하기 그지없었는데, 막야 공방은 깔끔하기 그지없었다.

가장 먼저 공방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예술작품들이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여러 가지 종류의 예술작품들이 널따란 공방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었다.

섬세하게 만들어진 작품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이 공방의 주인의 실력을 짐작케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공방 구석에 모여 있는 무기들.

‘꽤 잘 만들어졌군.’

실전용이 아니라 장식용인 듯 날은 벼려져 있지 않은 데다가 여러 가지 종류의 각인과 장식물들이 덕지덕지 붙어있기는 했지만, 최소한 무기를 만들 줄 아는 자의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그 무기들이 죄다 반으로 잘려진 채 버려진 상태라는 점이었지만.

단천은 반으로 조각난 검을 꺼내 이리저리 휘둘렀다. 다키스트 에이지에서 사용했던 부러진 직검보다도 훨씬 좋은 감각이다.

‘괜찮은데. 왜 부러트린 거지.’

이리저리 휘두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식을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로 오랜만에 들어본 진짜 검. 거기에 집어든 검이 꽤 괜찮은 검이었던 덕분이다.

과거에 서윤학에게서 칠성검을 받아들었을 때와 비슷한 감각. 이 정도라면 천마신공을 써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되는 검이다.

단천의 검이 천마신공의 일 초식. 창천향의 궤적을 따라 움직였다. 패도적이며 고고하며, 오만하기까지 한 검의 움직임이 부러진 검을 따라 이어져 나갔다.

무아지경에 빠진 단천이 초식을 얼마나 이어져 나갔을까.

빠지직!

내공을 담지도 않았거늘. 검기劍技를 이기지 못한 반 쪽짜리 검이 산산히 부서져버렸다.

“이래서 천마신공이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다른 무공과는 달리 단천이 가지고 있는 천마신공의 성취는 극성에 가깝다. 극성에 가까운 천마신공의 초식은 그 자체만으로도 거대한 파괴력을 지닌다.

웬만한 검이 아니고서는 초식을 버티는 것조차 불가능한 것이다.

“아쉽구만.”

그렇게 단천은 부서지기 직전의 검을 바닥으로 내려놓으려던 때. 단천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뭐지?”

검에 취해서 검을 휘두르다 주변의 기운을 감지하지 못한 모양이다. 중원에서였다면 말이 나오기도 전에 검부터 나갔을 텐데. 확실히 무뎌지긴 무뎌진 모양이다.

고개를 돌리자 이 공방의 주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사오십쯤 되었을까한 금발벽안의 외국인이었다.

“좋은 무기로군.”

“대체 어떻게 그런 검기를··· 아니, 됐어. 나가 주게.”

“검 한 자루를 받고 싶어서 왔는데.”

“나는 더 이상 무기를 만들지 않아. 그러니 나가 주게.”

역시나 한수아의 말대로 검을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헛소리를 하고 있다. 단천은 품 안에 있는 두랄루민 침을 만지작거렸다.

대부분의 문제는 건강혈을 찔리면 해결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래도 일단 이야기는 들어 보도록 할까.’

대장장이는 일종의 예술가들이다. 강제로 잡아다가 뭔가를 시키면 영 별로인 무기들이 나오는 것을 단천은 수없이 많이 겪어왔다.

물론 정 안 된다면 예술가적 기질이 강제로 발동될 때까지 ‘건강하게’ 만드는 과정이 필요하겠지만.

일단은 이야기를 들어 보는 것이 첫번째다.

“왜 무기를 만들지 않겠다는 거지?”

“그것도 이야기하고싶지 않아. 당장 나가게.”

남자의 말이 끝나는 것과, 단천이 경공으로 거리를 점해 남자의 기문혈을 손가락으로 누른 것은 거의 동시의 일이었다.

“뭐, 뭐··· 끄아아아악!”

남자의 입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올랐다.

“뭐야! 이거 뭐냐고!”

“기문혈이다. 대장장이에게 중요한 전체적 근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창작력 향상용 혈도지.”

거기에 부가적으로 제대로 힘을 줘서 누르면 극한으로 고통스러운 혈도이기도 하다.

누가 말했던가. 창작은 고통의 연속이라고.

다시 말해서 충분한 고통이 주어진다면 창작열도 불이 붙기 마련이다.

실제로 마교를 못 돕겠다고 뻗대다 창작혈을 추궁과혈당한 대장장이들은 추궁과혈을 오래 당할수록 좋은 무기들을 뽑아냈었으니까.

“조금만 참도록. 몸 안에서 창작열이 숨쉴 틈 없이 솟아나게 해 줄 테니까.”

“아악! 말 하겠소! 왜 물건을 못 만드는지 말하겠소!”

“늦었어. 본좌는 세 번 이상 참지 않는다. 성인이던 공자조차 사내라면 세 번 이상 참지 마라고 말했었지.”

“대체 우리 대화의 어디서 당신이 세 번이나 참은 거요!”

“인생에서 세 번 이상 참지 않는다는 뜻이다.”

‘인생에서 세 번 참는 거면 그냥 미친 새끼잖아.’

잘못 걸려도 단단히 잘못 걸렸다는 것을 인지한 남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단천은 그러거나 말거나 남자의 창작혈에 침을 꽂아나가기 시작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