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3:1 (1)
그 뒤로도 시참 게임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물론 대부분은 제로콜을 이기기는 커녕 제대로 공격해 보지도 못했다.
라인전이 모조리 끝나고 나서 제로콜이 얻은 승패는 19승 1패.
되도록 티어 인증이 된 플레이어들을 위주로 받았는데도 이 정도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제로콜의 실력은 확실히 검증된 것이다.
> 와 근데 제로콜이 이 정도로까지 잘 했었냐
> 토끼가면좌 도대체 얼마나 잘했던거임
> AOS 그렇게 많이 하지도 않았는데 이 정도 실력 ㄷㄷㄷ
> 역시 게임은 재능인가···
“게임은 역시 재능이죠.”
“제로콜아. 니가 재능론을 긍정하면 안 되지. 너 진짜 개못했었잖아.”
“그 때의 제로콜과 지금의 제로콜은 완전히 다른 사람입니다! 새로 태어난 제로콜은 재능충 그 자체죠!”
“제로콜, 실력 늘어나기 전의 시청자들은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라 밝혀!”
“이걸 이렇게 멕인다고?”
그 뒤 이어진 풀창고의 시참. 풀창고도 제로콜과 마찬가지로 시참에 참여한 시청자들을 꽤 수월하게 상대해냈다.
‘확실히. 실력이 빠르게 느는군.’
풀창고도 그렇고 제로콜도 그렇고. 실력이 늘어나는 속도가 꽤 빠르다. 모두 다 단천의 적절하기 그지없는 훈련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 실력 늘어난 거 다 천마님 덕분 아니냐?
“맞긴 맞는데. 그냥 실력 향상 없이 살면 안 될까요?”
> 응 안 돼
“알아요··· 그냥 물어본 거야.”
제로콜의 우울하기 그지없는 반응에 채팅창이 다시 한 번 웃음으로 도배됐다.
그 다음으로 이어진 풀창고의 시참에서도 풀창고도 차곡차곡 승을 쌓아갔다.
물론 풀창고의 수련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다이아몬드 티어의 시청자들에게는 반반보다 조금 더 높은 확률로 이기고, 그 이상 티어의 시청자들에게는 꽤 자주 지는 정도.
놀라운 것은 풀창고가 티어가 매우 높은 시청자를 상대로도 승을 한 번 따냈다는 점이다.
[풀창고가 승리했습니다!]
“우와아! 리오레 챌린저라고 하시더니 별 거 없구만!”
리오레의 챌린저라고 밝힌 시청자를 이긴 풀창고가 커다랗게 포효했다.
다양한 변수가 있는 실제 게임에서는 티어가 높은 사람이 티어가 낮은 사람에게 지는 경우가 왕왕 발생했다.
하지만 실제 게임이 아닌 1:1의 전투에서는 이런 변수들이 꽤 많이 줄어든다. 그러면 티어가 높은 사람이 이길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
챌린저 등급에 있는 사람이라면 골드, 실버 급의 실력이었던 풀창고가 절대 이기지 못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
그런데도 풀창고는 그 높은 티어의 플레이어들을 상대로도 가끔 솔로 킬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공 덕분이지.’
풀창고의 몸에는 다키스트 에이지를 하는 것과 단천과의 수련으로 인해 몸에 익은 무공이 있었다.
물론 내공이나 외공과 같은 신체능력의 상승은 게임에서 기대할 수 없고, 신경계의 능력 향상도 아직은 미미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강자를 상대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고 있다.’
자신보다 강한 자를 상대로 이기기 위한 방법. 그리고 마음가짐. 이런 것들은 단순히 게임을 많이 하는 것만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들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가짐.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 진짜 지독하게 플레이함 ㅋㅋㅋㅋ
> 악으로 깡으로 들러붙음 ㄹㅇ;
지독할 정도의 악다구니다.
“어디서 배운 악다구니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잘 장착됐군.”
“그거야 형이랑 운동 하루만 같이 해도 생기는 거고요.”
“그게 무슨 말이지?”
“형이랑 같이 운동하다 보면 드는 마음가짐이 있거든요···.”
“운동하다 보면 생기는 마음가짐?”
“그게 뭐냐면··· 아닙니다.”
제로콜은 ‘여기서 살아남아서 반드시 저 인간에게 복수한다.’는 말은 구태여 하지 않았다.
풀창고의 마음가짐은 자신 또한 가지고 있는 것이었기에.
“자. 풀창고의 시참도 끝났고. 이제는 본좌의 타이밍이군.”
> 큰거 왔다
> ㄷㄷㄷㄷ 천마님 입갤
풀창고의 시참이 끝났다는 말이 나오자마자 안 그래도 빨리 올라가던 채팅창의 속도가 배는 더 빨라졌다.
BJ천마가 가지고 있던 실력에 대한 왈가왈부가 아직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BJ천마의 실력이 범상치 않다는 것 정도는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연히 ‘얼마나 강한가’를 아는 것과 그것을 실제로 체험하고 보는 것 간의 간극은 크나크다.
‘그 간극을 메워 줄 필요가 있겠지.’
지금도 간간히 자신에 대한 이런저런 음해가 나오는 상황. 자신의 실력을 다시 한 번 증명해 보여줘야 할 타이밍이 된 것이다.
> 시참 최소 티어는 어떻게 됨?
“시참을 위한 티어의 기본 조건은 타 게임 챌린저부터다. 되도록이면 프로게이머였으면 좋겠군.”
> 시작부터 프로게이머냐 ㅋㅋㅋㅋㅋ
> 아니 프로가 이 시간에 게임 보고 있겠냐고 ㅋㅋㅋㅋ
“아. 그리고 ‘탑솔러’만 신청하도록. 천하제일을 목표로 하지 않는 자와는 검을 섞을 필요조차 없으니.”
> 타 라인 비하발언 ㄷㄷㄷ
> 진짜 얼마나 탑신병자인 거냐고 ㅋㅋㅋㅋ
> 게임 얼마 했다고 벌써 적응함
> 적응이고 뭐고 오기 전부터 저 모양이었는데요
시청자들이 BJ천마의 말에 웃음을 터트렸다. 아무리 그래도 대놓고 프로와 게임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하는 것은 무리수라고 여긴 것이다.
> 게시판에 프로게이머 인증 떴는데?
> 세 명이나 뜸 ㅋㅋㅋㅋㅋ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달랐다. 세 명이나 자신의 프로게이머 카드를 인증하며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특정되지 않기 위해서 이름과 국적, 게임 리그는 가려져 있었지만. 분명히 자신의 것이 확실한 인증자들.
> 와 무슨 진짜 시청자들 중에 프로게이머가 있었던 거야?
> 시청자들 평균입니다만?
> 시청자 평균이 프로게이머 ㄷㄷㄷ;
> 우리나라에 10만명이나 프로게이머가 있었냐 ㄷㄷ
“자신의 이름이 알려지고 싶지는 않은가보군.”
당연한 일이기는 했다. 기본적으로 프로게이머는 계약 중에 같은 종류의 게임을 송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거기에 다른 게임을 한다는 것이 알려지면 이미지에도 영향이 갈 수밖에 없으니, 다른 게임을 한다는 것을 최대한 숨기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아이디를 대놓고 쓰는 간 큰 인간도 가끔 있기는 하지만.
“세 명이라. 더 없나?”
단천이 가볍게 몇 번 더 물었지만, 더 이상의 신청자는 없었다.
“뭐. 세 명이면 나쁘지는 않겠군.”
> 뭐가 나쁘지가 않음?
> 프로게이머랑 3판 하면 말랑튜브 각 낭낭하게 나오긴 하지
“세판? 왜 세 판이 되지?”
> 프로게이머가 세 명이니까 세 판이죠
> 무슨 소리하는 거야
“너희들이야말로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군.”
> ???
> ?
BJ천마의 말에 시청자들이 갈고리를 수없이 많이 떠올렸다. 시참 참여자가 세 명이니 당연히 세 판인 게 맞다.
하지만 BJ천마는 너무나도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본좌는 세 판이 아니라 한 판.”
[혹한의 성지]
[다대 1의 전투를 벌일 수 있도록 설계된 전장입니다.]
“삼대 일의 싸움을 할 것이니라.”
***
“이 새끼.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왜. 무슨 일인데?”
이상용이 헛웃음을 터트리자 같이 캡슐룸에서 쉬고 있던 미드 라이너, 서유재가 물어왔다.
“몰라. 탑빵 뜨자고 스트리머가 시참 받길래 시참 넣었는데. 3:1로 하자네.”
“그건 좀 심했다. 암만 프로라고 해도 3대 1을 어떻게 해.”
“3쪽이 우리야.”
“뭐?”
“3쪽이 우리 쪽이라고.”
“···그러니까 스트리머 쪽이 1이라고?”
“그렇지.”
“게임은?”
“그게···.”
“형. 어차피 이번에 은퇴한다면서. 굳이 숨길 필요 있어?”
“이번에 새로 나온 천공.”
천공이라고 한다면 알음알음 비시즌 중에 하는 프로들이 꽤 생겨난 게임이었다.
다른 리오레 게이머의 경우였다면 게임을 하는 즉시 징계를 당할 만한 상황이겠지만, 이상용은 이제 은퇴를 곧 앞둔 몸. 다른 게임을 좀 한다고 해서 문제가 생길 여지는 없는 것이다.
“하. 이걸 진짜 어떻게 발라줘야 속이 시원하려나.”
이상용이 헛웃음을 계속 지어 보였다.
“스트리머 이름은 뭔데?”
“BJ천마.”
“와. 이 사람. 시청자가 10만명이나 되는데?”
“그렇지. 초대형이야.”
> 이걸 어케이겨 ㅋㅋㅋㅋ
> 말도 안 되는 짓 하지 말고 1:1이나 합시다
“채팅창 분위기도 못 이긴다는 쪽이네.”
“물론 내가 천공 그렇게 많이 안 했거든? 야. 암만 그래도 깜냥이 있지, 저런 놈한테 지겠냐? 그것도 삼대 일로?”
서유재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용의 말이 맞았다. 프로게이머와 일반 게이머들간에는 실력차이가 굉장히 난다. 아무리 게임이라는 것이 프로와 선수간의 차이가 그리 나지 않는 종류의 종목이라고 할지라도 그 경계는 굉장히 뚜렷한 편인 것이다.
게다가. 그런 아마추어가 프로를 상대로 3:1을 한다?
이기는 게 불가능하다.
“이걸 어떻게 조져야 되냐.”
이상용이 콧김을 씩씩 내뿜었다. 어떻게든 BJ천마를 박살내 버리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해 보였다.
“아예 방법이 없는 건 아닌데.”
“방법?”
“그렇게까지 좋은 방법은 아니라서. 추천은 못 해 주겠다.”
“뭔데?”
“내가 아는 신문사 형이 있거든.”
“근데?”
“그 사람한테 니 이름 슬쩍 흘리는 거지.”
“기사화를 하자고?”
“그래.”
스트리머의 행동 하나하나로 기사가 나가지는 않는다. 하지만 초대형 스트리머의 방송의 경우에는 이야기가 다르다.
초대형 스트리머의 방송 기사는 그 자체만으로도 조회수가 꽤 붙는다. 자연스럽게 기사화도 활발해져 있다.
“3:1로 니가 쳐바른 다음에, 1:1로도 쳐바르고. 그 다음에 니 이름을 슬쩍 흘리면···.”
“내 이름값도 올라간다는 거군.”
BJ천마의 시청자수는 굉장히 높다. 거기에 실력파 스트리머로서의 그의 입지는 이제 손가락에 꼽힐 정도.
‘실력은 몰라도 그 인지도만큼은 진짜지.’
놈을 이긴다면 그만큼 자신의 이름값도 올라갈 터였다. 이상용이 입술을 핥았다.
“너 방송 곧 시작한다고 했잖아?”
“어. 은퇴하고 나면 바로 시작할 생각이니까.”
“그럼 게임 이기면 인지도 엄청 올라가겠다. 10만명이면 말랑튜브 조회수만으로도 30~40만은 나올 테고. 그 중에서 백분의 일만 와도 삼사천 명이잖아.”
“좋아. 기사화 준비하게 연락좀 해 줘라. 이름 대충 흘려주고. 내가 쳐바르면 실시간으로 기사 뜨는 걸로.”
“실시간으로? 괜찮을까? 잘못해서 지면···.”
이상용의 눈이 서유재를 노려봤다.
“이 새끼가···.”
“뭐. 질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럼 그렇게 말해놓을게. 실시간으로 바로 올라가게.”
“그래.”
‘성격 좀 죽이라니까.’
서유재가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이상용이 아직까지도 나름대로 실력이 있는데도 한국판 내에서 다른 팀을 찾지 못한 것이 바로 저 성격 때문이었다.
당장 지금 있는 자신의 팀에서도 서유재 자신을 제외하고는 대화를 하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으니 말 다했다.
‘이거 이기면 저 BJ천마라는 인간. 심심하면 끌려나와서 안줏거리 되겠네.’
서유재는 문득 BJ천마가 이상용을 털어 버리는 상상을 했다.
물론 이뤄질 수 없는 상상이긴 했지만.
“···그래도 방송 정도는 좀 봐 볼까.”
서유재는 휴대폰을 켜 BJ천마의 방송을 시청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