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3:1 (4)
촤악!
“다시 덤벼라.”
퍼억!
“다시.”
콰직!
“다시.”
일방적이기 그지없는 전투가 계속해서, 계속해서 이어져 나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멀쩡했던 상용펀치의 온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상용펀치의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VR게임의 충격 리미트(damage limited)때문에 아무리 피를 흘려도 받게 되는 고통의 량은 크지 않다. 하지만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였다.
프로게이머인 자신이 고작 스트리머에게 이토록 처참하게 질 리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게임을 승리하기라도 해야 했다.
푸욱!
카드득!
“다시 덤벼.”
공격을 격중당해 뒤로 밀려난 상용펀치는 비척거리는 걸음으로 빙결의 핵을 향해 손을 뻗었다. 거리상으로 BJ천마는 충분히 방해할 수 있는 상황인데도 구태여 방해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쓰지 그랬나. 그랬으면 험한 꼴을 덜 봤을 것을.”
“입 닥쳐!”
상용펀치의 손아귀가 빙결의 핵을 부숴트렸다.
[상용펀치가 빙결의 핵을 습득했습니다!]
[능력치가 폭발적으로 상승합니다!]
휘오오오오!
상용펀치의 몸에서 세상 모든 것을 얼릴 것 같은 냉기가 터져나왔다.
[레벨 업!]
[레벨 업!]
[레벨 업!]
[레벨 업!]
[냉기 데미지 + 300%]
[지속 시간 : 3분]
“뒈져!”
[클로 슬래쉬]
상용펀치의 손에서 다시 클로 슬래쉬가 터져나왔다. 다시 한 번 공중을 점하고 날아오는 공격.
단천은 몸을 뒤로 빼 공격을 피해냈다. 아니, 피해냈다고 생각했다.
쩌저적!
꽤 거리를 두고 피했다고 생각했는데도 발끝이 얼어붙었다. 단천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한기 데미지에 당했습니다. 이동 속도가 느려집니다.]
> ㅅㅂ 공격 범위 왜저럼
> 저런 아이템을 막 뿌려도 되는 거임?
> 밸런스팀 뭐하냐고 ㅅㅂ
“크하하하! 이거 완전 밸붕 아이템이로군!”
상용펀치가 광소를 터트렸다. 상용펀치의 손이 휘저어질 때마다 사거리에 닿는 모든 것들이 얼어붙는다.
‘단순히 범위만 넓은 것이라면 쉽게 제압할 수 있겠지만.’
상용펀치는 이러니저러니해도 프로 게이머다. 스킬샷을 사용하면서도 파고들 만한 여지를 최대한 차단하고 있었다.
> 접근도 못하네 ㅅㅂ
> 그냥 시간 다 버틸 수 있음?
> ㄴㄴ 못버팀 지속시간이 너무 김
> 이거 게임 끝나면 바로 밸패 들어갈듯; 이건 좀 아니다 ㄹㅇ
채팅창에서조차 밸런스패치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압도적이기 그지없는 모습. 실제로도 상용펀치에게 다가서는 것이 쉽지는 않다.
‘사실 달려들 필요가 없는 이유가 더 크지만.’
단천은 계속해서 유운신법으로 상용펀치의 공격을 피해냈다.
“쥐새끼처럼 계속 피하기만 할 참이냐!”
쩌저정!
상용펀치의 손놀림에 얼어붙던 공기의 소리의 톤이 살짝 바뀌어 있었다. 빙공의 한계가 다다랐다는 의미.
계속 공격을 피하던 단천의 발걸음이 멈춰섰다.
“슬슬 끝을 낼 때가 됐군.”
“피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은 거겠지!”
단천이 상용펀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전까지의 보법과는 달리 신묘함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단순한 걸음걸이였다.
상용펀치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뒈져!”
[클로 슬래쉬]
기다란 손톱이 만들어내는 파공이 다시 한 번 공중을 갈랐다. BJ천마는 박도를 들어올려 옆면으로 클로 슬래시를 막아냈다.
파캉!
“소용없다!”
공격을 막아냈다고 해도 클로 슬래시에 들어가 있는 냉기 속성 데미지는 막아낼 수 없다.
상용펀치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은 채 BJ천마의 몸이 얼어붙는 것을 기다렸다.
하지만.
1초.
2초.
3초.
아무리 기다려도 BJ천마의 몸은 얼어붙지 않았다.
> 뭐임?
> 뭐임?
> 도대체 뭐임???
> 버근가?
> 하인라인 ㅅㅂ 똥망겜이네 이런 버그가 나면 어떡하냐
“버그가 아니다. 오히려 제대로 잘 만들어진 것이라고 봐야겠지.”
단천은 상용펀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냉기를 만들어 공격하기 위해서는 공격이 만들어내는 냉기가 주변의 온도보다 낮아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주변의 온도는 저 자식이 만들어내는 온도와 비슷할 뿐이지.”
즉. 지금 상용펀치가 만들어내는 공격은 빙공이 아닌 그저 일반적인 공격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빙공氷功은 장기전에 어울리지 않는다. 전투가 지속되면 될수록, 한 합에 사용하는 기운이 크면 클수록 그 다음의 공격은 약해지기 마련이었으니까.
‘북해빙궁주와의 전투에서도 그랬지.’
사흘 낮, 사흘 밤을 이어가는 전투의 결과 두 명이 싸우는 장소의 온도는 극도로 내려갔다. 북해빙궁주의 힘은 그저 평범한 현경의 고수에 불과해졌고, 덕분에 단천은 손쉽게 북해빙궁주를 이길 수 있었다.
상대가 북해빙궁의 궁주였다면 아마 지금처럼 싸우지 않았을 터.
하지만 상용펀치는 빙궁주가 아니다. 상용펀치가 저 커다란 힘을 얻은 것은 그저 힘만을 얻었을 뿐.
상용펀치가 발작적으로 팔다리를 휘저었지만 더 이상 BJ천마에게 위협이 될 만한 공격을 만들어낼 수는 없었다.
상용펀치가 가지고 있는 것은 고작해야 레벨과 스킬의 우위만이 남았을 뿐이다.
“으아! 으아아아!”
상용펀치가 발작적으로 BJ천마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둘이 가지고 있는 실력차이는 압도적이었다. 레벨과 스킬셋의 차이로도 이길 수 없을 정도의 실력 차이.
BJ천마의 박도가 휘둘러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레벨 차이 때문에 한 번에 처치하지는 못했지만. 수십 번의 검격이 상용펀치의 몸에 박히는 동안 상용펀치는 BJ천마의 몸에 단 하나의 생채기도 내지 못했다.
“이런···씨발···.”
“알아두도록. 힘만으로 무武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단천의 박도가 상용펀치의 목에 박히자 상용펀치가 그륵거리는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쓰러져내렸다.
[마지막 상대가 사망했습니다.]
[승리하셨습니다.]
> BJ천마! BJ천마! BJ천마! BJ천마! BJ천마!
> 포브스 선장 사람을 미치게하는 스트리머 1위
> 모든 세계의 위인전의 1권에는 BJ천마가 들어가야만 한다···
[상용펀치가 게임을 종료하였습니다.]
> 와 지고 졸렬하게 튀네 ㅋㅋㅋㅋ
> 부끄러운 줄은 아는 거지 ㅋㅋㅋㅋ
> 게임 종료창이 떠오르기도 전에 튀네 ㅋㅋㅋㅋㅋ
상용펀치가 나가자 게임 로비에는 BJ천마와 비밀가면, 여행하는코끼리만이 남았다.
“와. 진짜 BJ천마님은 리얼이네요.”
“싸움방식도 싸움방식인데, 컨트롤 자체도 미쳤어. 솔직히 프로중에도 저 정도 하는 사람은 거의 못 봤어요.”
“동의. 게다가 AOS는 얼마 하지도 않으셨잖아요.”
“재능으로 치면 프로들 중에서도 손꼽히지 않을까?”
> 프로들에게도 인정받는 BJ천마의 재능 ㄷㄷㄷ
> 위 풍 당 당
비밀가면과 여행하는코끼리의 말에 시청자들의 반응이 격렬해졌다. 스트리머가 프로게이머에 비해서 실력이 딸린다는 것은 정설을 넘어서서 사실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야, 프로게이머라는 것은 게임을 잘하는 것이 직업이고, 게임을 잘하기 위해서 하루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하나의 게임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반면, 스트리머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BJ천마는 두 명의 프로게이머에게 ‘이 실력이면 프로게이머에게도 통한다’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것이다.
“물론 1:1에서만 그렇단 거고, AOS라는 게 라인전만이 전부는 아니긴 하지만요.”
“1:1에서 본좌가 최강이라면 당연히 최강인 것이다.”
“아니, AOS는 적 넥서스 깨는 팀플 게임인데요?”
“탑에 오는 놈들을 모조리 베면 넥서스도 베어 버릴 수 있다. 그러니 라인전이야 말로 모든 것이지.”
“···그렇군요.”
> ㅋㅋㅋㅋㅋㅋ
> 진짜 탑솔러에게 굴복하는 가짜 탑솔러 ㄷㄷㄷ
> 진심으로 대화하면 무조건 손해본다는 날카로운 딜견적 ㄷㄷㄷ
> 그보다 이겼는데 미션금은 회수 안함?
“그러고 보니. 미션금이 있었군.”
“천만원인가 그렇죠? 와. 축하합니다.”
“아쉽지만 미션은 실패다.”
“···네?”
“실패라고. 미션은 3:1로 싸워서 이기는 것. 내가 밟아버린 것은 상용펀치 혼자다. 그러니 3:1이라고 할 수는 없지.”
> ?
> 논리가 그렇게 되나
> 뭔 개소리야 ㅋㅋㅋㅋㅋㅋ
“그게 뭔 개소리에요. 상용펀치 그 인간 키우느라 우리도 엄청 고생했는데. 마지막에 우리 킬 경험치까지 챙겨갔다고요.”
“맞아요. 상황으로 따지면 3:1만큼, 아니면 그것보다 더 힘들었을 건데. 게임을 이긴 것도 확실하고. 그냥 받아가죠? 받아가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해요.”
“싫다.”
“왜요.”
“미션은 3:1을 이기는 것. 본좌는 3:1을 하지 않았으니 미션금을 받아갈 수 없다.”
“······.”
단천을 바라보던 두 탑솔러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 진성 미친놈 ㅋㅋㅋㅋㅋㅋ
> 미친놈들의 미친놈
> 탑신병자들의 탑신병자 BJ천마 ㅋㅋㅋㅋㅋ
단천은 지체없이 바로 미션 실패 버튼을 눌렀다.
[미션에 실패하셨습니다.]
[미션 후원액 12,087,000원이 환급되었습니다.]
> 진짜 눌렀어 ㅋㅋㅋㅋㅋ
> 아니 그냥 성공 누르라니까 ㅋㅋㅋㅋㅋ
그렇게 시청자들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을 때. 후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
[미션맨 님이 5,0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아 모르겠고!! 후원함!!!]
미션금을 걸었던 미션맨의 후원이었다. 그것도 걸었던 미션금과 완전히 똑같은 금액의 후원.
“미션금 후원하지 마라. 본좌는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션맨 님이 1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미션금 드린 거 아닌데요? 그냥 후원한 건데요?]
> ㅋㅋㅋㅋㅋ
> 돌아이네 저 인간도 ㅋㅋㅋㅋ
[천마신교후원재단 님이 2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저도 왜인지 2만원 후원 ^^7]
[짭션맨 님이 5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저도 500원 후원!!]
> 500원이 단위가 이상한데요?
원래의 미션금을 걸었던 사람들이 다시 등장에서 후원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후원금 어떻게 막는 거지? 아는 사람 있나? 제로콜. 풀창고. 이거 후원금 어떻게 막는 거지?”
단천은 후원금을 막기 위해 바깥에 있는 제로콜과 풀창고를 불렀다.
[제로콜 : 후원금 어케 막는지 몰라요]
[풀창고 : 나도 몰라]
“헛소리 하지 말고! 너희 오래 방송했잖아! 후원금 어떻게 막는지는 알 거 아냐!”
> 잘 한다 제로콜!
> 절 대 알 려 주 지 마!
뒤늦게 단천이 후원금을 막았지만, 이미 후원금은 원래의 미션 성공금보다 훨씬 더 많이 모인 뒤였다. 거의 천 오백만원이나 되는 금액.
“귀찮은 놈들 같으니라고.”
명목상으로 후원으로 받은 것이라 되돌려주기도 애매하다. 되돌려주는 방법을 찾는 것도 귀찮고. 단천은 혀를 찼다.
“잘 쓰도록 하겠다.”
혀를 차던 단천의 머릿속에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런데. 왜 북해빙궁주와 싸웠더라.’
새외까지 나가서 죽자사자 싸웠으니 뭔가 큰 이유가 있었을 터인데.
잠깐 고민하던 단천은 이내 이유를 기억해냈다.
‘여름이 더우니 여름마다 냉장고 역할을 해 달라고 했더니 덤벼들었었지.’
생각해 보면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닌데. 뭐 그리 화를 냈던 것인지.
하여간 빙궁의 쪼잔함은 알아 줘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