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팀플이란 (4)
[적 포탑이 파괴되었습니다!]
가장 빠르게 포탑이 부서졌다는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다른아닌 탑 라인이었다.
“이거 버그 아니냐? 말도 안 되잖아!”
상대방 탑이 절규에 가까운 비명을 터트렸다.
> 무슨 올때마다 여포처럼 썰어버리네
> 어허 천마님은 여포조차 한번에 썰어버린 분이시거늘!
> 무슨 올때마다 천마처럼 썰어버리네
> 올바른 수정 ㅇㅈ합니다
단천은 절규하는 상대 탑을 바라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천하제일에 오르는 자로서의 마음가짐이 되어 있지 않으니 질 수밖에 없지.”
“또 천하제일같은 소리를 하려고 하네. 난 그런 거 관심 없단 말이다!”
“다른 곳이라면 모르겠지만 탑에 오려면 반드시 천하제일에 오르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도록.”
탑탑탑탑탑탑탑은 눈 앞에 있는 BJ천마의 눈을 보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탑탑탑탑탑탑탑은 살아오면서 여러 탑신병자들을 만나왔다. 탑에는 수많은 탑신병자가 사는 곳이다. 실제로 탑탑탑탑탑탑탑 자신도 한 탑신병을 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하지만 이 자식은 달라.’
단순한 컨셉이 아니라 ‘진짜’다. 최강을 바라지 않는다면 탑에 올 수가 없다는 말. 그리고 확고하게 자신이 최강이라고 믿는 눈.
저런 눈을 보자 탑x7의 마음속에서 뭔가가 타오르기 시작했다.
“에이씨.”
탑x7도 한때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상대와 눈만 마주치면 싸우고, 자신이 져도 스스로가 최강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굽히지 않던 때가.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언제부터였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지금 탑x7의 가슴 속에 무언가가 타오르기 시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성장차도 벌어져 있다. 상대의 컨트롤은 프로, 혹은 그 이상의 무언가다.
이길 가능성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도망칠 이유가 되는가?
“아이씨!”
파창!
포탑 너머에서 안전거리만을 확보하고 있던 탑x7가 들고있던 창을 움켜쥐고 BJ천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덤벼! 이 개새꺄!”
> 쟤 뭐하냐
> 너무 쳐발려서 정신이 나간 것인가 ㅋㅋㅋㅋㅋ
> 그냥 포탑 끼고 갱이나 기다리지
> 근데 게임이 너무 터져 있긴 함
채팅창에서 비웃음이 터져나왔다. 마찬가지로 단천의 입꼬리도 올라가 있었다. 하지만 BJ천마의 웃음은 결코 비웃음이 아니었다.
“이제야 괜찮은 눈이 됐군.”
푸확!
깔끔하게 탑x7의 몸을 가른 다음 BJ천마의 입이 열렸다.
“창을 잡을 때에는 창끝 쪽을 잡은 손에 힘을 더 많이 주도록.”
별 것 아닌. 툭 던지는 것 같은 조언에 불과했지만. 그것은 분명한 인정의 말이었다.
탑x7은 그 순간 생각했다. 저런 탑솔러가 되고 싶다고.
“닉네임이 BJ인데. 방송은 하나?”
“그래. BJ천마로 찾아서 들어오면 된다.”
BJ천마의 열혈팬 한 명이 늘어나는 순간인 동시에, 진성 탑신병자 한 명이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
콰아아앙!
[적 넥서스가 파괴되었습니다.]
[승리하셨습니다!]
상대방의 넥서스가 거대한 폭음을 내며 무너져내렸다. 전방위적으로 게임이 너무 터져버린 탓에 게임이 끝날 때까지는 채 15분이 걸리지 않았다.
> 한판이 15분컷이 나네 ㅋㅋㅋㅋ
> 인베에서 게임이 터졌으니까
> 사실 터진 건 천마님이 탑에 있는 순간부터 터진 것 아닐까?
“우랴아아아아아!”
“안 돼에에에에에!”
게임이 끝나자 제로콜에게서는 환호가, 풀창고에게서는 절망에 찬 울음이 터져나왔다.
게임이 끝난 지금 킬 스코어는 21대 22. 아슬아슬하게 제로콜의 승리였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이번 주에 교회 성당 불당 모스크 다 돌면서 헌금하겠습니다!”
“신이여! 그대를 증오한다! 당신에게 심장은 있어? 신이여!”
“뭐 굳이 신을 찾을 것까지야.”
> 운동 하루 쉬는 걸로 저 정도 반응 보일 정도냐
> 찐텐 100000%임 ㅋㅋㅋㅋㅋ
> 대체 무슨 운동을 하는지 한 번 보고 싶을 정도네;
제로콜이 하루 훈련을 쉬게 되었지만 단천은 담담했다.
하루 훈련을 쉬기는 하지만 어차피 그 다음 훈련에서 하루 쉰만큼 더 시키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면 풀창고는 훈련한 만큼 다음 훈련이 쉬워지나 하면 그건 아니긴 하지만.
> 진짜 너무 찐텐이라서 응원해주고 싶을 정도네
> 꼬우면 잘하셨어야지~~~
[풀창고힘내 님이 1,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야! 2등도 잘한 거야!!!]
> 뭐래
> 스포츠에서 2등은 꼴등이랑 똑같음
> 2등(진짜 꼴등임)
“끄흐흐흐으으으으흐윽!”
바닥에서 절망하는 풀창고를 바라보며 사람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반응이 좋군.’
경쟁이라는 것은 언제나 좋은 구경거리다. 실제로 천마신교에서 주기적으로 벌어졌던 혈귀단의 순위 경쟁은 천마신교의 대대적인 구경거리 중 하나였으니까.
아쉽게도 단천에게 덤벼드는 혈귀단원은 초창기를 제외하고는 없었다.
거의 도전을 받지 못하는 단원은 단천 자신과 서윤학이 유이했다.
─ 어이. 2위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냐?
─ 안 해. 혈귀단 2위면 서윤학이 하는 짓을 해야 된다는 거잖아.
─ 아···.
─ 저렇게 살 바에는 죽고 말지.
─ 이 개자식들아! 제발 2위 자리를 가져가란 말이다! 제발! 1년! 아니, 한 달만이라도!
─ 안 삽니다.
─ 제기라아아아알!
귓가로 들려오는 것 같은 서윤학의 비명소리를 추억하며 단천은 지금 상황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그냥 결과에 승복하면서 절망하고 기뻐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절대로 승복하지 않고 꾸역꾸역 1:1의 싸움을 걸어대는 천마신교로 바뀌어 갈 것이다.
그렇게 단천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을 즈음. 커다란 후원 메시지가 터져나왔다.
[상금 10,112,000원이 「제로콜」에게 후원되었습니다!]
“아! 맞다! 상금!”
상금이 터져나오자 제로콜이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 와 ㅋㅋㅋㅋㅋㅋ
> 그러고 보니 상금 걸려 있었지 ㅋㅋㅋㅋㅋ
> 상금이 천만 원인데 완전히 잊고 있었던 표정 ㅋㅋㅋㅋㅋ
“그래도 상금이 너무 크니까 이번 상금은 저와 선의의 경쟁을 펼쳐 주신 풀창고 형이랑,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천마 형이랑! 다같이 잘 나눠 쓰겠습니다!”
> 역시 참동생이다
> 이야 상금도 혼자 꿀꺽 안하고 ㄹㅇ 의리파
> 역시 의리는 제로콜이지!
돈을 나눠 쓰겠다는 말에 제로콜에 대한 환호가 터져나왔다.
“세상 끝났어. 그냥 내일 세상 망해 버려라.”
풀창고의 입이 다소 험해지긴 했지만. 실로 성공적인 합방이었다.
달아오른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갈 만한 수단이 필요하다.
‘노멀 게임은 그리 좋지 않을 것 같은데.’
랭크가 아닌 노멀 게임은 현재로서는 실력 편차가 심각하리만큼 컸다. 풀창고와 제로콜의 실력또한 최소한 다이아몬드 이상이라는 것이 보여진 이상 노멀 게임을 얼마나 하든간에 양학스러운 방송이 될 수밖에 없다.
물론 양학 방송도 스트리머들에게는 꽤나 큰 재미 요소라고 할 수는 있었지만, BJ천마 자신의 방송은 엄연히 실력 방송이다.
그렇다고 해서 열리지도 않은 랭크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면 남는 것은.
“시참이 괜찮을 것 같은데.”
“제 생각도 그래요.”
> 오오오오오
> 시참 가즈아ㅏㅏㅏㅏ
> 손손손손손손손손!!!!!
> 딱대라 BJ천마! 실버의 금빛섬광! 탈곡라면이 간다!!!!
> 오늘 드디어 천마신교 예비교도들 실력 좀 보겠구만 ㅋㅋㅋㅋ
시참이라는 두 글자에 채팅창이 불타올랐다. ‘천공’은 이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게임이다. 심지어 랭크가 열리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다. 그러니 플레이어 사이에서 자신의 실력에 대한 근거없는 자신감이 하늘을 찌를 타이밍.
그러니 시참 게임을 하자고 하니 시청자들의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다.
> 시참은 5:5로 감?
“시참 게임은 1:1 라인전으로 하지.”
5대 5 게임의 경우에는 단천이 풀창고와 제로콜의 플레이를 제대로 보기가 힘든 면이 있다.
반면 1:1 게임의 경우에는 실제 플레이를 더 자세하게 지켜볼 수 있다. 게다가 조금 더 합방러들과의 대화도 가능하다.
“시참 하고싶은 사람은 누구랑 하고 싶은지 말하고 신청을 해서···.”
[토끼가면님이 100,000원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시참 하고싶습니다. 제로콜이랑요. 1:1 완전 터트려버리고 싶습니다.]
단천이 말을 이어나가는 중에 후원이 딱 터졌다. 그것도 금액이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후원으로 시참 인원을 뽑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자칫하면 시청자들에게 돈을 받아챙기기 위해서 시참을 한다고 비쳐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풀창고가 빠르게 다음 후원을 막았다.
“어, 어떡하죠. 이게 후원으로 시참하는 건 아니고, 추첨으로 하려고 했는데요.”
> 토끼가면 : 아 그런가요.
> 토끼가면 :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방송은 많이 안 봐서.
“저희가 바로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 토끼가면 : 아니에요. 재밌게 방송 본 셈 치죠 뭐. ^^
> 토끼가면 대인배네 ㄷㄷㄷ
> 10만원 쾌척!
> 하긴 저기서 다시 돌려받는다고 하는 것도 이상함
“아, 기분이다! 풀창고 형도 완전 찍어눌렀는데! 저 분이랑 1:1 시원하게 뜨고 오겠습니다!”
“찍어누르다니! 너 겨우 1킬 이겼잖아!”
“찍! 어! 눌! 렀! 으니! 후원 시원하게 해 주신 한 분이랑 시원하게 1:1 이기겠습니다!”
“이게 진짜!”
풀창고가 제로콜의 볼을 잡아당겼다.
> ㅋㅋㅋㅋㅋ
> 아 그래 10만원 줬는데 1판 해 줘야지
> 말도 하기 전에 10만원 냈는데 1판 ㄱㄱㄱㄱㄱ
> 어차피 1:1은 금방 끝나니까 빠르게 ㄱㄱ
갑작스럽게 1:1을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됐지만 채팅창의 분위기는 대체로 납득하는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말을 하기 전에 후원이 들어오기도 했고, 후원금을 환불해 준다고 했는데도 받지 않겠다고 반응한 사람에게 안 된다고 잘라 말하기가 힘들어진 탓이다.
게다가 결정적인 것은 제로콜과 풀창고의 티키타카였다. 자칫하면 분위기가 이상해 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는데 적절하기 그지없는 티키타카로 분위기를 원래대로 돌려놓은 것이다.
“그럼! 1:1하러 갑시다! 방 만들게요!”
[사용자 지정 게임을 생성합니다.]
[‘토끼가면’을 초대하셨습니다!]
방이 만들어지자 토끼가면을 쓴 플레이어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꾸벅 인사를 하는 토끼가면을 쓴 여자. 단천의 고개가 모로 돌아갔다.
‘한수아로군.’
저 가면 자체도 낯익은 가면인 데다가 사람의 서 있는 자세는 제각기 다르다. 한수아 정도 되는 달인의 서 있는 자세를 단천이 캐치하지 못할 리가 없는 것이다.
‘곧 대회라고 안 했었나.’
대회까지는 거의 접속 안 한다더니. 방송을 지금까지 보고 있었던 모양이다.
미스테리다. 왜 이 시간에 방송을 보고 있었는지. 그리고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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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라도 쳐다보는 눈으로 제로콜을 쳐다보는지. 죄다 미스테리다.
“그, 근데, 제로콜이 토끼가면님한테 뭔가 잘못했나요? 너무 무섭게 쳐다보시는데?”
“그런 거 없습니다.”
“있는 것 같은데요?”
> 전여친 아니냐?
> 부모의 원수라거나
> 뭔진 모르겠는데 사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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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 과
> 해
“저는 잘못한 거 없어요! 진짜 모르는 분이라고요!”
억울하기 그지없는 제로콜의 목소리가 대기 로비를 불려퍼졌다.
> 해
> 명
> 해
물론, 들어 주는 이는 한 명도 없었지만.