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J천마-117화 (117/212)

24. 팀플이란 (5)

“그럼. 게임을 시작하도록 할까.”

[맵을 설정합니다.]

그러고 보니 노멀 게임에서는 계속해서 ‘협곡’만 나왔던 것 같은데. 의외로 맵 종류가 다양하다.

> 협곡은 노멀 전용 맵임 추가 설정 안하면 협곡에서 보통 게임함

> 하긴 이거저거 룰 있는 맵은 노멀게임에 안 맞지

> 랭크 들어가면 자연스럽게 다른 맵은 개방될 거라고 예상하고 있더라

“1:1에 적합한 맵이 있나?”

> 통곡의 동굴이 1:1 전용 맵입

[통곡의 동굴]

[일대 일의 명예로운 싸움을 위해 만들어진 전장입니다.]

단천이 맵을 바꾸자 토끼가면이 레드 팀에, 제로콜이 블루 팀에 가서 준비를 완료했다.

단천은 관전자 위치로 자리를 옮겼다.

“후우우우.”

“와. 저 토끼가면이라는 분. 분위기 한 번 살벌하네요.”

풀창고가 옆에서 혀를 내둘렀다. 실제로 토끼가면의 몸에서 넘실대는 분위기는 제로콜에 대한 확연한 적의가 풍겨나오고 있었으니까.

“죽인다···.”

“네?”

“적이니까. 죽여야죠.”

“아. 네. 그렇죠.”

제로콜의 등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죽인다고 하는 말이 실제로 ‘죽인다’는 느낌으로 들린 탓이다.

> 거의 물 것 같은 분위기인데 ㅋㅋㅋㅋ

> 근데 그래 봐야 제로콜은 못 이기지 않나?

> 모르지 1:1은 상성따라 가는 게 엄청 커서

“캐릭터는 뭐 쓰시나요?”

“제로콜님이랑 똑같은 ‘석양의 건맨 하자드’ 쓸게요.”

“그럼 미러전이네요.”

> 미러전이면 제로콜이 이길듯?

> 토끼가면이 제로콜 실력 모르는듯 ㅋㅋㅋㅋ

제로콜은 현재 레일 서바이버에서 챌린저에 입성한 실력자다. 그러니 당연히 시청자들의 예상은 제로콜에게 쏠릴 수밖에 없는 상태.

[미션맨 님이 10,000원을 상금으로 거셨습니다.]

[승자 예측! 제로콜 vs 토끼가면! 맞추면 10만!]

“앗. 승자 예측! 저는 동생이니까 제로콜 쪽에 걸겠습니다! 제로콜! 형은 네 실력을 믿어!”

> 동생이라서 거는 거 아니잖아 ㅋㅋㅋㅋㅋㅋ

> 정보) 예전의 제로콜이었으면 절대 제로콜한테 안 걸었음

> 정보) 실제로도 한 번도 안 걸었었음

“어허! 팩트 밴입니다!”

> 정보) 여기 BJ천마 방이라 밴 못함 ㅋㅋㅋㅋ

“형! 저 사람 밴 해 줘요! 날 무시했어!”

“안 돼.”

“그럴 수가!”

“일단 풀창고는 제로콜이 이긴다는 데 걸었고. 본좌는···.”

단천의 눈이 토끼가면. 그러니까 한수아에게 가서 고정됐다 떨어졌다.

“토끼가면이 이긴다는 쪽에 걸도록 하지.”

> 억지로 반대편에 거는거 에반데

“억지인지 아닌지는 보면 알게 되겠지.”

[게임이 시작됩니다!]

게임이 시작된다는 메시지가 떠오르자 시야가 점등했다. 시야가 점등하고 나자 전장 전체가 보이는 곳으로 시점이 바뀌었다.

1인칭 뷰에서 3인칭 뷰로 시점이 변화한 것이다.

“제로콜의 실력이 꽤 늘긴 했죠?”

> 꽤(챌린저)

> 플딱이가 챌린저한테 꽤 늘었다는 소리를 하네 ㅋㅋㅋㅋ

“제로콜이 챌린저라니. 제로콜을 상대로 게임 전적 182승 1패를 하고 있는 제 평가가 조금 더 올라가겠군요.”

풀창고가 뻔뻔하기 그지없게 말을 이어나가는 동안. 제로콜과 토끼가면은 라인전 중앙에 도착해 있었다.

***

[통곡의 동굴]

[게임이 시작되고 일정 시간동안 무적이 지속됩니다.]

[무적이 끝나면 먼저 1킬을 한 게이머가 승리합니다.]

[미니언이나 포탑 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전투가 길어지면 엄폐물들이 사라집니다.]

룰을 확인한 제로콜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상 레일 서바이버와 거의 똑같은 룰이다.

[무적 시간 : 1분]

“잘 부탁드립니다.”

“그러고 보니. 초면은 아니죠?”

“네?”

“저번에. 천마 사부랑 운동하면서 한 번 봤었잖아요.”

“아. 그 분이었군요!”

제로콜이 그제서야 지난 훈련에서 함께했던 여자를 떠올렸다. 어째 아는 사람처럼 행동하더라니. 그 때 만났던 사람이었을 줄이야.

“그. 남자 캐릭터는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총을 쏠 수 있고, 맞추는 것도 그리 다르진 않으니까요.”

> ㅁㅇㅁㅇ 서로 아는 사이였음?

> 어케 아는 사이임?

“천마 형이 운동하는 거 가르쳐준 분인 것 같네요. 근데···제가 뭔가 잘못한 거 있어요?”

“아뇨. 그냥 한 번 겨뤄 보고 싶어서요.”

“그렇군요. 이기면 뭔가 요구하고 싶으신 거라도 있나요?”

“음··· 이번 천공 대회 원거리 딜러 자리?”

“하하. 농담도.”

“그렇죠. 뭐.”

> 토끼가면 눈이 전혀 안 웃고 있는데 ㅋㅋㅋㅋ

제로콜은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가는 대신 상대의 실력을 지켜보는 것을 선택했다.

제로콜은 실력이 나아지기 전에도 분석하는 능력만큼은 최상위권이었던 스트리머다. 상대의 자세만 보고도 ‘만만하다’와 ‘만만하지 않다’ 정도는 알 수 있을 정도의 눈은 있다는 말이다.

제로콜은 지금 그 눈으로 자신 눈 앞에 있는 토끼가면을 판단하고 있었다.

판단이 나오는 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 사람. 도대체 뭐야.’

사격이라고는 시작도 하지 않았지만 알 수 있다. 자세 하나만큼은 실력자를 넘어서 국가대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천마 형! 토끼가면. 이 분.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프로게이머에요?”

대답은 없었다. 옵저버(observer)역할이라서 저쪽의 대화가 여기까지는 들리지 않는 까닭이다.

어찌 됐건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이기는 수밖에 없다.

‘1:1 상황은 보통의 2:2가 이뤄지는 바텀 라인전의 상황과 다르다.’

[무적이 곧 풀립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전장. 원딜간의 싸움에서는 지형지물의 활용이 중요해진다. 제로콜의 눈이 빠르게 주변의 지형지물을 훑었다.

다행히 숨을 곳은 꽤 많다. 제로콜은 발을 움직여 적당한 엄폐물 뒤에 몸을 숨겼다.

토끼가면도 능숙하게 엄폐물을 찾아 몸을 숨겼다.

[무적이 해제되었습니다.]

“그래도 기본은 하는 분인가 보네요. 엄폐물 고르시는 솜씨를 보니.”

“저, 레서 챌린저거든요?”

“레서가 뭐죠?”

토끼가면이 레서가 뭔지 모르겠다는 듯 대꾸했다. 비아냥이나 조롱이 아닌 순수하게 모르는 것을 물어보는 말투다.

> 레서도 모르는 뉴비 ㅋㅋㅋㅋㅋ

> 아니 진짜 뉴비였냐고

> 챌린저가 뉴비 팬다!!!!

레일 서바이버도 모르는 뉴비가 상대방이라는 게 알려지자마자 채팅창에서 작은 소요가 일어났다.

> 뭐 뉴비 상대로 이렇게 끌고 있음? 그냥 나가서 샷빨로 죽여 버리면 되는 거 아님?

“제 느낌뿐일지도 모르겠는데. 저 분. 게임만 모른다 뿐이지 엄청 고수입니다.”

> 올려치기 에반데

“이걸 못 믿네.”

제로콜이 한숨을 쉰 다음 하자드가 쓰고 있던 모자를 들어올렸다.

“잘 보세요.”

휙!

모자를 위로 던지자마자.

타다다다당!

눈 깜짝할 순간에 이어지는 총소리. 순식간에 벌집이 된 모자가 바닥에 떨어져내렸다

> ㅅㅂ 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 스킬임 저거?

> 권총의 연사 속도가 아닌데?

> 기관소총 수준임 속도가 ㅋㅋㅋㅋㅋ

“스킬 아닙니다.”

하자드의 스킬에 저런 연사속도를 발휘하는 스킬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스킬이 아니라, 자신의 ‘실력’으로 권총을 연사한 것.

권총의 공이를 당기며 사격을 하는 기술. 패닝(Fanning)이다.

그것도 여섯 발 모두를 발사하는 데에 1초도 걸리지 않는 괴물 수준의 패닝.

토끼가면의 실제 사격을 실력을 확인한 제로콜의 얼굴이 파래졌다.

“대체 저런 사람이 왜 나를 싫어하는 거야?”

제로콜의 구슬픈 목소리가 동굴 안을 울려퍼졌다.

***

단천은 둘의 전투를 바라보고 있었다.

둘 간의 실력차는 꽤 월등했다.

하지만 제로콜은 반쯤 일방적인 수세에 몰려 있으면서도 때때로 반격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칫.”

“아이씨!”

제로콜의 얼굴은 달아올라 있었다. 챌린저라는 목표를 달성한 상황이었는데도 이렇게 수세에 몰려 있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토끼가면의 얼굴도 그리 좋지는 않았다. 한수아가 사격에 가지고 있는 프라이드는 어마어마하다.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한 사격의 뉴비가 결사적으로 저항하고 있으니 자존심이 상할 만도 한 것이다.

양 쪽 모두가 자존심을 상해 하고 있는 상황에 미소를 짓는 것은 BJ천마뿐이었다.

“잘 돼 가고 있군.”

“뭐가?”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생각하지?”

“적절한 휴식과 학대하지 않는 트레이너?”

“헛소리하지 말고.”

사심 가득한 말을 하던 풀창고의 입이 다물어졌다.

“뭐가 제일 중요한데?”

“더 잘 하고 싶다는 마음가짐.”

“그거야 누구나 잘 하고 싶어하잖아.”

“그거야 처음에나 그렇지.”

어느 정도 실력이 올라간 이후부터는 ‘더 잘 하고 싶다’라는 마음을 지속적으로 가지는 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라이벌 의식인 것이다. 풀창고와 제로콜이 서로 라이벌 의식을 가지고 킬 경쟁을 했던 것처럼.

그런 점에서 본다면 한수아와 제로콜간의 경쟁심은 매우 좋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사격 능력 자체는 한수아가 아직까지는 월등하기는 하지만. 이 차이가 또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수아에게도, 제로콜에게도 도움이 되는 관계인 것이다. 따로 경쟁자를 찾지 못하고 있던 한수아 입장에서도 도움을 얻은 것이겠지만···.

‘···제로콜 입장에서는 제대로 기연을 얻었군.’

제로콜은 얼마 전에 레일 서바이버의 챌린저에 들어섰다. 한창 자신감이 충천하고, 그만큼 훈련에 소홀해지기 쉬운 상황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 세계 최고의 총잡이와 1:1로 싸워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어마어마하다.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 지,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지금.

백문이 불여일견. 지금 순간순간 제로콜은 한수아에게 사격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것이다.

단천이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매우 긍정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타아앙!

마지막 총소리와 함께 제로콜의 이마에 총알이 틀어박혔다.

[제로콜이 사망했습니다.]

[게임이 종료되었습니다.]

[토끼가면의 승리입니다!]

“와. 진짜 잘 하시네요. 졌습니다. 많이 배웠어요.”

게임 로비로 돌아온 제로콜의 얼굴은 후련한 표정이었다. 빈말이 아닌 정말로 많이 배웠다는 표정.

“하지만 다음 번에는 안 질 거에요.”

제로콜이 그르렁거렸다. 게임이 시작되기 전의 한수아와 똑 닮은 모습. 토끼가면이 픽 웃음을 터트렸다.

“열심히 해 보세요. 저는 못 이기시겠지만.”

> 토끼가면 패기 ㅁㅊㄷ ㅋㅋㅋㅋ

> 저사람도 패기샘 있는듯 ㅋㅋㅋㅋ

> 근데 워낙 잘 하기는 하더라 ㅋㅋㅋㅋㅋ

빙글빙글 웃으며 승리를 만끽한 토끼가면이 BJ천마를 향해 걸어왔다.

“만족하나?”

“아뇨. 전혀 만족 안해요.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거 다행이군.”

“처음에는 완전 박살을 내 버리려고 했는데 제로콜님이 의외로 잘 하네요. 왜 원딜로 골랐는지 알 것 같아.”

한수아는 웃고 있었다.

[개인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한수아 : 원래는 휴식 기간동안 천마 사부한테 원딜로 넣어 달라고 하려고 했는데. 안 그럴래요.]

[한수아 : 그 시간에 연습 더 해서, 천마 사부가 바짓가랑이 잡고 와 달라고 부탁하게 만들거야.]

“그래. 열심히 하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토끼가면이 밝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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