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3:1 (2)
[비밀가면 님이 로비에 입장하셨습니다.]
[여행하는코끼리 님이 로비에 입장하셨습니다.]
[상용펀치 님이 로비에 입장하셨습니다.]
게이머 세 명이 들어왔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딱 봐도 부자연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세 명이 눈 앞에 생겨났다.
“으어. 추워. 아니, VR게임을 하는 데 추위같은 걸 진짜 만드는 게 말이 돼? 리오레는 이런 거 없다고!”
“그런 것들까지 포함해서 실력이니까요. 리오레는 오래 된 게임이니까 그런 게 없는 거고요.”
“거참. 오래 된 게임이라도 아직 팬은 많거든요?”
“아. 천마님! 팬입니다! 반갑습니다!”
“대회 하면서도 가끔 천마님 방송 봤습니다! 근데 아무리 그래도 저희 프로인데. 이길 수 있으시겠어요?”
비밀가면과 여행하는코끼리는 웃는 표정으로 단천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야 시청자 중에서 단천과 게임을 해 보고 싶어서 신청을 한 사람들이니 이런 호의적인 반응은 당연하리라.
“너무 친한 척 하지는 말도록. 그렇다고 살살 베어주지는 않을 테니까.”
“크으으으. 이게 천마님이지!”
여행하는 코끼리가 커다란 덩치를 부들거리며 기뻐했다.
> 진성 팬이네 ㅋㅋㅋㅋ
> 나도 천마님한테 저런 소리 듣고 싶다
> ‘친한 척 해도 살살 베어주지는 않을 거다’ 크으으으;;
반면.
들어온 게이머 중 한 명. ‘상용펀치’라는 사람은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기색을 뿜어내고 있었다.
‘뭘 저렇게 야려.’
노골적으로 살기를 뿜어내는 상용펀치.
물론 이 쪽이 더 베어버리기는 편하다.
[캐릭터를 선택해 주세요!]
캐릭터 선택창이 나왔다. 물론 단천의 캐릭터는 ‘야수도 박정’이었다.
[여행하는코끼리가 나무정령 톤즈를 선택하셨습니다.]
[비밀가면이 술취한 난봉꾼 두리안을 선택하셨습니다.]
[상용펀치가 늑대의 제왕 웨어울을 선택하셨습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선택되는 세 명의 픽.
이 게임에서 탱커와 딜러는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구별이 된다. 탱커는 크고 딜러는 작다.
‘톤즈, 두리안은 탱커. 그리고 웨어울은 딜러.’
그리 밸런스가 좋은 조합이라고는 할 수 없다. 팀플레이를 상정했다면 저런 조합을 짜지 않았을 것이다.
“조합을 바꿀 생각은 없나? 서로 대화할 시간을 주지.”
“없습니다!”
“저 하고 싶은 거 하지, 무슨 대화야!”
> 팀플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밸런스 ㅋㅋㅋㅋ
> 아니 애초에 3:1로 다굴치는데 무슨 밸런스 타령이야
> 그리고 탑솔러들은 팀플 같은 거 몰라!
> ㅇㅈ ㅋㅋㅋㅋ
둘의 호기로운 포효에 단천은 씩 웃었다.
“확실히 탑솔러 프로쯤 되니 천하제일에 도전하는 자로서의 마음가짐은 확실히 돼 있군.”
> 그냥 평범한 탑신병자들인데
> 저런 마음가짐이 천하제일인의 마음가짐이냐
> 천하제일··· 그것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ㄷㄷㄷ
> 그보다 프로 3명이나 오는데 미션 있냐?
[미션맨 님이 5,0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승리수당! 프로분들 이겨도 후원금 그대로 나갑니다!]
> ㄷㄷㄷ 진짜 수상할 정도로 돈 많은 미션맨 ㄷㄷㄷㄷ
> 가끔 저사람 정체가 궁금함
> 볼거없잖아 그냥 평범한 지나가던 만수르임
> 그랬구나··· 나도 지나가던 평범한 만수르 하고 싶다 ㅠㅠ
[짭션맨 님이 5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저도 통크게 쏘고 갑니다!]
[천마신교후원재단 님이 2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저도 헌금 내고 갑니다! 천마님 승리기원!]
미션맨의 미션에 뒤이어 다른 사람들이 후원금을 넣기 시작했다. BJ천마가 프로를, 그것도 3:1로 싸우는 상황이니 후원금의 속도가 미칠 듯이 쌓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후원금이 터졌군.”
“오. 후원금 터졌나요? 얼마나 터졌죠?”
“승리시 1000만원 정도.”
“우와. 미쳤다···.”
“나도 프로 때려치고 방송이나 할까.”
“보통 다른 프로들도 저런 말 많이 하더라고요. 성공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냥 한 말이에요.”
여행하는코끼리가 헛기침을 했다. 게임 한 판에 천만원이 걸리는 것을 봤으니 순간적으로 군침이 돌만도 했다.
“크흠··· 거기서 100만 원만 주시면 실전에서 실수로 실력이 제대로 안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 ㅋㅋㅋㅋㅋ
> 코끼리 예능감 좋네 ㅋㅋㅋㅋ
단천은 픽 웃음을 터트렸다. 팬심으로 들어오긴 했지만 추가적인 동기부여가 있다면 좋을 터.
“그러면, 그쪽 팀이 이긴다면 본좌가 사비로 천만 원을 상금으로 주지.”
“네? 진짜로요?”
“아니. 천마님. 아무리 그래도 삼대일인데 천만원이나 거는 건 좀···.”
“천만원이 아니라 삼천만원.”
“네?”
“천만 원이 한 명한테 가는 게 아니라. 천만 원씩 세 명한테 준다는 이야기다.”
“······.”
“어때. 조금 이겨볼 생각은 들었나?”
“죽인다! BJ천마! 나의 모든 영혼을 다해 놈을 죽인다!”
“우오오오오!”
상금이 걸렸다는 소리를 듣자마자 코끼리와 가면이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이긴다! 죽인다! BJ천마는 나의 원수!”
“아니 돈 주는데 원수는 좀.”
“BJ천마는 나의 은인! 죽인다!”
> 은인을 죽이면 어떡해 ㅋㅋㅋ
> 텐션 MAX
> 아니 시참에 상금까지 걸린다고? 그것도 천만 원이나?
> ㅁㅊㄷ ㅋㅋㅋㅋㅋㅋ
죽자사자 이기려고 들 것이 뻔한 프로게이머 팀을 보며 단천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럼. 게임을 시작하도록 하지.”
***
[혹한의 성지에 입장하셨습니다.]
휘오오오!
입장 메시지가 끝나자 살을 벨 듯한 삭풍이 몸을 스쳐지나갔다.
‘북해빙궁의 느낌이 나는군.’
차디찬 한기로 가득찬 장소에 단천의 눈이 가볍게 주변을 훑어지나갔다. 얼음이 군데군데 얼어 있는 바닥과 얼음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동물 조각들로 가득찬 얼음 미로.
“얼음으로 된 미로라니. 꽤 재미있군.”
[게임이 시작됩니다.]
상념에 빠질 시간도 없이 떠오르는 게임 시작 메시지.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만만한 상대들은 아니었다.’
실력만으로 따지자면 단천이 첫 경기에서 만났던 상대 탑과 비슷한 수준이다.
지금까지 봐 왔던 실력자들 중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수준의 플레이어들. 게다가 그런 사람이 세 명이나 있다.
‘꽤 재밌을 것 같군.’
셋이 아니라 다섯, 열이었다면 더 좋았을지도. 하지만 있는 것에 만족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종의 안빈낙도랄까.
“보아하니 바로 싸움을 붙는 방식의 맵은 아닌 것 같군.”
> 모양 보니까 미로 지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는 모양인듯?
[혹한의 성지는 다대 1의 전투를 위해 만들어진 장소입니다.]
[얼음 몬스터들을 잡아 레벨업을 하고, 조금이라도 빨리 중앙에 도달해 ‘얼음의 핵’을 얻으십시오!]
[얼음의 핵을 얻으면 폭발적인 추가 능력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얼음 몬스터들?”
캬오오오!
장식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던 얼음 조각들이 메시지가 떠오르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단순한 미니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주변의 플레이어들을 선제공격한다는 점.
캬오오오오!
단천의 뒤에서 거대한 얼음 코끼리의 상아가 BJ천마를 향해 날아들었다. 피할 곳 없는 사각처럼 보였지만 단천의 몸은 가볍게 코끼리의 공격을 피해냈다.
> 안 보이는데 그냥 피하네
> 방금 어떻게 알고 피한 거임? ㄷㄷㄷ
“소리가 들렸으니까.”
게다가 코끼리라면 상대해 본 경험이 꽤 있다. 분노한 코끼리가 어떻게 덤벼드는지에 대한 정보가 이미 단천의 머리 속에는 있었던 것이다.
공격을 피해낸 단천의 박도가 코끼리의 다리를 파고들었다.
퍼석!
물론 한 번의 공격만으로 다리가 모조리 베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균형을 잃게 만드는 데에는 충분했다.
균형을 잃은 얼음 코끼리의 몸이 휘청거리며 바닥으로 무너져내렸다.
와드드득!
코끼리의 몸이 부서져내리자 부서져내린 잔해에서 동그란 구체가 떠올랐다.
아마도 경험치 구체일 것이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레벨 업!]
구체에 닿자 레벨이 올랐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이런 방식이로군.”
이해했다. 물론 구태여 레벨업을 위해서 사냥을 한다는 것은 귀찮은 일이지만.
“알아서 덤벼드는 것들을 베어넘기는 것이라면 말이 다르지.”
단천의 발걸음이 앞에 도열해 있는 수많은 얼음 석상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
상대 세 명의 탑솔러들도 BJ천마와 마찬가지로 덤벼든 몬스터들을 처치하고 있었다.
“와이씨. 무슨 처음 몬스터 난이도가 이래?”
여행하는코끼리가 불만을 터트렸다. 보통의 AOS게임에서의 몬스터들은 상대하기가 간단하게 디자인된다. 몬스터를 사냥하는 건 단순히 경험치를 얻기 위한 과정에 불과한 경우가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상대하고 있는 얼음 몬스터들의 난이도는 심하게 높았다.
프로게이머들이 세 명이나 붙어 있는데도 바로 돌파가 안 되는 모양새라니.
“아직 밸런싱 중인 게임이니까요. 사람들이 많이 안 하는 맵의 경우에는 밸런싱이 제대로 안 돼 있을 수 있죠.”
물론 이런 불평과는 달리 셋의 움직임은 절도있었다. 불평은 불평이고 실력은 실력이었으니까.
가장 먼저 적을 처치한 것은 딜러 캐릭터를 고른 상용펀치였다.
콰득!
상용펀치의 붉은 빛이 도는 손날이 맞싸움을 하던 비비원숭이 얼음상의 목을 쪼개버렸다.
“나이스! 어시스트 부탁합니다!”
콰득!
콰드득!
상용펀치의 주먹이 닿자 나머지 몬스터들의 몸이 순차적으로 무너져내렸다. 그리고 떠오르는 경험치 구체들. 코끼리와 가면의 손이 경험치 구체를 먹으려 움직이려는 찰나.
휘익!
상용펀치의 손이 경험치 구체를 먹어치웠다.
“아이씨!”
“뭐 하는 짓이야?”
“너희들은 탱커고, 내가 딜러. 내가 경험치를 먹는 게 이기기에 좋아.”
“그럼 말이라도 해야지!”
“당연히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 새끼가!”
코끼리가 화를 냈지만 이미 경험치 덩어리는 사라졌다. 짜증은 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무리 마이페이스인 놈들이 많은 게 탑 프로라지만 방금 건 좀 심했다. 옆에서 레벨이 낮아서 얼마나 고생하는지도 봤는데 이런 식으로 날름 스틸을 하다니.
“참아. 그래도 맞는 말이긴 하니까.”
“맞는 말이면 뭐 하냐고! 말을 저 따위로 하는데!”
“참아! 착하지! 천만 원!”
천만원을 이야기하자마자 코끼리의 화가 멈췄다. 돈도 돈이었지만 지금은 BJ천마의 방송 중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오. 저걸 진짜. 야. 끝나고 1:1 탑빵 떠.”
“그러던가.”
여행하는코끼리가 씩씩대거나 말거나 상용펀치는 경험치를 챙기며 떠오른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경험치가 오릅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오릅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얼음의 가호가 부여되었습니다. 공격력 +3%]
‘버프도 추가로 주는군.’
이렇게 경험치들을 독식하고 버프를 두른다면, BJ천마를 확실하게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래봤자 3:1이라고 하는 시청자들이 있겠지만.
‘그거야. 만나기 전에 두 명을 처치해 버리면 1:1이 되는 거니까.’
상용펀치의 입꼬리가 비열하게 위로 꺾여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